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 나는 그 애를 처음 본 순간부터 눈여겨봤을지도 모른다. 보통 또래처럼 친구들과 떠들고, 운동과 게임을 즐겨하는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선뜻 말을 걸기도 뭣했지만, 반장이라는 직책 덕분에 말을 섞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끔 그 이름을 입에 굴려 보기도, 굴리기만 했던 것을 내뱉어 보기도 했다. 전정국, 하며 부르면 그 아이는 무슨 용건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 눈빛에 바보처럼 얼버무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서 아마 그 아이의 기억 속에 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 그쯤으로 낙인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동시에, 그 애는 유학이라는 이유로 나와 멀어졌고, 차츰 잊혀졌다. 2 그 애가 떠난 계절이 네 번 정도 돌아올 즈음에 놀랍게도 그 애는 우리 반의 교탁 옆에 서 있었고, 우연인지 뭔지 나는 여전히 반장이었다. 전정국은 반을 둘러보는 듯이 창문과 붙어 있는 가장자리부터 훑기 시작했고, 복도와 가까운 쪽이었던 내 자리를 가장 마지막으로 스치듯 보았고, 그 순간 나의 시선과 그 아이의 시선이 얽매였던 것도 같다. 천천히 자신을 소개하는 전정국은 어린 시절, 알게 모르게 두근거렸던 마음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3 다음 교시가 체육인 것을 기억해 내고 급하게 체육복을 빌려서 갈아입고 돌아오니, 아이들은 이미 모두 나간 것 같았다. 곧 종이 칠 것 같아, 급하게 문을 잠그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앞을 쳐다보는 순간, 이쪽으로 걸어오는 전정국과 시선이 오갔다. 막 옷을 갈아입은 듯, 교복을 들고 오길래 방금 잠근 문이 생각나, 다시 열쇠를 쥐고 급하게 열려고 해 봤지만, 긴장한 탓인지 쉽지 않았다. 어느 새 내 옆으로 다가온 전정국은 "줘, 내가 할게." 하며 내 손에 들려 있던 열쇠를 가져갔다. 가져가며 잠시 닿은 부위가 화끈거렸다. 멍을 때리고 있으니 그 새 교복을 놓은 듯 안 나가냐며 물어오는 전정국에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ㅈ, 지금 나갈 거야." 하며 얼버무렸다. 전정국은 나를 보더니, 조용히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네."라고 희미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동안 멍을 때리다가 앞서 나가는 전정국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걸었다. 내심 나를 기억해 주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4 아침을 잘못 먹은 것인지 배가 아파, 점심을 먹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먹지 않겠다고 한 상태라서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반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희미하게 내 등을 찔러오는 손길에, "안 먹는다니까. 나 진짜 배 아파." 하며 더 깊숙하게 고개를 묻었지만, "왜 안 먹어." 하며 물어오는 상대의 목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전정국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며 몸을 벌떡 일으키자, 놀란 듯 전정국의 눈이 커졌다.(그 모습이 약간 토끼 같았다.) 나는 평정심을 되찾고, 너는 왜 안 먹냐고 했더니 지금 먹으러 가려던 참이라는 전정국에게 얼른 가라며 보챘고 전정국은 알겠다며 나갔지만, 오 분 뒤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들고 나에게 건네는 전정국에게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더니, "점심 거르지 마. 아파도 먹어. 먹고, 약도 먹어." 한 뒤 나가는 게 아닌가. 이 일을 계기로, 아니, 실은 훨씬 전부터 전정국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무더운 여름 그 무렵, 한 소녀의 수줍은 마음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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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행운이에요. 글은 처음인지라 아직 미숙한 경향이 다소 있을 거예요. 일단 반응 보고 연재를 할지 말지 결정할게요. 읽으셨다면, 댓글로 어떤지 의견 부탁드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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