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그만 좀 먹여. "
" 왜. 얘 누구야. 존나 귀여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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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따라 주는 거니까 다 마셔야 해. 약간 들뜬 듯 다정한 지호의 말에 박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풀린 눈으로 해롱해롱 아픈 머리를 짚는 박경. 이제 술이 목구멍에 넘어가지도 않는 지경에 일렀지만 차마 지호가 권해 거절할 수 없었다. 초면에 술을 거부했다간 무슨 흉을 들을 줄 몰라. 결국, 가득 따른 술을 홀딱 마시는 박경. 이 쓰기만한 술을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모르겠다. 아 씨, 머리 아파. 휘청휘청하다가 테이블에 결국 얼굴을 박는 박경에 지호는 자지러질 듯이 웃어 젖힌다. 야, 야. 김유권. 얘 좀 봐. 그런 지호와 박경을 번갈아 보던 유권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쯧, 채보이고는 근처 슈퍼 좀 갔다 오겠다며 나갈 채비를 한다. 엉, 빨리 갔다 와. 빨리 갔다 오라는 지호의 당부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유권. 집주인 유권이 나가고 가만히 테이블에 얼굴을 박은 채 쓰러진 박경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깨우는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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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야. 일어나 봐. 응? "
" ……. "
" 이 정도 먹고 뻗는 게 어딨어. 빨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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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일어날 기미를 안 보이는 박경에 지호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게 하자. 으, 라는 작은 신음을 내며 힘겹게 중심을 잡는 박경. 와, 자세히 보니까 색기있게 생겼네. 존나 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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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름 뭐야? 이름. "
" … 야 이, 씨발…, 씨발 새, 끼야! "
" 어? 너 욕 했냐. "
" 나 술 싫어. 아 진짜! 아으. 술, 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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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취하면 욕하는 버릇이 있나…. 나름 욕하는 것도 귀엽다고 느낀 지호였다. 잔뜩 취기에 오른 얼굴을 삿대질을 해대며 욕을 하는 박경을 보며 괜히 웃음을 터져 나오려는 걸 힘겹게 참고는 박경 앞에 놓인 술잔에 또 술을 가득 따라주고는 박경에게 내미는 지호. 마셔, 지호의 말에 박경은 싫다며 고개를 빠르게 저어 보이고는 너나 마셔 십숑샹숑아, 라며 웬 해석할 수도 없는 외계어를 써댄다. 욕하는 것도 애 같네. 김유권은 이런 귀여운 애를 나한테 소개도 안 해주고 지금까지 왜 숨기고 다닌 거야…. 박경이 거절한 술을 자신이 홀딱 마시고는 풀린 눈을 느릿느릿하게 비비는 박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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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아, 존나 귀여워. 진짜. 야, 너 이름 뭐냐니깐? "
" 궁금해?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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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귀여워 쥬금. 얘랑 술 자주 먹어야겠다. 자세를 편하게 고쳐잡고는 박경의 양 볼을 덥석 잡는 지호. 나름 헤롱한 정신을 부여잡으려는 듯 눈을 몇 번 찡그렸다가 푸는 것을 반복한다. 약간 달아오른 볼도 뜨뜻했다. 야. 내가 너 키스할 건데 받아줄 거야? 지호의 물음에 말없이 눈을 끔뻑거리는 박경. 뭐? 키스? 안 할래. 술 냄새가 알싸하게 풍겼다. 이 상황에 벗어나려는 듯 몸을 뒤로 빼는 박경에 별 행동 없이 박경의 볼을 잡은 손을 내리는 지호. 예쁘니까 아껴 먹어야지. 갑작스럽게 잡은 손을 내리는 지호의 행동에 몸을 계속 뒤로 빼다가 결국 중심을 못 잡고 꼴사납게 나자빠지는 박경. 쿵, 이라는 소리가 크게 울리자 지호가 기다렸다 듯이 웃음을 크게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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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정신 좀 챙겨 봐. 미치겠네. "
" 세상이 돈다. 돌아…. 으. "
" 이름 뭐야? 나 계속 물어봤는데. "
" … 경. 경, 오이. 박경. "
" 박경? 이름 예쁘네. 야, 경아. 섹스, 해봐. 섹스. "
" 섹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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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취기 도는 예쁜 입에서 '섹스'라는 단어가 나오니 더 꼴린다. 응, 섹스라고 해 봐. 삐죽삐죽 새어나오는 웃음과 함께 다시 한 번 말하자 박경은 킁, 코를 한 번 짧게 들이키다가 이내 섹스으, 라며 말끝을 흐린다. 와, 이거 녹음해야 되는 거 아니야? 지호는 졸린 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박경의 어깨를 잡곤 마구 흔들어 보인다. 자지 마, 병신아. 간당간당 끊어지려는 정신을 힘겹게 부여잡으며 박경은 으응, 라는 작은 신음을 내며 안주를 하나 집어 입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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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라, 라고 해봐. 펠라. "
" 질…, 겨. 싫어, 싫어. 으. "
" 빨리. 펠라, 라고 해봐. 안 하면 너. "
" 안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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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펠라 시킨다? 지호의 진심 담긴 말에 박경은 질긴 안주를 한참을 씹어댔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돌아. 어질어질 앞에 있는 성격 더러운 변태가 두 명으로 보인다. 윽, 토할 것 같아…. 박경의 어깨를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끙끙대는 박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지호. 아파? 지호의 장난기 서린 물음에 빠르게 고개를 저어 보이다가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만다. 그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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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 씨발! 김유권 얘 토해! 맞다…. 김유권 나갔지. 아, 왓더."
"욱,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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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잔뜩 구기며 지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자신의 옷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형껀데 묻었다간, 끔찍한 생각에 짧게 몸서리를 치며 어느새 정신을 잃고 쓰러진 박경을 보며 쯧쯧, 혀를 크게 찼다. 저걸 혼자 어떻게 치우라는 거야…. 원망스러운 눈길로 보다 발로 박경의 뒤통수를 약하게 툭, 치는 지호. 너 기절 한 거야? 자는 거야? 지호의 낮은 목소리가 정신을 잃은 박경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고 느낀 지호는 씨발, 짧게 욕을 내뱉고는 아까 마시다 만 유권의 술잔에 담긴 술을 탈탈 털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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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일어날 때 보자. 애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