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는 평상시와 같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가끔씩 보이는 특별한 것들 때문에 가끔 심장이 덜컹거리기는 했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편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가방을 메고 이어폰을 꽂고 추운 날씨에 얼어버린 손을 녹이기 위해 핫팩을 손에 비비며 걷는 거리. 백현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일상이었다.
"어이쿠."
흥얼거리던 콧노래를 끝내지 못하고 깜짝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차도 한 가운데에 서있는 사람이 보였다. 이어폰 한 쪽을 빼며 그 사람을 바라봤다. 그 때 멀리서 달려오는 차가 백현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차도에 서있는 사람과 가까워질 찰나 눈을 질끔 감았다. 주위에서 들려와야 할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자 한 쪽 실눈을 떠 그 사람을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차들. 멀쩡한 사람. 아니,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이상한 그 남자. 백현은 저 남자도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남자에게서 눈을 떼려는 찰나, 남자의 눈과 백현이가 마주쳤다. 잠시 마주보던 백현이는 시선을 돌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너 나 보이죠?"
다시 음악을 들으려 이어폰을 꽂으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백현이가 뒤를 돌았다. 아까 차도에 있던 남자가 백현의 뒤에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건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자신보다 큰 키에 무표정한 얼굴. 핏기 하나 없는 피부 덕분인지 차갑다는 인상이 확 들었다. 그래서 알게모르게 백현은 속으로 이미 겁을 먹은 상태였다.
"너 나 보이는거잖아. 그쵸? 대답 좀 해 줄래요?"
"어?"
"신기하네. 내 목소리도 들리나봐."
정말 신기한 듯 웃으며 말을 거는 남자의 음성에 백현이는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 남자는 특별한 것이 맞는걸까. 이상한 사람인가? 혹시 인신매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백현이가 몸을 돌려 달릴 준비를 했다. 셋 세면 뛰는거다. 하나. 둘. 저기요. 아, 저런.
"네?"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이름 좀 알려주세요."
".. 변백현."
"백현? 변백현. 백현아, 저는 오세훈이에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제 소개를 하는 세훈을 보며 백현은 그저 멍하니 있었다. 지금 흘러가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릿속으로 정리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끔씩 보던 영혼들 중 하나가 이 사람도 포함이라는거지? 아니, 일단 사람은 아니지. 근데 나랑 대화가 통한다고? 어? 응? 뭐지? 세훈을 앞에 두고 혼자 인상을 찌푸리는 백현이었다. 그리고 그런 백현을 내려다보던 세훈은 짧게나마 귀엽다고 생각이 들었다.
세훈은 다시 사람이 되는 것에는 미련이 남아있질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상태가 편했다. 그래서 평상시와 같이 차와 사람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인도에 앉아 턱을 괴고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하고 달리는 차 위에서 누워있기도 했다. 세훈에게는 이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차도에 서서 자신을 통과해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세훈이의 시야를 뺏은 건 밝은 빛이었다. 처음보는 눈이 부셔서 쳐다보기도 힘든 강렬한 빛. 세훈은 자연스럽게 그 빛에 다가갔다. 마치 빛에 홀린 듯. 그 빛에 다다렀을때 세훈은 백현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백현아, 우리 잘 지내야 할 것 같아요.
*
일단 근처 공원으로 걸음을 옮겨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백현 혼자 앉았지만 일단 둘의 입장에선 나란히 앉았다. 세훈이의 한 마디에 백현이는 아직 완벽히 상황을 알지 못 했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세훈이의 한 마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작 말한 세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혼자만 괜히 신경쓰는 것 같아 억울한 감도 없지 않았다.
"예쁜 빛 따라 왔더니 예쁜 너가 있었어요."
"무슨 빛?"
"그냥 새하얗게 빛나는 빛. 지금도 너 주위에 빛이 나요."
세훈이의 말에 백현은 두리번거리며 몸을 확인했지만 백현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팔을 문지르면 빛이 보일까 싶어 팔을 비벼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왜 나만 못 보지?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세훈을 쳐다봤다. 축 늘어진 강아지마냥 저를 쳐다보는 백현을 보며 세훈도 숨기지 않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세훈의 웃음소리가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금새 앙칼진 표정으로 변했다. 그 모습도 귀여웠지만 더 이상 놀리면 정말 백현이 눈물을 보일 것 같아 표정을 숨겼다.
"내 눈엔 안 보이잖아."
"근데 내 눈에는 보이잖아요."
".. 응. 그렇지."
"그러니까 백현아, 나는 너를 따라 다녀야겠어요."
예쁜 빛이라 말 한 것도 모자라 따라 다니다니. 백현은 순식간에 어이없는 상황이 되어 눈을 크게 뜨고 세훈을 쳐다봤다. 누가 누굴 따라다닌다고? 여자 애들도 나 좋다고 따라다닌 적이 없는데 왜 남자인 너가. 아니, 일단은 넌 사람도 아니잖아. 손사레를 치며 온 몸으로 거부하는 백현을 보며 세훈은 왠지 기분이 점점 상해가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따라다니는게 싫을까. 가볍게 장난삼아 한 말이 백현의 반응으로 인해 세훈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기필코 오세훈은 변백현을 따라다니리라. 세훈이의 다짐이 가득한 표정을 보며 백현도 다짐한다. 기필코 영혼이 나를 따라다니지 못 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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