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굽히는 것도 너였고, 항상 미안하다 잘못을 비는 쪽도 너였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뭘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던 철없는 시절 널 만났으니까.
화이트 크리스마스 1
원채 기대나 희망을 잘 품지 않던 나였기에, 꿈꾸고 바래왔던 캠퍼스 생활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어서 졸업하자는 마음밖에는 없었다. 우리의 첫만남은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 그 날이었다. 너를 처음 본 나와, 나를 봤던 너. 그 둘 빼고 세상은 멈춰버렸다. 그래 너는, 입학하자 마자 나를 봐왔다고 했다. 내 작은 손으로 필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었다고, 내가 허둥지둥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보면 손을 이끌어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싶었다고, 그렇게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였다. 우리는 2년이 유통기한이었다. 처음에는 답지않게 너와 연락도 자주 주고 받았고, 하고 싶었던것, 보고 싶었던것, 그리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너에게 어울리는 옷을 보면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고, 나는 버릇같이 너를 피했다. 부담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을 잘 믿지않는 나이기에, 이번에도, 너였어도 결과는 같았다. 내가 피하자 너도 힘들어 했고, 그리고 다시 눈 내리던 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 날에 우린 다시 헤어졌다. 그 후로 1년간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너는 나를 잊었다. 지웠다.
너를 잃었다. 내 곁에 너는, 김종인 너는 이제 없다. 나 혼자라고, 이제 김종인과 나만의 세계가 무너졌다 생각하니 나 자신도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딱히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한 내 머리와는 달리, 여기, 내 왼쪽가슴, 심장이 쿡쿡 쑤셔오는게 아마 마음은 아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니었다.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니었다. 한동안 겉으로 괜찮은 척, 헤어진 것이 아프지 않은척, 내가 김종인과 그런 사이란 것을 알았던 몇몇의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척했다. 겉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속은 아니었다. 그래, 나는 너와 헤어지고 몇일을 자지 못했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부쩍 야위어만 가는 내 모습에 나도 내가 너무 미웠다. 내가 왜 너를 보냈는지 내가 왜 너를 잡지 않았는지. 자지 못한 몇일동안 곰곰히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너를 잡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너와 나는 지금보다 더 좋아졌을까. 내가 너한테 더 잘해줄수 있었을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나.
너없이 사는게 지옥같고, 죽을것 같았다. 하루하루 물 넘기는게 너무 싫었고, 사는게 너무 힘겨웠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아 아우성 치던 배에 수많은 알약들을 쑤셔넣었다. 약통 하나를 비웠더니 입에선 피가 나오고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널 보내고 사는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덜 아플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시끄럽게 울리는 벨을 자장가 삼아 마지막으로 잠드려 눈을 감았다. 다시는 떠질 것 같지 않았던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옆에는 내 친구, 민석이가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민석이는 허겁지겁 의사선생님을 부르기 바빴고, 나는 다시 한번 살아야한다는 고통을 깨닫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 이후로도 몇번씩 이 곳을 떠나려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민석이는 이런 나를 보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이러지말라고 몇번이고 울며 소리쳤다. 않그러겠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민석이에게 약속을 하고 나서야 민석이는 나를 놔줬다. 하지만 지금, 다시 한번 손에 상처를 안고 병원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민석이는 나를 실망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눈에 대답해줄 용기가 없어서 나는 상처 나지 않은 반대쪽 손목을 들어 눈을 가렸다. 이러는 나를 김종인은 알아줄까. 알았더라면 어떡했을까. 아직도 김종인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마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아팠다고. 나를 봐달라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