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이루어질까요 " 이제 집에 가려고. " [ 이제? 지금 버스야? ] " 응. 간신히 막차 탔어. " [ 너도 고생이다. 국장이 고생이지 .. ] " 됐어. 너 기숙사 폰 안내? " [ 안 그래도 내러 1층 내려왔어. .. 내기 싫지만 퇴사는 안되니까 .. ] " 그래. 그럼 끊는다. " [ 응. 내일 봐. ] 피곤한 눈가를 꾸욱 꾸욱 눌러가며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방송실에서 혼자 남아 마무리 작업 중 막차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는 급히 뛰어 막차에 올라탔다. 막차를 놓치지 않은 것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쏟아지는 졸음에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꿈 속으로 빠져들 듯 한 느낌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가며 꾸역꾸역 졸음을 참기에 바빴다. " ........ " 종점인 우리 학교를 시작으로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올라타는 승객들을 태우는데 바뺬고,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뛰어오는 사람들 조차 바빠보였다. 지친 몸을 이끌며 또 다른 학원 건물로 들어가는 교복을 입은 나와 같은 학생들 또한 바빠보였으며 버스가 달릴 때 마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조명들과 가로등들도 저마다 바빠보였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도심 속 버스 창가에 기대 앉은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고삼이였다. 동아리 국장 직책에 치여 살고 피할 길이 없는 고삼 인생에 치여사는 바쁘고도 쓸데없이 여유로운 고삼. 지독하리만큼 달고 사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교복 치마 주머니에서 꺼낸 건 이어폰이였다. 순간 우르르 몰려타는 옆 남고 학생들과 간간히 섞여있는 우리 학교 아이들의 교복에 금방 시끄러워질 것을 예상하고는 급히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 후 나는 옆자리에 누가 앉는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시 눈을 감은 그 찰나의 순간 깊은 잠에 들고야 말았다.
" ... 저기, 종점인데. " " ......... " " 어디서 내리는지 몰라서 못 깨웠어요. " 정신을 차렸을 땐 분명히 혼자 앉아 있던 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웬 남자의 어깨에 기대 깊이 잠에 들어있었고 남자는 곤란한 듯 어색한 미소를 그려내며 내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으음. .. 하며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본 남자는 푸스스 하는 낮게 깔린 웃음을 입 밖으로 냈으며 나는 낯선 남자의 웃음 소리를 듣자마자 흠칫 놀라며 여전히 남자의 어깨에 대고 있던 머리를 급히 들어 올렸다. " ... 아. .. 죄송해요. 제가 깜빡 잠이 들어서 .. 정말 죄송해요. "
" 아, 아니에요. " " 거기 학생 둘. 종점인데 안 내릴거야? " 지금 내릴게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말에 푹 파인 보조개를 드러내며 입가에 호선을 그린 남자가 여전히 반쯤 혼미한 상태인 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일단 내려야 할 것 같은데. " 아, 네 ...! 급히 반응한 내가 좌석에서 튀어오르며 툭 하고 흘러내리는 이어폰을 대충 휴대폰에서 빼내 먼저 내리라는 듯 버스 계단 앞을 비켜주는 남자에 작게 감사합니다. 하며 중얼거린 뒤 버스에 실었던 몸을 밖으로 빼내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내 뒤를 따라 남자가 내리자마자, 금방 밖으로 내보내진 내 몸이 바깥 공기를 채 다 들이마시기도 전에 버스는 큰 소리를 내며 종점을 떠났다. .. 아. 난 대체 언제부터 저 사람 어깨에 머리 대고 온거야. 미쳐. .. 진짜. 속으로 나를 향한 욕을 몇 번 곱씹어 주고는 뒤를 돌아 남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 .. 저기,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피곤했나 .. 봐요. " " 아, 정말 괜찮은데. " " 혹시 저 때문에 종점에서 내리신 건 .. " " 아니야. 나도 여기 살아. " 혹시나 나 때문에 종점에서 내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물으면 갑자기 돌아온 반말에 응? 하며 고개를 들면 그제서야 내게 어깨를 빌려준 낯선, 아니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잠에서 깨 상황을 파악했을 때 보다 더한 현기증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 미안. 갑자기 반말해서 놀랐어? 같은 학년이길래. " " ..... 정재현? " " 어, 내 이름 아네. " " ........ 아 .. 모를리가. " 전교회장인데. 끝 말을 맺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순간 내 눈에 문제가 있는지까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지금에서야 얼굴을 알아볼수가 있냐고. ..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번뜩이며 떠오른 그의 이름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어야했다. 여전히 기분 좋은 보조개를 띄며 내게 짧게 반말에 대해 사과하는 그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던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 다행이다. 집 종점 아니면 어쩌나 했는데. " " .... " " 여기 사는거야? " " .. 응. 엔도시 아파트. " " 이웃주민이네. 근데 왜 한번도 본 적이 없지. " 건네오는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눈동자만 굴리고 있으면 '너만 괜찮으면 들어가는 방향은 같으니까 같이 갈래? 가로등도 없어서 어두우니까 ..'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날 살며시 내려다보며 말하는 모습에 살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환히 웃어보인 정재현이 제 넥타이를 정리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가 알았을까 몇 번 마주쳐본게 다인 말 한 번 섞어본 적, 같은 반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과 집 가는 길을 같이 걷게 될 줄. 그런 사람의 어깨를 베고 잠에 취할 줄.
" ...... " " ...... " 날씨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저문 밤 때문인지 꽤 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가득한 꽃내음에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정재현 말대로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운 이 길을 걷고 있는 건 나와 정재현 둘 뿐이였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서로의 발걸음 소리만 들으며 걷는 밤길, 아파트 단지를 향한 길목은 완연한 봄을 그려냈다. 왠지 모르는, 이유 모를 설렘이 가득한 그냥 그런 마치 봄 같은 밤. " .. 난 이제 이 쪽으로 가야되서 .. " " 아. 난 이 쪽. .. 조심해서 들어가. " " .. 응. 너도. " 그렇게 서로가 갈라져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었을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뒤를 돌아 서로의 이름을 부른 순간 아직 차가운 바람이 데려온 꽃내음이 나와 정재현의 코 끝을 스쳐 지나갔다. " .. 저기, 정재현 ..! " " 저기, 여주야. " 나는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정재현에, 정재현은 저와 동시에 제 이름을 부르며 뒤를 돈 내게 놀란 듯 했다. " 먼저 말해. " " .. 오늘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이 말을 못 한 것 같아서! 혹시 나중에 갚을 기회 되면 꼭 갚을게! " " 아, 괜찮은데 .. 정 갚고 싶으면. " " 응? " " 내일 아침에 학교. " " .... "
" 같이갈래? "
공사중인 골목길 접근금지 팻말이 놓여있다 시멘트 포장을 하고 빙 둘러 줄을 쳐놓았다 굳어지기 직전, 누군가 그 선을 넘어와 한 발을 찍고 지나갔다 너였다 문숙, -첫사랑- 첫사랑은 이루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