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조각
01
하나의 조각, 그것은 하나의 인격
어젯밤,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남자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온종일 맑았던 어제는 달빛이 세상 가득 찬 날이었고 남자는 달빛 아래에서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가 팔을 뻗을 때면 마치 반짝이는 별빛을 뿌리는 것 같았고 그의 검은 머리가 찰랑거릴 때면 밤하늘이 함께 요동치는 것 같았다.
***
"누굴까, 그 남자."
"뭐, 달밤에 갑자기 나타나 춤추고 사라졌다던 그 남자?"
"응."
"오늘 밤에 또 만나면 되지. 꿈속에서.'
"아 진짜. 꿈 아니라니까."
"꿈이 아니면 어떤 미친놈이 달밤에 텅 빈 공원에서 춤을 추고 사라져. 너 그것도 직업병이다."
"하아.... 오빠도 봤었어야 해."
호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떴다.
난 여전히 턱을 괴고 어젯밤을 떠올렸다.
마치 계획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그 사람을 영영 못 만난다면 며칠 내로 끙끙 앓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 남자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책상 위에 쪽지를 남겨두고 어젯밤 그 공원을 다시 찾아왔다.
밤과 달리 낮에는 운동을 하거나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젯밤 앉았던 벤치에 앉고 싶었으나 이미 한 커플이 그 벤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커플들로 가득한 공원에서 내가 앉을 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분수대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3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오더니 분수대 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고개를 살짝 돌려 분수대 안을 보면 사람들이 던진 동전들이 물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분수대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냈다.
"Hey."
뒤돌아보는 아이 앞에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내가 내미는 동전을 받아든 아이는 쪼르르 분수대 앞으로 가 자기 키보다 높은 접시 모양의 분수 안으로 동전을 던졌다.
다행히 동전이 퐁당, 소리를 내며 접시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는 얼른 두 손을 모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볼이 발그레한 체로 소원을 비는 모습이 아기 천사 같았다.
"Merci."
소원을 다 빌었는지 조그마한 입술을 움직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보들보들할 것 같은 볼도 만져보고 싶지만 뒤쪽에서 뛰어오는 아기 엄마에 미소를 지으며 엄마 품으로 돌려보냈다.
공원을 빙빙 돌다 나무 아래 그늘진, 공원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푸른 나무는 그림자 마저 푸르게 느껴졌고 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은 싱그러웠다.
다리를 흔들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공원 입구로 그 남자가 지나갔다.
공원에서 가장 먼 거리였지만 분명히 어젯밤 그 남자였다.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머리카락 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서 그렇게 까만 머리칼을 가진 사람은 그 남자뿐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남자를 발견하고 바로 공원을 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행하게도 갑자기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모두 나보다 키가 큰 사람들 속에서 검은 머리통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
결국, 마주 오던 사람의 발에 걸려 균형을 잃었다.
앞으로 기우는 몸에 팔을 허우적거렸고 넘어질 것을 예상하고 눈을 찌푸리는 찰나 강하지만 부드럽게 내 어깨를 잡아 오는 힘에 사람들에게 깔리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Merci bien,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바닥에 닿을 뻔한 고개를 들어 올리는데 약 100m 앞 꽃집 옆 골목으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도와준 사람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감사 인사만 한 번 더 건넨 후 그 골목으로 따라 들어갔다.
"Hey, wait!"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또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도 남자는 잠시 골목 끝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모습을 감췄다.
다급함에 영어가 나왔고 목소리를 키워 불렀음에도 못 들은 건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뒷모습이 야속했다.
걸음의 속도를 높여 남자를 따라 방향을 꺾어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섰고 마침내 남자와 나의 거리는 다섯 걸음조차도 되지 않았다.
"Excusez-moi."
이번에도 남자는 내 부름에 반응하지 않았다.
혹시 귀가 들리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어젯밤 노래를 틀었던 것도 그렇고 과일가게 옆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오천 분의 일의 확률에 내기를 걸었다.
"저기요, 잠시만요."
세상에.
파리에서 꽂힌 남자를 다음 날에 다시 만나 말을 걸었을 때 그 남자가 한국 남자일 확률의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드디어 뒤를 돌아 내 눈을 마주 봐주는 이 남자가 또 어디론가 가 버리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 알아들어요?"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쁨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고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전 김여주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난 이름이 없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어....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보니 입 밖으로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그동안 남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자, 잠시만요."
"할 말 없으면 먼저 갈게요."
"어디 가는 길이에요?"
"..... 그건 말 하면 안 돼요."
"왜요."
"말하면 형들이 방해하니까...."
마지막 말을 뒤로하고 남자는 뒤돌아 가던 길을 따라 걸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에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나를 힐끔 쳐다보는 남자에게, 저는 방해 안 할게요. 손을 들어 제스처까지 취했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휙 돌렸고 나는 민망해진 손을 등 뒤로 내렸다.
어느새 골목을 나와 큰길을 따라 걷던 남자는 근방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높다고 해도 파리의 교외 지역이라 한국의 높은 건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가는 남자를 따라 올라가니 옥상까지 올라와 버렸다.
채소를 가꿔 놓은 작은 정원이 있는 옥상이었다.
남자는 여기서 뭘 하려는 건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어, 지금 뭐하려는 거에요?!"
남자를 따라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눈으로 남자를 찾는데 소리도 없이 옥상 끝에 올라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말았다.
남자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보면 몰라요? 누나는 참 바보 같아."
그가 공중으로 한 발을 내디디며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그가 몸을 트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 덕에 한 발이 공중에 떠 있던 남자는 한순간 몸이 붕 뜨며 뒤로 넘어졌다.
"아야...."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러게 위험하게 왜 그런 거예요."
"방해 안 한다고 했잖아."
"네?"
"누나도 거짓말쟁이야."
누나라는 단어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만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남자의 눈이 너무 슬퍼 보였다.
남자는 아예 바닥에 누웠고 그러자 눈을 찌르는 햇살에 팔로 눈을 가렸다.
왜 이 상황에 내가 당황스러워하는지 모르겠지만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고고, 엉덩이야. 이번엔 무슨 짓을 한 거야."
혼잣말을 하는 건지 흙이 묻은 엉덩이를 탁탁 털며 궁시렁거렸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까지 슬픔에 가득 차 있던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랑또랑하게 나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표정이 변하더니 조금은 위험하게 씨익 웃는다.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바짝 다가온 남자는 손으로 내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우리 이쁜이는 누구?"
이 남자를 만난 이후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개였다.
첫 번째는 '아,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는 각각 다른 세 명의 사람을 만난 거구나.'
***
음 뭐랄까 충동적으로 써 내려간 흔한 다중인격이에요. 거의 한 시간만에 쓴.... 네....
그래서 필명도 에라 모르겠다...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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