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1.7
W.로다쥬
0.1
불안에 떠는 모습이 귀엽다.
0.2
순진해
0.3
혹시 그 남자가 따라들어오진않을까.
아니, 그때처럼 이미 들어와있을지도.
탕. 띠리릭.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 소리가 나자 그제야 성규가 한숨을 돌렸다. 팔닥이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거실에 불을 키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뭐라도있으면 숨통을 끊을듯이 번뜩이는 눈동자가 애처로웠다.
가슴께를 부여잡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은 다음, 쇼파로 가 몸을 뉘인 성규는 씻을 생각도 못하고 일주일 전,
그러니까 그 남자가 제 집안에 들어와있던,
다시말해 제가 집까지 무언가에 쫓기듯 들어오는 일이 시작된 바로 그 날을 떠올리기시작했다.
0.4
그 날은 친구놈 한명이 입대를 한다고 술파티를 벌인 날이었다.
평소 주량보다 과하게 마시긴했지만 필름이 끊길정도로 들이붓진않았던게 확실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 안주로 나왔으니까..
그렇게 입대 기념을 가장한 술파티는 끝이났고, 음.. 비틀거리긴했지만 제 발로 아파트까지 도착했던것 같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라다가 벽에 기댔고,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 고개를 휘저었고, 문이 열리는 엘레베이터 안으로 몸을 넣었다.
삑삑삑삑-
술기운에 용케 비밀번호를 온전히 누르고 들어갔다.
이때까지만해도 기분이 좋았던것같다.
난 벌써 갔다온 군대를 가기싫다고 징징거리는 친구 덕에 알수없는 우월감도 느껴서일까.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잠들고싶은 욕구가 발끝부터 끄득끄득 치고올라왔다.
신고있던 신발을 벗어놓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평범했다.
'그것'을 알아차리기전까진.
방문을 열려다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입고있던 가디건을 벗으며 불도 키지않은채 벽을 더듬어서 스위치를 찾아눌렀다.
딸칵
버클을 풀고 자크를 내렸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개운함을 느끼기도전에 부엌 쪽에서 들리는 익숙치않은 소리에 몸을 굳혔다.
둔탁한 소리.
쪼르르륵 하는 민망한 소리가 집안을 공명히 울렸다.
나는 뭐가 떨어진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곤 바지춤을 느리게 정리하고있었다.
변기물을 내리려고보니, 하얗게 덩어리진 액체가 떠있다.
뭐…야.
머릿속에서 기분 나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건 남자의 정액…같았다.
대체 누가?
꽤 방치되었는지 덩어리진게 역했다.
난 변기에 대고 하지않는다.
토할 것 같다.
혼자 자취하는 집에 나말고 또 누가?
겨드랑이에 찬 땀이 차갑게 식었다.
끼익- 탕.
현관물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숨이 턱 막혔다.
누구지? 분명 잘못들은게 아니었다.
나를 제외한 누군가가 문을 열고 이 집을 나갔다.
0.5
고개를 휘휘 저어 회상을 멈춘 성규가 입이 타는 듯 침만 삼켰다.
무슨 생명수라도 되는듯이 꼴깍꼴깍.
그날 밤의 일은 악몽이라고 치부하고싶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들 하던데 그렇게 싹 잊고싶었다.
언젠간 잊어버리겠지.
나름대로의 희망이었다.
비록 절망적이긴했어도.
똑딱이며 돌아가는 시계 초침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으니까 요동치던 심장이 좀 가라앉는듯했다.
피곤한지 눈이 뻑뻑했다.
일주일, 장장 7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규는 그 기억에 묶여 시달려야했으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게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성규가 전공서적이 든 백팩을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냥 화풀이었다.
그러자 가방 옆주머니에서 나온 잡다한 쓰레기에 그것을 줍고 몸을 일으켜 쓰레기통이 있는 부엌으로 갔다.
쓰레기가 생기면 그때그때 버려야겠어. 이렇게 일을 만들잖아,일을.
화풀이도 맘대로 못하네. 껌종이며 낙서된 포스트잇을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버렸다.
"……?"
짜장라면.
성규는 어릴적부터 짜장면은 곧잘 먹었지만 짜장 종류의 라면은 싫어했다.
짜장면의 맛도 아닌것이 라면도 아니고. 특유의 느끼한 맛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여태까지 금식해온 것이 보란듯이 쓰레기통에 버려져있었다.
눈을 씻고 다시봐도 확실했다.
성규는 쪼그려앉아 짜장라면 봉지를 집게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불현듯, 아니 어쩔 수 없이 또 일주일 전 정체모를 남자를 떠올렸다.
솔직히 그때 겁을 먹어서 화장실에서 한발짝도 나가지못했다.
문닫히는 소리가 나서도 쉽사리 화장실 문턱을 넘지못했다
. 늘상 있던 일이 아니었고, 황당하고, 당황했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라서였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정체모를 남자의 행적을 이렇게 찾아냈다.
정액과 짜장라면.
"후으...."
둘다 성규에겐 역겨운 것이었다.
0.6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건 아니었다.
대체 어느 누가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쳐들어와선 변기에다 자위한다음 물도 안내리고, 라면까지 사와서 끓여먹는단말인가?
제대로 정신 박힌 사람이 아닐거란 생각에 오한이 끼쳤다.
무더운 여름날 인공적인 에어컨 바람을 맞는것처럼. 그것은 차가운 전기의 풍이었다.
그 남자는 무슨 의도로 왜. 누군가가 육하원칙으로 그 악몽을 설명해주지않는다면 머리가 홱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조용히 열불이 난 성규의 작은 머리통을 식혀주는 것은 차가운 전기의 풍이었다.
누군가가, 제발 아무나도 좋으니 이 상황에 대해 군더기없이 깔끔하게
네가 하고있는 고민은 쓸모없는거야, 왜냐면- 의 식으로 마땅한 근거를 제시해 저를 안심시켜줬음좋겠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성규는 알고싶었다.
"뭐하냐?"
어, 남우현! 저번 술자리때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고 빠진 나쁜 남우현이었다.
"왜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고있냐? 보는사람 다 짜증나게."
"됐고, 나 미치겠다"
"뭔데 그래?"
그제야 좀 심각하게 물어오는 우현이었다.
누군가 저를 걱정해준다는 생각에 성규는 괜히 눈물까지 날 것 같았다.
일주일이었지만 꽤 소심한 성규로서는 지옥같은 일상의 나날이었기때문이다.
성규의 심각한 얼굴때문에 괜히 저까지 심각해진 우현이 인상을 찌푸리곤 눈을 맞췄다.
0.7
어서 말해봐.
0.8
말할 수 있다면.
0.9
한없이 철없고 속을 모르겠는 놈이지만 어딘가 남자답고 어른스러운 면도 겸비한 특이한 녀석이라고 성규는 생각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듯한 우현의 눈에 제 눈을 맞추던것을 멈추고 시선을 피했다.
괜히 별 같잖은 일이라고 놀림받을 것만 같았다.
저와는 다르게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인 우현에게는 제 고민이 길거리에서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여자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아무리 심각한 문제여도 남에겐 시덥지않은 철지난 노래일뿐이니까.
그냥 없던 일로 여겨버리는게 저에게도 남에게도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우현의 말대로 보는 사람까지 걱정시키게 만들고싶진않았다.
"그냥. 오늘은 뭐 먹을까 고민하고있었어."
그러자 티비 채널 바뀌듯 순식간에 굳은 표정을 녹인 우현이 다짜고짜 성규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악! 얘 왜이래, 여기 과방이야!"
"이씨, 괜히 사람 놀리고있어, 엉? 난 또 모솔 김성규가 고백해보지도 못하고 차인 건 줄 알았잖아!"
그래. 이게 내가 원한 설명이자 답이다.
1
이럴 줄 알았어
1.1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
갑자기 우현이 고마워진 성규가 지갑을 꺼내더니 오늘은 내가 쏜다! 라고 외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굴러들어온 밥값에 함박웃음을 진 우현이 아싸! 제일 비싼거 시켜먹을거야! 로 화답하며 짐을 챙겼다.
1.2
성규야, 난 네가 날 잊는게 싫어.
1.3
이렇게 점점 잊어버리면 될 것 같았다.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일상으로 흘러들어가야지.
굳은 다짐이나 하는듯이 결연한 성규의 표정을 본 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1.4
또 만나자, 성규야.
1.5
"쟨 뭔데 우리를 노려보냐?"
귓속말로 우현이 성규에게 말했다.
너 뭐 쟤한테 잘못한거있냐? 우현이 말한 쪽으로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아직도 저희를 쳐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의자에 앉아 다리를 비꼰채, 성규가 아닌 우현을 보고있었다.
"우리가 아니라 너인 것 같은데?"
성규가 말하자 우현이 기분 나쁘다는듯이 혀를 차곤 성규의 어깨를 잡았다.
"가자. 별 재수없는 새끼가 다 있어."
이상하게도 우현과 식당에 가서도, 음식을 먹을때도 성규는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우현을 쳐다보던 남자. 학교에 다니면서 몇번 본 얼굴이었다.
학년은 모르겠고 하도 잘생겼다 잘생겼다 라는 여선배들의 말에 잘생기긴 잘생겼네요. 하며 동조했던 기억이 난 성규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야. 남우현아."
"왜?"
입에 한가득 음식을 넣고선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가 그만 풉, 하고 웃었다.
"왜 사람을 불러놓고 기분 나쁘게 웃는담."
우걱우걱. 사람인 주제에 참 소처럼 잘 먹는다.
"나 아까 너 쳐다본 남자 알아."
"뭐?"
"네가 재수없는 새끼라고 한 애. 나 안다고, 생각났어."
"그게 뭐."
음식을 가득 담은 씰룩대는 볼과는 달리 표정이 딱딱하다.
사이가 안 좋나? 괜히 말했나, 생각이 드는 성규였다.
우현이 우물우물 음식을 씹으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나도 걔 알아."
"어...."
꿀꺽, 음식을 다 삼킨 우현이 짜증난다는 어조로 픽 말했다.
"존나 잘 생긴 놈이잖아."
"야...국밥이 그렇게 맛있냐? 나보고 사람 놀리지 말랄땐 언제고, 어?
이 자식이! 난 또 너랑 사이 안 좋은건줄 알았잖아! 부러우면 부럽다고말ㅎ, "
"걔 싫어하는건 맞아."
1.6
곧 만날거야
1.7
이름이.. 김명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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