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하루 앞날 정국이는 모든 수업을 빠지고 펜싱장에서 연습을 했다. 그리고 대회를 위해 점검해야할 문제가 있어서인지 점심시간에는 아예 학교를 비웠다. 수학문제를 풀다 우연히 시선이 간 비어있는 옆자리에 괜시리 마음이 이상했다. 잘하고 있겠지 싶으면서도 혹시 며칠 전 윤지수의 말에 힘들어 하고 있는건 아닌지 혹시 긴장을 많이해 괴로워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수업시간마다 부족한 잠 때문에 꾸벅꾸벅 졸다가 잠에서 깨면 눈을 비비며 시간을 확인하는 정국이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밥 같이 먹은지 얼마 됐다고 없으니까 또 허전하네”
“그러게”
전정국과 김태형과 함께 들어가던 급식소에 도연이와 둘이 걸어 들어가는데 도연이도 둘의 빈자리를 느꼈는지 말했다. 항상 내 발걸음 속도와 밥먹는 속도에 맞춰오던 전정국의 부재는 생각보다 큰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와 도연이와 트랙을 돌며 확인해본 휴대폰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부재중도 와있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일임을 알았지만 전정국의 소식이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나보다. 혹시나해서 들어온 전정국과의 카카오톡 창에는 ‘잘자’라는 정국의 메시지를 끝으로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잘하고 있어? 컨디션은 어때? 긴장 많이 돼? 전정국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전정국에게 부담으로 느껴질까 어떤말을 보내야할지 쉽사리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트랙의 마지막 바퀴를 돌 때 그때서야 전정국에게 보낼 말을 메시지 창에 적었다.
‘옷 잘 챙겨입어. 춥다’
*
야자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정리하던 문학 노트를 다 정리하고 나자 주위에 아이들은 모두 하교를 하고난 뒤였다. 내일 있을 한국사 시험을 위해 한국사 교과서를 가방으로 챙겨넣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너도. 내일 시험 잘보고 ’
‘나도 경기 잘하고 올게’
전정국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화면에 보였다. 답장을 해야할까 말아야하까 망설이며 복도로 나와 신발을 갈아신기 위해 무릎을 굽혀 앉았을 때 내 시야로 들어온 운동화 두 개에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전정국이다.
한참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전정국이 씩 웃으며 내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굽혔다.
“오랜만이네”
“못 본 새 더 예뻐졌어”
장난스럽게 걸어오는 전정국의 장난에 나도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신발을 고쳐신고 일어서는데 전정국이 내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 손으로 따뜻한 핫팩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학교를 벗어나 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전정국이 정적을 깨고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카페 못들리겠다. 어머님이 매일 심신안정 좋은 차 내려주시던데”
“어? 자주 왔었어?”
“그냥 지나치기 그래서 인사 드리고 왔지”
“뭐야 왜 말 안했어”
내 물음에 전정국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마침내 집 앞에 다다랐고 인사를 하기위해 마주보고 섰을 때 본 전정국의 표정은 평온하면서도 어딘가 긴장을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눈이 마주쳤을 때 느껴지는 전정국의 아련함에 전정국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국아”
“응?”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
“난 시험보다 처음 보는 문제나 모르는 문제 나오면 되게 짜릿하더라”
“어차피 내가 알고 있는 개념인데 아닌 척 하고 있는거 푸는게 재밌었어”
“난 이 문제를 어차피 맞히는게 결론이고 그렇게 시작하니까 항상 이겼던거 같아”
“그게 너한테도 적용될 거 같아서”
“마음가짐이라는거 생각보다 중요한거 같아”
말을 끝내자 전정국을 보았을 때 전정국은 살풋 웃었다. 전정국의 크고 따뜻한 손이 내 머리위로 올라와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잘하고올게”
*
아침 일찍 출발해 도착한 경기장에는 선수들과 관련 스탭들로 분주했다. 북적대는 복도 속 해당 대기실을 찾아 김태형의 손목을 끌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정국아!”
그에 뒤를 돌아보자 체고 펜싱부 아이들이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체고에서 뿐만 아니라 고등부 중 가장 유망주로 불려지는 아이들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내가 반가웠던건지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야~전정국 표정 엄청 좋아졌는데?”
“그니까 안 그래도 잘생겼는데 더 잘 생겨졌어”
아이들이 묻는 근황에 웃으며 답을 하는데 갑자기 윤지수의 말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펜싱용 페이스메이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건지 김태형은 시간이 없다며 얼른 준비하자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남기고 들어온 대기실에서 김태형은 입을 삐죽대며 말했다.
“넌 속도 좋다. 웃기는 왜 웃어”
“......”
“잘하자”
김태형의 말에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
“왜 하필 오늘 시험이래 진짜~”
“내 말이~”
“일단 내가 이 뒤에 경기 어떻게 되는지는 문자로 남겨놓을테니까 시험 끝나면 꼭 보고!”
“알겠어”
통화를 끝내고 고사실 앞에서 휴대폰 전원을 끈 뒤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시험이 끝나고나면 어느정도 윤곽이 잡혀있겠지.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들었다. 원래 하던대로만 하면 된다.
한국사 시험은 예상대로 무난했다. 헷갈리는 문제도 모르는 문제도 없이 모든 정답을 세 번정도 꼼꼼히 체크했을 때 종료 10분전을 알렸고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답안지를 제출했다. 시험을 끝나는 종이 울렸을 때 퇴실해도 좋다는 감독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뛰어나가 택시를 잡고 휴대폰을 켰다.
‘정국이 4강 올라갔어!’
‘김태형도 4강 !’
‘헐.. 김태형이랑 전정국이랑 붙는대. 뭐야 ㅠㅠㅠㅠ 너무 슬프잖아 ㅠㅠ 애들도 충격먹은듯"
'ㅠㅠㅠㅠㅠ일점 차로 전정국이 이겼다!!!마스크 벗고 둘이서 포옹하는데 왜이렇게 슬프냐ㅠㅠ'
결승까지 올라갔구나. 왜인지 모를 안도감과 함께 신나는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꽤 성과가 있네 싶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 것 같았다. 경기장에 도착하려면 꽤나 남았는데 초조한 마음에 발을 동동거리며 손톱을 물어 뜯었다. 한 경기라도 봐야하는데
경기장에 도착해 서둘러 입장했을 때 한창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고 가운데서는 전정국이 체고 펜싱부 학생과 한창 마지막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
“네 K고 전정국 선수 오늘 역대 전정국 선수의 경기중 최고의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요. 소속이 변경된 지금의 학교에서 과거 학교의 선수와 경기를 하고있는데요”
“네 한하체고 김남준 선수, 작년 대회의 금메달의 주역인데요. 지금 진행되는 에페는 다시 말씀드리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부분을 찔러도 득점이 인정되고 누가 먼저 찔렀느냐에 따라 점수가 갈립니다."
"아...그런데 전정국 선수 지친건가요? 같은학교 김태형 선수와의 4강 때와는 다른 모습인데요? ”
“네 전정국 선수 4강보다 훨씬 느려진 속도인데요? 잘해오다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인데요?"
정국은 하얘지는 머리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4강까지 올라왔다는 기쁨보다는 다음 상대가 전 학교였던 한하체고라는 사실에 웃음이 사라졌다. 상대는 전국 1위이자 체고 펜싱부 부장이었던 김남준이었다. 경기 전 정국을 향해 씩 웃는 남준의 모습에 웃음과 펜싱용 페이스메이커라는 지수의 말이 자꾸만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김남준. 체고에서도 언제나 넘을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아이였다.
“네,10대 14로 김남준 선수의 득점이 이뤄질 경우 곧바로 메달이 결정되는데요,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중인 두 선수입니다!”
대기석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기까지 온것만으로 만족해야하는 것일까. 역시 김남준은 내가 이기기 힘든 상대가 확실한거겠지. 그와 동시에 윤지수의 펜싱용 페이스메이커라는 말이 자꾸 마음을 긁어댔다. 나의 펜싱을 해온 시간들이 그리고 내 존재가 너무 애틋했다. 김남준의 득점이 이뤄지면 경기는 끝나고 나는 그렇게 김남준에게 또다시 페이스메이커로 남는 것일까
한숨을 내쉬고 물을 마시며 시선을 관중석으로 옮겼을때였다.
“....어?”
내 눈에 들어온 건 관중석 제일 뒤에 서서 나를 쳐다보는 김여주였다. 내가 잘못본건 아닌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그 쪽을 보았다. 김여주. 김여주가 맞다. 오랫동안 마주치는 시선 끝에 여주는 내게 살며시 웃어주었다. 전에도 느꼈듯이 나비같은 아이.
‘마음가짐이라는거 생각보다 중요한거 같아’
네 말처럼 이미 이겨놓은 싸움에 나는 깃발을 꽂는 게임을 하고 있다.
나비같은 네가 내게 와준다면 난 기꺼이 꽃이 되리라
휴식시간이 종료됨을 알리고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페이스메이커따위는 없다.
“득점 1점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인데요 ! 전정국 선수 아까와는 정 반대의 모습인데요?”
“네, 전정국 선수 상당히 공격 위주의 플레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남준 선수도 많이 당황스러워운 모습인데요? 전정국 선수 순식간에 2점을 득점했습니다! ”
수도 없이 상대했던 사람이다. 수도 없이 나의 단점을 찔러댔던 사람이다. 1등이라는거 한번도 해본 적 없게 좌절감을 들게 만든 사람이다. 그 강력했던 주장 김남준이 약해진건 아닐텐데. 매일매일 남아서 하던 연습을 거른건 아닐텐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갈수 없을 것만 같던 김남준의 노력을 보면서 내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해야만 하는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14대 14! 순식간에 김남준 선수의 뒤를 따라온 전정국 선수입니다! 믿을수가 없는데요?”
“네 이제 누가 마지막 공격을 하는지가 관건인데요!”
드디어 확신이 생겼다.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는
“네! 말씀드린 순간 전정국 선수 물러나는 듯 하다 공격을 했습니다! 네!! 전정국 선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금메달을 차지하게됐습니다!!”
해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온몸으로 전율이 흘렀다. 태어나 느껴본 느낌 중 가장 짜릿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눈물이 차오르는 듯 했다. 그래도 무언가 이뤄보려고 아등바등 거렸던 기억, 학교를 옮겨 코치님과 김태형을 졸라가며 늦게까지 연습을 했던 기억 모두 머릿속을 스쳐가며 코 끝이 찡해졌다. 내가 드디어 해냈구나. 나도 얼마든지 할수있는 것이었구나.
마지막 공격의 성공으로 경기를 끝내자마자 본능적으로 내가 찾은 사람은 충격적인 패배에 당황한 김남준도, 과거 자신의 제자였던 나의 변한 모습에 당황한 감독님도 아닌 여주였다.
누구보다 해맑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너의 모습에 또다시 마음이 쿵쿵거렸다.
*
안녕하세요 젠설입니다
많이 늦었죠? ㅠㅠㅠㅠㅠ 기다리는거 알았는데 넘나 바쁘기도 했고 솔직히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도 많이하다보니 지각했네요
넘나 부족한 글솜씨때문에 실망하실까 고민이 많아요 흑
여러분 드디어 꾸기가 이겼습니다!! (박수 (함성
다음 화 얼른 들고 올게요 ! 구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암호닉♥
찜니야 꾸야 흥탄❤뉸기찌 YeY
캔디 늬집엔 정국이 없지 푸른날 하니 정국오빠애인
늉글레 DEL 땅위 물결잉 여니
뀽 꾸리스마스 레드로 꾸꾸 베네핏
새우깡강이 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