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저와 아가씨라는 길을 같이 걸어주시는 분들, 말로 못 다할 만큼 감사합니다.
세일러문 딱풀 왕왕이 댜댜 이불킥 로로 수진리 약간 안돼 1978 그대를위한잡채 민형도령 길성이 봄날
아
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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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하루의 대부분을 말없이 소녀를 훔쳐보는 것으로 지냈다. 눈이 마주칠 때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눈길을 거두어 제 속내를 감추느라 바빴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다 알고 있었다. 가끔은 민석의 뒤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는 소년이 귀엽기도 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건 봄이 와서인지, 소년이 와서인지. 소녀는 가슴께의 블라우스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하루는 집 밖을 벗어나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민석이 아닌 소년과 처음 함께하는 산책이었다. 자신의 옆에서 어렵게 발걸음을 맞춰 오려 노력하는 소년 몰래 미소를 짓던 소녀가 잠시 멈춰 섰다. 풀밭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들개를 발견한 소녀가 천천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르렁거리는 무서운 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흠칫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몸을 일으키는 모양새가 자신을 공격하는 줄로 알았는지 소녀에게 들개가 달려들었다. 소년이 급히 소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훠이-! 소년은 휘파람을 불며 크게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곧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소년을 덮친 들개는 곧 어디선가 나뭇가지를 들고 나타난 소녀를 보고 도망갔다. 소년의 하얀색 셔츠는 어느새 흙먼지로 뒤덮였다.
“ 저는 괜찮아요.. 아가씨 다친 곳은 없으세요? ”
“ 얘, 너 피나잖아! ”
“ 괜찮아요. ”
“ 저놈을 당장- ”
“ 아아, 아니에요 아가씨! ”
바닥에놓인 큰 나뭇가지를 들고 둘의 앞을 서성이던 들개를 당장 죽일듯한 기세로 일어나는 소녀를 소년이 급히 잡았다. 이거 놔! 화가난 소녀의 손을 소년이 계속 붙잡았다. 소녀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팔뚝에 피를 뚝뚝 흘리며 뭐가 그리도 괜찮은 건지, 소녀는 답답했다. 소년이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가만 보니 얼굴에 할퀸 자국도 있었다. 자꾸만 괜찮다며 미소를 짓는 소년이 소녀는 속상했다.
“ 너 참 바보구나. ”
“ ...제 잘못이에요. ”
“ 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
“ ..... ”
“ 저 개가 밉지도 않니? ”
다친 건 소년인데 오히려 소녀가 화를 내고 있었다. 어깨를 축 내려뜨린 소년을 보던 소녀가 자신의 옷 소매를 찢기 시작했다. 소년이 소녀를 만류하였지만 소녀는 팔소매를 찢어 피가 흐르는 소년의 팔을 감싸 지압했다.
“ 지나가는 개도 잡지 못해서야 나를 어떻게 지키겠다는 거야. ”
“ ..... ”
“ 넌 충분히 그 개를 이길 수 있었어. ”
“ 개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
“ 사람도 아니고 짐승이야! ”
소녀의 다그침에 소년은 더욱 풀이 죽었다. 민석은 어쩌다 이렇게 나약한 아이를 데리고 왔는지, 소녀는 이마를 짚었다. 소년은 그 와중에 떨어져 있는 소녀의 모자를 주워 건넸다. 아픈 내색 없이 모자에 묻은 때를 걱정하며 소녀에게 내미는 소년이 너무나도 맑아 보여서 소녀는 말문이 막혔다. 소녀는 누군가에게 전혀 해코지를 해본 적이 없어 보이는 소년이 걱정되는 자기 자신이 싫었다. 곰살궂은 성격이 아니라 복희와 민석을 제외하고 말을 섞지 않는데, 그 둘보다도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 아가씨는 다치는 일이 없도록 제가 노력할게요. ”
“ 나는 너 또한 다치지 않았으면 해. ”
소녀는 모자를 썼다. 멀뚱거리는 소년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소년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집으로 돌아와 새 옷으로 말끔히 갈아입은 소년은 민석의 부름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있을 낭독회를 준비한다고 얼핏 들었지만 그리도 중요한 것인지, 산책을 하고 나서 반나절을 홀로 방 안에 있어야 했다. 복희도 마찬가지였다. 복희는 요오카이 부인이 무척 엄하신 이유 때문이라고 소년을 타일렀다.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희는 소년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고 물었다.
“ 어디 다쳤어? ”
“ 아.. 개한테 물려서, ”
“ 뭐? 아프지 않아? ”
“ 괜찮아. ”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소녀의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복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검은 베레모를 눌러쓰고 계단을 올랐다. 소녀의 문 앞에 작은 의자에 앉은 소년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고, 소년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축 늘어져있는 소녀를 들고 올라오는 민석과 마주쳤다. 힘없이 축 내려앉은 하얗다 못해 창백한 팔에 소녀가 죽은 건가 싶었다. 놀란 소년을 보며 민석이 문을 열라고 지시했고 벙쪄있던 소년이 헐레벌떡 문을 열었다.
소녀를 침대에 눞이고 이불을 목 언저리까지 덮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년이 입을 열었다.
“ 아가씨가.. 어디 아픈건가요? ”
소년의 물음에도 침대 옆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은 민석은 꿈쩍을 않았다. 소년은 조심스레 소녀에게 다가갔다. 눈물이 흐른 자욱이 보였다. 소년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민석은 여전히 눈을 감은 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년이 재차 물었다.
“ 아가씨가 울었나봐요.. ”
“ ...민형아. ”
“ 네? ”
“ 만약에, ”
민석은 소년의 작은 두 손을 꼭 그러쥐었다. 소년에 눈에 비친 민석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소년이 손을 뻗어 민석의 뺨을 어루만졌다. 민석은 몹시 지쳐 보였다.
“ 만약에 더이상 내가 없어도 너가 아가씨를 꼭 지켜야 해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
“ ...... ”
“ 그러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니? ”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을 꽉 껴안은 민석의 입에선 절망 섞인 탄식과 슬픔에 찬 한숨이 새어 나왔다. 소년은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슬픈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다. 어두운 기운이 소년의 작은 두 어깨 위로 드리웠다.
“ 드디어 내일이야. ”
홀로 중얼거리는 민석을 소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민석은 곧 잠에 들듯 했다.
“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지옥도 끝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