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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2013년 12월 30일










"OO아. 해야해. 너를 위해서 나를위해서 그이를 위해서 우리집을 위해서 해야하는일이야."




진짜 하늘이 무너질만큼 우울한 기분이 있다면, 진짜 애 떨어질만큼 놀랐다는 말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오늘 2013년 12월 30일 이곳에서 나를위해 만들어진 말일것이 틀림없다. 고등학교 3학년에 이제 막 올라가는 스무살의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이런저런,  아니 남들에게는 일어나지않을 일들을 겪었고 겪고있고 겪을것이다.  남들보다 일찍겪으나 남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 모순된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이런걸 어찌하겠는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해야한다, 그리고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 정략결혼.





"엄..엄마 있잖아요.. 저는 어 결혼은 조금.."

"OO아 너를 짧지만 짧은, 길다면 긴 시간동안 보살핀 사람으로써 부탁 아니 명령하는거다."





새엄마.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우리 친엄마는 왕비, 새엄마는 후궁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 아빠의 애정을 달래주시던 고마운 분이시고,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또 나를 6년이나 보살펴주신 분이시다. 아 물론 큰 목초지에 소를 풀어놓고 가끔 카트를 타고 와 살아있나 보고 지나치는 수준이었지만.

새엄마의 단호하고 또 단호한 태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나는 새엄마를 절대 못이길게 뻔하고 뻔하고 또 뻔한 일이지만 한번만 딱 한번만 더..





"그래도 이건 아닌것같아요. 전 성년이지만 아직 고등학생이고.. 배우고 싶은것도 많..."

"착각하지마."





새엄마의 말에 내 말이 끊겨버렸다. 쉣더뻑킹. 아까보다 더 차가워진 새엄마의 눈빛에 저절로 몸에 오한이 든다. 맨날 이런식이야. 엄마가 돌아가신지 일주일도 채 안돼서 폐인? 아니 짐승과도 같은 생활을 하는 날 저 멀리 오지로 보낸것도 모자라서 이젠 정략결혼이다. 나름 그래도 엄마없다고 주변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지 않도록 엄마의 자리를 표면적으로는 채워주시는 고마운 분이지만, 그래도 싫은건 싫은거다. 후궁? 첩? 아니 돈보고 아빠한테 몸굴려주는 더러운 천사. 그래 더러운 천사.





"너에게는 선택의 권리도, 기회도 없어. 엄마가 이정도로 하는걸 고맙게 여겨. 조금만 더 반항하면 그땐..."

"....."

"니네 엄마 따라가는거야? 알았지?"





살짝 눈웃음과 함께 마지막말을 한뒤 소름끼치는 손등으로 내얼굴을 한번 쓱 훑고는 우리 예쁜 딸, 하곤 다리를 반대쪽으로 꼰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테이블에 올라와져있던 서류봉투를 내쪽으로 쓱 밀고는 이번주 토요일이야, 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간다. 또각또각. 넘어질것같이 아슬아슬한 힐소리가 귀에 쿡쿡 들어온다.





"휴우..."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는 손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엄마 지금 엄마는 뭐하고 계실까. 자꾸만 나는 엄마생각에 눈물이 조금 차오르는 것 같다.


엄마 있잖아요. 엄마 나는 저사람처럼 돈보고 결혼하고, 돈보고 굴러다니는 창녀가 아닌걸요. 알잖아요. 태어난 이래 가장 외롭고 힘들때 아무도 없는 그 먼 곳에 가서도 꿋꿋이 버텨왔는데 왜 자꾸 나한테만 이런일이 일어나는걸까요.

미국에 있을때 방에서 드라마만 보던 날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본 한국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정략결혼을 해여하는 부잣집 여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을 사랑하는 가난한 남자주인공의 이야기. 그게 나한테 일어나고있다. 아 물론 나를 사랑해주는 가난한 남자주인공만 뺀다면. 얼굴을 묻고있던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서는 새엄마가 건내주신 서류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김 루 한 (Luhan)

1989.00.00(2013년 기준 25세, 만 24세)
스엠백화점 강남지점장
부: 스엠백화점회장 모: 화가
취미: 스쿼시, 오페라 감상
강남소지 명문고등학교 조기 졸업.
S대학교 경영학과 조기졸업 및 대학원 석사 취득.
미국 J대학교 최연소 경영학 전문 박사 취득.
스엠백화점 경영팀 6개월 인턴생활 후 강남지점장으로 승진.

 

 

 







루한이라는 사람의 인적사항과 함께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을 잠시 쳐다본 후에 내용을 읽었는데 헐이다 헐. 아니 조기몇마리를 처잡수셨길래 가는 학교마다 조기졸업이래. 대박. 그럼 지금 25살.. 이틀 후면, 내가 만날 이번주 토요일이면 26살. 25살만에 박사학위까지.. 잠시 이 사람의 스펙에 대해 감탄하다가 내가 결혼을 할 생각을 하니 또 다시 암담해졌다. 그래 일단 뭐라도 정리하자, 라는 생각에 백에 든 다이어리와 펜을 들고 다이어리의 맨 뒷장을 폈다.





"이천십삼년... 십이월 삼십일....."





날짜를 크게 쓰고 밑에 제목을 끄적였다. 내가 결혼하기 싫은 이유.





"첫번째..."





이 결혼은 정략결혼이다.
두번째. 결혼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내린 두가지 이유였다. 전자는 우선 당연한 얘기일지도. 누가 정략결혼을 반길까. 두번째. 결혼이 해피엔딩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





진짜 말도안되게 테이블에 정 가운데에 있던 다이어리가 밑으로 떨어졌다. 손도 안댔는데.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설마 뭐 마법이겠어, 하고는 다이어리를 주으려고 허리를 숙여 다이어리를 잡으려는데 누군가의 손, 아니 그냥 손 말고 매우 까만 손에 의해 다이어리가 주워졌다.





"아..? 감사합니다.."





다이어리를 내 테이블에 올려놓은 까만손의 주인은 키가 큰 남자였다. 얼굴은 잘 못봤지만 얼굴이 매우 까맸고 눈빛이 조금 무섭고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고맙다는 인사에 대꾸도 안하고 휙 뒤돌아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대는 쿨가이. 다시 다이어리의 맨 뒷장을 펼쳐보았다.





"어?"





명함. 아까까진 없던 명함이 생겼다. 명함을 들어 또박또박 한글자씩 읽어나갔다.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백지처럼 하얀 명함의 앞면에는 딱 저 두마디만 써져있다. 뭐 어쩌라는건지. 입술을 한번 축이고 뒷면을 보자 작게 영어와 번호가 써져있다.


EXit of Ordinaries.
Tel. 02*******


뭐야. 아까 그 남자가 넣고 갔나. 이상한 사람인것같다. 인상을 한번 쓰고 명함을 대충 주머니에 집어 넣은 뒤 다이어리를 가방에 넣고 일어나 카페를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부는 매서운 바람에 몸이 자동으로 웅크려졌다.





"으.."





자동으로 이빨을 부딪히며 몸을 떨자 자기도 추웠는지 가방에 든 핸드폰이 드드득 소리를 내며 울렸다.

 

[종대]



"여보세요.."
- 찌질아 어디야.
"OO호텔.."
- 아 근데 찌질이 너 목소리 왜그래!





종대의 경박스러운 비명과도같은 말과 동시에 주위에서 찌질이 왜 다쳤대? 취했대? 헐 다쳤나봐. 어쩐일로 하느님 부처님이 저 웬수 찌질이를 다치게 해주시다니!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저건 분명 뻔할 뻔자로 정수정과 김민석 목소리일꺼야. 물론 구희수도 같이있겠지. 재수없는놈들. 난 이렇게 우울한데.





- 야 니네 조용히해봐! 쫌! 야 찌질아 지금 어디갈껀데.





비명을 지르듯이 물어보는 김종대에 귀가 따가워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멀리 들었다. 다시 천천히 귀에 대고는 집갈꺼야, 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 찌질아 그럼 내가 너네집으로 갈께. 치맥 콜? 콜!





일방적으로 나에게 말을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종대때문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다. 먼 미국에서 생활할때 그저 지나가는 친구가 아니라 진짜 친구는 한명도 없었다. 타지생활을 오래하고 한국 고등학교에 들어왔을때 내게 처음 말걸어준 종대 그리고 수정이 민석이 희수. 다 웬수같지만 그냥 뭐 얘들을 보면 항상 웃음이나고, 또 에너지 같은 존재이다. 애들 생각에 잠시 웃음이 나왔지만 다시 결혼을 하면 학교를 못갈꺼고, 학교를 못가면 유일한 친구들도 못보고. 혹시나 만일에 만약에 절대 그럴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지만 그래도 임신이라도 하게 된다면 진짜 얘네와는 끝일거다. 다시한번 드는 결혼생각에 눈물이 핑 도는것같아 한번 코를 훌쩍이고는 칭칭 두른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집으로 터덜터덜 향했다.









딩동- 딩동-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 쇼파에 축 늘어져 잠에 들때 쯤 경쾌한 초인종 소리에 잠에 화들짝 깼다. 인터폰으로 통해 보이는 얼굴은 어제도 봤지만 반가운 김종대 얼굴이었다. 통화버튼을 꾹 누르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왠일이래 초인종을 누르고?"
- 문을 열어보거라 찌질씨
"비밀번호 치고 들어와 귀찮다"





귀찮다고 툭 던지고 통화종료버튼을 누르자마자 띠띠띠띠 번호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차피 저렇게 들어올거면서 초인종은 왜눌렀대. 다시 쇼파에 터덜터덜가 힘을 빼고 앉자 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찌질아 오빠왔다, 종대가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엥..? 다른애들은?"
"우리 찌질이 오늘따라 더 찌질해보여서 나만 왔지."
"무슨논리래. 치맥?"
"응 치맥."





종대를 밉지 않게 흘려보고 치킨이 들어있는 봉투를 들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컵 두개를 가져오는 종대는 내앞에 턱 하고 앉더니 맥주를 따르라는건지 거만하고 오만하고 또 거만하고 또 오만한 얼굴로 나에게 컵을 내민다. 종대를 한번 쓱 째려보고 내 컵에 맥주를 따랐다. 퐁퐁퐁퐁. 맥주가 따라지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올라온다. 나는 나는, 칭얼거리는 김종대에게 넌 미성년자잖아 만 17세 주제에. 라고 대답한뒤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헐? 너는 너는 왜마셔."
"나 결혼해."
"아니 근데 너는 왜마시냐고...뭐?"
"결혼한다고."





내 대답이 어지간히 놀랐는지 컵을 나에게 내민 그대로 종대가 굳어버렸다. 아니 진짜 거짓말 조금도 안보태고 순간 사진인줄 알만큼 굳더니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이 엄청 커졌다. 종대 잔에 맥주를 아주 조금. 그래 미성년자 보호차원으로 맛한번 볼만큼 따러준뒤 봉투에 아직 꺼내지 않은 치킨을 꺼내 고무줄을 풀렀다. 맥주를 따러줬는데도 종대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건지 내게 내민 컵을 그대로 들고있었다.





"아니...겨...결혼?"
"팔떨어지겠다. 오 반반이네? 양념다리 띱"
"아니 그게 뭐? 결혼한다고?"





조금 현실로 돌아온건지 손에 들고있던 잔을 식탁에 쾅 내리치자 적게 따랐던 보릿빛 액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야 너 얼굴에 맥주튀었어, 나의 말에 턱쪽을 쓱 훔치더니 한번 입술을 축이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거짓말 아니지."
"거짓말 하겠냐. 2월달에 해."
"아니 아니 왜? 아 아니지. 너 미성년자잖아."
"나 2년꿇었어 유학때문에."





뭐? 결혼이야기에 내가 숨겨왔던 나이 얘기에 적잖이.. 아니 아주많이 뒤통수를 한대 더 맞은둣한 표정으로 종대가 소리쳤다. 아니 이거 말도안돼. 혼자 중얼거리며 머리를 뜯던 종대의 쳐진 눈썹이 더 아래로 쳐진것만 같았다. 한숨을 쉬고는 치킨다리가 든 내 손을 덥썩 잡으며 말했다.





"왜 갑자기. 아니 남편은 누구야?"
"스엠백화점 강남지점장. 김루한인가?"
"정략결혼같은거야?"
"응. 팔려가는거야."





내 말에 종대는 내 손에 든 닭다리를 치킨상자에 올려놓고 다시한번 내 손을 꼭 잡으며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으면 좋을텐데. 또 괜스리 슬퍼져버렸네.





"팔려가는거아니야. 안할 방법은 없어?"
"응. 없어 하하.."
"싫다그래봤어? 학교 다닐꺼라 해봤어?"
"응 안된대."
"그럼..어... 어..."





할말을 잃었는지 말을 질질끌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종대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막 남자친구있다고! 헤어지기 싫다고! 결혼해도 그 남자친구랑 바람필꺼라고 해봤어?"





너한테 엄청난 아이디어가 떠오를거라고 잠시나 기대한 내가 바보다 진짜. 종대에게 그게 말이돼? 라고 입을 대빨 내밀고 말하자 종대는 진짜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힘내 우리 찌질이...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더니 묵묵히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치킨먹는소리도 안들리고 중간에 꿀꺽꿀꺽하는 맥주 넘어가는 소리만이 귀에 맴돌았다.





"내가 아무런 힘도 안되어서 미안해. 너네집처럼 아빠가 큰일 하시면 차라리 너랑 나랑 정략결혼이라도.."
"풉! 아 휴지휴지"
"으휴 더럽게... 아무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도와줄거 있으면 도와줄게."
"고마워"
"근데... 그럼 너 누나야..?"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보고 누나냐고 묻는 종대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왕 이렇게 된거 좋게좋게 결혼했으면 좋겠다. 치킨을 다 먹은 종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 갈게, 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현관으로 향했다. 왠지 이제 친구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한 느낌에 종대를 쪼르르따라가 현관앞에 섰다. 운동화를 다 신은 종대는 날 진짜 비에 젖은 강아지마냥 쳐다보았다.





"왜 너가더 슬퍼보여"
"일루와 찌질아. 으휴 내새끼"





안기라는 듯이 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린 종대에게 평소라면 욕하고 때리겠지만 왠지 진짜 얼마안남았다는 생각에 안기었다. 내 등을 토닥토닥 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는 종대.





"정수정 김민석 희수 너 나. 이렇게 약속했던거 기억나? 우리 서로 서로 결혼식에서 축가도 불러주기로 했잖아. 아직 준비도 안됐는데 왜 벌써가."
"...."
"난 이렇게 갑자기 내 친구 잃는 것도 싫어. 너 결혼하면 자주 못보겠지? 그래도 단톡방도 나가지말고. 또 어... 결혼하기전까지 신나게 놀자. 찌질이 혼자 울지말고."





누가보면 전쟁 참전하느라 평생 못보는 서방님같다. 괜히 오늘따라 진지한 종대에게 투정도 못부릴것같다. 토닥토닥 거리던 손을 푸르고 날 한번 쳐다본 종대는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들고 딸랑딸랑거리며 전화해, 하고는 사라진다. 한숨을 한번 쉬고 식탁에가 컵을 정리하자마자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쇼파에 있던 핸드폰을 주어들고 발신자를 확인하자 모르는번호.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루한입니다.
"......아.."
- 이번주 토요일 H호텔 카페에서 만나요. 들어가세요.
"저기요."





다짜고짜 자기이름과 약속장소를 말하고는 전화를 끊으려는 상대방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나빴다. 아니 많이. 이사람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고 목소리부터 싸가지가 없어보이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한다는 것도 짜증나고 그냥 결혼을 해야하는게 너무 짜증이났다. 전화를 끊으려는 이 사람에게 딱딱하게 저기요 라고 말하자 상대방에서는 말씀하세요. 라는 다소 사무적인 어투로 대답이 들려왔다.





"죄송한데요. 약속장소는 누가 정한거에요? 제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으시는거에요?"





나름 당돌하다면 당돌한 나의 말에 전화의 저편에서는 짧은 웃음소리서 들린다. 뭐야 띠꺼워.





"제가 결혼 억지로 하는 입장인데 배려라도 해주셔야 하는거 아니에요?"
- 야 OOO.
"ㄴ..네..?"
- 니만 팔려가는거 아니고 나도 팔려가는거야. 보니까 어른인것 같은데 생각 잘해. 누굴 위한건지.
"...."
- 이런말까지 안하려 했는데 너 나랑 5살차이나. 쪼끄만게 뭐 된다는 듯이 칭얼거리지좀마. 짜증나니까.





마지막말과 함께 뚝 하고 전화를 끊은 김루한이라는 사람. 이제 어이가 없다못해 짜증만난다. 그냥 한말가지고 왜 저렇게 예민해. 저런사람이랑 어떻게 결혼을 해서 80살까지 살까. 매일매일 지지고 볶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결혼하자마자 이혼할게 안봐도 비디오다 비디오. 으아아아아아. 머리를 한번 쥐어 뜯고는 방으로 축 처져서 걸어갔다.





"어..?"





명함. 아까 낮에 분명 주머니에 넣고 빼지도 않은 명함이 방 문턱 앞에 놓여져 있다. 떨어트렸나? 생각을 해보니 코트를 거실에 놓고 이쪽으로 가져오지고 않았는데.





"뭐..뭐야..?"





살짝 소름이 돋아 팔을 비비고는 명함을 주워들었다. 여전히 깨끗한 명함.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동시에 귀에는 환청처럼 종대의 말이 맴돈다.

'어 막 남자친구있다고! 헤어지기 싫다고! 결혼해도 그 남자친구랑 바람필꺼라고 해봤어?'





전화. 전화라도 해볼까. 이유없는 근거없는 이끌림에 뒷면에 적힌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꾹꾹 눌렀다.
서너번 이어지는 신호음 끝에 달칵하고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 엑소 서울본부입니다.
"..."
- 말씀하세요.
"아... 저.. 저기..."
- 어? 헐. 야 애들아 첫 손님인가봐!





조금 목소리가 높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더듬는 내 말에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첫 손님일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외치자 전화기 너머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믿을만한 업체인가..





- 혹시 아까 그 OO호텔..
"아? 네. 저 낮에 거기 있었..."
- 내일 오전 11시까지 서초구 반포동 OO빌딩 지하로 오세요.





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서초구 반포동 OO빌딩 지하. 명함 뒤에 작게 메모를 해놓고 침대에 파고들었다. 푹신푹신한 느낌에 낮에 있었던 절망적인 일이 지워질것만 같았다. 다시한번 머릿속에 하나 둘씩 떠올려보았다. 우선, 나는 결혼을 해야한다. 루한이라는 사람과 함께. 선해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매우 싸가지없었던 전화통화가 생각이 나자 앞이 암담해졌다. 아나 어떡해..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별님 달님. 한번만 도와주세요. 아멘.











여기다. 새벽에 떠지는 눈을 저주하며 씻고 아침밥을 대충 먹었다. 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하는 드라마 두편을 보니 조금 시간이 지났다 싶어 옷을 갈아입고 온 곳은 바로 이곳. 시멘트 색깔의 철제문에는 작게 EXit of Ordinaries. EXO. 하고 써져있다. 일반적인 일들로부터의 출구? 일상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그런 의미인가. 팻말을 잠깐 바라본뒤 한번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하는 소리와 동시에 안에서는 우당탕탕 소리가 한번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매우 하얗고 하얗고 쌍꺼풀이 또렷한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긴 남자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안녕하세요. 김준면 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쭈볏쭈볏 문앞에 서서 괜히 목덜미를 긁으며 서있자, 준면이라는 남자는 내 손목을 잡고 살짝 잡아당기자 몸이 훅 하고 실내로 들어와버렸다. 끼이익- 철제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지저분하고 창고같지만 나름 쇼파도, 테이블도 갖춘것 같다. 쇼파에는 2명의 남자가 품에 과자를 안고 먹고 있었고, 1명의 남자는 부산스럽게 주변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낯선 풍경에 조금 위축되는걸 보았는지 김준면은 웃으면서 나를 쇼파 앞으로 데려간다.

 

 

 

 

"어 우선. 어.... 어디서부터 말해야하지."

 

 

 

 

김준면의 매우 당황한듯한 표정을 보더니 과자를 먹던 한 남정네는 풉하고 웃으며, 형 첫손님인데 뭐 잘좀해봐. 라고 말한다. 준면은 그들에게 빙그레 웃어보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 일단. 저희는.. 남자친구를 대여해주는 그런..! 아 아니 남자친구 어 호스트같은건 아니구요.. 비슷하게 말하면 시라노 연애조작단 그런거라고 보시면 돼요!"

"아 네.."

"우선 저는.. 전략가에요. 이름은 아까 말했다 싶이 김준면이고요.. 리더고 또.. 보통 작전같은거 짜는 전략요원으로 보면 돼요."

"풉.. 아 죄송해요.."

 

 

 

 

전략요원이라는 말에 의도치 않은 웃음이 나왔다. 뭐 스파이 영화찍는것도 아니고, 이런 조직같은것도 처음보고. 자기도 조금 민망했는지 준면은 두어번 목을 가다듬더니 쇼파에 앉아 포카칩을 먹고있는 순한 인상의 남자를 가리켰다.

 

 

 

 

"쟤는 어.. 행동요원이에요. 남자친구의 역활을 해주는 사람이 딱 2명인데, 쟤가 그중 하나에요. 이름은 변백현이구요.."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아..아...아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려요! 백현이에요."

"아 네..."

 

 

 

 

짤막하게 눈인사를 하고 옆에 앉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테이블에 긴 다리를 올려놓고 검정색 컨버스를 신은 남자. 입에는 과자 한조각을 넣고 핸드폰 게임을 하는지 매우 심각하고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고있었다. 얼굴은 매우 까맣고, 진한 쌍꺼풀을 가진..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어?"

 

 

 

 

입밖으로 튀어나와버린 소리에 놀라 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준면은 나와 남자를 번갈아 보더니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어제 호텔에서 명함 다이어리에 끼워둔 애가 쟤에요.김종인이요."

"아 맞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

"쟤는 음.. 신입이여서 별로 하는건 없고. 그냥 잡다한일 도와주는 블랙요원같은거에요.. 아 정산은 종인이가 해요!"

 

 

블랙요원이라는말에 백현이 크고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얼굴이 까매서 블랙이에요 라며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 어색하게 따라 웃으니 백현은 주위를 한두번 돌아보고는 싸해진 분위기에 조용히 과자를 들었다. 본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백현이라는 사람은 매우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재미있는 사람인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내 기분이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이야. 김종인을 한번 쳐다보고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자리를 정리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한번 축이고는 살짝 웃고 입술을 떼었다.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아 저는.. 오세훈이고요. 그냥 뭐 백현이형이랑 같이 남자친구역활 담당이에요.."

 

 

삼백안이 매우 매력적이고 섹시하게 생긴것같다. 세훈이라는 남자가 내민 손을 잠깐 바라보다 나도 손을 내밀자 꼭 잡고는 살짝 흔들었다. 준면은 다시 내 손목을 잡고 지저분한 거실을 지나 한 방문 앞으로 이끌었다. 방문을 두어번 노크하자 안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크고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사람이, 아이같이 순수해보이는 사람이 나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준면을 한번 쳐다보더니 자기 소개를 해달라는 듯 고개를 한번 까딱했다.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어. 이 친구는 경수에요. 도경수. 저기 방 안에 컴퓨터 보이죠? 정보같은걸 수집하는 정보요원이에요. 경수야 준비는 다 됐고?"

"응"

 

 

 

준면의 말에 짧게 대답하고는 나에게 살짝 목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더니 종이 한묶음을 들고 나온다. 이 중에서 가장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인것 같다. 방을 살짝 훔쳐보니 온통 불은 다 꺼져있고 네 대의 컴퓨터 모니터만 빛을 내고 있다. 준면은 가요, 하고는 나를 데리고 다시 거실로 향했다. 도경수는 내 뒤로 졸졸 쫓아오는데 조금 귀여운것 같아. 쇼파에 털썩 앉는 경수를 쳐다보더니 준면은 웃으며 저쪽 쇼파에 앉으세요, 라고 말한 뒤 책꽂이에서 여러가지 책과 책상에 올려져있는 큰 박스를 들고왔다. 큰박스를 땅에 내려놓자 작게 먼지가 일었다.

먼지에 기침을 몇번 하고는 고개를 푹 숙여 바닥을 보았다. 내가 여기 왜왔는가. 희망이라면 마지막 희망인데 제발 내가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변백현, 박찬열은 언제와."

"올때 됐는데.."

"나왔어"

 

[EXO] 남자친구를 빌려드립니다. 01 | 인스티즈

 

 

 

준면과 백현은 몇번 말을 주고받자 이내 문이 열리고 양손에 과자봉지를 가득 든 또랑또랑한 남자가 들어왔다. 나를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아 손님이야? 안녕하세요. 전 찬열이에요. 라고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쟤는 행동장소에 가서 지시를 해주는.. 길잡이같은거에요. 지시요원이요."

 

 

 

찬열은 테이블 위에 큰 봉지 두개를 올려놓고는 자기도 쇼파에 쓰러지듯이 앉아 나를 쳐다보며 살짝웃었다. 살짝 웃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빨이 보이는건 기분탓일꺼야. 생각하며 준면을 쳐다보았다. 준면은 아까 경수에게 받은 서류를 뒤적이더니 음. 재미있겠다. 라고 혼잣말을 하며 내게 웃어보였다.

 

 

 

"OOO씨?"

"네. 네?"

"잘해봐요. 정략결혼 파토내기."

 

 

 

 

 

 

 

 

2013년 12월 30일 인생에서 두번째로 최악인 날.

2013년 12월 31일 20살의 마지막날 재미있는 일이 시작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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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대박이에여bbbb완전취격....탕탕탕.......ㅠㅠㅠ완전좋아여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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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진짜 대박bb신알신하고가여!!! 참 암호닉 받으세여??
받으시면 저 (뭉이)로 암호닉신청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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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풀
네네넿!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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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작가님 금손이세요..♥♥ 취향저격ㅠㅠㅠㅠㅠ 겁나재밋어요 신알신할게요!!!
암호닉 (우리종인이)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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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풀
헐 처음쓴건데.. 고마워여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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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 취향저격 짱맘에 들어요ㅠㅠㅠㅠ신알신하고 암호닉 신청하고 가여ㅠㅠㅠ담편도 기대할께요!암호닉 경수 아내로 신청!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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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풀
ㄴ네넿~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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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취향저격제대로네요ㅠㅠ 신알신할게요!! 암호닉 보조개로신청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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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풀
네!ㅠㅠㅠ감사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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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뭐야..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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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왜취향저격하세요?사람설레게!?작가님짱! 암호닉은 암호닉/암호 로 신청할께요!!!신알신๑^▽^๑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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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풀
엌ㅋㅋㅋㅋㅋㅋ깜짝놀랐자나여 재간둥이(부끄) 감사합니다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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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어어엌ㅋㅋㅋ!! 1화 부터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사랑해융♡
완전 취향저격ㅠ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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