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은 해야지."
다시 새카맣게 시야가 가려진다. 새빨간 머리의 누군가가 쫄딱 젖은 채 살려내서는 뭐라 따지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말이지. 건조하다 못해 서늘한 공기, 그리고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목소리까지. 시야가 가려졌다고 해도 불 보듯 훤했다. 또 돌아와 버렸다.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 센터장의 말은 들은 척도 않은 채로 헛웃음이 저절로 터진다.
하나의 센티넬은 웬만한 일반 병력 하나 이상의 역할을 하는 만큼 국가에서 투자하는 돈은 엄청나다. 가르치고 다듬고 훈련하여 실전에 투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들이는 품도 인력도 보통이 아니기에 영혼까지 센티넬을 부려 먹으려 하지만, 센티넬도 사람인 만큼 유인책은 필요하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했다. 처음의 동기는 훈련에 든 비용을 모두 배상하라는 협박,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밀어 넣는 철저한 순위제 와 금전적 보상. 작전의 난이도와 결과에 따라 점수가 책정되고, 모든 점수는 월별로 순위를 매겨 전체에 공지한다. 원래는 센터 내 자극용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매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정부가 센티넬을 군인이 아닌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는 알만하다. 하긴, 저 오랜 로마 시대에도 콜로세움에 사람을 밀어 넣고 오락거리로 삼았다. 초인적인 개체가 생명을 걸고 싸우는데, 그만한 흥밋거리는 없다. 센티넬에 대한 불신을 타개하기 위한 공익 영상이라고 했던가, 현장에서 찍힌 영상이 공유되는 듯싶더니, 이제는......
"이미 넘치게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지비는 뽑아야지."
"그 이상으로 뽑아갔잖아요?"
높은 순위의 꽃말은 높은 난도의 작전. 난도가 높은 만큼 보상도 평가 점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작전을 진행했고, 원래 모든 직장이 그러하듯, 자연스레 모든 작전이 몰렸기에 점수는 순식간에 쌓였다. 그 일 이후로 쉬었으니 월별 점수는 없는 게 당연한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애초에 지금 당장 밥줄이 끊겨도 삼대는 먹고살 재산이다. 제대로 된 가이드도 없는데 목숨을 걸어야 할 필요도 없고, 사명감 같은 건 잃은 지 오래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딱 하나만 지켜달라고 했는데 그것조차 지키지 않은 이들에게 흥미가 생길 리가.
"지난 전투 영상이 딥웹으로 유출됐어."
"......"
"네 페어 가이드와 함께했던 그 전투."
철컹,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 실패한다. 몸을 포박한 와이어가 살갗을 파고드는 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현장을 함께 하던 초소형 카메라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이분 돌아가셨답니다. 내려주세요.
4:37 실감 나네 요즘 특수효과 미쳤다
5:01 피가 너무 묽은 듯ㅋㅋㅋ 물감 티난다
11:03 12:37 우는 거 ㅋㅋㅋ 배우 아니야?
생명이 오고 가는 현장을 대수롭지 않게 즐기는 반응이 예상되니까. 우습지,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현장에 던져지는 건데도 그저 오락이다. 죽을 수 있고, 다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은 당신들이 될 텐데? 우리가 막지 못한 상대를 당신들이라고 막을 수 있을까. 눈앞에 같은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려나. 소리 없이 차오른 분노를 참느라 입술이 엉망이 된다. 비릿한 피냄새가 입안에 가득 찬다.
"네 가이드 죽은 것 같지 않다는 영상 분석을 보내와서."
"......"
"실제로 시체 수거에 우리가 실패했잖아?"
시야가 걷히고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시린 눈에 힘을 주며, 암순응에 아랑곳 않고 센터장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웃고 있다. 역시 모든 게 쉽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따라야 해서. 한숨이 저절로 터진다.
시체도 못 찾았다면서 왜 죽었다는 거야!
그 말을 내뱉은 건 나였다. 전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고집한 것도 나였다. 그 탓에 형에 대한 모든 것들은 유예되어 있다. 터진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으며 눈을 굴린다.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면,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과 함께 센터장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난다. 뭐야, 이건. 기묘한 기시감에 고개를 모로 꺾는데, 한쪽 벽 - 이라고 생각했었던 시커먼 스크린 - 이 사라지며 한 명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불타는 듯 붉은 머리. 익숙한데.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웃어야지, 입술 하나 달싹이지 않은 채 낮게 어르는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 손을 내게 내민다. 묶어 놓고 악수? 눈썹을 치켜세운다. 여전히 상황과 내가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다.
"가이드는 필요할 테니까. 이전에도 말했지만, 잘 사용하고 돌려주게."
센터장이 직접 내 팔을 묶은 와이어를 풀어낸다. 빨갛게 줄이 난 내 손을 끌어다 상대의 손과 맞잡게 한다. 그 순간 플래시가 터진다. 아, 또 말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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