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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 : 해와 달 中
;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해가 뜰것이니.
겨울이 자취를 감춘 것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건만 이미 공기는 시원한 봄바람을 잔뜩 머금고 있다 거대한 땅의 북쪽 산악지대 바로 밑에 위치한 이곳에서 1년 중 가장 긴 계절이 바로 봄과 여름이다 가을과 겨울은 거의 이름만 있을뿐이지 거의 잠깐 스쳐지나간다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그 중 가을이 그 존재감을 겨우 유지하는 그런 곳. 그런 기후탓에 백성들은 여름엔 배불리 먹고 겨울엔 얼어 죽을 위험에 도사릴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태상황이 살아계실 적, 그들은 그저 태상황의 명이라면 넙죽 엎드려 절부터 했었다 허나 현 황제가 있음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종종 황궁에 탄성을 내지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어느 황제가 백성들의 원망을 들어주리 그들은 언제나 백성들 편에 서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바로 이곳 조선에.
' 조선을 원망하지 말라 그럴수록 세월은 야속하게 가버리고 말테니 ' 누군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어릴 적, 동네 구석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옆으로 노비 하나가 그 앞에 걸어가는 양반의 짐꾸러미를 한가득 짊어진 채 힘겹게 걸어가는 게 보였다 어릴때 부터 보았던 것이었음에도 그날 따라 의문이 들었다 어찌 저 남정네는 노비가 되었을까 하고. 하지만 어리디 어려보이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웃겨 보였는지 갓을 쓴 한 이름 모를 양반이 와서는 ' 어찌 그리 저 천민을 빤히 쳐다보느냐? ' 라며 내게 물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 양반은 허허- 너털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멈추곤 내게 말했다 ' 조선을 원망하지 말거라 그럴수록 세월은 야속하게 가버릴테니 ' 라고. 그 말 뒤엔 어딘가 모를 적적미가 감춰져 있었다 이어서 그 양반은 내게 어느 집 여식이냐 물었고 난 ' ..저기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는 예조참판댁 여식이옵니다 ' 라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양반은 내 대답을 듣곤 작게 웃어보였다 온화한 인상과 신중한 말씨로 보아 보통 양반은 아닌 듯 해 보였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걸 보니 나는 그 분을 잠깐이나마 좋게 보았나 보다
* * *
" 폐하, 이 열매는 어찌 이리 두십니까? 단단히 썩은 듯 해보이는데 "
" 그대로 두어라 내게 귀중한 것이니 "
" 허면 보자기에 싸가서 보석함에 넣어둘까요? "
" 됐다 그냥 그대로 두어라 필요하면 부를테니 나가 있거라 "
" 예, 아 그리고 이건 관저에서 온 상소문들이옵니다 이곳에 두고 가겠습니다 "
" .. "
" 혹시.. 어전회의가 보름 뒤 인건 아시는지요 폐하 "
" 서책 좀 읽자 형선아 내가 따로 사정전에 글을 써 보낼테니 걱정하지말고 나가 있거라 "
" 예 폐하 "
하루종일 새벽녘부터 관저에서 온 상소문들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 향원정에 들어온 황제는 제 아버지인 태상황을 보내고 3년동안 황궁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 해 겨울 동짓달, 자신만이 다닐 수 있는 정원을 하나 만들어 달라 내시 형원에게 명을 내렸고 어쩌다보니 크기가 처음보다 몇 배로 커져버렸다 그래도 황제는 어느것 하나 만족하는 일이 없었다 황자 셋 중 막내로 태어난 민형은 다른 두 형보다 늦게 자리싸움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타고난 강인한 신체와 총명함으로 의도치않게 매번 태상황의 기대에 만족하는 아들이 되었다 이 때문일까 이를 아니꼽게 보던 두 형들은 막내 민형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세도가들을 이용하여 황제 폐하의 막내아들에 대한 괴소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국엔 태상황이 돌아가신 뒤, 어느 백성 하나 그를 황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란 무엇인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천자라고 불리우는 황제 이민형은 그야말로 어떠한 경우를 따지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절대자이자 신같은 존재여야만 한다 따라서 황위의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 또한 넘쳐난다 이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었다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그것은 숙명이었다 그의 짐을 나눠가질 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그만이 조선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일까, 황제 이민형은 어느 순간부터 어떠한 괴소문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 민형아 내가 죽거든 자시(23시~01시)에 화월당 옆에 있는 탱자나무 밑을 파보거라 '
' 화월당이라면, 예전에 어머니가 자주 가시던 곳 말씀하시는 겁니까? '
' 그래 네 어머니가 그곳에 있는 꽃들이 예뻐 한낮이면 침전에 있질 않고 거길 갔었지 '
' 헌데 그 밑에 무엇이 있기에.. '
' 민형아 '
' 예 아버지 '
' 만일 이 아비가 죽거든 살아서 그 죽음을 똑똑히 새겨두어라
나의 복수는 훗날 너의 몫이 될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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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나긴 상을 치룬 뒤 피곤함에 젖어 불이 켜진 침전에 들어가 누우려니 문득 아버지의 말이 생각이 났다 나는 형선이를 불러 '지금 당장 화월당에 가자 너랑 나 단 둘이서만' 이라 말한 뒤 잿빛 한복으로 갈아입곤 뒷문을 통해 화월당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향해 갔다 왜 아버지는 꼭 자시(23시~01시)에 가야 한다고 하셨을까 나는 시간이 늦어질까 화월당으로 서둘러 갔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순찰하는 군졸들도 없어 화월당 옆으로 조심히 걸어가 탱자나무 밑에 섰다 발로 땅을 툭툭 차보니 흙을 덮은지 얼마 안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손으로 땅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고 형선이는 ' 저하 어찌 갑자기 이러십니까? 손에 흙을 묻혀서는 아니되옵니다! ' 라며 소리쳤다 나는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고 계속해서 땅을 파댔다 하지만 벌레나 깨진거울조각들만 나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지칠대로 지친 난 주저앉아버렸고 ' 여기가 아닌가보다 형선아 ' 라며 고개를 들었다 헌데 형선이가 날 보지는 않고 서 있는 채로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다 이내 ' 저하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이 깨진 거울조각에 비추어 보입니다 이리와서 보십시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땅 밑에 있는 거울을 봤다 어찌된 일인지 하늘에 있는 달이 거울에 비춰 빛을 반사했다 ' 거 참으로 어여쁘구나 ' 눈으로 길게 늘어진 빛을 따라가 보니 탱자나무의 가지에 화살이 박혀 있었고 화살 촉에는 글월(한글편지) 하나가 박혀있었다 놀란 나는 화살을 힘겹게 빼내어 화살 촉에 박힌 글월을 펼쳤다 형선은 내게 ' 무슨 내용이 적혀 있습니까 저하? ' 라며 물었지만 나는 도무지 대답할 정신이 나지 않았다 언간을 차마 다 읽지 못해 종이를 꾸겨버렸고 그대로 휙 돌아 강녕전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나의 형님들과 어머니에 대한 그 동안의 모든 시간들이 아찔하기만 했다 울고싶었다 그러나 우는 방법에 대한 천상의 무지몽매가 나를 절망케 했다
' 네 어미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네 형들이 음식에 탄 비소(砒素) 때문에 죽은 것이다
절대 방심하지 말아라 네 모든 것을 보여줘선 아니된다
그들은 포악한 금수(禽獸)다 '
" 허나 아버지, 그 복수가 이리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젠 제가 금수인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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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을 한참동안이나 들여다 보다 떠오르는 옛생각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던 나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향원정 안을 거닐었다 일부러 이곳에서 서책을 보기위해 향원정 구석에 자리를 마련해놨는데 이것도 무용지물 인 듯 했다 형선에게 위치를 옮기라 명해야 겠다 다짐하곤 앞으로 나아갔다 적적히 뒷짐을 졌다가 팔짱을 꼈다가 또 풀었다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걷다보니 어느새 벚꽃나무 아래 와 있었다 봄에 오는 향원정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오늘도 마찬가지구나 나무숲 여느 틈에 등불이 여기저기 켜져 있었고 그 사이로 어지러이 낙화하는 벚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저 멀리 등불 아래에 무언가 어울리지않게 불쑥 튀어나온 게 보였다 처음엔 형선이가 놔두고 간 것인가 하고 보니 웬 작은 패물함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상자를 집어들어 덮개를 열었고 그 안에는 생각치도 못한 영롱한 금비녀 하나가 고이 들어있었다 심장이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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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마 어디를 가시려는지요 "
" 그냥 날도 좋은데 바깥 구경 좀 하고 오련다 "
" 궁녀들 없이는 아무데도 못가십니다 어제처럼요 "
" 응 알고있네 헌데 어제 내가 준 비단보따리는 어디에 두었는가? "
" 보석함에 넣어 두었습니다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
" 그래 한번 보자꾸나 어제 받은 것들 중에 참으로 어여쁜 것이 많더구나 "
" 헌데 최상궁 어째서 금비녀는 보이질 않는 것이냐? "
" 금비녀는 보따리안에 없었사옵니다 마마 "
" 없었다고? 내가 분명 어제.. "
" 예 보따리에 있던 그대로 꺼내어 넣어둔것이옵니다 허나 금비녀는 없었사온데.. "
" ... "
" ..마마? 어디 편찮으시옵니까? "
" 두고왔네 "
" 예? 무엇을.. "
" 금비녀를 두고왔네 "
" 어디에 말입니까? 제가 궁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못가네 "
" 어찌 말입니까? "
" 향원정에..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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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9575 미뇽 6230 모모링 다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