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우연적 만남, 인연적 느낌, 첫 눈에 반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너 가는 김에 옆집에 떡 좀 주고가."
"에? 옆집에? 왜?"
"그래도 이사왔는데 친해질겸 떡이라도 돌리는 게 낫지 않겠어?"
"엄마...나 오늘 첫등교인데?"
"떡 돌리는데 10분이 걸려, 한 시간이 걸려. 그냥 좀 주고 가."
내가 싫어하는 시루떡. 하필이면 제일 제일 싫어하는 떡을 내 손에 쥐어주곤 옆집한테 가져다 받치라는 게 난 아침부터 신경질이 났다. 첫등교부터 지각하게 되면 처음보는 선생님께 찍힐게 뻔한데 내가 뭐가 좋다고 이웃사람이랑 거의 마주칠 일도 없을텐데 떡을 돌리라는 것인가. 난 입술을 쭉 내밀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엄마한테 왜 엄마가 직접 안가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이없을만큼 웃겼다.
"옆집에 이상한 아저씨 산다더라."
"에?"
"그래서 너한테 시키는거야. 엄마 심장 약하잖아."
"엄마가 심장 약하면 엄마 딸은 심근경색 수준이겠네. 아니 고작 그런 이유로 나한테 시키는 거야? 그것도 등교해야되는 학생한테?"
엄마는 내 말은 듣기 싫다는 듯이 손을 훠이훠이 젓고는 빨리 가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난 한숨만 푹푹 내쉬면서 현관문을 닫았다. 우리 집은 708호. 옆집은 707호다. 뭔가 행운을 가득 안겨줄거 같은 숫자들이였다. 하지만 내가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렀을 때엔 아무도 없는건지 대답 따윈 들리지가 않았다. 난 그냥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줄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난 전학생이다. 그것도 깡촌에서 올라온 촌년. 친구 하나 없는데 이런 뇌물같은 뇌물을 주면 백퍼센트 왕따 당할게 틀림없다. 난 혼자 결심을 했다는 듯이 문고리를 잡았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현관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뭔가 공포영화에 나올 거 같은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대체 어떤사람이 살고 있길래 이렇게 집 보안도 허술하게 해놓은걸까. 난 한껏 공포에 찌들어 신발을 벗는 것도 까먹은 체 집 안에 한 발자국씩 발을 들였다.
이사 온 집은 방음이 아주아주 잘 됐다. 그래서 층간소음이던 뭐던 그런거 따위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밖에만 있어서 몰랐던 나는 이 집에 발을 들였을 때 깨달았다. 내가 제대로 호랑이 굴에 직접 발을 들였구나... 적나라한 신음과 숨이 찬지 헉헉대는 소리가 내 귓가에 쨍쨍하게 박혀왔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문틈새로 살짝 엿보다가...설마가 역시나였다. 18년 인생 처음으로 남자와 여자가 뜨겁고 화끈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을 동영상 외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였으므로 이 한창 성장할 나이...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다리에 마비가 걸린 듯 발을 움직이지 못했고 입은 점점 벌어졌다. 난 내 손에 점점 힘이 풀리는 것을 인식 못하고 결국엔 손에 꽉 잡은 떡을 툭-하고 떨어뜨려버렸다. 난 내 본능이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난 내 허술했던 명찰이 떡과 함께 떨어졌단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학생 여기로 와보세요."
"ㄴ,네? 왜요?"
"명찰 어디갔어요?"
"제 명ㅊ...어? 어어?"
"명찰 없으면 복장불량에 벌점 2점인데."
첫등교부터 까다로운 선도부가 걸렸다. 이 학교의 교칙,구조 그 무엇도 모른다. 근데 명찰 한번 안달았다고 한방에 벌점 2점을 쿨하게 체크하시니...난 멀뚱멀뚱히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했었다. 근데 제일 짜증나는게 무엇인지 아는가? 이 선도부...너무 잘생겼다. 재수없는데 잘생겼다. 싹수가 없는데 잘생겼다. 여자의 본능이라는 것이 내 가슴 한 쪽에서 스멀스멀 피어나오더니 결국엔 그 아이의 명찰 이름을 바라보았다.
"전...정...국..."
나도 모르게 이름을 그 아이 앞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불러버렸다. 정국이라는 아이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나를 내려다보았고 난 그 날카로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눈을 조심스레 깔았다...절대 쫄아서 그런게 아니다. 이 학교 인조잔디가 너무 신기해서 바라본 것이다. 응. 그렇고 말고.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말 하나없이 가만히 있다가 정국이라는 아이가 먼저 입을뗐다.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2/10/22/6cc1556ccc742e3d7d93108d637bab27.gif)
"처음보는 사람이 내 이름 아무렇게나 부르는거 좀 많이 별론데."
"ㅇ,아...! 죄송...해요..."
그러고는 계속 날 뚫어지게 쳐다봤다. 난 내가 오늘 첫날 아침부터 반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찍힌거 같아서 괜시리 미래에 어떻게 많은 시련과 고난을 피해갈까 하고는 설계도를 그려나갔다. 원래 이름만 적고 가는 거 아닌가? 자꾸만 날 쳐다보며 붙잡아 두는 거 같은 이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은 1분씩 계속 흘러갔고 내 손에는 진땀이 났다. 난 결국 변명 아닌 핑계 아닌 진실로 지금을 만회하고자 입을 뗐다.
"아니 제가 오늘 처음 학교오는 전학생이거든요? 근데 제가 개인적 사정 때문에 명찰이 오던 와중에 없어졌어요. 그 이유는 너무너무 적나라하고 노골적이고 야해서 제가 설명해드릴수는 없고,"
"...아아...아니...그...제가 방금 눈 내리깔았는 이유는 절대 쫄아서가 아니라 인조잔디가 신기해서 본 거예요...촌에는 이런게 없어서..."
정말 한마디로 아무말 대잔치,대환장 파티였다. 난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막 내뱉는 거 같았다. 정국이라는 아이는 나의 곤란하고 아주아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상황을 눈치챈건지 눈짓으로 가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괜히 정중히 인사를 하고 가야 될 것만 같아서 평소에 이웃주민들한테 해보지도 못한 90도 인사를 처음해보았다. 그 아이의 모습이 없어질 때쯤 난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이런 대도시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부러지고 하나하나 다 캐묻는건지 알고 싶을 정도였다. 일정한 호흡을 다시끔 되찾았을 때 나는 커다란 문 앞에 학교 배치도가 붙은 것을 보고는 교무실로 찾아갔다.
"저...오늘 전학 온다던 김탄소인데요."
"아- 탄소? 선생님은 2-2반 담임을 맡은 김석진이라고 해."
"ㅇ,아! 네!"
"여기 잠시만 기다려볼래? 우리반 회장이 곧 올거라서."
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선생님 옆에서 가만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신기해했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깡촌이였다. 강원도 어느 한 산골짜기에 살아서 휴대폰도 스마트폰은 무슨 구석기 폰 수준이였고 무엇보다 학교 전교생들은 50명도 안됐었다. 엄마 일 덕분에 서울로 와서는 붐비는 지하철도 타보고 전교생 700여명이 넘는 곳의 학교도 다녀본다. 들뜬 마음도 가득있었지만 두려움도 솔직히 있긴 있었다. 여기 아이들은 다 하나같이 눈빛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뻘쭘하게 서있지 말고 앉아있으라는 선생님 말에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앉을 곳도 없구만 어디에 앉으란거야...그리고 방금 분명 자기네 반 회장이 올거라면서 조금만 기다리라 해놓곤 벌써 15분씩이나 지나고 있다. 어떤 대단한 아이길래 이렇게 날 기다리게 하는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싶네. 몆 분이 더 지나고 교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치기 싫었던 아이가 튀어나왔다. '전정국'이라고 했었나. 난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마음속으로 내 자신에게 말을 했지만 그 아이는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선생님 앞에 서더니 얘기한다.
"무슨 일이예요?"
"아, 왔구나. 이 아이 오늘 전학 온 친구인데 선생님이 지금 처리 할 업무가 많아서 너가 학교도 구경시켜 줄 겸 반까지 같이 가라고."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8/15/15/287434fd15475a6f74099637757a2426.gif)
"아- 전학생이라고요? 만나서 반가워. 난 전정국이라고 해."
"ㅇ,ㅇ,어...난 김탄소..."
똑같은 애 맞아? 아까전에는 내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날카롭게 바라보더니 지금은 순진한 아이마냥 나에게 웃음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 그렇지...교무실 밖을 나왔을때는 아까처럼 표정을 굳히고는 날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만 좀 쳐다봤으면 좋겠는데 왜 이러는거야 정말! 하지만 뭐 기분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설렌다. 재수없지만 쓸데없이 잘생겨서 그런가. 오랫동안 날 쳐다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더니 먼저 나한테 입을 열었다.
"인조잔디 구경은 잘하다 왔는가?"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대체 무슨 일 있었으면 명찰을 잃어버린 체 오냐?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너무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는 말자."
"너도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나 보자마자 내 이름 불렀잖아."
이 녀석 분명 뒷끝이 아주아주 강한 애일 것이다. 난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학교 구조도 모르는 주제에 앞장서서 갔다. 뒤에있던 정국이는 내 팔을 잡더니 학교구경은 나중에 시켜주겠다며 반 부터 들어가자며 날 이끌었다. 하지만 학교구경 안시켜줘도 그런 예감은 들었다. 확실히 내가 다녔던 곳과는 급이 다르다. 넓은 복도부터 시작해서 넓은 잔디가 깔린 운동장. 도시 아이들은 다 이런 시설들이 좋은 학교에 다니나보다. 난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입을 쩍 벌리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옆에있던 정국이는 그 모습을 봤는건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대체 어느 지역에서 왔길래 이런거에 감탄하고 인조잔디를 구경하고 그러는 거냐? 촌스럽게."
"강원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리."
"...깡촌?"
"울 엄마가 깡촌 아니랬어. 근처에 아파트 한채 있다고."
"...그게 깡촌이지 뭐야."
그 말에 대꾸하려던 찰나 반에 다 온건지 정국이가 앞장서서는 교실 문을 열고 날 데리고 들어갔다. 화장을 하는 애들, 여자애가 남자애 다리 위에 앉아서는 애정행각을 벌이는 애들, 자는 애들, 공부하는 애들, 그리고 심지어 창문 밖으로 선생님 눈을 피해서는 담배피는 애들 등등 기상천외한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엄마...나 여기 괜히 온 거 같아...난 눈을 꾸욱 감고 속으로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뒤이어 정국이는 이 모든 상황들을 제지시키지도 않고 나에게 자기소개 먼저 하라며 선수권을 쥐어줬다. 손에서는 진땀이 나기 시작하며 등골에서는 오싹한 한기가 맴돌았다. 갑자기 배가 아픈 거 같기도 했고. 난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내 딴에는 크게 외친다고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했다.
"ㄴ,나는 강원도에서 온...ㄱ,그러니까...어...음...김탄소(이)라고 해."
"너네 지역은 알감자만 먹고 그래?"
그 아이의 한마디로 반 전체가 뒤집어질 듯이 아이들은 웃어댔다. 어디가서 시선집중이 되는 것을 싫어하고 발표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나는 이 상황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고역이였다. 정국이 저 아이는 나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거겠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간신히 참고는 뒤이어 내 자리는 제일 끝편이라고 안내를 했다. 근데 뒷편인건 좋은데...라인업이 좋지않다. 꽤 잘나갈 법한 애들이 줄을 지어 앉았는데 그 아이들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더 무서웠다. 뭔가 내가 저기에 앉으면 머리채 다 뜯길것만 같은 느낌이였달까...? 난 조심스레 자리로 가서는 소리도 내지않고 조심히 앉았다. 다행히도 창가자리여서 그런지 눈에 띄일 일이 거의 없다. 옆자리 애도 세상 모르고 자는 거 같았고...뭐 어때. 나만 잘하면된다. 티비에 나오는 것처럼 전학생한테 관심을 가지고, 다른 반에서 전학생을 보러오고 그런 행동은 없었다. 다만, 몇몇 애들이 궁금해서 찾아왔지만 내가 지극히 평범하게 생겨서 그런지 '에이-' 하고는 다시 나가버리는 거...? 그것도 일종의 관심이면 관심이겠지. 난 1교시가 시작되고 3교시가 될때까지 수업 듣는 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에만 가만히 앉아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정국이는 자기네 친구들과 수다떨기 바빴고 난 노트에 그저 낙서만 할 뿐이였다. 내 옆자리 애라도 일어나면 좋을텐데 일어나지를 않는다. 앞자리 애는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옆을 지나갈때마다 노려보고는 지나간다. 아무래도 오늘 친구 한 명 사귀는 건 무리일 듯 하다.
적응이 아주 힘들었어서 그런지 몸과 정신에도 무리가 왔나보다. 첫날이라 많이 눈치 보이기는 했지만 난 어쩔수 없이 선생님께 조퇴증을 받아왔다. 정국이는 어디 아프냐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었고 난 그냥 눈인사만 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철없는 생각이지만 이런것을 자퇴 각이라고 하는건가. 이러다가는 내 2년간의 학교생활은 아마 친구없이 혼자서 지내고 끝내야 될지도 모른다. 난 걱정을 한아름 업고 버스도 타지 않은 체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도착했을 땐 엄마는 없었다. 식탁 위에 만원짜리 지폐 두장 빼고는. 아마 이걸로 배달음식 시켜먹으라는 거겠지? 교복 안주머니에 지폐를 꾸깃꾸깃 넣고는 현관문을 열었을 땐 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07/2/3b28d4a2af6c712baf5a111640404d6d.gif)
오늘 진짜 개같다. 하필이면 옆집 아저씨가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펴댄다. 난 뒷머리를 긁적이며 오늘 아침 그 사람은 내가 아니예요- 라는 듯이 표정에서 시치미를 뚝 떼고는 그저 지나쳐가려고 했다. 하지만, 참 걸려도 잘못 걸린게 아니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명찰이 이 아저씨한테 있다.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오늘 아침에 아무것도 못봤고 듣지 못했고 오늘 당신을 처음보는거예요- 라는 듯이 먼저 말을 걸었다.
"큼...여기서 담배피다가 경비원 아저씨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구."
그랬더니 내 목소리에 살짝 놀랐나보다. 담배를 태우며 나를 쳐다본다. 와...서울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잘생기고 예쁘고 하나보다.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이였지만 빛이 나는 듯 했다. 아무말 없이 날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이 아저씨 덕에 덩다라 뻘쭘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저찌됐든 명찰을 받아내야 되는데 현 상황을 보면 그럴수가 없다는 것에 너무나도 안절부절했다. 다시 명찰을 사기에는 엄마한테 혼날거 같고 그렇다고해서 다시 되찾는 것도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난 그냥 나중에 생각하는게 나을거 같다는 심정에 90도로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엘레베이터 쪽으로 갔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빠르게 뛰는 심장 덕에 초조했다. 이유는 들킬까봐. 오늘은 그냥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랑 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떼워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치는 덕분에 그 생각은 접었다.
"학생 혹시 편의점 가는거야?"
"ㅇ,예...그렇긴 한데..."
"같이가자. 혼밥은 싫어서."
혹시 이 아저씨...내가 오늘 아침에 그 야릇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자체를 모르는 건가?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되는건가? 난 아저씨한테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고는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엘레베이터를 탔을 땐 숨소리 하나 들리지가 않았다. 아저씨는 그저 바지츄리닝 주머니 안에 뭐가 있는지 계속 만지작 대면서 있을 뿐이였다. 아침에는 분명 깔끔한 정장이였던걸로 기억을 하는데...혹시 내가 봤던 사람은 이 아저씨가 아닌건가? 내가 그렇게 빤히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 아저씨도 그 눈길을 느꼈나보다. 그래. 못 느끼는게 이상한거지. 내가 얼마나 눈치없이 대놓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1층에서 문이 열릴 때 딱 한마디를 했다.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17/0/ed80f346ce243c5462ba32a6617145b8.gif)
"내 얼굴 뚫어지겠다. 그만쳐다봐."
그 한마디에 난 바로 아무말없이 땅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도 헛된 생각을 잠시 했다. 왜 내가 오늘 처음보는 아저씨랑 편의점에서 같이 밥을 먹어야 되는 것이고, 이 아저씨는 뭔데 나한테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지? 모든 것이 의문사였다. 아무리 내가 그렇고 그런 장면을 목격했어도 어차피 이웃끼리 안보면 그만일텐데...난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한 체 바보처럼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내가 살게."
"네?"
"학생아니였어? 교복 입은거보면 딱 학생인데.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삼각김밥과 라면을 계산대 위에 내려놓은 순간이였다. 아저씨는 내 옆에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캔을 놓더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학생이긴 해도 이 정도 사먹을 돈은 있는데...' 라며 얘기하려던 찰나 이미 계산을 끝마치고 편의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진 곳으로 저벅저벅 간다. 이 아저씨...도통 정체를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아마 나를 엿맥일 생각으로 그러는게 틀림없어! 라고 결심은 했지만 현실에서는 말도 찍소리 하지 못할게 뻔한데 결심을 하면 뭐 하는가...난 3분간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며 익힌 라면을 열었지만 이상하게 면발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혼밥하기 싫다고 해놓고 밥 대신 소주를 따고는 소주를 깡으로 들이킨다.
"아까는 저한테 혼밥하기 싫다고 했잖아요."
"밥인데."
"네?"
"나한텐 이게 밥. 혼자 마시면 추해보이니까."
나름의 감성을 지니고 말한 거 같은데 내 앞에선 영 실패인거 같다. 세상에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캔이 밥이라고 말하는 등신이 어디있는가? 알코올 중독이 아닌 이상 있을 순 없는 일일텐데. 난 찡그린 미간으로 술과 아저씨 얼굴을 번갈아쳐다보다 자리에 일어나 젓가락 하나를 더 가져와서는 아저씨 앞에 놓았다. 아저씨는 술을 병째로 들이키는 것을 멈추고는 이게 뭐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안주는 있어야죠. 속 버리면 누가 책임져요? 보니까 혼자 사는거 같든ㄷ,헙."
이 주둥이가 망정이다. 나도 내 생각과 별다른 감정 컨트롤 없이 나온 말에 입을 '헙'하고 막아버렸다. 혹시나 화를 내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아저씨 눈치를 살폈지만 아저씨는 내 지금 모습과는 다르게 아주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나도 그냥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헛기침을 두 어번하고 삼각김밥을 까서 입에 넣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자꾸만 아저씨 눈을 보며 눈치를 살피게 된다. 뭔가 모르는 척 하는거 같기도 하고...아닌거 같기도 하고...뒤이어 나무젓가락을 똑- 하고 둘로 나누더니 내 라면을 통째로 들고가서는 한 젓가락 듬뿍 맛을본다.
"라면이 이런 맛이구나..."
"처음 먹어봐요?"
"응."
"소주는 많이 먹어본거 같이 행동하더만 라면은 처음이라니...의외네요?"
내 말은 안중에도 없는건지 계속 젓가락질을 하며 라면을 먹는다. 난 베어물고 있던 삼각김밥을 그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고는 입을 '허-' 벌리고 쳐다만 보았다. 나를 낯설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 아저씨. 자연스럽게 모든 행동을 하는 이 아저씨. 나에게는 위험하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명찰만 받고 앞으로는 이런 깊은 관계는 유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역시 난 생각만 하지 실행에는 옮기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명찰의 '명'자도 못 꺼내고 집가는 내내 안절부절 하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다. 내일은 벌점 받으면 절대 안되는데...오늘 첫 등교인데 학교에 가자마자, 발을 들이자마자 벌점 2점을 가뿐히 먹었는데 내일 또 반복을 하면 안된다. 하지만 내 성격이 워낙 소심해야지...현관문이 닫히기 전까지에도 나는 찌질하게 아무말 못하고 꿀 먹은 병아리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세요?"
'어? 나 전정국.'
"뭐야. 너가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아."
'담임 선생님이 알려주시든데?'
"근데 왜."
'에이- 우리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반응이 너무 딱딱하다.'
"얼씨구? 아까 반에서 모르는 척 했던 사람이 누군데 나한테 이래?"
'그땐 내가 너무 바빴어. 내일은 확실하게 챙겨줄게.'
"그래서 전화했는 목적이 뭔데."
'우리 학교는 전학생이고 뭐고 없어. 내일 수행평가 치니까 내가 찍은 내용들 다 외워오고 내일은 명찰 꼭 달고와라.'
고작 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얘기해도 되는 내용을 쓸데없이 시간낭비를 한다. 난 알겠다고 고맙다는 말도 센스있게 잊지 않고 얘기를 한 후 끊었다. 그러더니 몇 분도 안되서 다시 나에게 카톡이 왔다. 국어 수행평가 내일 치는거 가상문제라며 이모티콘까지 귀엽게 달아서 나에게 보낸다. 그 모습이 왠지 꽤나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던 찰나 엄마는 그새 언제 온건지 내 방문을 벌컥 열더니 다가와서는 오늘 학교 어땠냐며 묻는다. 난 굳은 미소로 그저 그랬다고 대충 대답을 했고 오늘 옆집 아저씨랑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뭐? 너 미쳤어? 옆집남자랑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응? 아니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내가 오늘 그 아저씨랑 좀 오래 같이 있었는데 괜찮은 사람이였어."
"이 지지배가 미쳤지 미쳤어...옆집남자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조폭이라고 소문 쫙 난거 너 몰라?"
"에에?"
정말 납득이 1도 가지않고 전혀 말이 안되는 엄마의 언급에 난 당황스러운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보면 살인청부업자 그 사람들한테선 늘 피냄새가 나고 늘 바쁜 것처럼 보였는데 옆집 아저씨는 내가 오늘 처음보았지만 느낄 수 있던건 딱 '백수' 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런 포지션이 아저씨에게 주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난 엄마가 말하는 그 순간에도 명찰 생각만 머릿속에 깊게 박혀있었다. 엄마는 내가 들은 체 만체 하는 것도 모르는건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내가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어디가냐고 크게 소리쳤지만 난 대답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옆집 아저씨한테 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거면서. 난 옆집 문 앞에 떡하니 서있었을땐 나도 모르게 그 현관문에 귀를 바짝대고는 어떤 소음 하나라도 들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는 소리는 커녕 아무 인기척도 없기에 현관문에 찰떡처럼 붙어있다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아주 기막힌 타이밍으로 아저씨가 문을 열더니 내 얼굴은 정통으로 현관문 끝부분에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안갔어??"
"ㅇ,아...아니요...! 들어갔다가 엄마 심부름 하러 가는 중이예요...!"
"아- 그래?"
"아저씨는...근데...왜...밖에..."
"담배 하나 피려고."
그러고선 복도에 있는 창문 한쪽을 열더니 입에 담배를 슬쩍 물고는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츄리닝 차림인 이 아저씨는 그 차림만으로도 참 귀하게 생긴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 난 입을 헤- 벌리고는 아저씨를 계속 쳐다보았고 아저씨는 내 눈길이 느껴졌는지 내 쪽으로 바라보고는 입을 뗐다.
"학생 아까부터 계속 나 뚫어지게 쳐다보네."
"아닌데요...!"
"솔직히 말해봐. 나한테 용건 있는거지?"
"아니요! 제가 처음 본 아저씨한테 왜 용건을..."
"아저씨 아니고 민윤기."
"...네?"
"민윤기 아저씨."
"...아...네. 윤기 아저씨..."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6/01/22/c1d58076b70a8f0a9338154049a20665.gif)
"잘하네-"
웃으면서 내 머리를 자연스레 쓰다듬어주었다. 분명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 분명 난 명찰만 돌려받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왜 내가 계획했던 목적지보다 더 동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듯 했다. 이상하게도 쓰다듬어주며 웃어주는데 이 남자를 내가 언제봤다고 망할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있었다. 오늘 처음 본건데 말이다. 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윤기 아저씨를 쳐다보며 어렵게 입을뗐다.
"김탄소(이)요."
"응?"
"제 이름, '학생'이 아니라 '김탄소(이)라고요."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2/04/5/9918821a4f0c65bfdbd9886a0b6b5c06.gif)
"그래, 탄소학생. 이웃으로써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난 다짜고짜 현관문을 열고 방 안으로 뛰쳐가듯 몸을 던졌다. 덕분에 엄마한테 한소리 들었지만 말이다. 아직도 웃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그려지고 있었다. 심장은 덤으로 쿵쿵 뛰었고. 내 나이 18세. 어쩌면 어릴수도, 어쩌면 성숙해질 수도 있는 나이지만 이 감정만큼은 알았다. 오늘 처음봤는 사람인데 이렇게 두근거리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그 남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것을. 난 아마 이 순간 동안은 목적을 잃어버린듯 하였다.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방탄소년단/민윤기/전정국] 열 여덟, 열 여덟, 스물여덟 01 9
8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9급 합격한 친구의 인생 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