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커플의 일상이란, 세 번째 일상
(어제 올렸을 때 댓글창이랑 전체적으로 다 이상해서 재업로드해요ㅜㅜ 독자님들께서는 댓글 작성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 부탁드려요! 너무너무 죄송합니다ㅜㅜㅜㅜ)
W. 야끼소바
그 뒤로 우리는 초등학교 자유시간 때나 했을 법한 별별 게임들을 다 했다.
"1"
"2"
"짝"
"4"
"5"
"6"
"누나 바보~"
라든지,
"탕"
"수"
"육"
"탕"
"수"
"탕"
"앗싸! 누나 게임 완전 못해~"
"죽을래?"
라든지. 물론 내가 거의 다 졌다는 건 안 비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보니 시계는 이미 한밤중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형아, 나 자고 싶어."
"네?"
"자고 싶다고."
"누나, 우리 너무 빠른 것 같은ㄷ..."
"야, 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졸려서 자고 싶다고."
"아..."
"내가 말했잖아. 너 변태라고. 맞네, 변태."
"아니, 자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다고요~ 누나야말로 무슨 생각을 한 거예요?"
"...."
"대체 뭐가 빠른데요~? 뭐가? 뭐가 빠르다고 생각했길래~?"
"나 너랑 말 안 해."
분명해. 쟤는 나 놀리는 맛으로 산다니까? 옆에 놓인 쿠션을 품에 안고 아무 방이나 들어가 문을 잠갔다. 문에 기대앉아 방을 둘러보는데 '아, 여기 이민형 방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민형 취향의 침대에 이민형 취향의 시계, 이민형 취향의 책꽂이까지. 가구만 봐도 이민형의 것임을 알아차리는 내가 신기했다.
하얀색으로 곱게 정리된 이불이 참 보기 좋았다. 평소에도 깔끔한 성격의 이민형이었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는 그 면모가 더 드러나는 듯 했다. 그리 넓지도, 그리 좁지도 않은 방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책상 위에 놓인 액자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내 생일 때 나를 몰래 찍길래 지우라고 당부했으나, 꿋꿋하게 그 사진을 인화까지 해서 액자에 끼워 놨더라. 별로 잘 나온 사진도 아닌데 왜 저 사진을 넣어 놨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옅게 미소를 지었다.
드르륵-
책상의 첫 번째 서랍을 연 나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일에 관련된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 서랍은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편지들과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연분홍색 편지봉투를 집어 들었다. 22일. 투투데이는 챙기면 오래 못 간다는 이민형의 말을 무시하며 편지까지 정성스레 쓴 날이었다. 편지봉투에 장난스럽게 넣어 두었던 220원마저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던 이민형에 웃음이 나왔다.
이 사진은 우리가 처음으로 놀러간 날. 바다가 보고 싶다는 내 말에 무작정 기차표를 끊어 부산으로 향했었다. 아무 계획도 아무 생각도 없던 즉흥적인 여행이었지만 서로가 함께였기에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해운대 바다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촬영을 부탁드렸었다. 활짝 웃고 있는 나에 비해, 사진을 찍는 게 많이 어색한 듯 로봇처럼 꼿꼿이 서 있는 이민형이 꽤나 웃겼다. 이 때도 참 재밌었지.
놀이공원을 갔을 적에 커플로 맞춘 머리띠도 보였다. 리본은 절대 안 된다는 이민형의 말에 가까스로 합의를 봤던 게 이 미키마우스 머리띠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려서 사진을 엄청 찍어댔었다. 이민형은 차라리 리본이 나을 뻔 했다며 칭얼댔다. 이민형은 싫어했지만 덕분에 귀여운 이민형도 보고 나에게는 엄청나게 이득인 날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 이민형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를 꽉 안았다.
"뭐예요. 뭐 봤길래 갑자기 이래."
"너 엄청 로맨틱한 남자였구나?"
"이제 알았어요? 나만큼 로맨틱한 남자 어디 있다고."
"내가 전용 상자라도 하나 사줄까?"
"네?"
"서랍. 많이 작아보이던데."
"설마 그거 본 거예요?"
"내가 상자 하나 사줄게. 예쁜 걸로. 우리의 행복을 담기에는 서랍이 너무 작아."
"그렇죠."
"우리 앞으로 더 오래, 더더 오래 사랑할 거잖아."
"오래 말고, 평생은 어때요."
---
"누나가."
"네가."
"누나."
"너."
"누나."
"너."
침대는 하나인데 사람은 두 명. 그 말은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 뿐이라는 거. 현재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목하는 중이다. 나는 다짜고짜 이민형의 집에 찾아온 게 미안해, 쇼파에서 자기를 자처하고 있고 이민형은 그래도 나름 손님인데 쇼파에서 자면 어떡하냐며 거부하고 있다.
"그냥 누나가 침대에서 자요."
"안 돼. 미안해서 나 잠 못 자. 나 피곤해서 내일 아무것도 못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아 진짜.."
"아니면 침대에서 같이 잘래?"
"누나!!!!!"
"그래 이민형 네가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내가 쇼파에서 자는 거다, 오케이?"
"이불 꼭 덮고 자야 해요."
"더운데..."
"밤 되면 추워요."
"알았어."
"근데요."
"응?"
"누나랑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민형 변태 확정.
---
이민형이 일회용 칫솔을 꺼내주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쭉 짜서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이민형이 들어와서 내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고선 이민형도 자기 칫솔에 치약을 짜 양치질을 시작한다. 거울에 둘이서 함께 양치질을 하는 모습이 비쳤다. 약간... 어... 결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런 느낌이... 결혼 생각을 하다 보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민형 쟤는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을까?
입에 물고 있던 칫솔을 빼고 이민형에게 물었다.
"민형아."
"왜요?"
"넌 나랑 결혼할 생각 있어?"
"푸웁!!!!!"
웅얼거리며 대답하던 이민형이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입에 있던 거품을 튀겼다.
"없어? 진짜로 없는 거야?"
"없다기보다는..."
"네가 나랑 평생 사랑할 거라며!"
"그건 맞는데 막상 결혼이라고 하니까 느낌 이상해요."
"됐어. 나 세수할 거니까 나가."
억지로 이민형을 쫓아보낸 뒤에 얼굴 위에 씌워진 화장이라는 가면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화장을 지우다 보니, 이거 뭐 인간 맞나 싶을 정도. 이민형에게 완전 민낯을 보여주는건 처음이다. 급하게 만나거나 이른 아침이라도 비비크림이랑 립밤까지는 발랐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무장해제 상태잖아. 수건 하나로 얼굴을 가린 채로 나갔다.
"뭐야, 왜 그러고 있는 거예요?"
"나 쌩얼. 지금 인간 아니다."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야, 너 보면 충격 먹어서 나 집에서 바로 내쫓을지도 몰라."
"한 번만. 딱 한 번만 수건 내려봐요."
"알겠어. 딱 3초만. 대신에."
"네."
"욕하지 말기."
"욕을 왜 해요ㅋㅋㅋㅋㅋㅋ"
"너 할 수도 있어. 자동반사로."
"아니야 아니야. 내려봐요."
엄청 부끄럽지만, 겨우 수건을 내려 3초를 세고 다시 수건을 올리려는데 이민형이 다가와서 볼을 잡는다.
쪽-
"귀여워 미치겠다, 진짜."
"안 이상해?"
"하나도 안 이상해요. 이참에 화장 안 하고 다니는 건 어때요?"
"그건 좀 많이 불가능해."
"화장 연하게 하고 다녀요. 안 한 것도 너무 예쁜데."
"진짜로?"
"진짜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여자랑 연애하게 됐지? 나 복 받았네."
"알면 잘해."
"결혼하고 싶어."
"...."
"김시민이랑 결혼하고 싶다."
"하자, 결혼."
"누나가 먼저 말해버리면 어떡해요. 나중에 완전 멋지게 딱! 할려고 했는데."
"네가 하든 내가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해."
"그건 그래요."
민형아, 나의 내일에 언제나 네가 있길 바라.
---
분명 쇼파에서 잤던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침대 위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민형 잠 제대로 못 잔 건 아니겠지. 방문을 열고 나가 이민형을 불렀다.
"이민형! 민형아~"
아무 대답이 없다. 그리고 이민형도 없다. 화장실에도 베란다에도 다 찾아봤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시계를 봤는데, 출근 시간이 훨씬 넘어 있었다.
"미쳤어? 얘 나 안 깨우고 그냥 간 거야?"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하며 집 안을 돌아다니던 그때, 부엌 식탁에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밥과 연두색 포스트잇 하나가 보였다.
'누나, 많이 피곤해보이던데 반차 대신 써줄테니까 푹 쉬고 오후에 회사 와요. 혼자 오는 거 싫으면 내가 점심시간에 데리러 갈게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계란말이로 보이는 요리는 다 부서져 거의 스크램블로 보였고 마트에서 사온 듯한 김치, 이 두 개의 반찬뿐이었지만 이민형이 차려준 밥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좀 콩깍지 씌인 것 같기도 한데 진짜로 맛있긴 맛있었다.
거실 구석에 있는 청소기를 꺼냈다. 하룻밤을 얹혀 살았는데 청소 정도는 해줄까 싶어서 청소기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았다. 위이잉 하고 돌아가는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워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청소를 하며 둘러본 이민형의 집은 정말 이민형 그 자체였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계란말이와 김치만 있던 아침밥이 기억났다. 평소에도 그렇게 부실하게 먹는 거 아닐까. 혼자 살게 되면 밥을 잘 챙겨 먹지 않게 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그랬고. 더군다나 일이 많아 야근을 자주 하는 이민형이라면 더욱 그럴 것 같았다. 냉장고 문을 열자, 텅텅 비어있는 칸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샀는지 모를 두부하며 몇 개 되지도 않는 계란까지. 나한테는 항상 밥 잘 챙겨 먹는다고, 집에 반찬이 너무 많아서 요리사 해야 될 지경이라고 하더니 순 거짓말쟁이였네.
지갑을 챙겨 마트로 나섰다. 요리하기가 쉬운 여러 음식 재료들을 카트에 담았다. 계산을 마친 재료들을 봉지에 담아 이민형의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민형의 집에 도착해서 어제 물어보았던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이, 얘도 나처럼 집에 들어갈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겠구나 싶었다.
시금치 무침, 감자 조림 등 몇 가지 반찬을 해, 반찬통에 담았다. 얘 집에는 반찬통도 몇 개 없어서 찾는다고 엄청 힘들었다. 혹시나 반찬이 떨어지면 만들어 먹으라고 아무 종이나 집어들어 요리 방법을 끄적였다. 알아들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알아듣기를 바라며 반찬통에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하나씩 붙이고 냉장고에 넣었다. 그나마 냉장고가 조금 채워진 것이 보기 좋았다.
회사에 있었다면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시간이었다. 이민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민형아, 누나 지금 갈게."
'안 데리러 가도 돼요?'
'응, 혼자 가도 돼.'
'빨리 와요. 보고 싶어."
---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민형이 팀장실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마주친 눈에 슬쩍이 웃어보였다. 너나 나나 애인 하나는 참 잘 뒀다, 그렇지.
***
안녕하세요! 어떤 독자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1화에서는 민형이가 "비밀번호 가리고 누르기" 라고 말을 하는데 2화에서는 어느새 여주의 집 문이 열쇠로 바뀌었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정신 없이 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됩니다..... 1화에서의 민형이 대사 "비밀번호 가리고 누르기" 를 "문 잘 닫혔나 확인하기" 로 수정했습니다!
맞춤법은 최대한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혹시나 틀린 맞춤법이 있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가끔씩 튀어나올 수 있는 방언도 양해 부탁드려요..ㅎㅎ
글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항상 사랑합니다♥♥♥♥♥
암호닉은 가장 최근에 올린 화에 []과 함께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누락되었거나 틀린 암호닉은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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