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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5cm - 추억은 머나먼 날에

조용한 브금이니 틀고 읽어주세요!


[EXO/카디] 낙원 01 | 인스티즈









나는 조그마한 정원과 너를 상상한다.
색색의 장미꽃들과 마삭줄이 빼곡히 감긴 담벽에 기대 나를 보며 웃는 너를.




[카디] 낙원 01




너를 처음 본 것은 완연한 봄날이였다. 아스팔트 틈새 사이로 새싹이 트고, 길거리가 색색의 꽃으로 물들고 있었던 그 봄, 동복을 입은 제 자신을 후회하는 중 이였다. 아침에는 쌀쌀하더니 학교 끝나면 또 더위가 극성이니, 정말 미칠 지경이였다. 교실 안 에서는 에어컨 덕분에 참았다지만, 학교를 벗어나니 머리카락을 태울 듯이 노란 태양이 따갑게 쬐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주머니 속에서 잡히는 눅눅하고 꼬깃한 지폐 몇 장에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을까 슈퍼가게 앞을 기웃거렸지만, 이 날씨에는 포장을 벗기자 마자 녹아 손을 끈적거리게 만들 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물에 젖은 솜마냥 무거웠다. 무리한 축구경기로 때문이였는지 발을 내딛을때 마다 종인의 허벅지 근육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앞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아무리 훔쳐내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걷다보니 어느새 횡단보도 앞이였다. 방금 신호가 바뀐 것 인지 건너편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아, 또 몇 분 서있게 생겼네. 땀을 훔치며 중얼거린 종인은 이렇게 해 아래에 서 있다간 곧 타 죽겠다 싶어 전봇대가 만들어낸 그림자 뒤에 숨었다.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웅웅거리며 울렸다. 종인의 핸드폰은 투박하게 이리저리 기스가 나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 화면에 그는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화면을 보려 애써 미간을 좁혔다. 화면에는 희미하게 '아주머니' 라는 네 글자가 반짝거리며 떠 있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신호등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 여보세요. "


- " 도련님, 오늘은 들어오실거죠? "


" …오늘 잠깐 들릴게요. 저 목욕할 건데 물 좀 받아놓으세요. "


- " 다시 나가실거예요? "


" …네. 끊을게요. "



종인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알았다며 먼저 전화를 끊으라 했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마자 종료 버튼을 누른 종인은 고개 숙여 한숨을 셨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놓고 고개를 드니 제 앞에는 울창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나란히 줄을 서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거리. 우뚝 서서 거리를 바라보고만 있던 종인이 발걸음을 옮겼다. 폭이 2m 채 되지 않는 좁은 거리이지만,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제게 그늘을 만들어주니 꼭 산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땀이 싸하게 식어버리는 느낌에 종인은 살짝 웃었다. 좋다. 거리의 끝이 보였고, 드디어 저 멀리 자신의 집이 보였다. 작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한 가운데 있는 웅장한 집. 참 아이러니했다. 10년 이상을 살았던 제 집인데도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런 집이 저와 비슷하다고 종인은 생각했다. 코너에 다다랐을때 작게 웅크린 남자를 보았다. 제 길을 막고 있는 남자를 향해 따가운 눈총을 날렸지만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남자는 화단을 보고 히히거리며 웃기만 했다. 화단을 슬쩍 본 종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왜 웃어? 좀 무서워진 종인은 입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기요.



" 좀 비켜주실래요. "



제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짜증이 난 종인이 발을 몇 번 구르니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키가 제 턱 쯤에 올까말까 한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 남자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남자의 흑색의 머리칼이 고개를 숙일 때 마다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괜찮아요.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은 종인은 옆으로 비켜 선 남자를 지나 집으로 향했다. 열 걸음 쯤 걸었을까, 뒤를 힐끗 쳐다보니 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우리 둘의 머리를 흩뜨려놓았다.






*
*
*






종인이 왔니?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서니 들리는 가증스러운 목소리에 종인은 대답하지 않고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얘, 몇 일동안 어디 있다가 온거야. 팔짱을 끼고 제게 다가오며 물어오는 여자에게 코웃음을 쳤다.




" 그렇게 궁금하셨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러셨어. "




하긴 내 번호도 모르니까.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여자는 천해보이며 사치스러워 보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노출이 심한 옷과 얼굴에 떡칠을 한 화장. 한심한 눈길은 준 종인은 계단을 오르다 이층에서 막 내려오시는 아주머니와 맞닥뜨렸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선한 웃음이 피었다.




" 물 받아놨어요. 가져가실 옷도 챙겨놓…."


" 아주머니. "


" 네? "


" 이런 식으로 일하실 거면 관두세요. 제가 저 여자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잖아요. "




계단 아래의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환한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죄인처럼 고개 숙인 아주머니는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셨다. 저 새끼가 뭐래, 아줌마? 무슨 애가 저렇게 버릇이 없어? 아랫층에서 길길히 날뛰는 여자의 반응은 우스웠다. 마른세수를 한 종인은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여니 물냄새가 후끈 끼쳐왔다. 와이셔츠 단추를 풀던 종인의 시선이 욕조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종인은 미간을 좁히며 욕조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뜨거웠다. 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가는 목이 막히고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이며 물 속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나자 그제서야 종인은 인상을 풀고 몸을 집어넣었다. 이리저리 뭉친 몸과 마음이 한번에 풀리는 느낌이 탄성을 내뱉게 만들었다. 종인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하루를 되새기던 종인은 생각했다. 오늘 축구 경기는 참 아까운 경기였다고. 아침부터 몸이 좀 뻐근했던게 경기까지 이어져 만족스러운 경기를 해내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더위를 많이 타는 제게 마지막 교시의 축구는 큰 곤욕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었네. 제 눈 앞을 자꾸 가리는 앞머리를 뒤로 넘긴 종인은 골똘히 생각했다. 아까 남자가 보고 있었던 게 뭐였을까? 종인은 정말 뜬금없이 궁금해졌다.


목욕을 끝낸 종인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침대에 풀썩 앉았다. 물이 들어간건지 귀가 먹먹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서는 물을 빼려하는데, 순간 엉덩이에서 진동이 울려 깜짝 놀란 종인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섬과 동시에 귀에 들어가있던 물이 빠졌다. 제가 앉았던 자리에 휴대폰이 있었다. 아씨, 놀래라. 그런데 '넌씨눈' 이 누구였더라. 고민할 새도 없이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종인의 친구, 박찬열이였다.




" 왜."


- " 야 너 오늘 어디서 자냐? "


" 그건 왜 물어. "


- " 어? 너 너네 어머니때문에 집에서 안자잖아."



종인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 누가 내 엄마야. "


- " 아…."


" 됐고, 재워주게? "


- " 새끼야, 그런게 아니라 오늘 피시방가서 날밤 깔래? "




새로 생긴 피시방인데, 아는 형이 거기서 알바한데. 가면 컵라면도 공짜로 준다 그랬음. 찬열의 들뜬 목소리가 종인의 귀에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토요일이었다.






*

*

*






집을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빼곡히 차있는 집들 사이로 가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거미줄이 쳐진 가로등 불빛 주변으로 나방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종인은 나방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불을 향한 지나친 욕심이 죽음으로 몰아가니 말이다. 피시방이 어디랬더라. 아무 생각없이 코너를 돌다 문뜩 남자가 화단에 앉아 히히거리던게 생각이 났다. 궁금했다. 아무 것도 없는 화단에서 무엇을 본건지, 무엇을 보고 그리도 행복하게 웃었던건지. 뒷걸음 몇 번을 치니 코너 쪽의 화단이 보였다. 볼까말까 잠시 망설이다 걸음을 옮겨 아까 그 남자처럼 화단 앞에 쭈그려 앉았다.




" 뭐야. 진짜 아무 것도 없잖아. "




그냥 새로 덮힌 듯 한 따끈한 흙 빼고는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였나? 이제까지 궁금해하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몸을 일으키려던 종인은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푸스스 웃었다.


.

.

.


종인이 발견한 것은 화단의 흙을 빼꼼히 뚫고, 파릇하게 숨쉬고 있는


아주 작은 새싹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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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분위기bb해요...다음편있는거죠??신알신할게요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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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와 첫댓글! 댓글은 기대안하고 썼었지만 아무래도 달리니 기분이 좋네요⊙♡⊙... 댓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최대한 빨리 올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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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노래 틀어놓고 느긋하게 읽으니까 너무 좋네요 ㅜㅜㅜ 분위기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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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좋으시다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드려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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