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두번째 달
궁 한가운데 핀 모란 (부제: 꽃이 피고 지듯이)
제 5화 : 모든 인연의 시작 (5)
하루 종일 무거운 가채를 쓰고 불편한 혼례복을 입은 모란. 그녀는어느덧 자신의 처소로 와 지아비를 기다리고 있다. 밤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와야 할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정말 이렇게 소박을 맞는 것 인가. 일홍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곁에있으니 나를 찾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혼례 첫날부터 아내를 찾아 오지 않는 것은 너무 한 것이아닌가?
하지만 이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린다. 얌전히앉아 지아비를 기다리던 모란. 그녀는 갑작스레 열린 문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평생 밖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흰 피부. 남자다운 어깨. 날카롭고 서늘한 눈. 작은 얼굴에 옹골종골하게 들어 찬 이목구비. 이리 다시 보아도 참으로 잘난 사내이다. 황제는 술에 거하게 취한듯 하였다. 비틀비틀한 걸음거리로 모란의 앞에 털썩 주저 앉은 황제는 제 앞에 처음이라고 바들바들 떨고있는 모란을 힐끗 보고는 거만하게 자세를 고쳤다.
"화중왕, 모란이라."
"..."
"그대의 이름이 모란이라고."
모란. 황제가 모란의 이름을 처음 불렀다. 낮은 저음으로 뱉는 그녀의 이름이처소에 울리자 살면서 평생을 들어 왔던 모란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처음으로 낯 설게 느껴졌다. 모란이살짝 고개를 들자 그는 여전히 거만하게 앉아 모란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와.. 퍽, 어울리지 않는 군."
황제는 비릿한웃음을 지으며 모란을 쳐다보고 말하였다. 명백히 그녀를 무시하는 듯 하는 말투. 향간에 들려오는 소문과는 달리 좋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하였던 그녀는 곧 그것이 자신의 기대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얼굴은 수치심에 벌개졌다. 그는 모란의 얼굴이 벌개지던 말던그녀를 앞에 두고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
"저렇게 발발 떠니.. 아직 애구나."
"..."
"초경은 하였느냐?"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는 술잔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 황제의시선이 모란의 위아래를 훑는다. 그 시선을 느낀 모란은 마치 벌거벗은 듯 하여 몸을 더욱 벌벌 떨면고개를 저었다.
"저리 사시나무 떨 듯 떨기만 하니.. 어디 죄책감이라도 들어 잡아먹라도 하겠느냐?"
황제의 말투에는 한심함이 묻어 있었다. 황제는 문예보다 무예에 관심이많을 뿐이지 멍청하지는 않은 자였다. 그래서 자신이 비록 황제이다 할지라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알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일홍을 황후자리에 앉히는 것. 그것을 알았기에 비록 자신의 아비가 아닌 선 황제의 유훈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인 황제다. 간택에서 그리총명한 여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어디 보자 했더니 저리 발발 떨기만 하니.. 황제의 입장에서도 난감하였다. 물론 황제가 모란의 처소로 들어오기 전에 일홍이 황제를 붙잡고는 황후의 저고리에 손이라도 데었다간 혀를 콱깨물고 죽어버리겠다며 엉엉 울었기 때문도 있었다. 게다가 아직 초경도 하지 않았다니.. 초경도 안 한 처녀를 건드리는 취미는 없었기에 황제는 이 상황이 매우 어이가 없다.
모란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그녀에게 마음을 줄 생각이 없었던 황제. 가례식내내 일홍의 눈초리를 받는 그녀가 안쓰럽기는 하였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허나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도 대체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되었다. 그걸 기억해서 무엇하리. 황제의 마음은 오직 일홍이었다.
"정략혼인이라는 것이.. 보고 좋으라고 하는 것이니.. 특히 국혼은 더더욱. 나는 그저 황후라는 사람이 곁에 있다.. 이렇게만 생각할 걸세. 그대를 총애하지 않더라도 너무 섭섭해 말게."
"..."
"다 알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나와 일홍의 사이를 말이네..."
황제는 모란을 향해 차갑게 말하고는 술병을 챙겨 일어섰다. 황제가모란의 처소를 떠나 일홍의 처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거침없다. 황제가 오늘 밤 다시 돌아 올 리가 없다는것을 안 모란은 제 손으로 거추장스럽던 의대를 벗고 금침에 올랐다. 한숨을 쉬며 황제의 말을 곱씹는모란. 황후 너는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다. 방금 황제가 한말이 이 말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황후는 온 종일 가례식에 시달리느라 정신이없던 몸을 뉘여 잠에 들었다.
황후의 처소를 떠나자마자 황후가 발에 불이라도 붙은 듯 달려 온 곳은 그의 잉첩, 일홍의 처소였다. 일홍은 황제가 모란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길 때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는 엉엉 울며 황후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말라 제발 빌었다. 그리 매달려서 얻어낸대답에도 불안한지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일홍이다. 황후로 들어 온 모란이외모가 저보다 출중하지는 않으나 남녀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그녀는 불안했다. 혹여 저 어린것에게 홀려 다시는 저를 찾아 오지 않으면 어찌하나.. 이리 걱정을 하던 중, 문이 벌컥 열리고 그 문으로 들어온 자는 바로.. 황제였다. 황제를 보자마자 온 얼굴에 기쁨이 만연해진 일홍. 그녀는 두 팔을벌려 황제를 환영하였다.
"어찌 황후전에 가지 않고 한낱 첩년의 처소에 들른 것입니까?"
"그대가 그리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놓고서는 이제와 시치미인가? 그리고 그대가 어찌 한낱 첩년인가? 짐의 총애를 받는 귀한 여인이지."
그럼 그렇지. 황제가 쉬이 저를 버릴 리가 없다. 저를 잊지 않고 찾아 온 황제를 향해 어여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일홍. 황제는말을 마치자마자 일홍의 탐스러운 입술에 돌진하였다. 황제의 손길은 물이 흐르듯 거침이 없었고 일홍도그 손길을 즐기며 기뻐서 지르는 소리인지 아파서 지르는 소리인지 모를 비명을 질러대었다. 그들의 방탕한놀이는 밤이 깊어 해가 살짝 고개를 내밀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고 불쌍한 황후는 그렇게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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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를 치른 지 하루. 올 리가 없다는 것을 저도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기다려 보는 모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들은 소문은 실로 절망스러웠다. 그 누구도 모란에게 직접적으로 소문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으나 궁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속살거리는 소리가 온통그 소리였으니 모르는 것이 이상하였다. 저가 아무리 초경을 하지 않았다 하여도 적어도 어제만큼은 일홍. 그녀를 찾아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저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그때 저를 구하여 준 자와 정녕 같은 자가 맡는단 말이냐? 첫날부터 소박맞은 황후. 이런 황후가 역사상 나 말고 또 있을까? 모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번졌다. 그렇게 모란이 금침에 들려 하던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었다. 허나 문 앞에 서 있는 사내는.. 황제가 아니었다.
"누구십니까? 어서 자신을 밝히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겠습니다."
감히 누가 황후에 처소에 이리 겁도 없이 찾아 온단 말이냐? 그것도이 야심한 밤에. 그것도 혼인을 하여 부부의 언약을 맺은 바로 그 다음 날에. 만약 다른 자가 보기라도 한다면 '첫날밤에 소박맞은 황후가 다른 남자와 내통하였다.' 오해하기 딱 좋은 바로 그 광경이아닌가? 혹여 자신을 해하려 온 세력일까 두려워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 모란이 자신의 방문을 열어젖힌 사내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지.. 진정하세요. 황후 마마. 절 모르시겠습니까?"
"그대가 누구이든 야심한 밤에 이리 황후의 밤에 찾아 올 수는 없습니다."
"..저는 황자 전정국입니다. 그 때, 가례식에 앉아 있던 저를 보지 못하였는지요?"
황후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맞다. 할미마마 옆에 앉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남자. 아, 그 자가 황자였구나..
"이제 기억나십니까?"
*드디어 등장인물 다 등장!
*전정국과 민윤기의 성이 다르긴 하나.. 그냥 그렇다고 칩시다. 이건 픽션이니까요!!
*현재까지의 암호닉 정리(없는 독자님 말해주세요!)
[땅위][청포도][난나누우][찡긋][봉이][새벽공기][바다코끼리][깡태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