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무난한 삶을 살아온 남자였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만큼 무난하고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게 작은 키, 평범한 눈, 평범한 코, 평범한 입, 평범한 스타일, 평범한 몸집. 내게 조금이라도 덜 평범한 유일한 것은 변백현이라는 이름 석자 뿐이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살면서 내가 남자에게까지 대시를 받거나 할만큼 뛰어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였고 같은 거 달린 놈에게 어필하는 외모도 아니였다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들이 으레 그렇 듯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평범한 여자애와 평범한 연애를 하며 오늘도 역시 평범한 하루를 보낼 예정이였다.
“저기요!”
누가봐도 '아, 저 사람은 슈퍼를 가기위해 외출한 사람이구나.' 싶은 차림새를 하고 있는 나를 불러세운 건 어떤 훤칠한 청년이였다. 그 청년은 차림새가 굉장히 범상치않은 사람이였다. 몸에 딱붙는 아베크롬비 후드티에 통이 엄청 넓은 밀리터리 바지, 코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도 있을 법한 반질반질한 까만 구두, 동그란 무테안경, 초딩때 학교앞 문방구에서 3000원에 파는 걸 본적이 있는 것 같은 십자가 목걸이, 앞머리에는 뭔가 기름같은 것을 발랐는지 야무지게 한쪽으로 넘겨져 있었고 포인트로 파란색 해골 프린팅이 있는 하얀 비니를 뒤집어 쓴 모습은 마치 어린시절 내가 생각하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았다. 그냥 겉모습만 봐도 미친놈같았지만 청년을 더욱더 미친놈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양팔 가득 안고 있는 여섯마리의 족제비였다. 족제비를 든 청년과 나는 한참동안 서로 마주본 채 말이 없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말을 잃었고 족제비를 든 청년은 나에게 싱글벙글 웃어주느라 말을 잃었다. 서로 눈만 껌뻑이고 있다 마침내 족제비를 든 청년이 입을 열었다.
“페럿아, 저 분께 나대신 연락처 좀 물어주겠니?”
나는 과도한 충격으로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청년은 어디서 <창의적으로 번호따는 법>이라는 전문서적이라도 읽고 온 건지 생전 듣도보도 못한 충격적인 방법으로 내게서 번호를 갈취하려했다. 나는 청년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청년은 한발 물러서면 두발 다가오는 무서운 사람이였다. 침착하자... 침착해, 백현아.. 네 인생에는 넘어야 할 고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침착하자.. 나는 가까스로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기위해 머리를 굴렸다. 청년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고심끝에 최대한 착하고, 정중하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청년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호락호락한 또라이가 아니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또라이는 수줍은 얼굴로 내게 족제비 한마리를 안겨주었다. 얼떨결에 족제비를 떠안은 나는 다시 족제비를 돌려주려 했지만 수줍은 또라이는 이미 도망가고 난 뒤였다. 씨발 끝.
페럿을 든 남자=찬열이 찬열아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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