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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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w. 크램
" 야 이 놈의 새키야. 어딜, 어? 겁도 없이, 밖에서 이딴 거나 배워오고, 어?! "
집 지붕이 뜯겨 나갈 듯한 고함 소리에 나는 절로 눈이 떠졌다. 또, 또 시작인가 보다. 배게로 두 귀를 감싸 나름의 방음을 시도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제발, 하루라도 나 스스로 눈 떠 보고 싶다... 나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욕을 중얼거리며 이불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안 봐도 뻔한 시나리오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실에 나가 봤을 땐, 몽둥이를 든 엄마와 김시준의 추격전이 벌여지고 있었다.
몽둥이를 공중에 붕붕 휘둘며 김시준의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엄마의 분노 레벨을 보아하니... 음, 김시준이 또 담배를 걸렸군.
" 저기... 조용히 좀 싸우... "
" 엄마가 한 번만 더 걸리면, 호적 판다고 했어 안했어?! "
끼어들어보려 시도했으나 역시 Fail. 마침내 엄마에게 목덜미를 붙잡힌 김시준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엄마 미안!!
그 다음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나는 다시 방에 돌아가 문을 닫았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볼 수록 빡치는 거다. 가뜩이나 수면 부족이라서, 주말만이 내가 늦잠잘 수 있는 꿀 같은 기회인데 동생 새끼랑 엄마 싸우는 소리에 이렇게 허망하게 날려버리다니.
이를 그득그득 갈며 당장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고, 수면바지를 갈아입지도 않은 채 패딩을 아무렇게나 욱여 입고서는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거실을 향해, 목청껏 소리질렀다.
" 아 쫌!!!!! 싸울 거면!!!! 밖에서 싸워!!!!! "
순식간에 얼어 붙어버린 거실을 뒤로 하고, 나는 그대로 밖을 나섰다.
***
너무 빡쳐서 아무 생각없이 밖으로 나오느라 지갑도 못 챙겼다. 나는 그걸 편의점 계산대에 당도해서야 깨달았다. 알바생에게 민망한 미소로 죄송하다 인사하고 편의점 문을 열자, 이른 아침이라는 걸 증명하듯 쌀쌀한 공기에 코가 시큰해왔다. 김시준 시발 새끼, 너 고3 되면 보자. 주말 아침마다 괴롭혀주마.
속으로 저주를 곱씹으며 별 수없이 다시 너털너털 집으로 향하기 시작하는데, 어쩐지 낯선 길이 펼쳐졌다.
사실 나는 이 동네로 이사온지 일주일 밖에 안 됐기 때문에 이곳 지리를 잘 몰랐다. 그래도 편의점 가는 길만큼은 완벽히 숙지했다고 믿었는데. 왜 왔던 길이 이게 아닌 거 같은 걸까. 에이 모르겠다. 걷다보면 어련히 집이 등장하려니하고 막연하게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가 다다른건 집이 아닌 막다른 골목이었다.
후, 김시민 장하다. 집 앞 편의점 가는 데도 길을 잃구나. 그래 너 길치 인정. 나 스스로가 못 견디게 대견스러워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빙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 아, 담임 진짜. 방학에 보충 부르는 거 극혐. "
막다른 골목에 내가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은 그때였다. 그제야 구석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남자애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 피우는 청소년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니고. 평소면 당연히 그냥 지나쳤을 광경이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뻔뻔하게 교복을 입고서 뿌연 연기를 불어대는 저 주둥아리들이 몹시 꼴 보기가 싫어졌다. 보아하니까 김시준이랑 또래 같은데.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머릿속에서 놈들과 김시준의 얼굴이 오버랩 되자, 순간적으로 내가 오늘 아침 늦잠을 못잔건 다 이놈들 탓이라는 엉뚱한 분노가 샘솟았다.
오냐 너네 오늘 잘 걸렸다. 어쩌면 김시준이 담배를 배운 것도 다 너네 같은 양아치들 때문이다 이거야.
나는 한번 흠흠,하고 목을 가다듬고서 운을 떼었다.
" 야. "
...?
둘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양아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예쁘장한 이목구비에 말이 막힐 뻔 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그래. 너네 둘. "
열심히 담임 험담을 늘어놓던 남자애도, 이제야 날 발견했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고개를 한번 갸우뚱이더니 물었다. 누구세요?
" 너네. 교복 입고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
" ... 담배 피는데요. "
" 허, 참나... 지금 그게 당당해? 어? "
" 안 당당해서 골목에서 숨어서 피우고 있는데요. "
... 저게? 새끼 말대답하는 거 봐라.
" 그래도 어른이 지나가면, 피우던 것도 어?! 꺼야할 거 아니야! "
나는 일부러 '어른'이라는 글자에 힘을 줘 말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런데 어쩐지 둘은 미동도 않는 눈치였다. 이것들이?
깐죽이가 꼬박꼬박 내게 대꾸할 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던 놈이 문득 입을 열었다.
" 어른?"
" 그래! 어른 있는 거 안보여?! "
" 어른 맞아요? "
" 뭐? "
" 어른맞냐구요. 어른들도 원래 그런 거 입어요? "
아차. 그제야 내가 입고 나온 헬로키티 수면 바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럴 수록 더욱 뻔뻔하게 나는 삿대질까지 가세하며 윽박을 질렀다.
" 왜, 어? 어른들은 이런 거 입으면 안 돼?! 나 스물 두살이야! "
" 나이는 안 물어봤는데. "
" ...됐고. 너네 어느 학교야? 어?! 싸가지 없는 것들이, 어디 좀 혼나 볼래? "
" 참나. 싸가지랜다. 민형아. 아무래도 구라 냄새나, 저거. "
" 구라? 야. 너 뭐라했어!? 내가 인증이라도 해줄까? "
" ... 됐어요. "
혹시라도 진짜 인증하라고 하면 어떡하나, 속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데,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녀석이 담배를 신발로 짓이겨 끄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 야. 끄고 가자. 진짜 어른이신가 보지. "
" 엥? 나 아직 다 안 피웠는데. "
" 그래도 꺼 인마. "
" 아. 아까운디. "
" 그럼 죄송했습니다. "
녀석은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꾸벅 목례를 하고는 나를 지나쳐 골목을 빠져나갔다. 깐죽이도 투덜거리나 싶더니, 이윽고 내게 인사하고는 녀석을 뒤따라 사라졌다. 의외로 쉽게 얻어 낸 1승이었다.
순간 어떨떨해진 기분으로 녀석들의 빈자리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던 나는, 뒤늦게야 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모르게 짜릿한 통쾌감이 밀려왔다.
***
새 동네에서 내가 배정 받을 수 있는 인근 고등학교는 딱 하나 밖에 없었다. 공교롭게 작년까지 남고였지만 올해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뀐 학교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입학하는 1학년은 여자애들이 꽤 있지만, 2학년과 3학년은 거의 한 학년에 여자수가 스무명 안팎일 정도로 적다고 한다.
그래도 여자가 나 말고 세명이나 있대잖아. 전학 첫날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 걱정 가득한 엄마를 안심시키며 내가 말했다. 인자한 미소를 가진 대머리 담임쌤도 웃으며 엄마를 안심 시키셨다.
"네, 시민이 말고도 여자애들이 있으니까... 또 저희 학굔 중간에 전학도 많이 오니까요, 걱정 안하셔도 되요. "
" 어휴. 정말 괜찮겠죠? "
" 네네.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
엄마는 담임쌤의 손을 붙잡고 잘 부탁한다는 말을 몇번 더 반복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시민이를 많이 생각하시나 보구나.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담임쌤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하셨다. 네,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와중에도 내 눈은 복도에 지나가는 여자애들에게로 향해있었다. 2학년은 거의 없댔으니까 쟤네들은 다 1학년인건가.
확연히 수가 많아 보이는 남자애들도 쑥쑥 나를 지나쳐갔다. 그런데, 왠지 남자애들이 입고 있는 교복이 눈에 익다.
" ...뭐지. 어디서 봤더라? "
" 응? "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담임쌤께 둘러대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은, 교실에 들어설 때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 오우, 여자 전학생이다! "
" 어? 진짜다! 이제 우리반 여자 세 명이다!! "
기억을 되살려보려 혼자 끙끙거리던 나는 교탁 앞에 서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야 말로 남자 소굴이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득실거리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여자를 찾기 위해 열심히 눈을 굴리자, 뒷자리에 여자애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좋았어. 첫인상을 좋게 남겨야지!
" 안녕. 나는 수만고에서 전학 온... "
그때 나는 반사적으로 입이 굳어버렸다.
" 시민아, 뭐 문제 있니? "
" 아, 아뇨! 안녕! 난 김시민이야! 잘 부탁해!!! "
" 하하. 인사를 참 열정적으로 하네. "
" ... 하... 하하... "
" 그래. 저기, 예리 옆에 빈자리 만들어 놨으니까 가서 앉으렴. "
그 순간, 난 드디어 남자 교복이 그토록 익숙하게 느껴졌던 연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 바로 앞에, 골목길의 그 남자 애들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
" 안녕! 난 김예리야!"
" 어? 안, 안녕. "
" 나 진심으로 여자 전학 딱 한명만 더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대박!! "
내게 손을 내밀며 인사하는, 예쁘장한 여자애. 그리고, 내 앞에서 웃겨 죽겠다는 듯 책상에 엎어져 킬킬대고 있는,
" 야. 김예리 넌 잠깐 빠져 있어봐. 나 지금 도깨비보다 재밌는 드라마 보는 기분이거든? "
" ...뭔 개소리야 넌 또. "
" 레알 웃겨 죽겠네. 크하하하갛핳학!! 그지 이민형? "
... 깐죽이.
그리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저, 저... 놈은... 틀림없이 그때 그 녀석이었다.
녀석이 나를 향해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우리 학교 교복 잘 어울리네. 스물 두 살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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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첫 회라 그런지 분량 조절 실패 .... 앞으로 예쁘게 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