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시선_2014년 8월 7일
온 몸이 욱신욱신 쑤신다.
손 끝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몸에 기운이 없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맴도는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하겠다.
지금 무슨 상황이고 내가 누워있는 여긴 어디지?
이건 또 무슨 냄새야?
어? 알콜 냄새? 아니, 소독약 냄샌가?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건 또 뭐야.
뭐지…? 뭐야, 여기 지금.. 병원이야??
무거운 눈커풀을 차츰 들어 올려본다. 오랜만에 동공에 맞닿는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플지경이다. 나를 다급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멤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으응… 으...…"
"어? ㅈ...환아! 재환아…? 정신들어?? 재환아!"
"형!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자자, 지금 켄 형 정신 없을거야. 다들 조금만 진정해."
"엔형! 일단 어머니 아버지 모셔 올게요!"
학연이 형과 원식이가 다급하게 달려와서 나의 상태를 물었고, 혁이와 택운이 형은 엄마랑 아버지를 불러 오겠다며 급히 뛰쳐 나갔다.
그 와중에 이홍빈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침착한거야. 아니 그나저나, 난 왜 여기에 있는거지?
도대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난 뭘 하다 이렇게 다친 것이며, 얼마나 다친 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리엔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고 팔, 다리에 온통 상처를 치료한 흔적이 보이는 걸 봐서는 꽤 다친 것 같은데.
"여기 병원..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나 다쳤어..? 어쩌다가 다친거야? 아, 그리고.. 정신 제대로 잘 들고 다들 알아보겠으니까 얼굴 좀 치워.. 부담스러워 죽겠어."
"아흑 재환아.. 나 너 다신 못 보는 줄 알았어.. 흐윽"
학연이 형이 고개를 푹 숙이며 내 배로 파고 들며 운다.
"아 형, 형!! 나 아직 아파."
"어구, 미안 미안.. 많이 아파?"
그 와중에 원식이는 병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 옆에 가서 훌쩍거리며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귀여운 자식.
"심하진 않으니깐 걱정마. 아니 근데, 나 기억이 하나도 안나서 그러는데 어떻게 된 거냐구. 나 무슨 사고 난 건데?"
"어 일단.. 올림픽 대로에서 너가 차를 빨리 몰다가 빗길에서 미끄러졌는데 네 차가 전복됐대. 근데 그 상태로 가드레일에 운전석 쪽이 세게 부딫혀서 너가 많이 다치게 된거고. 아, 홍빈아 거기 호출 버튼 좀 눌러라. 의사선생님이 재환이 상태 보셔야 되니깐."
"호출 버튼.. 아 이거다."
"고속도로…? 내가 운전한 거라고? 내가 거기에 왜 갔지? 나 얼만큼 다친 거야?"
"다친 건 이따 의사선생님 오시면 여쭤보고, 사고 상황이나 잘 기억해봐. 어디 가고 있었던 건지. 잘 타지도 않는 차 끌고 너가 그 쪽에 갈 일이 없었을텐데 이상하잖아."
"나 진짜 이상하게, 그 날 기억이 거의 안나. 사고났던 상황도 전혀. 그 날 아침에 연습실 갈 준비하고 집에서 나온 거 뒤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어. 내가 거기에 왜 갔지?"
"진짜 기억이 아예 안나? 어 이상하다…"
"아 그건 그렇고.. 그럼 우리 팬미팅, 나 그 때까지 회복 못하면 어떡해..?"
"너 빼고 해야지 뭐.. 걱정하지마."
"형이 아쉬울 거라는 점 말고는 큰 문제 없으니까, 걱정은 하지말고 얼른 낫기나 해. 형 파트는 녹음한 거 틀면 되고, 안무 동선만 조금씩 수정하면 되니깐 신경쓰지 마."
"내가 괜히 사고가 나가지고.. 제대로 민폐네. 미안해 다들.. 나 사고난 거 기사로 어떻게 나갔어?"
"뭐 있는 그대로 나갔지.. 별빛들 너 걱정하느라 아마 일상생활 불가능일거다. 그럴만도 한게 갈비뼈 다쳤다지, 타박상도 심각하다지, 게다가 너 지금 3일만에 깨어난거야."
"뭐? 3일?? 잠깐만.. 오늘 며칠인데??"
"8월 7일"
"헐.. 말도 안돼. 하.. 엄청 걱정했겠다. 어떡하지..."
"너가 지금 팬들 걱정할 입장이냐 네 몸이나 잘 챙겨. 그런데.. 진짜 이번에 장난 아니긴 했어. 거기 옆에 노트북 보이지? 그걸로 이따가 시간 날 때 꼭 공카 들어가서 글 하나 남겨. 걱정하지 말라구, 알았지? "
"오케이 알았어요."
그 때 의사선생님이 간호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이재환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나요?"
"온 몸이 좀 뻐근한 것 빼고는 괜찮은데, 저 얼마나 다친거예요?
"좀 많이 다치셨죠. 갈비뼈에 골절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타박상이 심하셨습니다. 뇌에도 무리가 간 듯 한데 외상은 없으니 향후 10시간 내에 구토나 어지럼증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 근데요 저.. 좀 이상한 게, 사고 당일 기억이 안나는데 괜찮은 건가요? 이게 머리 다친 증상 아니예요?"
"기억이 아예 나질 않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옷 입고, 집을 나서는 것까지는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 뒤로는 아예 기억이 없어요. 제가 왜 차로 사고난 곳까지 갔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나요."
"허, 이것 참... 아무래도 일종의 기억상실 증세로 의심되는데, 일단 환자분의 신체가 안정이 되면 검사를 한 번 해봅시다."
*
#학연의 시선
"검사 결과 나왔나요…?"
"이재환 환자, 기억상실이 맞네요. 정확한 병명은 역행성 부분 기억상실증입니다."
"네?? 역행성 부분 기억상실증이요? 그게 뭐예요..?"
"쉽게 말해서 사고 당하기 전의 기억의 일정한 부분을 잊어 버리게 되는 겁니다. 핸드폰 사진첩에서 사진 몇 장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면 쉽죠. 환자가 주위 가까운 지인들은 다 기억하는 걸 보면, 잃어버린 그 기억은 이재환 환자의 삶에 꽤 큰 영향을 끼쳤던 기억일 지, 그게 행복했던 기억일 지, 아님 스트레스를 주었던 기억일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 그럼, 재환이한테 많이 위험한 아니죠? 그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는 건가요?"
"이 역행성 부분 기억 상실증이 아주 드문 케이스라 확답을 드리긴 어렵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환자의 정신적인 부분, 혹은 뇌에 직접적으로 큰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재환 환자는 신체적으로도 회복이 다 되지도 않은 상태이고, 뇌에 손상을 입은 것도 절대안정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소 6개월은 무리가 될 수 있는 활동을 자제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최소화 해야 하는 게 관건입니다."
"아, 네… 그럼.. 가수 활동도 잠시 쉬는 게 맞는 거겠죠?"
"아무래도 그 편이 환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기적으로 검진 받으면서 추후 상태를 살펴보면, 안정을 취해야 할 기간이 6개월보다 더 앞당겨 질 수도 있으니 꾸준히 관리를 잘 해야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재환이가 기억상실이다. 빅스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건지.. 억지로 기억을 되찾으려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재환이의 건강에 영향이 가지는 않을 거라는 게 너무 다행이다.
물론 내가 재환이의 사고 여부에 관여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혹시라도 이번 사고를 통해 재환이가 더 크게 다쳤거나 혹은 잘못됐기라도 했다면 난 빅스고 뭐고 아무것도 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더라는 자리에 있는 만큼 매사에 냉정하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가족과도 같은, 아니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가족같은 내 동생 재환이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
(Return)
"재환아, 나 왔어."
"결과 듣고 왔어요? 의사선생님 뭐라셔? 나 기억상실 맞대요?"
"응 맞대. 정확히는 역행성 부분 기억상실증이라는 거래. 쉽게 말하면, 뇌를 다치면서 일부의 기억을 잃게 되는 건데, 휴대폰 갤러리에서 랜덤으로 사진 몇 장 날아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어.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애."
"내가 기억상실증이라고? 그럼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된대? 치료같은 거 받아야 돼?"
"치료는 딱히 필요없고, 당분간 빅스 활동은 잠깐 쉬면서 안정 취하고 중간중간 검진 잘 받으면 된대. 다행히 잘 관리하면 몸 회복은 빨리 될 수 있다더라. 근데 너.. 멤버들도 다 기억하고, 별빛도 기억하고.. 가족, 우리 노래, 춤, 회사 분들, 네 친구들, 우리가 미리 짜놨던 플랜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는데 대체 뭘 잊은 거야? 왜 사고 당일만 기억이 없는 걸까?"
"글쎄요.. 그걸 내가 기억하면 기억상실증이 아니겠지.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도저히 기억이 안나. 그 날 일만 기억하면 찾을 수 있을텐데.."
"억지로 기억해내려 하지마! 그거 너한테 되게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대."
"아 진짜? 왜?"
"머리에 무리가 갈 수 있나봐 조심해. 그.. 있잖아 재환아, 너가 왠만한 건 다 기억하고 있어서 내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너 혹시.. 여자친구가 있었던 건 아닐까?"
"여자친구? 에이 무슨 여자친구야~ 내가 만약에 여자친구가 있었으면은 당연히 형한테 제일 먼저 말했지. 그리고 우리가 활동하면서 여자친구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사방이 보는 눈이고, 게다가 가족이랑 친구 만날 시간도 없는데."
"그렇지? 그건 아니겠지…? 근데, 진짜 만약에, 너가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나한테 과연 말을 했을까?"
"아 당연하지!"
이상하다. 그리고 두렵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봐도 나한테 중요할만 한 것들은 다 기억나는데.. 대체 난 무엇을 잊은 걸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내 기억속에 잘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걱정이 될 뿐이다.
대체 잃어버린 기억이 뭘까.
진짜 엔형 말대로 여자친구라도 있었던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