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형? 정재현?
두 갈래 길
Written by, 진끄리
" 너 나 모르게 남자 만나고 다니냐? 그래서 카톡도 안 보고 연락도 안 받고? "
" 아니, 그게 아니ㄹ "
" 남자랑 중요한 약속? 진짜 그럴듯한 변명이네. "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물론 내가 먼저 거짓말한 건 맞지만, 그래도 내 얘기는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너는 진짜 끝까지 나쁜 놈이야, 이민형.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설마, 나 지금 우는 거야? 내가 왜, 내가 왜 쟤 때문에 울어야 해...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고 점점 멀어져가는 민형이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나도 집으로 들어왔다. 이미 헤어질 걸 예상하고 있었는지 밖에선 미친듯이 흐르던 눈물이 집에 들어오니 언제 울었냐는 듯 뚝 멈췄다. 쇼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울리는 벨소리. 잘생긴 윤오 오빠? 아까 내 폰 가져가더니 이러려고 가져간 거였어? 울지 않았던 척하려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잘 들어갔냐는 다정한 목소리. 민형이도 예전에는 나한테 이렇게 다정했었는데... 예전 생각에 뚝 그쳤던 눈물이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 여주야?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민형의 목소리가 겹쳐져 들려 전화기를 붙들고 목 놓아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내 사정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무 말 없이 내가 흐느끼는 소리만 들어 주는 윤오 오빠. 울음 소리가 좀 그치자 다정함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로 - 다 울었어? 라고 묻는다. 미안해요, 주책 맞게.... 훌쩍거리며 얘기하자 괜찮다며 나를 달래 준다. 술 한 잔 할까? 라는 오빠의 말은 뒤로 하고 나는 계속 미안하다며, 오빠는 계속 괜찮다는 대화만 이어나가다 이내 전화를 끊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왔는데 와 있는 카톡. 보나마나 윤오 오빠겠지.... 아무 생각 없이 카톡창을 열었는데 와 있는 민형이의 카톡. 이제 그만 만나잔다. 결국 여기까지 와 버리는구나, 5년 연애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는구나.
카톡 |
전화를 해 봤자 받지 않을 거라는 것도 뻔하고 나도 슬슬 지친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거니, 민형아. 이제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냥 마냥 허탈하다. 너한테는 5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순간에 끝을 맺을 수 있는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나 봐. 그냥, 너무 미워. 이민형 너가. 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나 대신 울어 주려는 건지 언제 날씨가 좋았냐는 듯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 같은 날엔 술이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술 한 잔 하자며 윤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민형? 정재현?
두 갈래 길
Written by, 진끄리
" 내가아, 내가 뭘 그러케 잘못했냐고오!! "
술도 약한 내가 윤오 오빠를 만나자마자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 아무 말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비워냈다. 그런 나를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바라만 보던 오빠가 "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 라며 술을 더 시키더니 내가 마시려던 잔을 뺐어서 자기 입에 털어 넣는다. 내 술인데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 손으로 소주잔을 뺐으려 했지만 무리. 잔뜩 취한 나를 앞에 두고 윤오 오빠는 턱을 괴고 나한테 묻는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다정한 말투에 또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꾸욱 참고 오빠에게 다 얘기했다. 원래 내 이야기를 남한테 잘 하는 편이 아닌데, 왜 술만 먹으면 말이 이렇게 많아지는지... 소주 한 병이 나오고 더 마시려는 나를 말리는 오빠의 손길에 서러워져 또 울음보가 터졌다.
" 나도 더 마신다고오!!! 왜 못 마시게 하는데에... 흐으... "
이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서럽게 울어대는 나를 보며 처음엔 왜 그러냐며 울지 말라고 달래 주다가 얼마 안 가 뭐가 그렇게 웃긴지 푸하하 웃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속상하구 서러운데 웃음이 나오냐고! 곧 느껴지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손가락 사이를 살짝 벌려 앞을 보자 귀엽다는 듯 보조개가 푹 패이도록 다정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오빠가 보인다. 치, 누구랑은 다르게 엄청 다정하네... 또 북받쳐 오는 서러움에 오빠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소주잔을 들어 세 잔이나 입에 털어 넣었다. 세 잔이 원래 내 주량인데 말이야. 점점 머리가 막 어지럽구, 윤오 오빠가 두 개로 보이구... 오빠가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도리질을 치고 눈을 부릅 떠서 앞을 보자 웃는 얼굴이지만 꽤나 진지하게 나를 보고 있는 오빠가 보인다.
" 이제 내가 너 꼬셔도 되는 거지? "
ㅁ, 뭐라는 거야. 이 남자. 대답을 피하려 술을 따르려고 하자 술을 따르려던 내 손을 잡고 " 나 장난 치는 거 아닌데. " 라며 눈썹을 찡긋한다. 내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내 머리를 헝클이는 오빠다. 술 때문인지 오빠 때문인지 뜨거워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괜히 딴청을 피우자 씁쓸한 듯이 웃으며 술잔을 비우는 오빠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차피 내일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 안 날 거야, 괜찮아! 라고 생각은 하지만 꽤나 당황스러웠는지 이미 입술 여기저기를 물어 뜯고 있었다. 아, 피 맛 나... 라고 생각하며 휴지를 집어드려던 순간 내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는 오빠에 또 민형이가 겹쳐 보였다. 예전부터 입술을 물어뜯는 버릇 때문에 피가 나곤 하면 항상 내 입술에 피를 손가락으로 닦아주던 민형이다. 더 있다간 실수라도 할 거 같아서 이제 집에 가 봐야 겠다며 데려다 준다는 오빠의 손길을 거부하고 나와서 비가 오는 것도 잊은 채, 세차게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그친 빗줄기에 하늘을 올려다 보자 하얀 것만 보이길래 한참을 하늘만 쳐다보며 손짓을 하다가 옆을 쳐다보니 미간을 좁히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오빠다. " 오늘 같은 날 비 맞으면 감기 걸려. " 민형이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민형이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오늘처럼 낮엔 화창하더니 학교 끝날 때 쯔음 갑자기 비가 내리던 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우산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방으로 대충 머리를 가리고 집에 가려는데, 네가 나한테 우산 주면서 그랬잖아. 오늘 같은 날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고. 너는 괜찮으니까 우산 쓰고 가라고. 오빠의 말에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들이 시야를 가려댔다. 멍하니 오빠를 보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술 때문인지 오빠가 민형이와 겹쳐 보였고, 나도 모르게 오빠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렸다. 오빠는 그런 내 모습에 처음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곧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내 등을 쓸어 주었다. 한참을 그러고 울다 고개를 들자 내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젖은 머리칼 안으로 손을 넣고 뒷목을 받쳐 입을 맞춰왔고, 오빠가 민형이 같아서일까, 정말로 오빠가 좋아서 그랬던 걸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오빠를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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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늦었는데 분량까지 짧아서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제가 요즘 학교 일도 그렇고 집안 사정도 그렇고 이런 저런 일이 많이 겹쳐서 글을 못 쓰고 있었는데 안 쓴 지 일주일이 다 됐는데 제 양심에 너무 찔려서... 기다려 주신 독자분들께도 너무 죄송해서 짧게라도 한 편 들고 왔어요 ㅠㅠ 늦게 온 것도 죄송한데 분량까지 짧아서 너무 죄송스럽고... 얼른 일이 해결되면 분량 빵빵하게 한 편 들고 올게요... 기다려 주신 독자분들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