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시면 나옵니다)
어두운 밤에 보이는 불길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황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의 시장이 불길에 휩싸여 사라져 가고 있었다.
황궁에서도 쳐들어 오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군사를 파병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것 일지도 몰랐다.
멀리서만 들리던 군사의 함성도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황제는 옥좌에 앉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차마 황제의 옷깃 하나 잡지 못한 채, 서둘러 몸을 피하자는 태자의 말에도 황제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태자의 옆에 있는 황녀를 보며.
황제는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군사의 총 지휘를 맡고 있는 듯한 자가 문을 부수고서 쳐들어 왔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금군까지 모두 물리치고 말이다.
황녀는 태자의 뒤에 숨어서 떨고 있었고, 태자도 그런 황녀를 보호하고자 남자를 향해서 달려가려 했지만, 황제가 막아 섰다.
황제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칼을 꺼내든 남자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황제의 목을 도려내었다. 날카로운 칼소리와 함께 황제의 목이 시야에서 모습을 감췄다.
제 오른손에 피에 적셔진 칼을 쥐고있던 남자가 왼손으로 황제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황녀의 눈에는 목 없이 쓰러져 있는 자신의 아비의 몸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태자도 자신의 누이인 황녀를 지키기 위해 달려갔지만, 소용 없는 짓이었다.
눈물이 흐르는 황녀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피에 물든 자신의 아비와 오라비뿐이었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벌벌 떨고 있는 황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황궁 안을 나갔다.
황녀는 머리채를 잡힌 채 자신의 발로 걷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나가고 있었다.
황궁의 두터운 문을 거칠게 열어재낀 남자가 밖으로 나오자 피로 물든 검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환호했다.
남자는 제 큰 손 안에 잡고 있던 황녀의 머리칼을 던지듯이 놓았다.
순간, 황녀는 중심을 잃고서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방(芳)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닌 우리 주(奏)국의 하나의 주(州)가 될 것이다!”
남자의 말에 밑에 있던 병사들은 환호했다.
그의 발치에 있는 황녀가 독기 서린 눈으로 자신의 위에서 웃고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서건 18년, 호환 황제에서 263년의 긴 역사가 한 명의 황녀를 남기고,
지도에서 방(芳)은 사라졌다.
옛 방국의 황궁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먹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황녀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방국이 아닌 주국의 잔치는 방국의 황녀를 웃게 만들 수 없었다.
가끔은 문뜩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자신의 나라는 사라졌다. 자신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자신은 이제 더이상 방국의 황녀가 아니다.
지금 황녀의 옆에 있는 이 남자의 손에 의해서.
“그대, 방국의 황녀인가? 이름이 무엇이지?”
남자의 말에 황녀는 말이 없었다. 단지, 독기 서린 눈으로 그 남자를 쏘아 볼 뿐이었다.
남자는 그런 황녀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황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의 손이 얼굴에 닿는 것이 불쾌해 황녀는 인상을 확 찡그렸다. 남자도 그 표정을 보고서 황녀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남자가 얼굴에서 손을 떼자마자, 황녀는 그를 향해서 침을 뱉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얼굴에 닿지 못하고 남자의 손에서 그칠 뿐이었다.
남자는 험악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요망한 년이로구나. 침이 묻은 손으로 황녀의 뺨을 후려 갈겼다.
황녀는 외마디 비명도 없이 그 독기 있는 눈으로 남자를 쏘아보았다.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듯한 남자의 표정도 굳은지 오래였다.
* * *
남자는 며칠 동안 음식도 주지 않고 물만 먹여 황녀를 골방에 가두었다.
그래도 황녀는 끝까지 꺼내달라는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황녀의 모습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폐하, 저렇게 두었다가는 죽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럼, 이제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줘야겠지? 노예 선이 언제 떠나는가?"
"오늘 유시(저녁 5시~ 7시)에 떠납니다."
"그 배에 저 계집을 싣을 것이다. 그 배 위에 올라타 과연 날 어찌 볼 것인지 궁금하군."
유시가 되어서 남자는 밧줄에 묶인 황녀를 끌듯이 끌고 가는 호위무사를 구경하듯 바라봤다.
배에 던지듯이 놓고서 자신을 쳐다보는 황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황녀는 그런 남자를 보고 이를 악 다물고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남자는 내심 황녀가 저 밑바닥부터 자신이 있는 곳까지 올라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 참으로 재미있군. 내 너를 바닥 끝까지 밀어주마. 어디 한 번 그 밑에서 올라와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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