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e 1
Prod. Team T
* WISH *
날 사랑해요?
사랑, 사랑, 사랑. 더없이 헌신적이고 찬사 보내 마땅한 아이에 저는 암흑을 덧댔다.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만 그저 저를 멍하니 응시하는 꼴은 더더욱 예상한 바 없기에 괜스레 죄 없는 입술만을 씹었다. 결국 이 멍청한 질문의 답은 없었다. 대신에 그 창백한 얼굴이 촛불 앞 사라질 듯 흐릿히 일렁였다.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는 계집아이의 이상 속에나 존재할 수 있을 듯이, 그리 비현실적이고 참혹히도 아름답게. 저를 이 지옥경에 쳐박은 악마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해 대는 짓거리만을 본다면 악마가 틀림없건만.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눈빛 하나만으로 나는 천계를 넘나들지. 그 눈동자는 이깟 계집 하나는 거뜬히 삼킬 수 있을 듯이 깊고 검어, 이 끔찍한 악마를 감히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무엇을 듣기는 했냐는 둥 그가 눈을 내리깔았다. 길다란 손가락 사이 휘둘리는 나이프가 선명히 빛났다.
사랑이라.......
무감각한 표정은 잠시 덧씌운 가면이었다는 마냥 그가 갑작스럽게 손을 뻗어 제 어깨를 끌어당겼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몸뚱이가 부딪히며 믿기 어려운 열기를 불렀다.
글쎄.
그 이후에는 어떤 말도 존재하지 아니하지, 그것을 대체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말로 끼워 맞추어도 하등 조악한 솜씨로만 남을 뿐. 남는 것은 그저 독처럼 강렬한 키스 뿐이었다. 저를 지옥의 가장,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아름다운 파멸, 온 몸이 녹아내려도 마지막까지 황홀히 눈 감을 게였다.
잡아먹을 듯이 급하게 뒷목을 부여잡고 맞댄 입술에 힘 조절 따위는 없었다. 잘게 뜬 눈 사이로 비추어지는 인영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 초점 없이 시꺼먼 눈동자 속, 숨겨진 것이 사랑에 목이 마른 짐승인지, 그도 아니라면 원초적인 생존 욕구의 원천인지 판단이 불가해. 사랑과 증오라는 모순적인 감정을 가득 안은 신자는 그저 추풍 낙엽처럼 쓰러져 댔다. 양 팔에 가두어진 그대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느덧 식탁 위 눕혀진 몸에 마구잡이로 널브러진 식기들이 닿았다.
악마, 악마, 악마. 나를 구속하고 가두어 대는 증오해 마땅한 악마. 그 온기 없는 찬 얼굴이 격정적이게 저를 씹어 삼켰다. 입천장을 쓸고, 쓸고, 입 안의 여린 살을 휘저으며 깊게, 또 깊게. 야차처럼 살벌히도 잔혹히 빛나던 모냥새는 천천히 스러져 내린다. 나는 눈을 감았다. 사랑을 요하면서 정작 나를 사랑해 주지는 않아, 이처럼 역설적인 자가 또 어디 존재할까. 세상 가장 아름다운 악마라는 것부터가 그 모순에 도화선을 당기지만.
나를 사랑해 줘. 나를 사랑해 줘. 나를 사랑해 줘.
나를 미워하지 마. 나를 미워하지 마. 나를 미워하지 마.
그의 눈이. 손이. 입술이. 맞닿은 숨결 사이로 흘러드는 감정이. 말해, 말해, 말한다.
더운 숨이 섞일 때마다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설혹 나비 천 마리를 뱃속에 욱여넣어도 이 같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것들이 목구멍 바로 앞까지, 그리고 뱃속 깊은 곳까지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서로들이 왈츠를 춰 댔다.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후우 튀어나올 것만 같은 것들이—그 아찔한 감각이 이 악마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든다. 내가 직접 그의 손아귀에 쥐여 준 심장이, 그에게만 허용되는 면죄부가, 나를 막무가내로 납치해 온 이 사내를 증오할 수 없게 만든다.
아아....... 어지러이 뒤섞이는 감정에 머리가 혼미했다. 한대 뒤엉켜 난교하는 것들이 마구잡이로 들뜬 애정을 뱉는다.
당신이 내게 먹인 천 마리의 나비를 보아, 이래 놓고 나를 증오한다 말하지 말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의 머리카락이 매끄럽다. 어느 구석 하나 인간적인 면이 없다. 무자비하게 능력을 남용하던 악마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양을 한 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퍼부었다. 악마. 악마. 악마. 증오해 마땅찮은 악마. 제 손가락의 붉은 실을 무차별적으로 풀어내고 그의 것을 동여매는 꼴이란 아무리 봐도 저를 위함이 아닌데. 맞닿은 시선 사이,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탐욕스러운 눈빛이 저를 진창 안으로 들이밀었다.
헌들 두렵기는커녕 모순적이게도 황홀했다.
…사랑해요.
내 모든 것을 무너트린 자를 경멸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그가 무슨 이유로든 나를 갈구하고 있음에....... 전율했다.
* WANT *
하얗고 여린 것은 잘게 팔락인다. 화염 속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독침이 다가와, 붉은 점들로 수놓인 아름다운 두 날개 사이를 꿰뚫는다.
느릿한 침투는 등허리에서 시작되어 온몸을 점철하는 고통이 된다.
천연한 날개가 색을 잃고 굳어가는 찰나, 그 가녀린 몸뚱아리에 키스하는 독을 가득 머금은 입술이 있었다.
소생, 그것은 소생이었다.
수 백 번을 독침에 꿰뚫려 박제되더라도, 나는 영원히 죽고 또다시 너에 의해 살아나 네 곁에 머물겠다.
너는 그저 그 차가운 숨결로 나를 가두어 죽여라. 네가 내뿜은 독은 온 몸에 퍼져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피가 될 것이니.
이태용, 나의 하데스. 얼음처럼 파랗게 타오르는 시선을 증오해.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집착과, 벌레처럼 피부에 달라붙어 나를 갉아먹는 그 애정을 혐오해. 그리고 그 이상으로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나는, 고통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마조히스트인가 보다.
"하나하나 박제를 떠놓고 싶어. 널 살리는 것도, 망치는 것도 나뿐이야."
망쳐지는 것은 내가 아니다.
"사랑? 그래, 사랑하지."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안아 줘, 오늘까지만."
너를 미워하지만,
"사랑해. 나에게서 멀어지지 마. 네가 떠나면 반드시 찾아내서 널 죽여버릴 거야."
내 뇌는 녹아버린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네게로.
"그러니까, 그냥 같이 죽어버리자."
아아, 나는 박제된 나비가 아니라, 시퍼런 불꽃에 몸을 던지는 불나방이다.
* DESIRE *
눈을 감아보거라, 무엇이 보이느냐
깜깜한 어둠이 보입니다.
눈을 떠보거라, 무엇이 보이느냐
마찬가지로... 어둠이 보입니다.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어둠속 환희(幻戲)
너는,
적어도 너는 그에게 그런 존재로다.
칠흙같은 암흑 속에서 소녀는 그 자체로도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는 만족스러운 듯 사악하리만치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왕관을 쓰려는 소녀, 그 무게를 견뎌내라.
* CRAVE *
월요일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길 빌어. 이기적인 거 알아. 근데 정말 나쁜 사람이야, 이건 분명한 사실이잖아?
화요일엔 모순이지만 네가 행복하길 빌어. 물론 내 곁에서 행복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단 걸 알기에 멀리서라도 지켜보며 빌게.
수요일엔 네가 날 지우지 않길 빌어. 날 지워버리는 네가 너무 밉지만 너무 사랑하기에 미워하는 마음도 애틋하기만 해.
목요일엔 돌아오길 빌어, 네가. 나보다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없을걸.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바로 달려와 안겨줘. 모르는 척 안아줄게.
금요일엔 너에게 나밖에 없다고 확신해. 그러니까 날 사랑한 거 아냐?
토요일엔 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는 해. 근데 억누른다고 뛰는 심장이 멈추진 않더라.
일요일엔 하염없이 울기만 해. 이 사실을 네가 알길 바라면서도 몰랐으면 해.
이 정도로 널 사랑하는데 안 돌아올 거잖아, 너.
아니야?
돌아올 거라고?
사랑한다고?
또 사탕 발린 말, 달콤한 말, 사랑한단 말.
알면서도 넘어갈 내가 싫다, 참.
근데 사실... 너만 아니라 나도 운명을 거슬렀어.
* OBSESS *
자애로운 에로스의 눈부신 섬광을 머금은 채 환희와 축복의 구름 속 편히 웃음을 지어보이던
아, 나의 어린 소녀여.
기어코 너의 작은 날개를 꺾어버릴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너에게 하늘을 선사한 내 두 손으로 직접 눈을 앗아갈 듯 제 자신을 혹사하며 빛내던 희고 부드러운 너의 날개를 직접 비틀어 떼어내고 말테야.
천계 가장 높은 곳에 떠올라있던 넌,
욕망과 아둔함으로 가득한 자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의 현실과 마주하게 되겠지.
내가 너의 운명을 뒤틀어놓을 장난을 쳤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
네게 사랑하라 주어진 사람,
그리고 사랑이 불가하다 하더라도 네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
네 앞에 놓인 천운과 금단 그 사이에서,
네가 직접 돌린 운명의 시곗바늘은 어느 쪽을 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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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慾
욕망하고 탐하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