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여기까지만 데려다주셔도 괜찮아요! "
" 그래 내일 푹 쉬고 웃으면서 출근하기다! "
" 고마워요 들어가세요~ "
호석이 오빠도 걱정은 참. 내가 걱정된다며 나의 집 앞 놀이터까지 데려다주신 호석 오빠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모퉁이를 지나 오빠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놀이터 벤치에 털썩 앉았다. 새벽 감성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별 하나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김을 호호 불며 아무도 없는 새벽 놀이터를 만끽했다. 없는 살림에 죽지는 못 한다고, 고단한 아르바이트로 혼자서 먹고 잘 수 있을 정도의 생계는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오늘은 자주 없는 일인 회식하는 날. 딱 기분이 좋을 때까지만 마신 술이 매서운 겨울바람도 이겨주는 듯하다. 어른들이 왜 술에 몸을 맡기는지 알 것 같다. 취한 기분에 몽롱해지니 몸도 가벼워지는 기분이고 마치 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힘든 것은 생각나지 않고 정말 눈앞에 보이는 것 그대로의 행복함.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며 볼에도 대보고 겨드랑이 사이에도 껴보는 둥 손을 녹였다. 한창 벤치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고 허밍을 할 때였다.
" 헉.. 허.. 윽... "
어떤 사람이 골목 끝에서부터 휘청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 한 대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놀이터로 들어왔다. 술을 많이 마셨나?... 이 추운 겨울 날씨에 고작 티 하나 걸치고 나온 남자의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적당히 좀 마시지... 나처럼 일에 찌든 사람인가? 아님 상사에게 고통받는 직장인인가? 혹시라도 나에게로 와 나를 헤치려고 하지 않을까? 피식거리며 남자의 행동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남자의 행동이 이상하다. 놀이터에 쌓인 흰 눈 바닥이 남자가 걸어오는 길마다 자취를 내듯이 몸에서 떨어지는 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갔다. 뭐야 저 사람? 피를 보며 더욱 겁에 질린 나는 안 좋은 느낌을 받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신경을 쓰지 않으려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냥 호석이 오빠가 데려다줄 때 조용히 집에 들어갈걸, 왜 괜히 안 하던 짓을 해가지고.. 하늘은 내 속을 모르나 보다. 일어나 몸을 돌려 곧장 직진하려는 나에게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원, 구걸, 다급함.
" 살려주세요... 하.. 한 번만.. 제발.... "
어떡하지?.. 나 어떻게 해야 해? 도망가야 하는 거 맞지?
뛸까? 집까지 쫓아오면 어쩌지?
순간적으로 등에 땀이 나는 기분이 들며 입김을 불며 녹였던 손끝이 차가워졌다. 오싹해진 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볼까 하는 찰나에 언제 내 바로 뒤까지 왔는지 남자의 인기척이 등 바로 뒤에서부터 느껴졌다.
" 살려주면 .... 드릴게요 "
" ...돈 ... "
" 평생 ....행복하게........... "
멀리 있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던 남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니 술에 취한 아저씨가 아니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어깨너머로 목을 타고 귀까지 들어오는 남자의 가파른 숨소리.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적어도 거지는 아닌 듯한데 말이다. 그래, 살인도 이유 없이는 안 하겠지 싶어 나는 침을 꿀꺽 크게 삼켰다. 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두 눈을 꼭 감고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려 마주 보고 섰다.
" .......... "
" 어... 저.... "
어렵게 입을 뗀 나는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피투성이로 범벅된 아주 여려 보이는, 나보다 훨씬 큰, 소년 같은 남자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살인하고 도망 나왔다기엔 남자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보였고, 지금 당장 나에게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경찰에 신고해주는 방법뿐.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 아... 안 돼! "
" 네?.... 걱정 말아요. 경찰에 신고하는 거예요. "
" 오고 있어요.. 제발.. "
내가 전화하려는 것을 막은 남자의 손은 힘을 주지 않았는지 부들거렸다.
" .....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는 거죠? "
" 오늘 밤만.. 아니, 몇 시간만 집에 있게 해주세요. "
" 네? "
" 사례는 꼭 해드릴게요. 제발... 부탁이에요. 이상한 짓 안 해요. "
자취를 하는 입장이라 안 될 이유야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선 남자를 집에 들이는 것도 이상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내가 고민할 시간조차 이 남자에겐 고통일 거라 생각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거면 남자의 핏자국 때문에 쉽게 들킬 만도 했지만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의 동네 주민 아저씨께서 눈을 다 쓸어놨는지 정말 말끔했다. 아직도 피가 계속 나는 것인지 눈처럼 햐얀 흰색의 무지 티가 빨갛게 번져가고 있다. 난 이왕 할 거 깨끗하게 하자 하는 마음으로 남자의 배를 보며 손수건을 건넸다.
" 피.. 떨어지니까 이걸로 어떻게 좀 막아봐요. "
" 저는 괜찮아요. 괜히 더럽히지 말고 넣어요.. "
" 오는 길에 계속 피 흘리시면서 오던데.. 나 이렇게 왔다! 하고 광고하는 거예요? "
" 아.... 미안해요 "
얼른 가야한다는 남자의 말에 다급히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옷소매를 꽉 부여잡고 겉으로 티 내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나와 1미터쯤 떨어진 간격으로 걷고 있었다. 아, 저 남자 정상이 아니었지. 나는 입을 꽉 깨물고 다시 남자에게로 돌아가 손을 내밀었다.
" 부축해 드릴게요. "
" 괜찮.. 크헉...으... "
남자는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기침을 하며 피와 고인 침을 토해냈다. 나는 피를 굉장히 싫어한다. 눈앞에서 피를 토하는 사람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했다. 말 없이 남자의 한 쪽 팔을 내 어깨에 올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남자의 피가 내 머리카락과 목뒤, 어깨에 묻는다. 분명 말라 보였는데 몸무게가 꽤 나가는 듯 버거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최대한 남자의 속도에 맞춰주되 최대한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나까지 다급한 마음에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지금 내가 이 남자를 왜 도와줬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남자의 눈을 피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남자의 눈은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다행히 우리 집은 놀이터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앞 문을 열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내 손에 선명하게 묻어있는 붉은 피를 보고 곧바로 옆구리에 닦았다. 손잡이에 묻지 않게 하려 닦은 것인지, 피가 싫어 닦은 것인지는 모른다. 급한 대로 남자를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다음으로 내가 들어왔다. 작지만 여러 명이 사는 빌라라서 앞 문을 잠글 수 없다. 나는 성급한 마음으로 남자의 손을 잡아끌어 우리 집을 향해 다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 잘만 걸어 다녔던 2층이 오늘따라 남자를 이끌고 와서 그런지 매우 힘겹게 느껴진다. 나는 도어록을 풀고 남자와 내가 다 들어와서야 문을 굳게 잠갔다. 자취를 하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2중 잠금장치도 걸었다.
원룸이기 때문에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나 혼자 쓰는 1인용 침대가 바로 보인다. 나는 남자를 거의 내팽개치듯 침대에 털썩 눕혔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지듯 눈을 감았다. 숨을 가파르게 쉬는 남자에게서 땀이 흘렀다.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지? 집에 와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술기운은 이미 남자를 발견했을 때부터 사라진지 오래다. 일단 급한 대로 가방과 외투를 벗어던지고 남자의 몸 상태를 살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게 피를 흘리더라니 아직도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배 쪽에 깊이 무언가에 찔렸는지 옷을 들어 상처 부위를 확인하는 순간 뒷걸음질 쳤다. 저 사람 여기서 죽는 거 아니야? 머리에 온갖 생각이 스치며 우지끈 아파온다. 어디서 이렇게 맞고 왔는지 묻고 싶었다. 눈을 꾹 감고 남자의 옷을 가위로 찢어발기듯이 벗겼다. 그리고 집에 있는 수건을 총동원하며 하나는 피가 흐르는 상처 부위에 올려주고 하나는 땀으로 범벅된 얼굴 등 피가 묻어있는 곳을 닦았다. 얼굴을 닦으며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거지라고 하기엔 단정히 정리된 머리, 내 피부만 하게 하얀 피부, 비뚤어진 굴곡 하나 없이 잘 뻗은 콧대, 짙은 속눈썹, 그리고 피처럼 붉은 입술. 왜 이런 사람이 이렇게 됐을까. 일어나서 물어보면 말해줄까? 아까와는 달리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숨을 고르게 쉬는 남자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흰색 매트, 흰색 이불. 오로지 흰색으로 깔끔히 정리되어있는 내 집이 붉게 물들어 간다.
하늘은 조금씩 푸른색을 띠며 창문으로 곧 아침이 찾아올 거라는 푸른빛이 들어왔다. 새벽의 적막함 사이 시계초 소리와 남자의 깊은 숨소리가 작은 우리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서서히 무거운 눈꺼풀이 감겨오나 싶더니 고개를 몇 번 침대에 떨궜다. 이게 뭐 하는 일인가 싶어 현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결국 침대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었다.
-
" 으... "
머리가 우지끈 아파오는 고통속에 눈이 떠졌다.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는 채 하늘은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색 그대로를 띄고 있다. 몸이 휘청하고 넘어질 뻔한 것도 모르고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확인했다.
6시 30분.......
잠깐 잔 건가 싶어 바닥에 걸레짝처럼 내팽개쳐있는 외투에 걸린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아 꺼냈다.
" 오후? "
곧 밤이 될 거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어제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은데... 푸른빛이 내려오는 침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피?
..........
불현듯 떠올랐다. 새벽에 온몸이 피투성이인 남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는걸. 하지만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화장실에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다는 듯 냉기만 가득했다. 뭐지? 허탈한 마음에 마음이 공허했다. 내가 뭘 한 거야? 곧장 바닥으로 주저앉은 난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곤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붉어지는지 나도 모른 채.
--------------------------------------------------------------------------------------
안녕하세요?
프롤로그(?)는 미스테리로 하고 싶...어서
이렇게 끝! 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연재를 해도 괜찮을까요...(주섬
감사합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전정국] 벚꽃 엔딩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2/01/0/feccc9b15ab4cbd836685b069b33f3ea.gif)
![[방탄소년단/전정국] 벚꽃 엔딩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3/05/19/e4c4151e59aa00d2df8182602bbb6d1d.jpg)
![[방탄소년단/전정국] 벚꽃 엔딩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06/10/6b7d01ce93a73b7ecde8257e7ce2cdd3.gif)
![[방탄소년단/전정국] 벚꽃 엔딩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7/17/14/908ebc97a126149c2ec6b1a71693f1e9.gif)
![[방탄소년단/전정국] 벚꽃 엔딩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31/23/58df5f2d27480c0f1f05e275be225b18.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