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01
w. 1210
…그래, 지금 우리 사이를 딱
'베일'에 가려진 상태라고 하면 좋겠다.
*
박지훈. 신입생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수려한 외모와, 또 다정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워낙에 서글서글하고 친절했기 때문일까, 특히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는데 문제는 그 인기가 딱 여자들한테만 국한된다는 것이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박지훈에 대한 평가는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는 재수 없게 생겼다- 가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뒤에서 씹어대기만 하면 모를까, 주변 선배들이나 동기들은 그가 나타날 때면 갑자기 말을 끊고 그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안녕하세요, 선배."
저를 싫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이는 누구에게든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등장하기만 하면 싸해지는 분위기를 웬만하면 눈치챌 법도 한데 진짜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님 멘탈이 센 건지… 나는 언제 봐도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그의 표정을 보며 항상 의문을 가지곤 했었다. 아직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뭐, 어쨌든 그렇게 지훈이가 살갑게 행동을 하지만 남자들은 그와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걸 보며 생각했지. 아,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않게 기싸움이 장난 아니구나- 라고. 인기가 많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정반되게, 심각할 정도로 양면성을 띨 정도라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지훈이 불쌍한 것 같아."
점심시간.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지훈이가 서 있었다. 항상 그랬다. 남자가 아닌 여자. 동성이 아닌 이성. 그 모습을 보는데 왜 짠한 기분이 들었던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것 같다고. 내 말에 다니엘도 뒤를 돌아 그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리고 그의 물음에는 진심으로 궁금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냥. 다들 너무 싫어하는 거 같아서."
"누가? 충분히 잘 지내는 거 같은데."
"아니, 여자애들 말고. 남자 선배들이랑 동기들이."
"그래?"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는 다니엘을 보는데 순간 궁금해졌다. 같은 성(性)을 가진 너는, 대체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는?"
"응?"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뭘?"
"지훈이."
글쎄. 제 물음에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혹시 너도 질투하냐? 그 말에 다니엘은 세상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 하고 웃었다.
"질투는 무슨. 나는 남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아."
"……."
"너 말고는."
…또 시작이다. 저 능글거리는 거. 나는 됐다는 듯이 격하게 손을 휘저었다. 제발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이런 네 행동들 때문에 난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하필 웃는 건 또 더럽게 예뻐서 눈을 반달로 접는 것도 모자라, 가끔 사람 마음을 한 번씩 흔들어놓는 멘트도 함께 날리던 망할 강다니엘 덕분에 내 심장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오르락 내리락하곤 했었다. 너는 아마… 죽어도 모르겠지.
하지만 나와 다니엘은 친구니까. 그 이상의 선을 넘을 수 없는 사이니까 나는 더 이상 그의 앞에서 떨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다니엘도 장난으로 그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설레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하기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었는데… 그 다짐이 정말 단단하게 굳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시금 심장이 두근거리려는 걸 보면.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오늘도 여전히 장난임을 증명하듯 내 반응에 실실 웃던 다니엘은 갑자기 뒤를 돌아 지훈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질투라기보단 뭔가 쎄해."
엥? 의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왜?"
"몰라. 그냥 촉이."
속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그런가…? 다니엘이 뭐 때문에 쎄하다고 한 건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단지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치기를 당하고 있는 저 아이가.
*
"어?"
수업이 막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왔을 때, 다음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문 앞에 서 있던 지훈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를 숱하게 봐왔었지만 저번에 내가 넘어지려던 걸 잡아준, 그때 이후로 이렇게 정식적으로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라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 반, 그리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 반에 그에게 인사를 하려던 찰나였다.
"안녀…?"
……? 들은 손이 아주 민망해질 정도로, 지훈이는 나를 쑤욱 지나쳐갔다. 마치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건 무슨 상황이지? 쪽팔리게도 지나가던 동기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본 건지 '어, 지금 여주 까인 거야?' 하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게, 나 지금 까인 거 맞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한참을 멍 때리고 있는데 언제 나온 건지 다니엘이 거기 서서 뭐 하냐며 내 어깨를 톡톡 쳤을 때, 그때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야."
"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뭔 소리야. 어깨동무를 하며 얼른 다음 수업이나 들으러 가자는 다니엘을 따라 걷는데, 내 시선은 그가 있을 강의실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뭐 했다고 저래…? 날 못 봤나? 못 봤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는데?
'…저 기억하시는 거예요, 선배?'
'제 이름은 박지훈이에요.'
그때는 그렇게 이름까지 또박또박 말해줬으면서. 나 쟤한테 뭐 한 거 없는데…? 이상하잖아. 다른 사람들한테는, 심지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데 나한테는 왜 그러는 건데?
"아오!"
"아, 깜짝이야!"
옆에서 놀라는 강다니엘은 뒷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죽겠다.
*
그날 이후로 나는 박지훈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러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독 나만, 나만 그렇게 피하는 그가 야속해서, 또 이해가 안 가서 나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며칠을 지켜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저 아이에게 은연중에 어떤 잘못을 했다든가, 아님 그냥 내가 싫다든가 하는 추측만 늘어갈 뿐. 하다못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넘어지려는 나를 받쳐주던 그날 내가 너무 무거워서 어디 하나가 나간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답은커녕 더 꼬일뿐이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가네….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렇게 혼자 답답해하고 있을 때,
머지않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자. 또 막 마시다가 뻗지 말고."
오올- 지금 나 챙겨주는 거? 내 손에 상쾌환을 쥐여주는 다니엘을 보며 물었다. 내 말에 그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표정을 보는데 굳이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내가 대책 없이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기면, 뒤처리를 하는 건 언제나 다니엘이었기 때문에. 약을 쥐여주는 거 보면…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보네. …생각해보니까 좀 미안한 거 같기도 하고. 이따 가게 들어가면 그때 먹어야지.
오늘 밤 6시. 1, 2 대면식 날만을 기다리던 나는 지훈이가 가게 안에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내 앞에 앉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제발, 제발…!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던 덕분일까.
"…안녕하세요."
이게 웬걸, 운명처럼 그가 내 앞자리에 앉는 게 아니던가. 예쓰…! 나는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리도 자리겠다, 술도 들어가겠다 오늘이 딱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지훈이가 자리에 앉을 때 나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의식한 걸까. 나와 눈이 마주친 지훈이는 내게 미소를 지어보지만,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아, 그런데.
"지훈아. 너 통학해? 아님 기숙사?"
"저 자취요."
하나 잊은 게 있었다. 박지훈은 정말, 진짜, 완전, 대박, 더럽게 인기가 많다는 걸. 오늘 물어보긴 개뿔, 그와 말을 하기는커녕 사방에서 그에게 말을 거는 여자 동기들에게 밀려 나는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아오. 답답함에 술만 쭉쭉 둘이키자 옆에서 다니엘이 왜 그러냐며 물어왔다.
"아무 것도 아니야."
내 목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
그 순간,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박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먼저 피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2차로 이동할게요!"
과대의 말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워낙 우리 학년에서도 유명했던 박지훈과 술을 마신다는 것에 업 돼있었던 건지, 초반부터 빠르게 마시던 동기들은 2차에 도저히 못 가겠다며 손사래를 쳐댔다. 원래대로라면 나 또한 정신이 나가 있을 시간이었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주 멀쩡하다 못해 쌩쌩하기까지 한 기분에 나도 2차를 가겠다며 앞서 나가는 다니엘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너 진짜 갈 수 있겠어?"
"응."
"그 약 되게 잘 받나 보다."
잘 샀네. 뿌듯하다는 듯이 말하는 다니엘을 보는데 순간 무슨 약인가 싶어 나는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음… 뭐였더라.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그 안에서 만져지던 무언가에 의해 불현듯 떠오르던 기억. 아…, 상쾌환. 이거 얘가 줬었지. 아까 먹는다는 걸 깜빡했네. 굉장히 뿌듯해하는 다니엘을 보면서 나는 그냥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야, 지훈아! 여기!"
……? 뭐야. 쟤네가 왜 박지훈을 부르는 거지?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평소에 지훈이를 신명 나게 까면 깠지, 좋은 소리라고는 한 번 해보지도 않았던 애들이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 봐도 각 나오는데. 뭔가 불안함을 감지한 나는 예쁜 여자 후배들을 보고 실실 웃고 있던 다니엘을 끌고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 뭐야. 나 저기 가려고 했는데!"
"그럼 나 혼자 여기서 마시라고?"
"그건 안 되지."
넌 내가 챙겨야지. 구시렁거리다가도 제 말에 다니엘은 자세를 고쳐앉기 시작했다. …참으로 듬직하다니까. 진짜 마음 아프게시리.
"뭐야, 혹시 너도 얼빠?"
"아니거든?"
"뭐, 이해해. 얘가 워낙 잘생겨야 말이지."
그치? 남자 동기의 말에는 묘하게 뼈가 담겨 있었다. …역시. 예감이 아주 정확하게 맞아 들어갈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여기 앉길 잘했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한번 쓱 훑던 동기들은 거침없이 술을 말기 시작했다.
타깃은, 앞에 앉아있는 박지훈이었다.
*
"이야, 술 잘 마시네."
벌써 폭탄주 세 잔을 비워내는 지훈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애가 타기 시작했다. 1차 때도 적지 않게 마셨던 것 같은데… 아, 괜찮으려나? 어떻게든 정신줄은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점점 창백해져가는 그의 안색이 곧 한계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자, 다시!"
지훈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얄밉게도 노래를 부르는 동기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랜덤 게임은 개뿔. 어차피 무슨 게임을 해도 벌칙자는 정해져 있으면서. 여기 앉아 있는 동기들의 머리를 당장이라도 한 대씩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지훈아. 너 게임 너무 못하는 거 아니냐?"
…아오, 미치겠네. 제정신이 아니긴 한 건지 게임을 도통 이어가지 못하는 지훈이는 또 보기 좋게 얻어걸렸고, 그의 앞으로는 아까보다 더 세진 폭탄주가 놓여졌다. 그런데 내가 정말 화가 났던 건, 동기들도 동기들이지만 박지훈은 이런 상황에서도 눈은 풀려가지고 헤실헤실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짜 미련하다고 해야 되나. 이건 착한 게 아니라 정말 미련한 수준인데…. 누가 봐도 농락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너는 왜 그냥 웃고만 있는 거야. 앞에 놓인 잔도 제대로 못 잡는 지훈이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흐, 흑기사!!!"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덕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로 집중되고,
"……."
제정신이 아닌 듯한 박지훈도 눈만 끔벅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 살짝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 그게 문제겠느냐, 애가 죽어가는데.
"김여주. 너 지금 되게 속 보이는 거 알지."
"어?"
"쟤한테 무슨 소원 들어달라고 하려고?"
…아, 맞다. 그게 있었지. 흑기사를 해주면 소원 들어주는 거. 근데 나 소원 바라고 한 거 아닌데…? 일단 사람 하나 살리고 보자,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거지.
…잠깐. 생각해보니까 이거 되게 좋은 거잖아? 소원 들어달라는 핑계로 밖에 나가서 둘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얘가 나를 왜 그렇게 피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오… 처음에는 소원을 바라고 한 게 아니었지만 갑자기 구미가 확 땡겨서 나는 패기롭게 그 잔을 들어 올렸다. 패기롭게 들긴 했는데…, 대체 뭘 탄 건지 색깔도 너무 이상한 이 술이 마치 독약처럼 느껴져서 나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별의별 거 다 섞던데 오늘 죽는 건 쟤가 아니라 나 아닌가 몰라….
에이… 아니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 두 눈을 질끈 감고 그걸 입에 가져다 대려던 순간이었다.
"…흑기사는 남자가 해주는 거고."
"……어?"
"넌 흑장미."
다음에 참고해서 하라고. 뜬금없이 다니엘이 내 손에 들린 잔을 가져가 원샷을 하던 게 아니던가. 꿀꺽꿀꺽, 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며 그 이상한 술이 넘어가는 걸 보는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다니엘이 술을 다 마시고 나서 인상을 찌푸릴 때, 그때 정신이 돌아와 나는 그제서야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야, 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뻗으면 내가 피곤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마셔. 너 충분히 많이 마셨어."
"아니…."
"후배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니엘은 아주 익살스럽게도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얘 말고 내 소원 들어주는 거다?"
……아이고, 내가 못 살아. 그래도 괜찮아보여서 다행이네. 진짜 너무 미안해서 집에 갈 때 뭐라도 사줘야 되는 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네, 그럴게요."
……아, 또다.
다니엘은 소원 하나 생겼다며 좋아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나는 또 느끼고야 말았다. 알겠다며 다니엘을 향해 웃는데, 그 웃음에도 뭔지 모를 그런 불편함이 느껴졌다는걸. 뭘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느끼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네 웃음에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을까.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어, 갔다 와!"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걷는 폼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고 있는데, 이제 그만 일어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 다니엘에 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선 그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지금 가버리면, 저 아이는 또 이곳에 혼자 남겨질 거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야, 잠깐만."
"응?"
"나도 화장실 좀."
안 되겠다. 나는 뛰다시피 술집을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기 시작했다. 화장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지? 주변을 둘러보다 밖에 청소를 하고 있던 직원에게 다가가 다급하게 물으니 직원은 왼쪽으로 꺾어서 조금만 걷다 보면 바로 나올 거라며 내게 말해주었다. 왼쪽, 왼쪽으로 꺾어서 직진…. 정말 별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 그것을 되뇌고, 또 되뇌며 걷다가….
"……."
"……우욱!"
얼마 걷지 않았을 무렵, 화장실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바닥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박지훈을 볼 수 있었다. 속이 답답하기라도 한 건지 쿵쿵 제 가슴을 내리치는 힘이 꽤나 세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데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차올라서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에게로 다가가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낯선 이의 등장에 고개를 들던 박지훈은 나를 보고 놀란 듯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네가 나를 왜 피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너를 놓아줄 생각도, 피해 줄 생각도 전혀 없었다.
"답답하면 게워내. 두들겨줄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선배."
"너 계속 구역질하고 있었잖ㅇ…!"
"진짜 괜찮아요, 정말로."
내 손을 붙들던 그의 손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불편한 걸까. 속이 쓰려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칠게 제 소매로 입가를 닦아내는 지훈이를 보면서 나는 그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눈치 없이 따라온 건 아닐까, 혼자 있을 시간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뭔가 나 때문에 불편해서 속도 제대로 게워내지도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그것을 꺼내들자 화면에는 강다니엘의 이름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지금 거의 끝나가는 분위긴데.
"어어, 갈게."
전화를 끊고 나는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벽에 기대앉아 있는 게 그렇게 힘들어 보일 수가 없다. 아까 자취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마음 같아서는 그의 자취방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얘가 나를 너무 밀어내는 게 느껴져서…. 아, 어떡하지. 집에 잘 갈 수 있을까. 핸드폰을 집어넣겠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불현듯 생각나던,
아까 다니엘이 내게 주던 상쾌환.
……음.
"지훈아."
"…네?"
"이거."
나는 그의 손에 그것을 꽉 쥐여주었다.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돌발적인 내 행동에 그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래, 당황할 만하지. 갑자기 준다는 게 상쾌환이라니.
"그리고, 핸드폰 줘봐."
"……."
"빨리."
내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던 지훈이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을 때, 나는 얼른 내 번호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핸드폰을 돌려줬을 때에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당황, 그 자체였다.
"나중에 내 번호를 삭제하든, 말든 그건 네 자유야. 그런데 오늘은, 오늘은 저장해둬."
"……."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알겠지?"
꼭 해야 돼?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던 단 몇 초,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이것마저도 나를 밀어낼까 봐, 거절할까 봐. 나는 정말 이 아이에게 이 정도인 사람일까 봐. 너무 떨리지만 티는 내지 않기 위해 입안의 살을 이빨로 꽉 깨물고 있을 때….
"……네. 선배."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한시름을 놓을 수가 있었다.
"그래…. 고맙다."
지금 '고맙다' 라는 말이 적절한 말인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서 그에게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 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다니엘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래, 끝내 궁금증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다음에도 기회는 있겠지. 오늘은… 이 정도에 만족을 해야겠지.
마지막에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면서.
*
"…여전하네요, 선배는."
내가 안 좋아할 수도 없게.
-
희희 안녕하세여 독자님들.
어찌어찌 첫 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첫 화밖에 안 썼는데 벌써 죄송스러운,
그런 말씀을 드리자면...
이제 시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2화가 조금 늦게 업로드될 것 같습니다(;´༎ຶД༎ຶ`)
.....
금방 돌아올게요.
사랑합니다. 모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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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루한 글에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ㅎㅎ 하트 뿅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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