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망상] 멍청한 여자 -0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8/d/1/8d15adffa107734638e7e1b19f001b7f.jpg)
02.
전화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슬쩍 그의 서재를 쳐다보았다. 딱히, 그가 문을 잠구어 놓고 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갈 수 없는 곳, 감히 내가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될 것 같은 곳. 하지만, 오늘도 언제나 물방울이 툭- 터져버리듯이 강렬한 호기심에 이기지 못하고 서재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그의 냄새가 났다.
그의 냄새 만으로도 몸이 반응해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다.
그리고 언제나 문을 열면 보이는 그 자리 그대로의 커다란 액자가 단도로 심장을 도려내듯 아파왔다.
거실에 걸려있는 건 나와 그의 결혼사진.
하지만, 그만의 세계에선 그와 그여자의 사진.
그 여잔, 문을 열면 항상 날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가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로 여자는 너무나도 환하고, 또 이쁘게 날 보고 웃고 있었다. 감히, 내가 따라할 수도, 내가 흉내낼 수도, 그저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그 여자는 결혼식장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만진 그와 팔짱을 낀 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리가."
그 여자가 지나갈 땐, 그의 냄새가 났다.
천천히 한발자국 서재에 들어갔다. 이렇게 또, 충동적인 행동은 나를 무너뜨린다. 내 가슴을 나 스스로 짓이겨 버리고, 내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고, 내 희망이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을 본다.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저 사진을 보고 찢어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제발, 저리 가버려…"
바닥으로 떨어진 눈물이 커다랗게 울리는 듯 했고, 그 소린 마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소리와도 같았다. 여지없이 인정해 버리는 그 여자와 그의 관계.
마음을 접을 듯 할 때도 되었건만,
그에게 더이상 사랑을 갈구하지 않을때도 되었건만,
그가 원하는 대로 이혼을 해 줄 때도 되었건만,
몹쓸 작은 희망이 자꾸만 잡고 버티고 있었다. 너무나 얇은 희망을 잡고 버티는 손에서 피가 나 뚝뚝, 후두둑, 떨어짐에도 결코 놓을 수 없는 끈.
놓아버리면
나 자신까지 놓아져 버릴까봐.
그저 무섭기만 했다.
나중에, 놓아 그 여자와 살 그의 얼굴이 너무 밝아 보일까봐, 너무 행복해 보일까봐, 나 없이,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단걸 보여질 까봐, 꽃으로 휘날리는 그런 빛나는 인생을 살까봐,
아마 나는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텐데.
그래서, 놓아줄 수 없었다.
그의 행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나 없이, 그 여자와 행복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나는 가만히 홀린 듯, 그의 행복해 하는 사진을 쳐다보았다. 저 얼굴이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만들어 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밀번호 도어락 풀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쇼파에 가만히 고갤들어올려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비틀비틀 거리면서 들어오는 그의 모습.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만을 지켰다.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문 턱에 걸려 그의 커다란 몸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술 냄새.
"성용씨, 괜찮아요?"
그의 팔을 잡고, 일으키려 했지만, 끙끙 거리다가, 갑자기 킥킥 웃는 그의 목소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쳐지는 손. 그는 스스로 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막 걸음을 뗀 동물새끼처럼 비틀비틀 일어났다.
"시발,"
나지막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던 내 고개가 들려졌다. 그의 차가운 손이 턱에 걸려져 있고, 그의 어둡고 낮게 깔린 눈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웠다.
짐승의 그것처럼 반짝 하고 빛나는 눈동자가 무서웠다.
그럼에도, 그 짐승에게 옭아버린 눈동자는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원래가 그랬다.
"술 조금 더 마실 수 있는데."
턱이 조여왔다.
내 잘못이다.
"기다리지 말라고 했잖아."
그는 그 여잘 만났고
"왜 이렇게, 방해를 못해서 안달이야."
그의 착한 여자는 좀 더 보고싶다는 그의 투정을 무시하고 집으로 보냈다.
턱이 놔지고 그가 비틀비틀 내 어깰 툭 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의 세계로 들어갔다.
"깨우지마."
그가 만진 턱을 두손으로 잡고 바닥으로 쓰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턱이 덜덜 떨렸고, 짐승의 눈은 생각보다 더 치명적이고, 무서웠고, 생각이 다 들어나 보였다.
나에대한 원망.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갈망.
그는 나 처럼 그 여자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계에 대한 치욕스러움.
이를 악물었다.
"시발─!!"
서재 안에서 와장창 소리가 났다.
눈을 꾹 감고 서재에서 본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얗게 빛나던 그의 얼굴을.
하얗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 찬 얼굴을.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미안해요."
당신의 미래를 '이렇게', 곤두박질 치게 만들어서.
작은 목소리는 소름끼치도록 깨부시는 소리와, 그의 거친 욕설에 묻혀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히 계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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