***
"벌써 날이 꽤 쌀쌀해졌어요."
"그러게요. 우리 만날 때만 하더라도 자꾸만 더워진다고 짜증을 내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남자는 처음 그 날 처럼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얼굴 하나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 날과 달라진 주변의 분위기가 대답을 아끼지만 공감을 하는 듯 느껴졌다. 그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고 최대한 많은 말을 아꼈다. 내가 열 마디를 해야만 한마디가 돌아왔으니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와의 마지막 만남.
골목길의 계절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첫 직장에서 서러운 마음에 퇴근하고 혼자 술을 마셨을 때다. 특성화고등학교를 나와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성적과 열심히 준비했던 면접으로 취업하기 힘들다던 대기업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학벌시대- 라고 입모아 이야기 하지 않던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입 닳게 들었던 명문대학교에 텔레비전 광고에서만 보던 토익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 사이에서의 난 얕보이는 존재, 그리고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갓난 어른흉내를 내보려드는 스무살이었을 뿐이다.
내 나름의 노력과 땀의 결과인 사회는 절대 녹록치 않았다. 알려주지 않았던 일도 못하면 혼이 났고 눈치껏 하지 못한다면 또 혼이 나고 월급과 일자리로 말없는 협박을 받았다. 하지만 난 가장 서러웠던 점이 있다면 역시 고졸을 얕본다는 점이랄까. 아마 그 날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진 채 나왔더라면 난 그를 못만나지 않았을까.
***
"쌀쌀해졌는데 나는 왜이리 좋죠? 이 맨 팔에 닿는 날카로운 바람이."
"..."
"나 오늘 기분 진짜 좋아요. 그래서 맥주 두 캔이나 마시고 만나러 왔어요. 아니 나 막 자꾸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말해봤어요."
피식-웃는 그의 웃음소리로 대답을 대신 받았다. 아니 나 오늘 기분 진짜 좋다는데 왜 웃고 그래요? 나 술은 마셔도 정신은 제정신인데-
"말해줘요. 기분 좋은 이유."
"개자식이 드디어 잘렸어요!"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이 골목길에, 검은색 후드를 눌러쓴 그가 웃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의 어깨가 살풋 떨렸으니까.
***
1.
"우리 탄소씨는 고졸이라 그런가 아직 개념이 덜 잡혔나봐?"
"네? "
"우리 회사는 전부 돋음체만 쓰는 거 몰랐나?"
"아 죄송합니다. 아무런 말씀 없으시길래 잘 몰랐습니다."
2.
"탄소씨 지금 뭐해?"
"아 모르는 단어 있어서 검색해 보고 있었습니다."
"탄소씨 신문 안읽어? 영어공부 안해?"
"하고 있-"
"대학원을 나온 사람들도 매일 치열하게 공부해. 그런데 지금 고졸이 뭐하는거지?"
위와 같은 예로 종종 나를 고졸이라는 이유로 얕보고 갈구던 상사다. 입산한 지 일주일 채 되지 않아 많은 능력의 부족함을 느꼈고 새벽과 야근 후의 잠을 줄여가며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듯이 내 노력을 알아주는 것 까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특성화 고등학생을 무시하는 발언은 때때로 큰 상처가 되어 뒤에서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탄소씨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짧은 치마가 더 잘어울릴 것 같아."
"탄소씨 같이 저런 붉은 입술은 남자랑 침대 위에 있을 때 바르면 남자 작살난다!"
"여자는 자고로 어릴 때 맛이 죽이지."
같은 성희롱적 발언을 들을 때. 어린 나이에 첫 직장, 남들이 모두 부러워라 하는 대기업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렇게 까지 살아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로 너무나 큰 힘이 들어버렸을 때 퇴근을 하고 무작정 소주 3병을 사 생수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1월 1일이 되어 친구들과 술집에서 같이 한 소주는 더럽게 썼는데 오늘은 왜이렇게 단 지 모르겠다. 아 어디선가 들은 적은 있는데, 인생의 쓴 맛을 알게 된다면 소주의 맛이 달게 느껴진다고. 나 벌써 그렇게 힘든걸까.
"삼만 장이나 팔아 항!! 데뷔 앨범 삼 만장!!"
"거기 아가씨! 시끄러워! 술 먹었으면 곱게 집에가지. 에휴."
넉살좋게 죄송합니다- 크게 외치고 이대론 집에 간다면 걱정하실 부모님이 떠올라 눈에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여기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다. 마지막 남은 소주병을 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아니다 그제서야 눈물이 나온 거다. 그 누구에게도 걱정끼치고 싶지 않아 꽁꽁 감쳐뒀던 스무살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사회의 짐들이.
소주병을 잡고 한참을 울었을까 나의 손에 꼭 잡아두고 있던 소주병을 누군가가 쑥 가져갔다. 가져간 손을 따라 가보면 어두운 밤의 배경 사이로 더 까만 사람의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까만 형체를 만들어준 까만 후드와 츄리닝과 대비되는 하얀 손가락이 꽉 진 내 소주병까지.
"뭐가 그렇게 슬퍼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 남자를 쳐다보느라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떨어졌고 남자는 당황했다는 듯 두 어깨가 움찔했다. 곧 내 몸에는 사람의 온기로 감싸안아졌다. 까만 후드가 내 정장에 닿았고 그 하얗던 손을 내 등을 한번 두번 토닥여주었다. 그렇게 내 눈물을 서서히 거두어져 가고 남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
"개자식이 사원 신고도 엄청 받았었구요 회장 따님한테 따님인 줄도 모르고 그 악질적인 말을 한거에요. 그래서 그 자리 바로 아웃! 당했어요. 와 진짜 속 시원해서 내가!"
푸스스하고 웃는 웃음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그동안과는 다른 느낌에 사회생활로 생길 수 밖에 없는 그 눈치로 애써 이어가던 내 이야기는 동났다. 나는 왜이리 미련이 남는걸까. 왜 마지막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얼굴 이름 하나 모르는 이 남자에게.
"우리 첫 날에 했던 이야기 기억나요?"
***
"왜 울어요?"
내가 그 남자를 보고 뱉은 첫마디였다. 서툰 손길로 나를 위로해주던 모습과는 다르게 온몸이 울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눈물이 흐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술김이 들어갔기 때문에 뱉을 수 있던 마디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눈물을 내뱉었다. 누구보다 처절하게 간절하게 외롭다는듯. 난 그가 했듯이 서툰손길로 나마 그를 위로할 뿐이다.
남자가 눈물을 그치고 우리는 골목길의 벽을 지지대 삼아 기대 앉았다. 정적사이로 후덥지근하게 부는 바람이 정적을 흐트려주고 간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다름아닌 남자였다.
"우리 종종 만날래요? 이 골목에서."
남자의 말에 난 대답대신 어두움에 익숙해져 보이는 시야로 손을 동그랗게 말아 남자 눈 앞에 갖다대었다. 남자의 트레이드마크라 생각되는 푸스스 하는 그 웃음소리는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시 정적이 찾아 올 찰나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대신 우리 날씨가 추워질 때 쯤 헤어집시다."
"왜요?"
"사람한테 한번 기대기 시작하면 난 끝도 없거든요. 사회생활 해보니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요. 그러면서 적당한거, 더운거, 추운거 다 겪고 헤어지자구요. 그럼 오래 만난 것 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나랑 오래 만나고 싶어요?"
"나쁜사람 아니잖아요."
남자는 나의 말에 이해가 가질 않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웃음소리를 흘려내자 남자는 알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뭐냐며 묻자 늦봄부터 여름 끝까지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큰소리를 내며 웃자 남자는 손을 뒤로 하려 한다. 그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아 악수한다.
"나도 잘부탁합니다."
그 남자와 난 이름, 얼굴, 핸드폰번호 조차 알지 못했기에 그 골목을 간다고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2주일동안 보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어느 날은 나를 기다린다고 비를 쫄딱 맞은 그의 모습을 볼 때도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독 그의 말 한마디에 울림이 생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가 한마디를 할 때 마다 내 가슴 속에 새기듯 깊게 다가온다. 분명 별 말이 아닌데도. 내가 그에게 떠들고 나면 그는 말을 하지 않아 정적에 휩쌓인다. 그럼 그는 일어나 바지를 턴다. 나에게 말한다.
"고마워요. 오늘도."
그의 마지막말은 항상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골목길을 벗어난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다가 환영조차 보이지 않을 때 일어나 느긋하게 집으로 향한다. 항상 그와 골목길에서 만나는 패턴이었다.
***
"무슨 이야기요?"
"우리 날이 추워지면 헤어지기로 했던 거."
"..."
"이제 제법 바람이 차네요."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신기하다.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의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친 적 없는데 어두움 속 그를 알아채는 내가. 그동안 많이 하지 않았던 말들을 그는 몰아서 할 예정인가보다. 처음으로 길게 듣는 그의 목소리.
"그때 나한테 그랬잖아요.적당한거, 더운거, 추운거 다 겪고 헤어지자고. 그럼 오래 만난 것 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같냐는 말. 그땐 이해가지 않았는데 당신을 만나는 동안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마지막을 향하는 말에 왜자꾸 미련이 남는지. 그는 내 마음을 모른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6개월 채 되지 않던 시간에 존재만으로도 위로받았어요.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이 있구나. 아 몇개월 지나면 헤어질 인연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항상 떠날까 무서웠던 팬들에 불안했던 마음과 더 보여주고 뛰어넘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잠식시켰었거든요, 나를.
당신과 이 짧은 만남으로 깨달았어요. 내 미래에 대해."
"팬..이요?"
그는 자세한 것은 묻지 말라는 듯 크게 헛기침을 두어번 반복했다. 그와 마지막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 그는 마지막 말을 하기 전 나에게 묻는다.
"슬퍼요?"
그의 말에 잠시 짧은 고민을 한다. 미련이 생길 때 부터 느꼈던 이 감정.
"이제야 깨달은 사랑의 결말이 이것이라면 난 결말을 맺을 수 있어 행복할 뿐인 걸요."
사랑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알지 못했던 감정. 얼굴, 이름 하나 모르던 사람에게 느낄리 없다고 느꼈던 감정. 자꾸만 이별을 늦추고 싶엇던 감정들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임을. 모든 것이 새로운 것 투성이라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몰라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않았던 나에게 토닥여준 당신.
"고마워요. 오늘은 내가 할래요. "
".. 그동안 고마웠어요."
많은 말들은 아껴두고 오늘은 그를 지나쳐 먼저 나선다.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가 먼저 나갈 때 마다 내 시선을 느꼈을까?
어느새 가볍게 마셨던 술의 알딸딸함은 가신 지 오래였다. 내 감정을 깨달았던 그 순간부터 정신은 바짝들더라. 쌀쌀한 바람이 내 어깨를 지나가며 앞머리를 살짝 건들인다. 내일부터는 꼭 도톰한 가디건을 챙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짧았던 만남만큼 이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길 빌어본다.
미안해요 똥을 투척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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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흑백 이번 시즌은 왤케 조용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