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 사랑아 울지마
Lacrima (눈물)
"놔! 이거 놓으라고! 당장 놓으란 말이야!"
"백현이형 그만해. 이런다고 누나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제발 그만해. 응?"
"놓으라고! 이거 놔!"
참 오랜만이었다. 징어가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한 건. 매일같이 숙취와 과제에 쩔어있던 그녀였는데 오늘은 몸도 마음도 너무 가볍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다. 엄마가 상복을 입고 있는데, 더 이상 울 힘도 없는지 시선은 허공에 가 있고 몸은 축 쳐져있다. 그런 엄마를 언니가 붙잡고 있다. 남동생은 누군가를 말리고 있고. 누구지?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고 서럽게 울부짖는 남자를 바라보는데 징어의 손이 떨려왔다. 백현이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 남자였다.
"현아, 백현아 너 왜 이렇게 울고 있어? 응? 현아, 현아 나 좀 봐봐 응?"
늘 웃는 남자다. 징어가 아무리 떼를 쓰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늘 웃고 애교 부리면서 징어를 달래던 그다. 그런데 그가 너무 서럽게 운다.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너무 슬프게 운다. 그런 그의 모습에 놀라 징어는 그에게 다가갔다. 울지 말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으아아아아악! 이거 놓으라고! 징어야! 징어야!!!!"
"나 여기 있잖아 현아. 나 여깄어. 왜 그래, 왜 그러는데? 현아 나 좀 봐봐."
징어가 바로 앞에 있는데, 백현이 징어를 보지 못한다. 징어의 이름을 그렇게 애타게 부르면서 정작 그녀의 물음에는 어떠한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 답답한 징어는 그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맞추고 싶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백현아 나 여기……."
백현을 향해 손을 뻗던 징어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백현이 항상 못생겼다면서 놀리던 그 작은 손이 그의 얼굴을 잡지 못하고 그냥 통과해 버렸다.
"이게 무슨……. 나 지금 꿈꾸나?"
이상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아 온 정신을 잠에서 깨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아무리 집중해도, 아무리 기를 써도 잠에서 깨지 않는다. 아니, 꿈이 아닌 것 같다.
"설마……."
순간 찌릿하고 징어의 뇌리에 생각이 스쳤다.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탈진해있는 엄마, 그 옆에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는 언니, 젊은데 안타깝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 주위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듯 온몸을 뒤틀며 울부짖고 있는 백현이, 그런 그를 말리고 있는 동생과 친구들.
"아냐, 아닐거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녀는 조금씩 몸을 돌려 백현이 손을 뻣고 있는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정사진이었다. 그녀와 똑 닮은 여자, 아니 그녀 자신이 웃고 있는.
"말도 안 돼.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징어가 풀썩 주저 앉았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백현과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징어의 모습, 뒤에서 그녀를 쫓아오는 백현을 보기 위해 뒤를 보며 달리다 마주한 화물트럭의 헤드라이트, 그리고 길에 쓰러진 그녀를 향해 달려오던 백현의 참담한 표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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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어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울었다. 그 시간동안에도 백현은 울고 있었다.
"징어야, 징어야……. 나 여기 있잖아. 나 여기 있는데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나 같은 병신새끼가 살아있는데 왜 네가 죽어!!대체 왜!!!!"
징어는 겨우 힘을 내서 그에게 다가갔다. 만질 수 없다는 것도, 안아줄 수 없다는 것도, 심지어 그가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그녀를 살게하는 힘이었다. 그런 그가 그녀 때문에 피를 토하듯 운다. 그 때문에 징어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눈빛으로 반쯤 미친 사람처럼 계속 징어만 찾고 있는데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백현아……."
"징어야, 징어야!!!!!!!빨리 다시 와. 나 여기 있잖아. 나 여기 있잖아 이 바보야……."
팔을 벌려 그를 안으려 하는데 또 몸을 통과해버린다.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그를 꼭 안아주고 싶은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아니야, 백현아. 네 잘못 아니야. 다 내 탓이야. 그러니까 자기 나 좀 봐. 응?"
"내가……내가 잘못했어. 이제 손 못생겼다고 놀리지도 않고, 머리도 안 헝클어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지금보다 더 자주하고, 재밌는 데도 더 많이 데려가고, 너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도 더 많이 보고, 한강도 더 자주 가고, 너 좋아하는 김치찌개도 더 많이 끓여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나 버리고 가지마 징어야. 나 너 없으면 죽어. 나 정말 죽어……. 그러니까 제발……."
"백현아……백현아……."
백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징어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그의 잘못이 아니였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위해 징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었다. 입이 닳고 닳도록. 백현이 우는 만큼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장례식장에는 백현만 남아있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끌고 가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홀로 남은 그는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징어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하염없이.
"……너 나빠. 진짜 나빠. 늘 내 옆에 있을 거라면서. 그렇게 천년만년 살거라면서……."
"그만 울어 바보야. 눈만 팅팅 부어가지고 이게 뭐야. 잘생긴 얼굴 다 망가지잖아…."
"난 자신 없어, 징어야. 난 너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어."
"왜 자신이 없어. 나보다 더 잘난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멍청아."
"매일 네 목소리에 잠을 깨고, 네 웃는 모습 보면서 행복해하고, 너를 만나는 순간순간들로 삶을 살아온 난데, 너 없으면……너 없으면 나 어떡해? 너 없으면……나 누구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백현이 징어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의 모든 말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평소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온 진심을 담아서. 그런데 그의 마지막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가슴이 너무 아려와서.
백현이 터벅터벅 일어나 징어의 영정사진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사진을 한없이 바라보다 사진을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사랑해. 정말 너무많이 사랑해.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네가 이제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이렇게 미친놈처럼 울부짖을 만큼."
백현의 고백을 듣고 있는 징어의 가슴이 찢어졌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만큼 그녀도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를 저렇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다시 살리고 싶었다. 그녀에게 환하게 웃어주던 때로, 누구에게나 싹싹하게 다가가고 사랑받던 그의 모습을 돌려주고 싶었다. 만약 이렇게 징어가 백현을 떠나버리면 백현이 한없이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징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참 오랜만에, 아니 사실 처음으로 신께 간청했다.
"하느님, 알아요. 저 성당도 잘 안 나가고, 기도도 많이 안 한거. 그런데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제 기도 좀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단 하루만. 아니 단 몇 시간만이라도 제게 시간을 주세요. 제 인생을 행복으로 채워줬던 저 남자를 살릴 수 있게. 나의 죽음이 그의 탓이 아니라 온전히 내 탓임을 얘기할 수 있게. 한 번이라도 꽉 안아줄 수 있게, 그리고……나도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저에게 시간을 주세요."
"신 말고 나한테 빌어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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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징어는 뒤를 돌아봤다. 천사라 하기에는 어둡고, 악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환한 한 남자가 징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몇 시간은 너무 가혹하잖아."
"누…구…?"
"딱 일주일 줄게."
"…!…"
"대신 '오징어'라는 사람으로서의 일주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일주일이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계약의 결말이 그녀에게 비극으로 다가올 것임을.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백현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굳혔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남자이기에, 나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사랑을 주었던 그이기에 징어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시 시간을 얻어도 그의 연인으로서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 해야할 말도, 해야만 하는 말도 너무 많기에…. 참 많이 아플 것임을 알면서도 징어는 그에게 다가간다.
"그럼 이 일주일을 얻는 대가는요?"
"……일주일이 지나면 그가 갖고 있는 너에 대한 모든 기억이 리셋 될거야. 앞으로 환생을 해도 계속. 그렇지만 너는 새로운 삶을 이어가도 계속 그와 마주칠거야. 그와의 모든 추억을 간직한채로, 너를 절대 알아볼 수 없는 남자가 되버린 그를."
"……할게요.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요."
Lacrima (눈물)
| 꼭 읽으셔야 할 작가말! |
으악 중간에 한 번 날라가서 다시 썼어요ㅜㅜㅜㅜㅜㅜ 슬픈 글을 써보고 싶어서 이렇게 휘갈기고 갑니다. 라크리마는 라틴어로 눈물이라는 뜻이에요!
아직 첫회라 별로 눈물콧물 쏙 빼지는 않지만 다음편부터 손수건 준비하세요ㅋㅋㅋㅋㅋㅋ
많이많이 기대해주시고! 암호닉 받습니다~
사랑 많이 해주시고 독방 같은데에 많이많이 소문내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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