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났다.
자리에서 그가 일어난다, 이 때다.
가방을 부랴부랴 챙겨 그 앞에 멈춰 섰다.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연애조작단 A
*'시라노;연애조작단'을 모티브로 쓴 글입니다. 모티브로 쓴 거라 내용이 똑같이 않다는 점 유의부탁드립니다.
"어, 안녕"
"저, 저 시간 있으시면 저랑 밥 한 번만...!"
"윤기야-."
"어, 선배 안녕하세요."
"..."
"나 좀 바빠서 미안."
초점 없고 멍한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온 세상 피곤함이 가득한 표정, 그 짧은 찰나에도 난 그가 나를 단 1%, 0.1%도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영혼 없는 눈빛에도 뭐가 그리 떨리던 지 덜덜거리며 이어가던 내 말은 무심히 씹혔다. 바깥에서 부르던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 하나에 선배는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색하게 손을 들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던 내 손은 뻣뻣하게 굳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허무하게 나가버린 후 내 귀에는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고 설사 나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 혼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강의실에 휑한 바람이 느껴지자 그제서야 입술을 깨물고 손을 내려 가방끈만 꼭 붙잡을 뿐이었다. 강의실 밖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5초컷. 그래, 내가 뭘 바란 거야. 그렇게 연예인 뺨치는 여신 새내기도 단칼에 거절당했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좋다고 난리를 쳤던 걸까. 이 멍청아. 왠지 모를 쪽팔림과 창피함이 가득 몰려왔다. 학교 밖으로 나와 이 상황과 아무 관련 없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얼굴도 못 쳐다보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곧장 집으로 걸었다. 가게들을 지나치며 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뭐를 바라고 이른 아침 일어나 잘하지도 못하는 고데기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머리를 홀랑 태워 먹은 걸까. 신경질적으로 이상하게 꼬여진 머리를 헝클었다. 덕분에 더 이상해졌다, 표정까지 굳히니 완벽히 마녀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몰꼴이었다. 당분간은 수업에 나가지 못할 거 같다.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말도 다 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혼자 난리 부르스를 치냐고 물어도 상관없다. 난 이미 모든 용기를 잃었고 의욕을 상실했다. 솔직히 이렇게 될 거 예상을 아예 안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끝날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도 밥 한번은 같이 먹어주겠지, 그래도 말 몇마디는 나누면서 선배의 옅은 미소라도 볼 수 있겠지. 차마 어디 가서 말할수도 없었다. 너무 쪽팔렸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다. 한숨을 푹푹 쉬며 집 현관앞에 도착할 때 쯤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문자였다, 모르는 번호의.
'우리에게 왜 봄날은 안 오는 걸까요?
얼굴보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놀러 가고..
이게 많이 바라는 걸까요? 그냥 나는 손 잡고 같이 벚꽃 볼 사람을 찾는 거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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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누굴 놀리나? 글을 읽고 한참을 멍 때렸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아냐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내 맘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순간 흠칫했던 마음을 접고 가차없이 스팸메세지함으로 이동을 눌렀다. 그래, 다 구라야. 이런 거 해주는 회사가 세상에 어딨어. 옮기고 나서도 괜히 드는 찝찝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리는데 전화가 왔다. [남준 선배].
괜히 눈물이 나오려 했다, 친한 동기들에게도 윤기 선배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말한 사람이 남준 선배였다. 워낙 다정하시기로 유명하셔서 나도 모르게 그 선배에게 말을 해버렸는데 마침 친하다고 해서 진짜 그 자리에서 큰절을 하려 했다. 관심사부터 성격, 일화까지 몽땅 알려주시고 윤기 선배가 듣는 수업까지 슬쩍 알려주며 진짜 내 은인이었던 그 선배. 물론 그 수업은 나만 알고 있었기에 혼자 열심히 수강신청을 어찌어찌 성공해서 홀로 수업을 들었다. 갈등을 했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폰을 만지작거리다 크게 한숨을 쉬고는 폰을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응, 탄소야. 강의는 끝났어?"
"...네, 끝났죠."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전화를 받자 들여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뭔가 울컥거리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살 의욕을 잃은 것 같습니다만. 목 끝까지 꾸물꾸물 올라오는 말들을 삼키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잠시 입을 꾹 닫았다. 뻥끗하면 봇물처럼 줄줄이 쏟아나와 펑펑 울으며 나중에 제대로 이불킥할 건수를 만들 거 같았다. 현관문에 등을 기대어 고개를 숙여 아침부터 신발장을 뒤져 구석에 짱 박혀있던, 하나밖에 없는, 분명 살 땐 예뻤는데 촌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어색한 제 구두만 바라봤다. 제 말 한마디에도 내 기분을 눈치채주는 선배가 괜시리 고마웠다. 결국 우물쭈물 거리다 말을 꺼냈다. 여러 감정과 상황이 압축된 말.
"선배님..."
"응, 왜."
"...저 망했어요. 완전."
"..."
"..."
"...그럼 오늘 못 오겠네. 좀 이른 시간이긴 한데, 애들이랑 지금 술 마시고 있었거든. 애들한텐 내가 잘 얘기할게. 집가서 쉬어."
"...죄송합니다. 제가 진짜 다음엔 꼭 나갈게요. "
"아냐, 신경쓰지 마. "
"감사해요, 선배."
서로 말이 없었다. 다 아는 모양이다, 내가 뭔 말을 한 건지. 일일이 상황설명 안해도 되겠지. 전화기 너머의 선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왁자지껄 술 게임을 하는지 소란스러운 소리만 들려왔다. 몇 분째 전화기만 붙들고 이 정적이 슬슬 불편해질때 쯤 아까와 다름없는 여전히 다정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 내지 않아도 배려해주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 나오려는 걸 참고 꾹꾹 눌러담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몇 번더 얘기를 오가다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선배에 폰을 뺏어 든건지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왜 안 오냐. 김탄소."
"네?... 아 뭐야, 김태형?"
"다들 너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와. 너 저번에도 은근슬쩍 넘어가고 그럴래, 진짜?"
"남준선배가 빠져도 된다고 하셨거든? 시비털지 말고 술이나 마셔 멍멍아."
"아, 진짜 나 오늘 알바까지 빼고 왔다고, 너 온다는 거 듣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나 안 간다고. 정국이 부르던가."
"전정국은 당연히 왔지 너 온다는 거 듣고."
"...뭐? 아, 야, 나 확답도 안했는데 아가를 왜 데리고가 그 개판에! 미친놈아 진짜."
"아가는 무슨, 얘 술 개 잘 마셔. 네가 못 봐서 그래. 빨리 오기나 해."
"구라치네. 아, 진짜. 너.... 너 가서 보자."
곧바로 들리는 김태형의 목소리. 어떻게 알았는지 그 새 남준 선배의 전화기를 뺏어 들고 내게 언제 오냐며 쏘아붙힌다. 사람 속도 모르고 어찌나 속을 저렇게 벅벅 긁어대는지. 거기다 정국이까지 불렀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오후 4시밖에 안 됐는데 술판을 벌이고 있다는 것만 들어도 쪽팔리는데 동기, 선배 몇 명과 내가 아끼는 동생인 정국이까지 불러내 술을 퍼마시고 있단다. 아가아가한 새내기인 정국이에게 술을 먹이다니, 그 말을 듣고 순간 짜증이 확 돋아 발걸음을 돌렸다. 진짜 김태형은 어렸을 때부터 쭉 개새끼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어. 가게에 도착해 만약 정국이가 제 정신이 아니라면 그 자식 어금니를 다 털어버릴 거다. 아까 일은 벌써 잊어버린건지 그렇게 난 동기들이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ㅠㅁㅠ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써볼게요.
암호닉은 계속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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