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시 00 분 00 초 00: 운수 좋은 날
오늘은 그랬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고, 지옥철을 앉아서 탔으며, 점심으로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퇴근 후 박지민을 만나 소주 한 잔까지 하고, 아쉬운 마음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더 샀다. 알딸딸한 정신에 남들이 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나의 퍼펙트한 하루를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났다. 내일은 어제처럼 늦잠을 자고, 발 밟히는 지옥철을 타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익숙한 뒷 번호가 뜬 휴대전화를
"여보세요?"
받기 전까진 정말 오랜만에
"...... 누구라고?"
진짜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는데
"전정국이라고. 미안, 번호 박지민이 너한테 묻고 준다는 거 내가 그냥 달라고 했어."
23:59:57
.
.
.
23:59:58
.
.
.
23:59:59
"김탄소?"
00:00:00
"....... 어, 오랜만이네. 연락을 해도 밤에 하냐 넌."
"맨정신으로는 전화 걸 용기가 없길래."
"야, 우리가 뭐 싸웠냐? 그냥 내가 일방적으로......."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익숙한 뒷 번호가 뜬 휴대전화를
"여보세요?"
받기 전까진 정말 오랜만에
"...... 누구라고?"
진짜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는데
"전정국이라고. 미안, 번호 박지민이 너한테 묻고 준다는 거 내가 그냥 달라고 했어."
23:59:57
.
.
.
23:59:58
.
.
.
23:59:59
"김탄소?"
00:00:00
"....... 어, 오랜만이네. 연락을 해도 밤에 하냐 넌."
"맨정신으로는 전화 걸 용기가 없길래."
"야, 우리가 뭐 싸웠냐? 그냥 내가 일방적으로......."
"......."
"......."
"....... 그, 나 결혼해."
나의 첫사랑이었다. 쪽팔리지만 몇 달 전까지도 가끔 구질구질하게 SNS 기웃거리면서 근황 확인도 했다. 게시물은 여전히 없었지만. 내가 한 말 그대로다. 싸운 건 아니고 내가 애처럼 피했다. 나는 고등학교 3 년 내내 전정국을 짝사랑했지만 우린 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 나 마음 편하자고 고백을 했다가 차이기라도 해 봐, 사귀기로 했다가 나중에 헤어지면? 나는 겁쟁이였다. 그렇게 마음 꽁꽁 숨기기에 도가 텄을 때쯤, 수능 끝나고 옆반에 공부 겁나 잘하는데 얼굴도 예쁜 애가 고백한다고 냉큼 사귀는 거 보고 내 마음 한 번 제대로 표현한 적 없으면서 전정국한테 마음의 상처를 엄청나게 입었었다. 아니 뭐.... 전정국이 걔를 좋아했을 수도 있고. 그날 작은 오빠가 사 뒀던 맥주 한 캔을 홀라당 원샷하고 박지민을 만나 엉엉 울며 전정국 욕을 했지. 그 후로 난 전정국의 연락을 다 피했고, 어쩌다 친구들과 만나게 된다고 해도 무시를 하거나 얼른 자리를 피했었다. 그땐 SNS도 안 했고, 핸드폰도 스마트폰이 아니었으며, 싸이월드 일촌을 끊으면 암묵적인 절교 선언과 다를 게 없던 때였기 때문에 졸업식 후 일촌을 끊으며 우리 사이도 그렇게 끊겼었다. 유치하다, 애 같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그때의 나를 보며 하는 말이다. 그래도 난 다시 그날이 온다고 해도 똑같이 하지 않을까. 내 첫사랑이 나보다 잘난 사람과 연애하는 꼴을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나의 마음을 다 참아내고 보기엔 내가 전정국을 꽤 많이 좋아했나 보지. 전정국은 가만히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친한 친구가 떠난 셈이지만 그땐 내가 제일 중요했었다. 그래도 결국 이렇게 멀어질 줄 알았으면 "나 너 좋아해!!!!!!!!"라고 말할걸 했었지만 그마저도 나중엔 안 하길 잘했다 싶더라.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았다. 첫사랑 잊기 힘들다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나도 대학 가서 남자 친구 사귀었고, 잘 놀고먹었다.
적어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자취방 이삿짐을 싸면서 옛날 핸드폰을 찾기 전까진 이렇게 생각을 했었단 말이다.
"미친, 야. 박지민 이거 나 고등학교 내내 쓰던 핸드폰임."
"아직 안 버렸냐? 여기 나온 물건 중에 반은 버려야 돼 너. 쟁여 놓지 좀 마. 다 쓰레기야, 쓰레기."
"야! 그래도 이건 추억이 있는 물건이잖아!"
"켜지긴 하냐? 그거 이제 충전기도 없잖아. 추억이 있는 물건이라는 말 지금 정확히 열두 번째."
"아, 씨. 몰라! 켜지... 네? 켜진다! 켜져!"
그렇게 박지민이랑 짐 싸다 말고 주저앉아 흑역사를 구경했다. 저화질의 셀카가 수두룩하게 있었다. 중간중간 전정국과 찍은 셀카가 나올 때마다 움찔했지만 이 땐 이랬었으니까. 지우지 않은 메시지 보는 맛도 쏠쏠했다.
"박지민 전화 구걸 문자가 제일 많네."
"아이, 그야 너만 유일하게 무제한이었으니까."
그랬다. 나만 유일하게 성인인 큰오빠 명의를 써서 성인 요금제였다. 때문에 전화 셔틀, 문자 셔틀을 꽤 했었던 기억이 났다. 추억의 핸드폰 탐방이 끝나갈 때쯤 메시지 창의 마지막 메뉴인 스팸 메시지함을 눌렀다. 별거 없을 테지만.
"......."
"......."
"흠, 크음. 야, 탄소야. 나 먼지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편의점 가서 물 좀 사 올게. 짐 마저 싸고 있어라."
".... 어, 어...."
- 스팸 메시지 -
[탄소야 무슨 일 있어?
계속 전화가 안 되네]
-전정국-
[일어났냐?
일어났으면 전화 좀 해 줘]
-전정국-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전정국-
[말로 풀자
잘못한 거 있으면 사과할게
7 시까지 돌고래 공원에서 기다릴게]
-전정국-
문자를 읽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보같이 왜 차단을 해선. 공원에서 기다린다는 문자 이후로는 광고 문자들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꾹꾹 눌러 내렸을 때 전정국의 마지막 문자를 발견했다.
[요즘 기운이 쭉 빠져 보이던데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지?
차라리 그냥 나 때문에 화가 나서
기분이 나쁜 거면 좋겠다
졸업 축하해]
-전정국-
박지민은 자취방 문을 열자마자 나의 눈물바다에서 헤엄쳤고, 나를 달래다 이삿짐이고 뭐고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끌고 집 앞 포장마차에 갔다. 지민이는 유치원 때부터 함께 다닌 나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고민이 생기면 서로부터 찾았고, 그랬기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뭐래도 서로의 편이 되어 주는 무조건적인 나의 편. 그런 지민이가 나에게 꺼낸 이야기는 나에게 쌍년이라는 타이틀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쳤던 눈물을 다시 뽑아내기 적절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4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걔, 그때 사귀었던 애가 전정국이 '나는 너한테 마음이 없는데 그래도 괜찮냐'라고 물었다나. 근데 여자애가 그래도 좋다고,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사귀게 된 거였대. 근데 데이트할 때도 항상 연락도 안 되는 너만 신경 쓰고, 새로 나온 영화 보러 가자니까 그거 탄소 너랑 보기로 했다고 하고, 하여간 걔가 말한 불만은 자기보다 너를 더 신경 쓰는 거. 그거 못 견뎌해서 한 달 반? 만나고 헤어졌다더라."
"......."
"졸업식도 하기 전이었나."
"....... 끄흑."
"나도 제대하고 오랜만에 전정국 만났다가 들었어. 근데 너 남자 친구도 있을 때라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안 했는데 문자까지 보니까 이제야 서로 삽질한 거 알겠네."
"사, 끕. 삽질이 크흡. 머야......."
".... 모르는 게 났겠다."
그래, 다음 주에 만나서 밥 한번 먹자. 응, 응. 전화를 끊고 침대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통화할 거였으면 박지민이 번호 준다고 연락해 보라고 할 때 해 볼걸. 미안해서 엄두도 못 냈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10 년 만에 닿은 연락에서 들은 소식이 하필....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 아니다.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과정에서도 다시 연락을 해서 나의 마음을 고백한 후, 잘 되는 그따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나도 나중에 분명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고, 할 건데, 그렇지만....... 갑자기 아까 마셨던 술기운이 확 오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나 아직 화장도 안 지우고 옷도 안 갈아 입었는데. 알람도 안 맞췄는데.... 생각을 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김탄소!"
".......힝."
"어머, 얘 좀 봐. 얼른 안 일어나?"
"아, 엄마아.... 추어.... 나 오 분마안...."
"얘가, 얘가. 너 또 지각하려고! 빨리 일어나 기집애야!"
엄마가 끌어내린 이불을 다시 끌어와 목까지 덮고 칭얼거렸다. 엄마.... 엄마?
"엥? 엄마?!"
"얼른 나와서 밥 먹어!"
"엄마? 엄마가 왜 여기, 가 아니라 내가 왜 집에 있어?"
"어휴, 그럼 네가 집에 있어야지 어디에 있는데?"
"나 어제 술 먹고 여기까지 왔어?!"
"뭐야?! 너, 수울? 수우우울? 김태형!!!!!!!!!!!!"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와중에 엄마가 작은 오빠를 불렀다. 그렇게 나타난 작은 오빠는
"헐, 머리."
주황 머리였고,
"너 어제 밤에 얘도 데리고 나가서 술 먹었니?"
"엥, 무슨 소리야. 나 어젠 일찍 와서 잤는데! 야, 김탄소. 너 빨리 안 나오면 비엔나 내가 다 먹는다."
시계를 보려 베개 옆에 두었던 휴대폰을 들었을 땐.
"헐, 이 고물이 왜 여기에.... "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다, 너 졸업하면 바꿔 준다고 했다. 너 또 준이 불러다가 조르기만 해, 어?"
"엄마도 참, 탄소 얼른 나와. 지각하겠다. 태워 줄게.
"오빠 미국에서 다시 왔어...?"
미국에 간 큰오빠마저 집에 있지 않나.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씻고 오라는 엄마의 말을 끝으로 방문이 닫혔다. 황급히 손에 들었던 폴더 휴대전화를 열었다. 07:01. 4 월... 2일? 옛날 폰이라 현재 시간을 모르는 건가,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들추며 현재의 핸드폰을 찾았다.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찾다 신경질이 나 허리를 세웠을 때 눈에 딱 보인 건 거울.
"에...."
약 10 년은 젊어 보이는 내가 서 있었고, 머리도 앞머리가 없는 긴 밝은 갈색 머리에서 앞머리가 생긴 까만 단발머리. 눈동자만 굴려 거울 옆에 있는 새마을금고 달력을 봤을 땐.
2007년
4월
"에에???????????"
10 년은 지난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려 화들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폴더를 열었을 땐.
[야 김탄소
오늘도 늦으면 진짜 먼저 갈 거야
나올 때 저나 ㄱ]
-박지민-
"이거 꿈이지.... 그치...."
'지이잉.'
[7 시 40 분까지 박지민이랑
집 앞으로 갈게]
-전정국-
"....... 그, 나 결혼해."
나의 첫사랑이었다. 쪽팔리지만 몇 달 전까지도 가끔 구질구질하게 SNS 기웃거리면서 근황 확인도 했다. 게시물은 여전히 없었지만. 내가 한 말 그대로다. 싸운 건 아니고 내가 애처럼 피했다. 나는 고등학교 3 년 내내 전정국을 짝사랑했지만 우린 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 나 마음 편하자고 고백을 했다가 차이기라도 해 봐, 사귀기로 했다가 나중에 헤어지면? 나는 겁쟁이였다. 그렇게 마음 꽁꽁 숨기기에 도가 텄을 때쯤, 수능 끝나고 옆반에 공부 겁나 잘하는데 얼굴도 예쁜 애가 고백한다고 냉큼 사귀는 거 보고 내 마음 한 번 제대로 표현한 적 없으면서 전정국한테 마음의 상처를 엄청나게 입었었다. 아니 뭐.... 전정국이 걔를 좋아했을 수도 있고. 그날 작은 오빠가 사 뒀던 맥주 한 캔을 홀라당 원샷하고 박지민을 만나 엉엉 울며 전정국 욕을 했지. 그 후로 난 전정국의 연락을 다 피했고, 어쩌다 친구들과 만나게 된다고 해도 무시를 하거나 얼른 자리를 피했었다. 그땐 SNS도 안 했고, 핸드폰도 스마트폰이 아니었으며, 싸이월드 일촌을 끊으면 암묵적인 절교 선언과 다를 게 없던 때였기 때문에 졸업식 후 일촌을 끊으며 우리 사이도 그렇게 끊겼었다. 유치하다, 애 같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그때의 나를 보며 하는 말이다. 그래도 난 다시 그날이 온다고 해도 똑같이 하지 않을까. 내 첫사랑이 나보다 잘난 사람과 연애하는 꼴을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나의 마음을 다 참아내고 보기엔 내가 전정국을 꽤 많이 좋아했나 보지. 전정국은 가만히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친한 친구가 떠난 셈이지만 그땐 내가 제일 중요했었다. 그래도 결국 이렇게 멀어질 줄 알았으면 "나 너 좋아해!!!!!!!!"라고 말할걸 했었지만 그마저도 나중엔 안 하길 잘했다 싶더라.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았다. 첫사랑 잊기 힘들다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나도 대학 가서 남자 친구 사귀었고, 잘 놀고먹었다.
적어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자취방 이삿짐을 싸면서 옛날 핸드폰을 찾기 전까진 이렇게 생각을 했었단 말이다.
"미친, 야. 박지민 이거 나 고등학교 내내 쓰던 핸드폰임."
"아직 안 버렸냐? 여기 나온 물건 중에 반은 버려야 돼 너. 쟁여 놓지 좀 마. 다 쓰레기야, 쓰레기."
"야! 그래도 이건 추억이 있는 물건이잖아!"
"켜지긴 하냐? 그거 이제 충전기도 없잖아. 추억이 있는 물건이라는 말 지금 정확히 열두 번째."
"아, 씨. 몰라! 켜지... 네? 켜진다! 켜져!"
그렇게 박지민이랑 짐 싸다 말고 주저앉아 흑역사를 구경했다. 저화질의 셀카가 수두룩하게 있었다. 중간중간 전정국과 찍은 셀카가 나올 때마다 움찔했지만 이 땐 이랬었으니까. 지우지 않은 메시지 보는 맛도 쏠쏠했다.
"박지민 전화 구걸 문자가 제일 많네."
"아이, 그야 너만 유일하게 무제한이었으니까."
그랬다. 나만 유일하게 성인인 큰오빠 명의를 써서 성인 요금제였다. 때문에 전화 셔틀, 문자 셔틀을 꽤 했었던 기억이 났다. 추억의 핸드폰 탐방이 끝나갈 때쯤 메시지 창의 마지막 메뉴인 스팸 메시지함을 눌렀다. 별거 없을 테지만.
"......."
"......."
"흠, 크음. 야, 탄소야. 나 먼지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편의점 가서 물 좀 사 올게. 짐 마저 싸고 있어라."
".... 어, 어...."
- 스팸 메시지 -
[탄소야 무슨 일 있어?
계속 전화가 안 되네]
-전정국-
[일어났냐?
일어났으면 전화 좀 해 줘]
-전정국-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전정국-
[말로 풀자
잘못한 거 있으면 사과할게
7 시까지 돌고래 공원에서 기다릴게]
-전정국-
문자를 읽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보같이 왜 차단을 해선. 공원에서 기다린다는 문자 이후로는 광고 문자들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꾹꾹 눌러 내렸을 때 전정국의 마지막 문자를 발견했다.
[요즘 기운이 쭉 빠져 보이던데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지?
차라리 그냥 나 때문에 화가 나서
기분이 나쁜 거면 좋겠다
졸업 축하해]
-전정국-
박지민은 자취방 문을 열자마자 나의 눈물바다에서 헤엄쳤고, 나를 달래다 이삿짐이고 뭐고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끌고 집 앞 포장마차에 갔다. 지민이는 유치원 때부터 함께 다닌 나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고민이 생기면 서로부터 찾았고, 그랬기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뭐래도 서로의 편이 되어 주는 무조건적인 나의 편. 그런 지민이가 나에게 꺼낸 이야기는 나에게 쌍년이라는 타이틀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쳤던 눈물을 다시 뽑아내기 적절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4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걔, 그때 사귀었던 애가 전정국이 '나는 너한테 마음이 없는데 그래도 괜찮냐'라고 물었다나. 근데 여자애가 그래도 좋다고,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사귀게 된 거였대. 근데 데이트할 때도 항상 연락도 안 되는 너만 신경 쓰고, 새로 나온 영화 보러 가자니까 그거 탄소 너랑 보기로 했다고 하고, 하여간 걔가 말한 불만은 자기보다 너를 더 신경 쓰는 거. 그거 못 견뎌해서 한 달 반? 만나고 헤어졌다더라."
"......."
"졸업식도 하기 전이었나."
"....... 끄흑."
"나도 제대하고 오랜만에 전정국 만났다가 들었어. 근데 너 남자 친구도 있을 때라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안 했는데 문자까지 보니까 이제야 서로 삽질한 거 알겠네."
"사, 끕. 삽질이 크흡. 머야......."
".... 모르는 게 났겠다."
그래, 다음 주에 만나서 밥 한번 먹자. 응, 응. 전화를 끊고 침대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통화할 거였으면 박지민이 번호 준다고 연락해 보라고 할 때 해 볼걸. 미안해서 엄두도 못 냈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10 년 만에 닿은 연락에서 들은 소식이 하필....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 아니다.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과정에서도 다시 연락을 해서 나의 마음을 고백한 후, 잘 되는 그따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나도 나중에 분명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고, 할 건데, 그렇지만....... 갑자기 아까 마셨던 술기운이 확 오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나 아직 화장도 안 지우고 옷도 안 갈아 입었는데. 알람도 안 맞췄는데.... 생각을 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김탄소!"
".......힝."
"어머, 얘 좀 봐. 얼른 안 일어나?"
"아, 엄마아.... 추어.... 나 오 분마안...."
"얘가, 얘가. 너 또 지각하려고! 빨리 일어나 기집애야!"
엄마가 끌어내린 이불을 다시 끌어와 목까지 덮고 칭얼거렸다. 엄마.... 엄마?
"엥? 엄마?!"
"얼른 나와서 밥 먹어!"
"엄마? 엄마가 왜 여기, 가 아니라 내가 왜 집에 있어?"
"어휴, 그럼 네가 집에 있어야지 어디에 있는데?"
"나 어제 술 먹고 여기까지 왔어?!"
"뭐야?! 너, 수울? 수우우울? 김태형!!!!!!!!!!!!"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와중에 엄마가 작은 오빠를 불렀다. 그렇게 나타난 작은 오빠는
"헐, 머리."
주황 머리였고,
"너 어제 밤에 얘도 데리고 나가서 술 먹었니?"
"엥, 무슨 소리야. 나 어젠 일찍 와서 잤는데! 야, 김탄소. 너 빨리 안 나오면 비엔나 내가 다 먹는다."
시계를 보려 베개 옆에 두었던 휴대폰을 들었을 땐.
"헐, 이 고물이 왜 여기에.... "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다, 너 졸업하면 바꿔 준다고 했다. 너 또 준이 불러다가 조르기만 해, 어?"
"엄마도 참, 탄소 얼른 나와. 지각하겠다. 태워 줄게.
"오빠 미국에서 다시 왔어...?"
미국에 간 큰오빠마저 집에 있지 않나.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씻고 오라는 엄마의 말을 끝으로 방문이 닫혔다. 황급히 손에 들었던 폴더 휴대전화를 열었다. 07:01. 4 월... 2일? 옛날 폰이라 현재 시간을 모르는 건가,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들추며 현재의 핸드폰을 찾았다.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찾다 신경질이 나 허리를 세웠을 때 눈에 딱 보인 건 거울.
"에...."
약 10 년은 젊어 보이는 내가 서 있었고, 머리도 앞머리가 없는 긴 밝은 갈색 머리에서 앞머리가 생긴 까만 단발머리. 눈동자만 굴려 거울 옆에 있는 새마을금고 달력을 봤을 땐.
2007년
4월
"에에???????????"
10 년은 지난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려 화들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폴더를 열었을 땐.
[야 김탄소
오늘도 늦으면 진짜 먼저 갈 거야
나올 때 저나 ㄱ]
-박지민-
"이거 꿈이지.... 그치...."
'지이잉.'
[7 시 40 분까지 박지민이랑
집 앞으로 갈게]
-전정국-
-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올리는 글이라 심장이 막 두근거리네요 ㅠㅁㅠ 탄소가 과거로 타임워프 한 타임워프물 맞구요 뒤를 이을지 어떨지는 반응 보구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연재를 하게 된다면 흔하고 뻔한 제가 넣고 싶은 거 다 넣은 ㅎㅎ 타임워프물이 될 것 같아요!
내용 반응을 보고 싶어서 올리는 글이라 설명하고픈 것들 마구마구 넣어서 정신없이 길기만 한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캡짱!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방탄소년단/전정국] 00 시 00 분 00 초 00: 운수 좋은 날 46
8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