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muda company
by 하나비라
02: 그들의 해와 그의 달
결국 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처음부터 그에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끝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였다.
*
태형이 데려온 사장이란 사람은 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몇살이야?"
"열 아홉이요."
그가 잠깐 멈칫했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짧은 한숨을 뱉었다.
"기억못하지 그치?"
"뭘요?"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온거잖아 너는?"
"...네."
"너 안무서워?"
"별로요."
"여기 인신매매나 납치 그런거라고는 생각 안해봤어?"
"아...그렇다기엔 분위기가 너무 건전해서..."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웃어넘겼지만 내가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가슴 한켠에 불안함으로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여긴 유실물 보관소 같은 곳이야, 누군가가 기억에서 잊어버린 물건들을 이곳에 모아두고 있거든."
"..."
"결국 마지막에는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유실물이 되는거야, 그리고 만나는거지,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
"나도 솔직히 다 지겨워, 여기 있으면서 만나는건 죽어가는 사람들 뿐이야, 시간도 죽어버려서 흐르지 않고."
남준이 몸을 뒤로 빼고 다리를 꼬았다. 무릎 위에 깍지낀 손의 검지가 앞뒤로 움직였다.
"억겁의 시간동안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는데, 어떻게 안 지겨울까."
"..."
"그래서 네가 왔지."
"사장님."
언제 들어왔는지 태형이 남준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 때문에 대화가 끊겨 미안하다는 듯이 아까와 같이 헤픈 웃음을 웃었다.
"손님 오셨어요."
어쩌면 그의 말을 막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
중년의 아주머니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눈치였다. 그녀 앞에 남준이 앉았다.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전 죽었나요?"
"네, 거의."
"아... 그러면 부탁 한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아뇨, 저흰 그런 일 하는 곳이 아니라."
"제발 한번만요...어떻게 안될까요? 제 딸은 어떻게 됐나요? 네? 분명히 같이 탔는데....수인이는..."
아주머니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엄마 생각이 나서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남준은 냉정했다.
"그런거 물어보지 마세요."
"아아...선생님 제발..."
"여기 서명하시고 저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들어가면...뭐가 있나요?"
"손님 인생이요."
그리고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문 앞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머뭇거렸다.
"정말 모르세요? 제 딸은...."
"알아도 알려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당신은 신인가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신이 이렇게 자비없는 분인줄 알았다면..."
"신이 자비로운지 아닌지를 손님이 무슨 수로 판단하나요?"
"그야-"
"들어가세요, 문은 스스로 여셔야 합니다."
그는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신경질적이었다. 마지못해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툭- 하고 뒤통수에 가벼운 무언가를 느꼈다. 뒤돌아본 곳에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비행기와 처음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내게 까딱거리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신입?"
웃고있는 그의 귀에서 피어싱이 반짝거렸다.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마."
"어떻게 아셨어요?"
"야, 모르면 호구지. 너 방금 얼굴 이러고 있었거든?"
그는 얼굴에 손을 올리고 울상이 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 사람 좋은사람 아냐, 딸 죽이려다가 대신 골로 간 인간이지."
"..."
"못믿겠지?"
"..네 조금."
"보이는게 다가 아니니까, 죽음 앞에선 안보이던것도 보이게 되는 법이라."
"..."
"그리고 너..."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목소리에 나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피식 웃더니 금새 아이같은 표정을 짓는 그였다.
"진짜 예쁘다."
"네?"
"전정국이야 내이름."
"아니 저...감사ㅎ..."
"와줘서 고마워."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 한명 더 늘었구나. 이번엔 좀 다른 방향으로.
*
이곳에 온지 얼마나 흘렀는지, 남준의 말대로 시간은 흐르지 않았고 달은 못박아둔듯 제자리에서 모양만 바꾸고 있었다. 보름달이 반달이 되었으니 일주일 정도 흘렀으리라 짐작했다.
그동안 나는 간헐적으로 한 남자의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복도를 걸었다. 이곳 어딘가의 복도였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은 새하얀 만월. 나는 큰 문을 연다.
먼지와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된 공간 한복판에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리가 제 멋대로 움직여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그에게서 다섯 발자국쯤 떨어진 자리에서 멈춘 다리는 화석이 되어버린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남자의 뒷모습이 고개를 들고선 중얼거린다.
"난 신이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왜지? 왜 이런 기분이 들까? 한번 뜀박질을 시작한 심장은 좀처럼 쉴 줄을 모르고 쿵쾅거렸다. 이제는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둘 사이에 짙은 안개가 끼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넌 바꿀 수 있지, 네가, 네가 대신..."
그가 내게 손을 뻗는다. 구두굽 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셋, 넷. 다섯을 세기 전에 그의 손가락이 내 뺨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버린다. 그의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그 느낌은 오래도록 남았다.
"야!"
"언제까지 야라고 부를거에요?"
"그런거 안 정해놨는데? 그냥 부르고 싶을때까지 부를거야."
태형은 항상 말끝마다 웃음을 붙였다. 보는 사람이 따라 웃게 되는 웃음이었다. 그는 항상 커다란 서재에서 살다시피 했다.
정국이 태형의 말을 끊었다.
"신입, 너 갈데없어?"
"네 딱히."
"나랑 가자."
정국은 상대를 휘둘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듣기로는 내가 오기 전까진 정국이 막내였다고 한다. 아마 대신 신입, 막내, 이런 호칭으로 불려줄 사람이 와서 신이 난 게 아닌가 했다. 그런 감정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이 건물 안에서도 내가 가보지 못한 유일한 곳이었다. 남준이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 말하자면 금단구역인 셈이다.
"여긴 왜 왔어요?"
"들어가려고."
"미쳤어요?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리고 나는 왜 끌고와요?"
"너 보여주려고 왔으니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나를 끌고 들어갔다. 금단구역이라는 문에는 왜 자물쇠 하나 없는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와-."
발밑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지만 천장에는 별이 빛났다. 사진으로나 보던 그런 밤하늘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밤안개가 항상 자욱히 끼어 있어 별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멋있지?"
"네, 진짜 최고에요."
"아까 발견한거야. 청소하다가."
"안 위험해요?"
"그런것 같은데."
"혹시 모르잖아요 얼른 나가요."
내가 문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정국이 내게 손을 뻗었다. 간발의 차이로 정국의 손은 허공을 저었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는 사뭇 굳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안 나갈거에요?"
"아니...가야지."
그렇게 말하고서 정국은 그 별이 쏟아지는 방 안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난 갑작스러운 정국의 그런 행동에 다가서지 못하고 가만히 마주볼 뿐이었다. 영원같은 순간이었다.
*
"어디 갔다와?"
"네? 아 여기 앞에요."
"앞에 어디?"
"갑자기 뭘 그렇게 궁금해해요 형?"
말 그대로였다. 태형은 의아하다 싶게 진지한 태도로 우리를 추궁했다. 뭘 알고 저러는건가 싶게 심각한 얼굴이었다. 정국의 말에 태형은 정국을 잠깐 노려보았다. 그의 무표정은 놀랍도록 다른사람 같았다.
"경솔해, 너는."
냉랭한 목소리었다. 정국이 움찔했다. 태형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래지 않아 말없이 거두었지만 그 순간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이 생각나야 할 것 같았다. 하다못해 그의 이름이라도 크게 외쳐야 할 것 같은 그 순간의 느낌은 내가 모르는 감정이었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 둘은 제자리에 못박힌듯 서 있었다.
*
"차장님은요?"
"글쎄 오늘 좀 늦네."
윤기는 남준보다 말이 없었다. 항상 각 잡힌 제복을 입고 큰 고래열차를 타고 출근을 하며 실어오는 것은 사람들의 유실물이었다. 그리고는 구석의 소파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기 마련이었다. 주변에 관심을 주지 않는 성격인듯 했다. 그런 그에게 말을 붙일 재량은 내게 없었다.
똑똑- 짧게 두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손님을 맞는 모습은 그동안 종종 봐 와서 별 생각없이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훅 끼쳐오는 찬 기운에 놀라 고개를 든 곳에 보이는 것은 사람의 형체를 한 검은 무언가였다.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 무언가는 두 팔을 뻗어 나를 품 속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나는 심연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상체부터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발버둥칠수록 더 끌려들어가는 늪이었다.
정말 방법이 없다 싶어지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세게 껴안았다. 바깥으로 점점 나를 끌어당기는 그의 손을 나도 모르게 부여잡았다. 벗어남과 동시에 뒤로 넘어지고 눈 앞에서 정국이 급하게 문을 닫았다.
못 쉬고 있던 숨을 급하게 들이쉬었다. 그건 나를 잡고 있던 뒤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정국에게 소리쳤다.
"얘 뒤졌으면 어쩔 뻔했어 새끼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전혀 의외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손의 주인공은 윤기였다.
"저 괜찮은거같아요..."
"놔."
"네?"
"손, 아프니까 놔. 왜 이렇게 꽉 잡고 있는거야?"
"...동앗줄 같았거든요."
허허, 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놓았다. 그가 옷을 털며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단추 두개가 투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 단추..."
"줘, 대충 달고 다니면 돼."
"이거 제가 달아드릴게요."
"됐어 줘."
"할게요 주세요."
"성가시게...맘대로 해."
그는 겉옷을 벗어 내 앞에 툭 놓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와의 대화는 살갑지 못했다. 쩝 입맛을 다시고는 나 역시 일어섰다. 정국이 혼날 일은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괜히 혼나고."
"아니야 내가 보고만 있었어."
"그럴수도 있죠, 나같아도 그랬을걸요? 누가 섣불리 남 구하는데 목숨을 걸어요?"
그런 말을 내 입으로 내뱉으면서 윤기에게 새삼 굉장히 감사함을 느꼈다. 옷 고쳐주면서 고맙다고 말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있을때쯤 근본적인 문제를 잊고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지, 저거 뭐였어요? 방금 그거?"
"아...그림자라고 해야 하나...우린 그렇게 불러. 저것들은 이곳에 들어오면 안돼."
"왜 그런건데요?"
"저것들은 살아있는것만 보면 삼키려 들어, 죽어서도 살겠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이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 거야."
"...악귀같은거랑 비슷한 거에요?"
"글쎄, 신도 포기한 사람들이지. 평생 여기서 떠돌기만 할거야..."
신도 포기한 사람들이라니, 신이 그렇게 쉽게 사람을 포기해도 되는건가? 듣고 있어요 신님?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의 신으로 존재하는걸까? 당신이 궁금해 나는.
머릿속으로 크게 외쳤다. 예전에 들었던 빈센트라는 그 목소리, 나는 그 자가 신이라고 어렴풋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 사람이 죽는걸 여러번 봤어."
"네?"
"형제가 내 눈 앞에서 그렇게 됐어"
"..."
"네가 여기 오기 전에도 직원이 한명 더 있었다? 그 사람은 그림자에 먹혀버렸어. 이번에도 내 눈 앞에서"
"..."
"겁나서 못 다가가겠더라고, 내가 무슨 재주로 널 구하겠냐고."
"..."
"용기만 있으면 되는거였는데..."
정국이 씩 웃었다. 금새 사라져버릴 미소였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바늘처럼 내게 쿡 박혀 들어왔다.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미소 다음의 표정은 숨겨주고 싶었다.
*
[나는 모른다. 왜 내가 너를 선택했는지, 왜 네가 자꾸만 밟히는지. 나는 모른다.
미련이 남아 수없이 뒤돌아보며 후회했었던 나의 과거에, 지금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나의 과거에 네가 나의 후회로, 미련으로 남아있는 것인지.
오늘도 누군가는 애타게 신을 찾으며 그가 자비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는 틀리지 않다. 나에게조차도 자비롭지 못한 하루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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