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vs 첫 사랑
w. 비이
평소 옆집에 살아도 등교시간에 단 한번도 본적 없던 이민형과 집앞에서 마주쳤다. 평소 고3인 나보다 더 이른 등교를 하는 민형이의 등교시간에 맞춰진 것이 아닌 여전히 느린 내 등교시간에 맞춰진 만남이었다.
하...오늘 같은 날 볼 건 뭐람. 쟨 왜 하필 오늘 평소보다 늦게 나온 거야...
"녕아..."
어제 밤 있었던 일은 잠시 접어두고 민형이를 불렀지만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날 한번 쳐다보더니 문앞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랐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하고는 쌩하니 자리를 떠났다. 도대체 저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함이 점점 가슴을 짖눌렀다.
첫사랑 vs 첫사랑
이민형은 그렇게 일주일을 내리 날 쌩을 깠다. 그리고 일요일에 혹시나 싶어 찾아간 도서관에서도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후배한테 쌩까이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니, 갈수록 기분이 더러웠다. 도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아니 애초에 잘못한 것조차 찾아내질 못하겠다. 정말 내가 미련 곰탱이라서 모르는 걸까 싶어 정수정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사람심리에 빠삭한 정수정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로 답변을 일관했다. 그저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고 내린 그나마 그럴싸한 결론은 내가 민형이가 공부하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고 방해했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도저히 그거 말곤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암요, 전교 1등 공부를 방해했으니 대역죄인 맞네 맞아... 그렇게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나하나 생각해보면서 민형이의 눈치를 보는 내 모습에 생각할 수록 점점 화가 밀려와 짜증이 일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끔 우연히 이민형과 마주칠때면 그의 손목으로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오늘도 손목에는 시계가 없구나.
사람은 미워해도 시계는 미워하지 말지... 그거 내 용돈 다 털어 산거였는데...
첫사랑 vs 첫사랑
"도...동혁아!"
저도 모르게 동혁이를 불러세우곤 당황한 내가 그와 마주했다.
"무슨일이세요?"
이민형과 비교된다 싶을 정도로 항상 웃는 낯으로 다정하게 말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이민형클론을 보는 것 마냥 똑같이 굳은 표정으로 날 대했다.
뭐야, 얘네들 정말. 사람 기분 나쁘게. 내가 아무리 눈치 젬병인 곰이래도 너네 둘이 나한테 악감정 있는 건 알겠다고!
그렇지만 일단 용무가 있으니, 감정은 접어두고.
"혹시 이민형 나한테 화난 거 있다니?"
"뉘에?"
기분 나쁘게 뒷 말을 끌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 그의 모습에 다시 한번 빡이 쳤지만 꾹 참았다. 잘했어, 김여주. 장하다.
모르니깐 묻고 있는거지 이 시벨롬아. 아...하하...너 잘생겼다는 뜻이야. 욕 아니야. 프랑스어로 시벨롬은 미남이래, 너 칭찬한거야.
마음속으로 욕 한번 한 게 부끄러웠던 난 애써 그 욕을 프랑스어로 둔갑시키는 정화 운동을 했다.
"민형이가 요즘 좀... 날 피하는 것 같아서..."
"선배 진짜 노답. 우와 민형이가 선배 곰이라더니 진짜네, 진짜야. 난 더 할 말 없어요."
도대체 내가 뭘 했다고 곰이래, 진짜. 나도 좀 알자... 그래 나 곰이라고 치자. 곰이라고 치고 지금 이 상황 1도 이해 안되고 모르겠으니깐 설명좀 해달라고...
하지만 동혁인 이미 차갑게 돌아선 뒤였다. 그래 더럽고 치사해서 나도 더는 안묻는다 이거야. 생까.
그리고 사실 더는 이런 감정싸움에 여유를 부릴 시기가 아니었기도 했다. 고3 막바지, 수능을 두달도 채 안남겨 둔 시점에서 이런거에나 신경쓰고 있는 나도 미친년이긴 했다.
그랬기에 그날 이후 나 역시 민형이를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이민형도 날 신경쓰지 않는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걸 까먹을 정도로 마주치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첫사랑 vs 첫사랑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수능전날이 되어서야 재현쌤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었다. 사실 날 피하는 건 이민형만이 아니었다.
재현쌤 역시 내게 조금 모질다면 모질게 대한 후 마주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내가 더이상 재현쌤 반을 찾아 가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민형이 반이기도 하니) 오다가다 복도에서나 교무실에서도 마주칠법한데 재현쌤은 항상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수정이의 정보망에 의하면 남선생님 휴게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거나 화학쌤답게 화학실에서 가있다고 했다.
문과 망했으면... 고3인 난 화학수업이 없다. 그러니 재현쌤과 마주칠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단 말이다. 그런데 재현쌤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나에게 그렇게 대한 뒤부터 그러시는게 확 느껴졌기에 좀 오바육바인 감도 없지않아 있지만 재현쌤도 날 피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재현쌤과 마주한 것이다.
"긴장하지 말고, 내일 수능 잘 쳐."
그 한마디를 건네며 예쁘게 포장된 초콜렛 상자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고3 학생들한테 다 주는 거에요? 이거?"
당돌한 내 물음에 재현쌤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펴졌다.
"그동안 받은 음료수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자."
"그저 보답만으로 끝인거에요? 쌤, 저 몇달만 지나면 이제 성..."
"여주야. 내일 있을 수능만 생각하자. 알았지?"
"...네."
그래도 쌤이 초콜렛 준게 어디야. 나만 준거라잖아.(좋을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음.) 그걸로 만족하며 신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내일 수능을 별 실수 없이 잘 칠 것 같다는. 그래서 20살의 내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며 열릴 것 같다는.
하지만 그런 내 느낌은, 감은... 약에 쓸래도 개미 쥐똥만큼도 없다는 걸 난 수능 전날 뼈져리게 깨달았다.
집을 코앞에 둔 골목길에서 자동차 굉음이 날 집어 삼키는 그 순간.
@@
1.
짧지만 한편 들고 왔어요.
이유는 축탄핵인용! 글잡 구독료 무료를 위해 ㅎㅎㅎ
원래는 어제 들고 왔어야 하는데... 거북이 손이라...ㅠㅠ
2.
2편 초록글 또 감사드려요 ㅠㅠ
댓글과 추천 주신 예쁜 님들 넘나 감사드려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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