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커플의 일상이란, 다섯 번째 일상
W. 야끼소바
"누나 설마 내가 소리 지른 거 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고작 그걸로?"
"야, 이민형. 너 지금 고작이라고 했어?"
"내가 누나한테만 특별하게 대우해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넌 애초에, 단 한 번이라도 날 생각해준 적이 있긴 해?"
주먹을 꼭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을지 생각이라도 해 보라고."
민형의 시선-
누나가 보낸 서류 파일이 엉망이었다. 열쇠를 잃어버려서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던 그 날에 작성했던 것 같았다.
"김시민 씨는 이걸 지금 일이라고 해온 겁니까?"
"아니 저 그게..."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생각했던 것보다 점점 소리가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누나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기 시작했고 누나의 고개는 점점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무작정 소리를 지르고 난 뒤, 팀장실 문 밖으로 잠시 훔쳐보았던 누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것도 엄청. 그 뒤로 한숨을 몇 번 푹푹 쉬더라. 나보고 한숨 쉬지 말랬으면서 자기가 하네.
입술을 깨물고 휴게실로 향하는 듯한 누나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깟 서류가 뭐라고 누나한테 화를 냈을까. 여기서 더 생각해버리면 당장이라도 누나한테 달려가버릴 것 같아서 컴퓨터 화면에만 시선을 꽂고 있었다. 잠시 후,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린 건지 누나의 소리로 추정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누나를 봐버리면 바로 가서 안아버릴 것 같았다. 미안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의 글자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둥둥 떠다녔다. 보고 있던 서류철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나도 모르게 작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민형 병신새끼.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할까.
누나의 옆책상에 앉아 있던 정 대리가 누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언뜻 마주친 누나와의 시선에서는 미움이 비쳤다. 불안해졌다. 정재현 저 사람은 왜 하필이면 누나를 데리고 나간 거야. 잠시 마주쳤던 누나의 눈가가 붉어져있던 것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 때문인 거겠지. 울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는데 울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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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기분이 꽤나 많이 상한 것 같았다. 보통 내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거나 먼저 가더라도 문자 한 통은 꼭 넣던 누나였는데 오늘은 아무 말 없이 혼자 가버렸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온갖 생각들이 교차했다. 덕분에 접촉사고가 날 뻔도 했다. 누나가 혹시 날 싫어하게 된 건 아닐까. 정재현이랑 눈이라도 맞은 건 아닐까. 많이 힘들어할까. 내가 너무 심했던 걸까. 난 이제 누나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ㄷ.."
누나는 과연 정말 나에게서 등을 돌렸을까.
회사에서 쓰던 usb를 노트북에 꽂아 연결했다. 누나와 내 사이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개같은 문서파일이 보였다. 원망스러웠다. 너만 아니었어도. 누나가 작성했던 부분들을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나 혼자서 다시 쓰면 되는 걸 바보같이 화만 내고 왔네. 다시 연락하면 누나가 안 좋아하겠지.
서류 작성을 끝마치고 나니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왔다. 뻐근한 목을 주먹으로 두드리다가 시계를 보니 많이 늦은 시각이었다. 누나가 평소에 지금쯤 잤으니까, 지금 전화하면 누나가 깰 거야. 그러니까 전화 하지 말자.
그렇게 나는 잠들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이 모든 것들이 후에 어떤 일을 불러오게 될지 상상도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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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출근하는 길은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도 누나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냥 바빴겠지, 피곤했겠지 하고 넘겼다.
"누나,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ㅇ..."
"저리 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누나는 이미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누나, 왜 그래요."
"넌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야?"
"누나 설마 내가 소리 지른 거 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고작 그걸로?"
"야, 이민형. 너 지금 고작이라고 했어?"
"내가 누나한테만 특별하게 대우해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넌 애초에, 단 한 번이라도 날 생각해준 적이 있긴 해?"
뒷통수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띵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을지 생각이라도 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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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입에도 대지 않던 담배를 한 갑 샀다. 라이터도 하나 샀다. 회사 밖, 벽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끝이 타들어가는 담배를 그저 바라만 보다가 땅으로 떨어뜨려 느리게 발로 지졌다. 누나가 죽어도 피지 말라던 담배, 그 담배를 필 생각을 하다니 이민형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화해하기는 커녕 더 싸울 뻔 했잖아.
"저기, 팀장님."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러죠."
가까운 벤치로 향하는 그 짧은 길의 분위기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숨 막히는 정적이 계속되고 있었다.
"상사 대 부하직원으로서 할 말은 아니라,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뭐, 그러세요."
"시민 씨랑 사이 안 좋으시죠."
이 사람 뭐야. 어떻게 아는 건데? 존나 저래놓고 갑자기 '그러면 시민 씨랑 헤어지세요. 저랑 사귈 거니까요.' 이딴 말을 하지는 않겠지.
"긴장 좀 풀으세요. 애인 있는 여자 넘보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죠."
"그거 참 다행이네요."
"시민 씨가 지금 왜 화난지는 알고 계세요?"
"제가 소리 질러서 그런 거 아니에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네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리 직급 떼고 하는 대화라 해도 저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시민 씨가 지금까지 어떤 일을 당해왔는지는 아세요?"
"..."
"그쪽이랑 사귄다는 이유로 엄청 까였대요. 모르셨죠?"
"..."
"시민 씨는 대리, 그쪽은 차장이자 팀장. 직급 차이도 나잖아요. 물론 그쪽이 능력이 좋아서 그런 거긴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인 건데요?"
"당신 애인. 김시민이 그거 때문에 욕 엄청 먹었다고요. 그쪽이 시민 씨한테 너무 과분한 사람 아니냐며."
"누가 말했어요."
"시민 씨가 직접 말했어요. 너무 힘들었다고.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이제서야 퍼즐처럼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연애 사실을 절대 회사에 알리지 말라며 당부하는 누나의 모습, 한 번도 동창회에 날 데려가지 않았던 누나의 모습. 그래서 그런 거였어. 난 바보같이 아무것도 몰랐고, 누나는 혼자 힘들어했다.
누나가 보고 싶었다.
***
자, 여러분! 우리 박수부터 먼저 치고 시작할까요~?ㅎㅎㅎㅎㅎㅎㅎ 드디어~ 탄핵이~ 인용되고~ 파면에~ 선고를~ 받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네요^_^
저번 편 제대로 망했다고 생각하고 올렸는데 생각보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독자님들, 갈등을 좋아하는 건 절대 비정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렇거든요....(무논리) 좀 따뜻해진다 싶더니 갑자기 꽃샘추위가 슬금슬금 나타나네요. 3월이라고 옷 얇게 입지 마시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 맞춤법, 방언 지적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언제나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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