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잠이 덜 깬 얼굴로 나한테 인사하는 이 남잔 옆집남자다. 이사온 지 2주 정도됐나. 2주전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 밖에 나가보니 대뜸...이 남자가 떡을 내밀었다. 그리곤 지독하게 낮은 목소리로, 옆집으로 이사 왔어요.잘 부탁드려요. 한 게 이 남자와 첫만남이다. 그 날 이후로 나를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럴때마다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예 좋은 아침.하고는 했다. 나랑 친하게 지내고싶나?
하늘에 구멍이 난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래 그랬다.직장에서 상사한테 주구장창 까이고 나서 회사끝나구 나와서 보는 비가 왠지 서글픈 내 마음 같았다. 한참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담아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재효한테 연락을 했다.
"왜 이태일"
"야 나 우산없음"
"그래서""우리 회사 앞으로!""내가 니 꼬봉ㅇ..."
딸깍. 내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10분 정도 지났나. 성질 불같은 안재효가 씩씩거리면서 우산 들고오는게 보인다. 크크...엄청 열받았는지 꼭 걸어오는 뽐새가 헐크같다. 사려야지.
"야!닌 내가 우산셔틀로 보이냐?나이 먹었으면 우산정돈 알아서 챙기라고!일기예보도 안보냐?형이 한가해보여 응?"
아,안들려 생긴건 말 없게 생겨가지구 입만 열면 잔소리 꼭 우리 엄마 같애. 그렇게 재효는 쓴소리를 해대다 이내 지쳤는지 말을 꺼냈다.진작 그럴 것이지."왜 부른건데""꿀꿀해서""그래서 어쩌라고?""술 사주라!"
재효의 눈썹이 꿈틀댄건 내가 잘못본거겠지. 피부미남 재효가 늙었는지 미간에 심한 주름이 생겼다. 히히 쭈글쭈글하다. 헤벌레 웃는 나를 한참 보다 재효는 한숨을 푸욱 쉬더니 나를 회사 근처 포장마차로 데려간다. 역시 안재효는 나한테 안되!
그 날따라 못 마시는 쓰디쓴 소주가 쭉쭉 잘도 넘어갔다. 재효가 경악하며 나를 말렸지만 나는 그런 재효를 쳐냈다. 아 소주가 이렇게도 달줄은 상상도 못했다. 크으~하고 술잔은 내려놓기 무섭게 재효가 아줌마 여기 계산이요 했다. 왜 나 아직 더 마실수 있쩌! 혀가 꼬일대로 꼬여버린 내.말을 듣더니. 재효가 아까보다 더 큰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꺼질것 같은 한숨이다.
포장마차를 나오니까 차가운 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든다. 으으 추워, 코가 빨개진 나를 보더니 재효는 자기 장갑을 벗어서 내 손에 끼워준다.
"하여튼 이태일,넌 참 구제불능인 새끼야,나 급한일 있어서 너 못 데려다 주는데 혼자 갈 수나 있냐?택시 불러줘?"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자 재효는 흐트러진 내 목도릴 정리해주더니. 조심히 가 그럼 하고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그런 재효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나도 발걸음을 옮긴다. 아까 우수수 쏟아지던 비는 언젠가부터 내리질 않는다.근데 왜...세상이 빙글빙글 돌지?비틀비틀 갈팡질팡. 내 맘대로 되질않는 다리로 힘겹게 집 앞까지 왔다. 우와! 드디어 다 왔다. 신나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내 앞길을 막아선다. 고갤들어 풀린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봤다. 음...키 되게 크네.
"술 마셨어요?"
"히히 쪼금""조금 아닌것 같은데"
아.
이 사람 누군데 자꾸 질문질이야. 나 집가서 자고싶다구. 후우...나 어지러워서 가뜩이나 힘든데. 으아...토 할것같다.어지러워 우욱. 토기가 올라왔다. 몸을 돌려 오늘 먹은 부침개를 쏟아냈다. 이젠 나도 몸을 가누는 게 한계다. 굿 나잇.태일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기요"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다. 어디선가 들어본 낯익은 목소린데, 누군지 기억이 안난다.눈을 살짝 떠보니까...여기 어디지?옆으로 돌아보니 옆집 남자가 컵을들고 서 있다. 여기...우리집 아니구나.옆집 남자네 집이구나....하하 내가 어제 술 진탕 먹구 또 한바탕 했구나. 으 머리 깨질듯이 아프다.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움켜쥐고 사태파악중인 나한테 꿀물을 내민다.감사합니다 하고 벌컥벌컥 마셨다.역시 술마신 담날엔 꿀물이지. 근데...
"헉!오늘 금요일 아니에요?!"
"토요일 이에요.몸은 좀 괜찮아요?어제 술 많이 마신 것 같던데""아...덕분에 괜찮아요. 죄송해요...제가 어제 너무 진상이였죠. 이거 어떡하지...참.."
정신 다 차리고 사태파악 하니까 옆집 남자한테 너무 신세를 많이 졌단 생각에 미안해졌다.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손만 꼼지락 대는 나한테 작지만 예쁜 미소를 보이더니,
"아뇨 귀여웠어요"
한다. 귀여...웠다니...이 사람 어디 아픈가?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어제 부침개 한 판 부친거까지 봤을텐데....아 그 이후로 기억이 안나네!머리 쥐어뜯는 나를 보던 남자는 뒤이어 말을 덧붙였다.
"난 표지훈이에요. 보려던 건 아니고...휴대폰 문득 봤는데 메세지 와 있어서 그 쪽 이름 알았어요. 이태일씨는 몇 살이에요?"
대뜸 내 나이를 묻는 이 사람...뭐지?또라이인가..
"아...오,올해로 스물여섯이요."
"아....전혀 안 그래 보여요.정말 스물 여섯?"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니까 그제서야 말없이 끄덕거린다. 아 맞다 문자...재효다. 이태일 잘들어갔냐. 하는 재효 문자에 응 형아 걱정했냐ㅋㅋ라고 답장을 날려주고 다시 옆집남자,아니 표지훈을 봤다.
"내 나이는 스물넷이에요. 음...형이라고 부를게요. 아 이런거 잘 못하는데 흐흫 형이 나한테 신세 졌으니까 나도 신세 좀 져도되요?"
"무슨...신세요?""내 애인인척 좀 해줘요"
미친!!!!!!내가 짐작하건대 옆집 남잔 정말 정신적으로 맛 간 사람이다. 나 여자 아니고 남자에요.했는데도 네.그러니까요 하는 저 사람은 대체 뭐...뭐지?갑자기 소름이 돋은 나는 주섬주섬 내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 그 집에서 달아나 후덜덜거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치고 내 집으로 돌아왔다. 하아 예사 또라이가 아니다 저 사람...이사가야 하나. 소파에 누워서 한숨을 고르는데 딩동 벨이 울린다. 옆집이다. 내가 나갈것 같냐.
"형...휴대폰 두고 갔어요."
그럼 그냥 문 앞에 두고 꺼져!!!
"...아 맞다..그리고 형이 어제 내 옷에 우웩했어요."
그 말을 들어버린 나는 어쩔수 없이 현관문을 열어야 했고, 애초에 휴대폰은 내 자켓 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표지훈은 승리의 미소인지 모를 웃음을 지었다.
"일주일만 부탁할게요. 음...작지만 보수도 드릴테니까 역겨워도 잘 부탁해요"
개미똥만한 목소리로 그래...요..하고 대답하자 표지훈이 되물었다. 뭐라구요? 열이 뻗쳐 알겠다구요!!!하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표지훈이 큭큭거리더니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말 놔요.했다. 그래 새끼야.
그 때부터였다. 표지훈이랑 일주일짜리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게.모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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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고 영향력이 크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