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냐, 그 분홍 머리는?"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일탈? 여주의 말에 다니엘은 아니라며 소리쳤다. 개강하기 전에 갔던 미용실에서, 남자는 핑크라며 자꾸만 자기를 꼬드기던 미용사에게 홀라당 넘어가 이렇게 염색을 하게 되었다고. 사실 처음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 OT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저런 머리가 아니였으니까. 너무 튀는 그의 머리 색깔에 솔직히, 아주 솔직히 같이 다니기 조금 쪽팔렸는데 보다 보니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머릿결 엄청 상했네. 신기한 듯 다니엘의 머리를 만지던 여주가 푸석푸석한 그의 머릿결에 조금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다니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픽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머리야 뭐, 다시 자르고 기르면 되니까."
"맞아. 어차피 너 군대 갈 거면 머리 다 밀어야 되니까 상관없겠다."
"너 아까부터 계속 군대 얘기할래?"
미안, 미안! 장난스레 제 목에 헤드록을 거는 다니엘에 여주는 깔깔 웃으며 빌어야 했다. 못 됐어, 너 진짜. 팔을 풀던 다니엘은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며 강의실 쪽으로 앞장 서서 걷기 시작했고, 여주는 그런 그의 뒤를 얼른 따라가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야, 너 삐친 거 아니지? 제 물음에 답이 없는 다니엘을 보며 진짜 화가 났나…? 싶을 때, 웃음을 겨우 참고 있던 건지 그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 그럼 그렇지! 네가 이런 걸로 삐칠 일이 없지!"
"짜식, 쫄기는."
근데 아까 안 아팠냐? 제가 걸었던 헤드록이 혹시 아프진 않았을까, 자국이라도 남은 건 아닐까 쩔쩔매는 다니엘을 보면서 여주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는 이런 애였지. 이렇게 착해 빠진 애. 그의 앞으로 걸어가 그를 마주 보며,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고 말을 해주려고 하는데….
"야, 조심!"
뒤로 걷던 탓이었을까. 미처 보지 못한 턱에 걸려 결국 중심을 잃은 여주는, 점점 몸이 바닥을 향해 쏠리고 있다는 걸 아주 선명하게 느껴야만 했다. 엄마야…!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정말 웃기게도 그 짧은 순간에 머리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두 손으로 머리를 막 감쌀 때였다.
"……괜찮아요?"
……어? 딱딱한 땅바닥이 아닌, 누군가의 포근한 품이라는 걸 알았을 때 여주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눈을 떴을 땐 낯선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너무 일렁여서,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너무 일렁여서 여주는 눈을 뗄 생각도,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계속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뭐지?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괜찮아?"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을 때, 제 팔을 잡아 일으켜주는 다니엘에 의해서 여주는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저를 살피는 다니엘은 지금 안중에도 없었다. 기억이 날듯, 말 듯 어디서 봤는지 모를 그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남자는 그런 저를 보다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제게 작게 목례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아, 어디서 봤더라. 지금 놓치면 굉장히 후회할 것 같은데… 아, 누구였더라…….
……아.
"……아!!!"
그 신입생!!!! 저도 모르게 남자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기억 났다, OT때 봤던 애구나! 애들이 막 잘생겼다고 하던 그 애!!! 제 말에 다니엘도 그제야 남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남자는 제 행동에 놀란 듯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눈꼬리를 접으며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곤 있는데, 정말 웃고 있다고 해야 될지… 조금은 미묘한, 그런 알 수 없는 표정에 순간 이질감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기억하시는 거예요, 선배?"
"어? 어… 그치? 기억나니까 지금 이렇게 말을 했겠지?"
"제 이름도요?"
……이름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민망함에 뒷머리만 긁적이며 대답하기를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남자는 여주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마치 기억해달라는 듯이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또박또박하게.
"제 이름은 박지훈이에요."
*
"선배, 오늘 수업 끝나고 뭐 해요?"
"……왜?"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가 진짜 재밌다는데."
"……."
"저 지금 데이트 신청하는 거예요, 선배."
-
"…그 선배랑은 언제부터 친했어요?"
"다니엘? 음… 고2 때부터?"
"……."
"그건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
"너 뭐야."
"……."
"뭔데 그렇게 계속 알짱거리는 거야."
-
……우리를 가리고 있는,
그 베일이 걷히는 날이 다가오기를.
베일
COMING SOON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