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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다랑 전체글ll조회 329l 1
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조선 판타지 2부작 

 

 

 

여 우 전 

(上) 

 

 

 

 

 

 

  

  

  

  

"공주마마!! 제발 멈추시옵소서!!!" 

"아, 잠깐이라 하지 않았느냐!" 

"허나 이 일이 발각되면 또 전하께서...!" 

"절대로 들키지 않게 하겠다. 절대로. 응?" 

"이곳은 궁궐입니다. 마마께서 뭘 하시든 전하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 상궁만 가만 있으면 된다니까. 반 시진 내로 온다고 약속한다." 

  

  

  

  

한 상궁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는 막무가내였다. 고집불통인 공주를 꺾을 사람은 하늘아래 아무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몇 번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한 상궁은 꼭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점점 표정이 어두워져 가는 상궁과는 다르게 공주의 얼굴은 활짝 피었다.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단 치마를 팔랑이며 뛰어가는 뒷모습에 대고 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아바마마도 너무하신다니까, 평민은 이렇게 사사건건 간섭받지 않아도 될 텐데. 공주는 툴툴대며 궁궐의 뜰을 거닐고 있었다. 김00, 조선의 공주, 현 국왕의 외동딸. 그만큼 왕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자란 존재. 뒤뜰은 자수나 독서 따위에는 전혀 흥미 없는 그녀가 궐내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장소였다. 왈가닥인 공주에게 놀이터와 비슷한 개념이기도 했다. 날씨는 따뜻했다. 슬슬 꽃샘추위가 풀려갈 즈음의 봄이었다. 겨울이 가고 온통 푸르게 물든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새삼 감탄을 내뱉었다. 나뭇잎 사이로 환한 햇살이 내리쬐어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공주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게 얼마만의 산책인지 모르겠다. 최근들어 내궁 안에만 갇혀 있어서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 아, 토끼다." 

  

  

  

  

뒤뜰에서는 가끔 동물도 발견되곤 했다. 흰 토끼를 발견한 공주가 신기한 듯 다가갔다. 동물은 생소하다. 꽃이나 나무 등은 궁궐에서 질릴 지경으로 많이 봤지만 동물은 아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건지 도망가지도 않는 토끼의 흰 털을 쓰다듬으려 손을 뻗는 순간, 온통 하얀 물체가 소리도 없이 다가가 제 앞에 있던 것을 낚아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의 토끼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놀란 공주가 고개를 휙 돌렸다. 저만치에, 목을 살짝 덮는 길이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윤이 지금까지 본 그 무엇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니, 사실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마치 바람 같은 움직임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이곳은 궁궐이다. 그중에서도 왕족에게만 출입이 허가된 뒤뜰 말이다. 저나 임금, 왕비, 그도 아니면 세자나 세자빈 외에는 들어올 사람도 없는 곳이었다. 기껏해야 뜰을 관리하는 관리인 정도가 되겠지만 그는 저렇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닐 위인이 아니었다. 

  

 

  

  

  

"... 누구냐?" 

  

  

  

  

공주는 이미 사라진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두려웠다. 그러나 이런 돌발상황을 그냥 지나칠 그녀도 아니었다. 몸을 틀어 아까 그 사람이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의 햇볕이 아직까지는 공주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턱대고 걷던 공주는 슬슬 다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한 상궁과 했던 약속이 뇌리를 스쳤다. 반 시진 내로 돌아올 테니 잡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었는데. 결국 오늘도 약속을 어겼다. 미안함에 어두운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데, 우거진 나무 사이로 희끗한 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쪽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보고 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공주는, 곧바로 다가간 것을 후회했다. 흰 털이 피에 젖어 붉게 물든 토끼. 축 늘어진 사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까 그 토끼가 분명했다. 소리지를 여력도 없어 그저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제가 방금 본 소년의 정체가 호기심을 넘어 두려워졌다. 몇 번이나 치마에 걸려 넘어져 가며, 비단옷에 흙을 잔뜩 묻혀 만신창이가 된 채 공주는 간신히 내궁으로 귀가했다. 

  

  

  

* 

  

  

  

"...송구합니다." 

"외출한다고 하면 끝까지 말렸어야지! 이렇게 성격이 유해서야 어디 공주를 맡을 수나 있겠나?!" 

"..." 

"다음부터 또 이런 일이 있었다간 한 상궁부터 파직시킬 것이니 그렇게 알게. 나가 봐!" 

  

  

  

오늘 공주 때문에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는지 모를 일이다. 내전을 나와 한 상궁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반 시진이고 뭐고 끝까지 붙들었어야 했다. 중전이 잔뜩 화를 내는 것도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 감히 공주를 감싸고 돌지도 못했다. 하필이면 오늘 찾아오실 게 뭐람. 공주를 대신해 회초리를 맞고도 상궁은 그녀가 안쓰러웠다. 자신이 생각해도 공주는 도가 지나친 감시를 받고 있었다. 

  

  

  

  

"- 한 상궁!!" 

"...마마. 왜 이제야 오십니까." 

"미안해, 진짜, 내가 미안해..." 

  

  

  

  

공주가 연신 사과를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래서야 더 화를 낼 수도 없다. 한 상궁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공주에게 재차 괜찮다고 말했다. 다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저가 더 이상 공주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공주에게 가장 큰 처벌이었고, 공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으니. 

  

  

  

  

"잘못했어.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게 할게, 한 상궁." 

"저녁이라 쌀쌀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응!" 

  

  

  

  

냉큼 상궁의 말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온 공주가 이부자리를 깔았다. 한 상궁이 기겁을 하며 저가 하겠다고 달려갔지만 죄책감에 가득 찬 그녀는 끝끝내 자신이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혹여나 누가 들어와 공주가 자신의 잠자리를 직접 준비하고 있는 기막힌 광경을 볼까 노심초사하던 한 상궁은 그저 공주를 최선을 다해 돕는 걸로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야 했다. 

  

  

  

  

"한 상궁, 나 오늘 귀신 본 것 같아." 

"...귀신이요?" 

"응. 엄청 빨리 지나갔어, 머리는... 한 이 정도 왔는데. 내 앞에 토끼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사람 지나가고 보니까 없어졌어." 

"많이 피곤하셨군요. 환영을 다 보시고." 

"아니야. 좀 걷다가 다시 봤거든, 그 토끼. 죽어 있었어. 듣고 있어? 피로 빨갛게 물들어선," 

"주무세요, 공주 마마." 

  

  

  

조잘거리던 공주는 한 상궁의 단호한 어투에 입을 꼭 다물었다. 혼자 있을 때는 미칠 듯이 차올랐던 두려움이 한 상궁과 같이 있으니 훨씬 덜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상궁의 존재는 그녀에게 큰 위로이자 힘이었다. 한 상궁을 계속 제 옆에 두려면 아무래도 당분간은 잠자코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공주는 잠을 청했다. 

  

  

  

  

*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났다. 공주는 잠잠했다. 그날 이후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지 아주 얌전히 심심함을 꾹 참으며 지냈다. 그에 임금과 중전은 걱정을 한시름 덜었고, 사건 이후로 바짝 힘이 들어가 있던 상궁들도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감시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걸 공주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날도 멍하니 앉아 하품을 참고 있던 공주는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한 상궁을 쿡 찌르더니 따분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상궁, 뭐 재밌는 거 없어?"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무 심심해." 

"궁궐에 산처럼 쌓여 있는 게 책입니다. 독서를 좀 하시는 게..." 

"공부는 내 취향 아니라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하오면 십자수를..." 

"찔리면 아프잖아. 십자수 놓다가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올까요?" 

"나 혼자 하는 산책이 좋아." 

"혼자 어디 나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십시오." 

  

  

  

상궁의 눈이 불안함으로 살짝 떨렸다. 반짝거리는 공주의 시선을 피하며 절대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절대'에 힘을 줘 강조하는 상궁의 말에 공주가 입술을 쭉 내민다. 상궁에게로 다가가 온갖 아양을 떨어봐도 이번만큼은 쉽게 허락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상궁을 쳐다봤다. 

  

  

  

"내가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당연한 말씀을요." 

"한 상궁이 공부는 실전이랬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저잣거리에 나가보고 싶어. 나한테도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볼 의무 정도는 있다고." 

"공주마마!!" 

"안 돼?" 

  

  

  

입을 다문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만 가로젓는 상궁에게 공주는 떼를 썼다. 3주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지냈다. 하루가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을 정도였다. 그동안 공주가 좋아하는 시간은 저녁에 잠드는 시간, 딱 그뿐이었다. 본디 성격이 가만있는 걸 못 견딘다. 하루종일 책이나 읽고 앉아있다가는 온몸에 쥐가 날 것 같다. 그런 생활은 사절이다. 뭔가, 더 재미있는 게 필요했다. 

  

  

  

 

"한 상궁. 나가게 해줘, 응?"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진짜? 나 소리 지를 거야. 그래도 돼?" 

"지, 질러 보세요. 제가 눈 하나 꿈쩍하나." 

"나 여기서 소리 지르면 궁궐 난리나는 거 한 상궁도 잘 알 텐데? 궐내에서 내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거야?" 

"...." 

  

  

  

틀린 말 하나 없다. 대체 공주는 언제까지 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일까. 한 상궁은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소리 지르는 공주를 감당할 힘이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공주가 빽빽 소리를 질러버린다면, 물론 정말이지 왕족의 체면이라고는 어디론가 팔아먹은 행동이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뻔했다. 한 상궁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목소리를 쥐어짜내듯 말했다. 사복을 준비할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지기 전까지 들어오라고. 공주가 약속을 안 지킨다면 뒷일이야 눈 감고도 뻔하다. 그대로 하직을 고하는 거지 뭐. 한 상궁의 근심 걱정이 넓은 궁궐 곳곳에 묻어났다. 

  

  

  

  

* 

  

  

  

"...맛있겠다." 

  

  

  

기대에 부풀어 저잣거리로 나온 공주의 입에 침이 고였다. 시루떡과 식혜. 궐에서도 종종 간식으로 나온 적이 있는 음식이지만 이곳에서 먹는다면 같은 맛이더라도 뭔가 다를 것만 같았다. 기분이 난달까? 꼬여드는 벌레를 쫓고 있던 주인에게 그녀가 음식의 가격을 물었다. 주인장은 탐탁치 않은 눈으로 살피다가, 그녀가 갖춰 입은 옷이 보통의 평민들과는 다르다는 걸 금세 눈치채곤 표정을 바꿔 살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떡과 식혜를 주문하곤 한 상궁이 쥐여준 엽전을 꺼냈다. 주인장의 손바닥에 동전 몇 전을 떨궈 주고는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공주의 뒤로 소리 없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 

  

  

  

  

...이 느낌, 익숙하다. 분명 누군가 지나갔는데, 소리가 없다. 웬만해선 누가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를 터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휙 돌렸다. 그 소리 없는 무언가가 지나간 방향으로 시선을 좇았다. 몇 주 전에 봤던 그 사람. 목 부근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 때 하나 타지 않은 깨끗한 흰색의 삼베옷. 궁에서 본, 분명 귀신인 줄 알았던, 그 사람. 음식점 주인이 떡과 식혜를 건넸다. 공주는 그걸 받아들 생각도 않고 소년을 쫓기 시작했다. 사람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그만을 따라 뛰었다. 

  

  

  

  

  

  

  

"하아, 뭐가 이렇게, 하, 빨라....?!" 

"아가씨. 혹시 방금 저 문으로 들어간 사람을 쫓고 있는 건가?" 

"저기로 들어갔느냐?!" 

"아서라. 저 아이를 쫓는 건 호랑이라도 못할 거야.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선 어찌나 뜀박질이 빠른지. 거기다, 저 집은 경비가 삼엄해서 쉽게 문을 열어줄 리도 없어. 아가씨같은 귀한 집 따님이 온다고 해도 말이야." 

  

  

  

  

역시 사람이 바글대는 저잣거리에서 안 그래도 빠른 그 사람을 쫓는 건 무리였던 걸까. 잠시도 안 되어 놓쳐버리곤 숨을 헐떡이는 공주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꽤 커 보이는 대문을 가리키며 저곳으로 들어간 자를 쫓는 거냐는 물음에 공주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포기하라는 맥빠지는 말뿐이었다. 이쯤에서 포기하기로 하자, 그냥 저번처럼 귀신 본 거라고 생각하지 뭐.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아쉬움에 입술을 꼭 깨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잠깐, 여기가 어디지? 

  

  

  

  

"...미치겠네." 

  

  

  

  

너무 뛰었더니 숨은 점점 가빠 온다. 몇 달 동안 잠잠해서 나은 줄로만 알았던 병이 재발하는 느낌이다. 갑갑해져 오는 가슴께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이 정도의 숨가쁨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경험해 왔다. 폐병. 치료방법이 마땅치 않은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호전되고 있어서 내의원에서는 기적이라며 놀란 기색을 했다. 비록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지만, 공주에게 감시가 유독 심하게 따라붙는 것도 다 그에 대한 왕의 걱정 때문이었다. 그녀가 저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들 속에 아버지의 근심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 리는 없었지만. 

  

  

힘이 너무 들었다. 달릴 때는 몰랐는데,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호흡이 어렵다. 계속 심호흡을 하던 공주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길도 모르겠고, 안 그래도 미약한 체력은 따라주질 않고, 이젠 숨쉬기까지 힘들어졌다. 사람들이 길바닥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공주를 눈살을 찌푸리며 피해갔다. 해는 저문 지 오래다. 또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에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나 진짜 못된 애구나, 지금쯤 한 상궁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흙을 털고 길바닥에서 일어나려고 시도하던 찰나, 

  

  

  

  

  

  

[세븐틴/윤정한] 여우전 (上) | 인스티즈

 
 

 

 

  

"옷 버립니다. 귀하신 분이 흙바닥에서 뭐 하십니까?"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분명하다. 뒷모습밖에 못 봤지만 그걸로도 증거는 충분했다. 이미 제 눈에 담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소리가 없는, 그 사람이다. 한두 번 스쳐지나간 게 끝인 인연, 그 짧은 시간 동안 제 호기심을 최대치까지 증폭시킨 장본인. 공주는 커진 눈으로 잠시 동안 그를 올려다봤다.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그의 얼굴을 살펴보던 공주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너, 그때 뒤뜰에서 봤던...?" 

"누굴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아냐, 맞아! 토끼 잡아갔던...!" 

  

  

  

  

소년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뭐가 웃기다는 건지. 뜰에서 본 것도 맞고, 토끼 잡아간 것도 사실이잖아.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자신의 또래 정도, 기껏해야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앳된 얼굴. 곱다 못해 예쁘장하기까지 해서 저도 모르게 질투심을 유발하는 수려한 용모다. 쌍커풀진 눈과 단정한 코, 호선을 그리고 있는 붉은 입술을 지나 갸름한 턱까지. 이렇게 고울 줄은 몰랐는데. 당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괜찮은, 아니, 괜찮은 정도를 한참이나 넘어선 외모였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너, 이름이 뭐야?" 

"...이름... 불려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윤 씨 집안에서 자랐던 것까지만 기억나는 정도." 

"불려본 적이 없다고?" 

"저는, 함부로 신분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말하고 있는 내용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불려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니. 자신도 이름을 불릴 일이 흔하지는 않다지만, 적어도 제 이름이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기 이름도 모른다는 건 너무 가혹한데. 함부로 신분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럼 평생 동안 '이름이 뭐야?'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거잖아. 공주는 소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뭘까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 사이, 그는 땅거미가 깔린 주변을 둘러보다 흘러가는 듯 말했다.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자가 이 시간에 홑몸으로 돌아다니다가는..." 

"- 정한!" 

"네?" 

"깨끗할 정에 한수 한. 윤 가 출신이랬으니까, 윤정한. 잘 어울려." 

"... 무슨," 

"볼 때마다 신기했거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깨끗할까.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고, 뭐 하나 남기는 것도 없고." 

"..." 

"이제부터 네 이름이야. 기억해, 네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될 거 아냐." 

  

  

  

  

공주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조선 최고의 옹고집인 그녀는 거절해봤자 그를 정한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소년이 작게 웃었다. 무표정일 땐 차갑게만 보이던 얼굴인데, 웃을 때면 볼이 쏙 올라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신기한 얼굴이야. 해가 점점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도 잊고 공주는 주황빛 석양에 비친 그의 얼굴을 넋 놓고 감상했다. 퍼뜩 정신이 든 건 제 눈앞에 가볍게 양 손바닥을 맞부딪혀 저를 깨우는 행동 때문이었다. 

  

  

  

  

"궐로 돌아가세요. 문 앞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그녀가 허둥지둥 소년을 따라나섰다. 뒤늦게 밀려온 한 상궁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소년의 '궐로 돌아가라'는 말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분명히 왕족의 신분을 꽁꽁 숨기고 있던 공주였다.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더보기

 

다랑입니다! 전에 구상하다가 접었던 내용인데 그냥 생각난 김에 들고와 봤어요. 원래 3부작으로 구상한 내용이지만 한 편 내에 다 담으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상편, 하편으로 나눠 가져오게 됐습니다ㅠ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구미호 윤정한 설정이구요! 다음 편에 뵈어요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GM ; 아랑사또전 OST 스페셜에디션 -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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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 정한이 글이라뇨ㅠㅠㅠ너무좋아요ㅠㅠㅠㅠㅜ신알신신청하구 가요!!!:)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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