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어렸을 땐 몰랐는데 고1쯤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중학교, 어쩌면 초등학교, 어쩌면 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뭔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에겐 흔하디흔한 그 웃음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고, 부모님의 관심도 없었던 거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관심이 아예 없을 수가.
내 말은 누나와 비교했을 때를 말하는 거다.
누나는 나와 달리 친구도 많았고, 웃음도 많았으며, 지식도 많-. 아니 공부도 잘했다.
(아닌가? 공부는 내가 더 잘했나..)
아무튼 나는 왜 누나가 더 많이 관심을 받고 사랑받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의문도 없었기에-.
그 정도로 나는 없는 게 많았다.
아- 생각을 달리하면 나도 나름 있는 게 있는 것이 아닌가.
‘없는 게 많다.’라고 했으니 ‘없다’라는 것이 내게 존재한다는 말이 아닌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넘겨도 좋다.
내 말에는 그 ‘요지’라는 것도 없으니-.
#1-01
“형 일어난 거 알아요.”
아침부터 문을 부실 듯 두들기는 통에 자고 있던 나는 깨버렸다.
“누구세요.”
눈도 뜨지 못한 채 소리에 끌려 익숙하게 연 문에는 낯선 이가 서있었다.
그것도 환자복을 입은-.
“형, 저 배고파요.”
어이없어 한참을 서있었다. 혹시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하고.
“너 혹시 눈이 안 좋냐, 아님-..”
환자복을 자세히 보니 성진-병원이라고 쓰여 있다. ..성진..?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숙여 더 자세히 보았다.
아, 성진 정신병원.
“정신병자는 곤란한데.”
내가 뱉고도 놀란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말이 심했다.
상처 입을까 사과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 올린 고개에는 상처입은 표정이 아니라 우습다는 표정을 한 낯선이가 서있었다.
“형, 형 옷 좀 보세요.”
그 말에 올렸던 고개를 숙여 내려 본 내 몸에는 같은 옷이 입혀져있었다.
성진 정신병원 환자복이.
“형, 산책하러가요.”
“그래.”
평소 걷는 걸 좋아하지 않은 나였지만 민망함에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 이게 17살,
그러니까 학교 나이로 계산하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그쯤에 일어난 일이였다.
“정국아-”
“네.”
“넌 안 심심하냐.”
“예전엔 심심했는데 지금은 형도 오고-. 말 나눌 사람도 있고 재밌어요. ..형은요?”
내 대답은 윤기쌤의 등장으로 묻혀버렸다. 지긋지긋한 상담 시간이었다.
“요즘 병실에서 혼자 뭐해.”
“정국이랑 수다도 떨고-. 같이 있어요. 외로웠는지 계속 같이 있으려고 해서요.”
쓸 말도 없을 거 같은데 차트에 분주하게 적어 내려가는 윤기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뭐라고 쓰는 걸까.
“..요즘 어때.”
“괜찮아요.”
“어느 점이.”
“...”
“어디가 괜찮은데. 내가 보기엔 없는 거 같은데.”
“사실.”
“엉”
“개 같아요.”
“뭐가.”
“다-요.”
“...”
“제가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더 개 같은 건.., 친구도, 엄마도 아빠도..그리고 누나도 아무도 절 보러 찾아오지 않아요.”
“...”
“내가 뭘 잘못한 걸까요.”
#1-02
병실엔 나뿐이였다.
정국이는 호석쌤에게 갔는지, 아 걔 호석쌤한테 낯가리지-.산책 갔나.
걘 산책가길 무척이나 좋아하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실로 오랜만에 맞아보는 공허함이였다.
이질감은 없었다.
나는 깊은 저 속에서 한 가지를 기억해냈다.
나, 전에도 외로웠구나-.
그렇다고 혼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할 생각은 없었다.
또 그렇게 까지 풍부한 감수성도 없으니. 정적을 깨고 내 침대에 가 누워 있으려 했다.
전정국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의 침대도 아닌데 결백증이라도 있는지 씻지않고 침대에 눕는 것을 보는 것조차 싫어하는 전정국을 약올리기위함이였다.
침대 가까이 가 누우려하는데 뭔가 눈에 띄었다.
끈이였다.
침대 아래에 손을 넣어 잡아당겨보니 그리 무겁지 않은 상자가 끌려나왔다.
상자의 한쪽이 찢어져 끈으로 되어있던 손잡이가 길게 빠져나와있었던 거 같다.
이걸 내가 열어봐도 되나.
고민하는데 상자 우측에 네임펜으로 써져있는 ‘김남준’이라는 글자를 보자 이성을 잃고 열었다.
그곳엔 처음 보는 노트와 중학교 때 입었던 교복, 좋아했던 사진기, 처음보는 필통, 그리고 누나가 졸업선물이라고 사줬던 지갑과 같은 잡동사니들이 섞여있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기억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고등학교 기억이 그곳에는 존재했다.
다가오는 발랄한 발소리에 상자를 숨겨야될 거같다는 직감에 뭘 집을까 고민하다 처음보는 노트를 집어 상자 뚜껑을 다시 덮어 찢어진 상자를 다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세이프-.
비록 병원화장실이라 (정말로 내가 이곳에 왜 있는지 몰라 개같으니 굳이 정신병원이라고는 칭하지않겠다.) 잠구는 기능은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프라이버시에 예민했고 에티켓을 잘 지켰다. 그러니 전정국이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노트를 펴자 날짜가 눈에 띄었다. 몇 개월전이였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해 설렍다는 내용부터 쭉 쓰여져 있는 일기였다.
돌잔치 때는 오만원을 냅두고 이상한 연필을 잡더니만 이번에는 골라도 제대로 골랐구나, 김남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설레임으로 바뀌어있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부담을 준다는 내용,
짝이 없어 심심하다는 내용,
영어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몰래 수능특강 풀기 힘들다는 내용,
짝이 생겼다는 내용, 국어 수행평가 보고서 쓰기 싫다는 내용,
화학 수행평가 질문을 지식인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짜증난다는 내용,
수행평가하다 밥을 못먹었다는 내용,
새로 생긴 짝이 어차피 같이 점심 먹을 애 없다며 같이 굶어줬다는 내용,
앞으로는 같이 밥을 먹기로 한 내용-.
학교 생활이야기부터 처음 사귀는 새학기에 전학 온 친구이야기까지 자잘하게 쓰여있었다.
정신 잃고 읽다보니 어느새 2월 중,후반이였던 날짜가 5월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짝이름이 뭐지..
처음 사귄 친구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니.
별로 다니지도 않았지만 고등학교 기억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곤욕이였다. (내가 이유도 모른채 정신병원에 입원되어있는 것보다는 아니지만) 기분이 개같았다.
더 화장실에 머물다가는 변비라 놀림을 받을 거 같아 노트를 수건들 사이에 숨겨놓고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린후 손을 씻고 나왔다.
전정국은 호석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산책하다 맛난 것을 주워 먹었는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뭔 일있어?”
“맛있는 냄새나! 오늘 밥 맛있을 거 같아!”
#1-03
“들어와.”
“네”
“요즘도 정국이랑 수다 떨고 지내냐.”
“네, 애같은게 보다보면 귀여워요.”
윤기쌤은 차트에 분주하게 뭘 적어내려갔다.
게이라고 써두는 건 아니겠지. 귀엽다고는 했지만 제 취향은 아니라서.
귀엽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다급하게 덧붙혀진 내 말에 윤기쌤은 날 한 번 쳐다보고는 차트를 덮고 텀블러를 홀짝거리셨다.
“몰랐는데, 남준이 귀여운 구석이 있네. 혹시 알어? 나중에 좋아하게 될지.”
“..쌤.”
“엉.”
“텀블러에 맥주 담아드시지 마세요. 취기인지 진심인지 헷갈려요.”
“맥주 아니고, 소주.”
“호석쌤한테 말씀드릴거에요. 근무시간에 소주 드신다고.”
“이거 걔 아이디어야. 소주병 들고 다니면 병원분위기 이상해보인다고”
그 말을 끝으로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약 꼼수써서 빼먹지말고. 다 먹어.”
“저 안아픈데.”
점심을 먹고 받은 약은 전날보다 한 알이 늘어있었다.
개기지말걸.
#1-04
정국이와 밥을 먹고 정국이의 수다를 들어주다 정국이에게 물었다.
“내 가족은 왜 면회를 안오지.”
“...”
“내가 나쁜짓을 한 걸까. 그럼 사과라도 하게 말이라도 해주지. 서럽네 이거.”
“형”
“ 내가 왜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고.”
“괜찮아여. 전 힘들 때 형 곁에 있어줄게요. 제가- ”
약효과가 도는지 정국이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져갔다.
.
.
그렇게 꿈도 꾸지 않고 푹-잤다.
눈을 뜨니 나 혼자였다. 병실 문을 열어 복도를 둘러봐도 정국이는 보이지 않았다.
휴게실에 갔나.하고 향한 2층 휴게실에는 호석쌤이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푸하하 웃고 계셨고 윤기쌤은 동물의 왕국이라도 보시는지 근엄한 표정으로 티비를 응시하고 계셨다.
“어 남준아 여긴 무슨 일이야? 4층 화장실 또 막혔지! 아- 진짜 석진이만 왔다가면 화장실이 말썽이라니까!”
호석쌤은 혼자 소설을 쓰시다 맺는말까지 가셨는지 흥분하시며 뚜레뻥을 찾으며 뛰쳐나가셨다.
“쌤”
“엉”
“정국이 어디갔는지 아세요?”
“몰라. 안보이디?”
“네.”
“찾지말어.“
“왜요?”
“걔도 너도, 혼자말의 시간이 필요하지.”
그 말을 끝으로 윤기쌤은 텀블러를 다시 들고 홀짝거리셨다.
티비에 방영되고 있는 건 한창 대박 캐스팅이라고 난리였던 [대학 허슬 라이프]였다.
“저거 벌써 방영중하네요.”
“마지막 편이야.”
그렇구나.
다시금 시간의 공백을 느꼈다.
“저도 대학 갈 수 있을까요.”
“네가 왜 못가.”
“화장실 다 멀쩡하던데? 어..분위기 왜 이래?”
호석쌤이 분위기를 풀려 노력하셨지만 더 엉킨 것 같았다.
#1-05
“들어와”
전정국인줄 알고 무심하게 던진 말 끝에는 호석쌤이 서계셨다.
“어쭈-. 이게 그냥 말을 놓아버리네. 확- 들이박을까보다.”
“정국이인줄 알았어요.”
“그래. 그나저나-. 너”
가운 주머니 속 무언가를 만지작거리시며 뜸을 들인다. 각지게 튀어나온게 핸드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건다.
“밥도 뜸 많이 들이면 맛없어요.”
“밥 할줄도 모르는게-. 남준아 너 대학 가고 싶다고 그랬다며.”
“아-.”
지나가는 식으로 말했던 건데. 그걸 또 차트에 적으신 건지 아님 이야기하다 말이 나온건가.
“그 드라마 보다가 나온 이야기야. 오해는 말고.”
“네.”
“그래, 더 생각해보구.”
호석쌤은 할 말이 더 남았는지 한참을 앉아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시다 나가셨다.
내가 더 하실 말씀이 있냐하고 아까처럼 말 할 자리를 깔아주었으면 남은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내가 서있을 곳도, 서 있는 곳도 눈에 보일만큼 너무나 불안정해서 남의 자리를 깔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의 기억을 잃어버리며 배려심도 잃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똑똑한 김남준을 알고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그 시절에도, 그 전에도 나에겐 배려심은 없었다고.
나는 이기적이였다. 아니, 이기적이다.
#1-06
아무래도 정국이에게 문제가 생긴거 같아 겉옷을 챙겨 병실을 나섰다.
“어디가.”
“정국이, 어디 갔는지 아세요?”
“몰라. 안보이니.”
“네.”
“산책갔나보지. 늦지 않게 들어와라. 상담시간 늦으면 혼나.”
정국이와 첫 날 함께 걸었던 산책코스를 따라 걷다보니 내가 왜 전정국을 찾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심심해서’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심심함은 외로움의 성격을 더 강했지만 그냥 이 느낌을 ‘심심함’이라 포장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덩치 큰 놈이 길가에 쪼그려 앉아있는 게 보였다.
“가자.”
“형.”
“응.”
“기다렸어요.”
“응.”
“안올거 같아서 무서웠는데, 왔다.”
“...”
“다행이다.”
앉아있는 모습이, 외로워하는 모습이 나를 보는 거 같이 기분이 이상했다.
“남준아! 아까 네 누나 왔다가셨어!”
“누나가요? 언제 갔어요?”
“민쌤이 너 산책 나갔다하니까 혼자갔냐 물어보시더라구. 너 외로움 많이 타는 애라구 걱정하시면서.”
“정국이랑 같이 갔었다고 말하시지.”
“무튼, 너 없다하니까 30분 정도 기다리시다가 급한 일 있으신지 가셨어.”
“아.., 아쉽네요.”
보고싶었는데.
뒷말은 내뱉지않고 삼켰다. 혀로 꾹꾹 눌러서. 치아로 잘게잘게 씹어서.
누나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다 정리되는 기분이였다.
외로움 많이 타는 거 알고 있었으면 더 일찍 찾아오지.
기다렸는데.
누나는 30분 동안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누나는, 내가 아는 누나는. 급한 일 때문이아니라 정신병자들이 득실거리는 이 병원이 무서워서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신병자인 내가 무서워서 그런거였을지도.
나는 거의 2달 가량 기다리며 누나의 심정을, 생각을 헤아려보지않았다.
누나가 나를 무서워한다-라.
기분이 개같았다.
“형, 민쌤이랑 상담시간 얼마 안남았어요.”
병실에 온 첫 날부터 놓여져 있던 화분에 분무기를 뿌려대던 정국이 말했다.
시계를 바라봤다.
“정국아”
“네”
“신임왕 안보냐. 시작한지 꽤 지났을텐데.”
“헐 오늘 목요일이구나.”
분무기를 떨어뜨리고선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그러다 다시 병실 문이 열리고
“상담 끝나면 2층 휴게실로 와여.”
하여간 귀엽다니까.
#1-06
“왔냐.”
“네.”
“약은 잘먹고 있지.”
“네.”
“요즘 어때.”
“안괜찮아요.”
“새끼가 복수하기는.”
“저 나름 습득력이 좋아요.”
“공부는.”
“네?”
“대학, 가고 싶다며.”
“네.”
“하기 싫으면 하지마. 너희 집 이거 많잖어.”
윤기쌤은 엄지와 검지를 비볐다.
“그게 뭔데요?”
“돈.”
.
.
.
“ 저 이제 나가봐도 돼죠.”
시간을 보니 드라마가 끝날 무렵이였다.
“그냥 나가.”
“네.”
“병원말이야.”
“네?”
“퇴원하라고.”
“와 쌤 진짜 돌팔이 아니에요? 저 달라진 거 없는데.”
“있어.”
“뭔데요,”
“나중에 차차 알게되겠지. 나가서 공부해. 대학 가고 싶다며.”
“검정고시치면,”
“나가서 찾아봐, 네가 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
“...”
“근데 난 솔직히 네가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
.
2층 휴게실로 내려갔다.
정국이는 그 곳에 없었다.
한참 돌아다니다 병실에 올라가보니 정국이가 화분을 끌어안은채 쪼그려 앉아있었다.
“형.”
“응.”
“퇴원해?”
“호석쌤한테 들었어?”
“힘들면, 연락해.”
“응”
“나는 이 화분이랑 잘 지내고 있을게. ”
“너도.”
“응?”
“외로우면 연락해.”
“응”
우리는 연락처도 주고 받지않은채 연락을 기약했다.
4층에는 환자들이 별로 없어 천천히 짐을 정리해도 된다는 호석쌤 말에 알겠다 끄덕였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까지 정국이는 내 병실에 놀러오지않았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여름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도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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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입냄새 나는 여직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