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어부는 죽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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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동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어촌의 어부였고, 어머니는 바보같이 사랑에 휩쓸려 가난과 결혼한 도시 출신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외동이었던 내게 온갖 교육의 혜택을 안겨 주었고, 그런 점에서 나의 유년시절은 같잖게 유복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집의 부유한 외동아들.
그것이 아홉 살 오세훈의 타이틀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이웃에게 얻어온 <어린이 동화 전집>을 보며 자랐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름의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유난떨며 어울려 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진해서 그들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달디단 군것질거리를 입에 물고 동네를 누비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독 빠르게 철이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부모님의 소중한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아버지는 작업복을 입고 생선을 잡으러 가는 대신, 하나뿐인 정장을 차려입고 나의 입학식에 오셨다.
그만큼이나 나는 사랑받는 아이었다.
이웃 사이에서는 외동이면서도 부모를 위할 줄 아는 아이로, 학교에서는 예습 복습이 철저한 우등생 유망주로,
그리고 집안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따위의 온갖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소중한 외동아들로.
그렇게 나의 유년은 채워져가고 있었다.
그래 물론.
그 새끼가 우리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느긋하고 평범한 날들이 이어져 나를 자라게 하던 어느날,
정작 본인도 더럽게 가난하기 짝이 없으면서
부모조차 없는 고아원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한달에 5만원 씩 꾸준히 고아원에 갖다 바치던 어머니가 일을 내셨다.
붉게 상기된 볼을 한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와 동화책 대신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있던 내 앞에 '그 새끼'를 들이미셨다.
"세훈아, 인사해야지."
가늘게 떨리던 어머니의 고운 목소리는 기쁨에 젖어있었던 걸까.
아버지는 아직 바다에 계실 시간이었고, 저물어가는 태양은 어릿어릿하게 어머니의 등을 비추고 내 앞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 새로운 얼굴이 전혀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좋게? 좋게도 아니었지.
내 이복 형에 대한 첫 인상은 ' 여기에 왠 거렁뱅이가?' 정도가 다였다.
고아원 출신이라더니 답지않게 흰 피부를 한 나의 이복 형은 수줍은 손을 작게 흔들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 세훈아, 나는 박찬열이야."
아, 내 인생.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찡그려졌는지 하얀 볼살이 통통한 소년은 용기내어 올렸던 손을 내려 등 뒤로 감추었고,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착한 외동아들은 그 모습에 샘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찡그렸던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어주는 수 밖에.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나와 두살 터울의 박찬열은 꾸준히 내 눈앞의 걸림돌로 자리매김해 주었다.
아주 성실하게 나를 엿먹이면서.
박찬열은 내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아버지의 작업복을 항상 직접 빨아드렸고,
거의 매일 간격으로 찢어진 그물을 기웠다.
어느 가을날 내가 자진해서 고생을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
"이런 거 내가 다 할테니까 넌 공부하라는 거야."
하던 박찬열은 듬직한 형인척, 그렇게 웃음지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깨달았던 거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박찬열이 우리집에 끼어든 것이 내게 손해만 끼칠 일은 아니었다.
비린내 나는 작업복을 입고 새벽 3시부터 배에 올라 뱃멀미를 참으며 온갖 해산물을 끌어올리는 일.
유년의 풍족함에서 벗어나자 마자 내게 덮쳐올 삶의 무게와,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켜내야할 내 가족, 가정.
그런 류의 온갖 잡다한 걱정들을 나 대신 짊어지고 갈 대타 정도로 그를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 인생은 다시 꽃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박찬열이 한 말마따나, 나는 이제 이 집안에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박찬열이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동안 머릿 속에 한 자라도 더 많은 지식을 밀어넣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명문대에 입학하고,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벌벌기는 대기업에 입사하고,
그가 보란듯이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여 박찬열이 뒤집어 놓은 내 속처럼 그의 인생도 엎어놓는 것.
그것 뿐이었다. 내가 할 일은.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나는 박찬열이 넘보지 못할만큼 멋진 인생을 꾸려나가는 중이었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 이 초라한 어촌에서 대단한 인물이 되어 돌아오는 것.
그것은 내 꿈이 되었고, 내 희망이 되었다.
코피를 흘리는 일이 잦아지고, 졸음은 매일 나를 늘어지게 만들었다.
수능일만을 기다리며 피곤함을 참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 모든 노력들은 오직 박찬열이 없는 서울로 도망치기 위해서였는데,
그런데 단 한번도 하늘은 나를 도와주질 않았다.
아버지가 죽었다.
지긋지긋한 고기잡이를 하다가.
어머니가 아침부터 날씨가 많이 안 좋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어코 박찬열의 손을 잡고 나가더니
박찬열을 살리고 본인이 대신 죽었다.
숨이 끊어진 채로 보건소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맞은 편 침대에 기대듯 누워 링겔 주사를 맞으며 서럽게 울던 박찬열은 나와 어머니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 즈음, 내가 박찬열을 어떻게 했던가.
그날의 모든 기억이 또렷한데, 내가 박찬열에게 했던 짓은 생각이 나지 않고, 어머니가 내 뺨을 때리며 나를 저지했던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몇 가지 확실한 것들은, 나는 그 이후로 어머니의 도움없이 학자금 대출로 어렵게 서울 소재의 명문대학에 진학했고,
박찬열은 여전히 그 비린내나는 촌구석에서 아버지 없는 배에 매일같이 올랐으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따라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유서는 '형 찬열이가 있어, 엄마가 편히 눈 감는다. 세훈이 혼자였다면 얼마나 미안했을지.'
로 시작하는 몇 줄의 초라한 쪽지였다.
그로 인해 스무 살의 내가 도출해 낸 결론? 박찬열 때문에 나의 친 어머니가 이 생의 끈을 잘라버렸다는 것.
고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오열하고 있는 저 박찬열의 모든 것을 내가 끊어버리겠다는 것.
참 고맙게도, 박찬열은 내가 전역 후 복학을 할 떄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때에 맞추어 마침 내가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내게 자신의 예비 신부를 소개했다.
"세훈아, 형 결혼해."
"안녕하세요, 찬열 씨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멋진 동생분이시라고."
멋진 동생분은 무슨.
그녀가 간만에 재회한 두 형제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겠다며 던진 첫마디는
박찬열과 2년만에 다시 얼굴을 맞대고 있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언짢은 상태였던 내 기분을 배로 엿같이 만들어주었다.
나는 이기적인 동생이었고, 못된 심보를 가진 채 겉으로만 박찬열을 안쓰러워하던 위선자였으며,
곧 그녀를 무너뜨릴 장본인이었다.
그 다음 달 박찬열은 결혼식을 올렸고, 나는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내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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