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톱 01
W. 연어초밥
"자리는 뽑기로 뽑는다-"
창가 맨 뒷자리. 딱 좋은 자리였는데 결국은 바꾸네. 아쉬운 마음을 붙들고 한숨을 푹 쉬며 책상 위에 올려진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검지, 중지, 약지, 소지. 길게 뻗어진 손가락부터 반들반들하게 예쁜 손톱까지 누가 봐도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 만한 손이었지만 그런 내 손에게 흠이 있다면,
마지막 엄지.
물어뜯고 또 물어뜯어 안쪽살이 벌겋게 드러난 엄지손톱이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엄지손톱을 그렇게 뜯어댔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정신을 차려 보면 엄지손톱과 앞니가 맞닿아있는 상태였다. 버릇을 고치기 위해 매니큐어도 발라 보고, 밴드도 붙여 보고, 장갑도 껴 봤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결혼식과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는 엄지손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기 일쑤였고, 엄지손톱 '만' 을 물어뜯는다는 사실은 부모님께 큰 걱정을 안겨 드리기 충분했다. 뭐, 내가 물어뜯고 싶어서 물어뜯나. 몸에 배였으니 그런 거지. 다 큰 애가 그래서 되겠냐며 귀 아프게 잔소리를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김시민"
내 이름을 부르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잡생각을 떨쳐 두고 교탁 앞으로 걸어갔다. 자리를 바꾼다는 게 아쉬워서 그런지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는 걸음이 무거웠다. 교실 바닥에 끌리는 실내화 소리가 오늘따라 꽤 이질적이었다. 제발 잘 되게 해 주세요. 반에서 친한 아이도,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도 딱히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짝은 그나마 나은 아이와 되기를 바랐다. 제발... 조용하고.. 그저 그런.. 그냥 평범한 아이로만.. 제발.... 심장 뛰는 소리가 몸 속에서 울렸다. 쿵쿵쿵. 종이 한 장 뽑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이토록 긴장한 건지.
그 짧은 시간 안에 벌써 땀으로 젖어버린 손으로 종이를 뽑아 확인하고 칠판 위에 그려진 자리표를 살폈다. 2분단 세 번째 줄. 맨 뒷자리가 아닌 것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맨 앞자리 교탁 바로 앞에 앉아 얼굴을 오만상 찌푸리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니 저절로 내 처지를 수긍하게 되었다. 땀으로 젖은 손바닥의 느낌이 썩 좋지 않아 교복 치마에 쓱 닦은 후, 자리로 걸어갔다.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가 책상 위에 가방을 올리고 가방에 얼굴을 파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제발 평범한 애. 제발. 신이시여. 제발. 가방에 얼굴을 붙인 채로 고개만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의도치 않게 나의 눈과 마주친 그 아이의 눈이 당황한 듯 커졌다.
그렇게 정적-
![[NCT/정재현] 엄지손톱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22/20/cfe15c3b0dc4f2fa91cf582d666b38da.gif)
".....안녕?"
얜 뭐지.
.
.
.
정재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던 아이였다. 워낙 유명했으니. 우리 반 반장에, 선생님들의 사랑이라는 사랑은 다 독차지하고, 소설처럼 모든 여자 아이들의 짝사랑 상대가 되던 아이였다. 말 그대로 엄친아랄까. 반마다 하나씩 달린 스피커에서는 교무실로 정재현을 부르는 방송이 자주 흘러나왔다. 물론, 사고를 쳐서가 아닌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뭐 그런 일들이겠지. 그에 비하면 나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적도 그저 그렇고, 얼굴도 그저 그런. 정재현이 엄친아의 정석이라면 나는 평범한 여고생의 정석이었다.
아, 뭔가 특별한 게 있다면, 엄지손톱을 그렇게 줄기차게 물어뜯는다는 점 정도?
여름방학이 곧 다가오던 때였지만, 정재현과는 말을 튼 사이가 아니였다. 그 아이와는 같은 반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아니지, 어쩌면 같은 반 학생 이하였을지도. 숙제를 거둘 때나, 시간표가 바뀔 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정재현과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마저도 대화라기 보다는 정재현의 일방적인 말이었지만. 나에게 정재현이란, 모범생. 선생님들의 귀염둥이.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
그런 아이가 나에게 인사라니.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재현을 빤히 쳐다보자, 정재현은 머쓱했는지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숨 막히도록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정재현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는 듯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오랫동안 오물오물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그의 입에서 드디어 말소리가 나왔다.
"김시민 맞지. 네 이름."
맞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자기 이름도 맞혀주길 바라는 건가. 지금 이름 맞히기 게임 하자는 소리?
"맞는데."
이렇게 차갑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평소에도 무뚝뚝하던 나여서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투로 말을 내뱉었다. 정재현을 좋아하는 그 여자 아이들이 내 말투를 보았다면 기겁을 했겠지. 자기들은 정재현이랑 말 한 마디 하고 싶어 안달인데, 저렇게 싸가지 없게 대답하다니. 보지 않아도 눈 앞에 그려지는 광경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 번 더 정재현의 입이 열렸다.
"짝도 됐는데 친하게 지내자."
"어."
또. 또. 귀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나의 차가운 말투에 속으로는 머리를 몇 번이고 쥐어 뜯었다. 김시민, 이래서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얘는 짝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랑 뭐가 상관 있다고 저러는 거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친목 제안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
.
.
2교시 문학 시간. 한 달에 한 번씩 노트 검사를 하시는 문학 선생님 때문에 열심히 수업 내용을 필기했다. 필기를 하지 않았을 때의 벌이 꽤 무서워서 그런지 교실 안은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로 가득했다. 이 소리가 교실을 울리는 시간은 아마도 문학 시간 밖에 없을 거다. 물론 나도 문학 시간을 제외하고는 필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노트 한 쪽이 빨강, 파랑, 검정 다양한 색깔들의 글씨로 채워졌다. 연필을 꽉 쥐고 있던 손가락과 손목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연필을 놓고, 손을 탁탁 털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뻐근한 목을 들어 교실 천장을 보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교실 천장의 무늬가 갑자기 징그럽게 느껴져,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 때, 엄지 손가락에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 듯 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정재현이 내 엄지손톱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확 나빠졌다. 예의가 없는 거야, 뭐야. 정재현은 아직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내 손톱을 쳐다보았다. 내 치부인 엄지손톱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너무나도 창피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오른손을 책상 서랍 안으로 넣었다.
정재현은 이제서야 내가 자기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의 귀가 빠알개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사람 한 명 기분 다 망쳐 놓고 겨우 사과 한 마디라니. 기분이 더 나빠지는 듯 했다. 나는 아무 말 않고 다시 공책에 수업 내용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
전 아이디를 탈퇴해버려서 새 아이디로 왔더니, 예전 아이디로 썼던 글이 삭제되었더라구요'ㅁ' 어떻게 복구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머리를 쥐어짜며 예전 기억을 살려서 썼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살려도 예전 글 만큼은 못한 것 같네요ㅜㅜ 필명은 똑같지만 아마도 제 생각에는 신알신 누르셨던 분들께는 알림이 안 갈 것 같아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신알신 누르셨던 분들은 이 글 발견하신다면 신알신 다시 눌러주세요 :) 암호닉 신청은 모두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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