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김재환. "
" ...... "
" 그래서 넌 이제 나 안 볼 생각이야? "
" ...... "
" 너 진짜.. 이기적이다. "
" 그러는 너는. "
" ... 뭐? "
" 내 입장에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잖아. "
순식간에 정신이 멍해졌다. 김재환한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도 난 너무 당황스러운데,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던진 말은 조금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네 입장.. 그래, 네 입장. 솔직히 거기까지는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근데 네 입장을 어떻게 생각해. 지금도 이렇게나 머리가 아픈데.. 나는 이해가 안간다고. 니가 날 좋아한다는 그 이유가 10년은 더 넘게 알고 지낸 우리 사이를 이렇게 갈라놓는다고? 고작 그거 하나에 우리가 무너질 사이였다고?
나는..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재환아.
" 김여주, 김재환 니네 언제 사귀냐. "
" 이쯤되면 사귈 때 됐다. 인정? "
" 인정- 쟤네 분명 하나는 좋아하고 있다니까? "
" 난 김재환한테 건다. "
" 나는 여주 같은데.. "
그렇게 너네 둘은 언제 사귀냐며 주변에서 들들 볶을 때도,
" 야씨, 정세운 미쳤어? 뭐 여주 같은데?? "
" 너넨 얘가 여자로 보이겠냐? "
" 야 김재환, 그정돈 아니지! "
" 아니긴, 저기 거울 좀 보고 와라. "
" 이게 진짜.. "
우린 아니였고.
" 엉엉.. 김재환 죽여버려.. "
" 여주야, 그게 아니고.. "
" 뒤져. 그냥.. "
" 야, 진짜 공이 거기로 갈 줄 몰랐다니까.. "
" 시끄러- 아파 죽겠어. 진짜.. "
" 어디, 얼굴 좀 봐. "
" ...... "
양 손으로 내 볼을 그러쥔 채 새삼 걱정하는 니 얼굴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을 때도.
" 어.. ㅇ.. 야.. "
" 엉..? "
" 너 코피, 김여주 너 코피 나는데? "
" 뭐?? 아씨. 진짜 죽여버려, 김재환!!!! "
우린 아니었는데.
" 이제는 너 친구로 못 봐. "
" ....... "
" 진심이야. "
결국엔 우리도 그렇게 될 사이였다는 게, 난 믿기지가 않아.
남들이 아무리 우리 둘을 엮어도, 우린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니리라고 생각해왔는데. 마치 어릴 적 믿었던 신의 존재가 모두 환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 사이도 결국엔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내 오랜 믿음을 하루 아침에 박탈 당한 기분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둘 중 누군가 결혼을 한들 서로가 우선은 못되어도 고민이 생길 때면 언제든 집 앞 포장마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일 사이는 될 거라고. 성별이 다르기에 남들 눈에는 이상해 보일 수는 있어도, 서로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라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이토록 한심한 생각이었단 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친구와 연인 사이 W. 리틀걸
- 쉬어가는 단편, 김재환ver -
세정(구구단) - 꽃길 (Prod. by ZICO) (Inst.)
" 어, 김재.. "
" 약속 있는 걸 깜박했네. 먼저 간다. 얘들아. "
그날로부터 거진 한 달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김재환은 지금까지 정말 철저히 나와의 인연을 끊어냈다. 쟤가 원래 저렇게 단호한 애였나. 내가 알던 김재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 탓에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반응들은 덤으로 나를 시달리게 만들었다. 너네 왜 요즘 같이 안 붙어 다니냐, 둘이 싸웠냐, 누가 잘못한 거냐 하는 물음들 속에서 난 그 어떤 것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우리가 싸운 것도 아니고, 누가 잘못한 일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그나저나 내가 김재환이랑 안 붙어다니는게 이렇게나 반응이 뜨거울 일인가..(한숨)
" 김여주! "
" 아 왜, 너도 나 들들 볶으러 왔어? "
" 뭔 소리야. "
" 아님 말고- "
" 오늘 술 마시자. "
" (단호) 싫어. 피곤해. "
" 아~ 아쉽네. 오늘 재환이도 온댔는데. "
" (솔깃) "
" 콜? "
" 큼큼.. 어디서 마시는데? "
이따 6시에 연락하겠다는 강다니엘의 말에 대충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뭐 김재환이 보고싶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그냥, 16년 우정을 하루 아침에 저버린 니가 나없이 얼마나 잘 살겠냐는 그런 심보였던 것 뿐이지. 그리고 어쩌면 화해, 그래 화해랄 것도 없지만 너랑 화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마 재환이 니가 잠깐 착각했던 것이라고, 그렇기에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하는 일말의 기대였다.
" ... 김여주 온다고는 안했잖아. "
... 그런데 내가 괜한 기대를 했던 거지.
" 야 재환아, 왜그.. "
" 미안한데, 난 이만 가야겠다. "
술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눈이 마주친 김재환은 필터링 하나 거치지 않고 나를 데려온 강다니엘을 향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나 싫어할 정도로 우리 사이가 틀어졌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는지 당황한 강다니엘과 제 가방을 챙기는 김재환 사이에서 난 가만히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도 이정도까지였는 줄은 몰랐지.
" 다음에 보자. 다들. "
" 야. "
" ...... "
" 너 거기 서. 김재환. "
" . ..? .. 너 뭐하는, "
얼마 지나지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을 지나쳐 가는 김재환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까지 사람 꼽줄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까지, 기분 비참하게 할 이유는 없었잖아. 꾹 다문 입술에 결국 상처라도 난 듯 비린 피맛과 함께 따끔하는 느낌이 들었다. 끌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앞서 가는 김재환의 팔을 잡아 내 쪽으로 돌려 세우자 금세 당황한 얼굴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 너 다시 앉아. 내가 빠질거니까.. " 순간 울컥하는 감정들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겨우 참고 녀석의 팔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웅성거리는 나머지 애들과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강다니엘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짧게 전하고 저를 붙잡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녀석의 어깨를 치고 지나쳐 술집 문을 박차고 나왔다.
" 나쁜 새끼... "
술집 문을 나서자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했으며 강다니엘의 꼬임에 넘어간 내 자신을 자책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쳤던 김재환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았다. 정말 너무 억울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혼자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종합해봤을 때, 갑이 되어야하는 쪽은 분명 내 쪽인데 어째서 내가 을이 되어 있는 건지. 언제부터 김재환의 자리가 나한테 이렇게 큰 존재였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더 억울한 건, 넌 나 없이도 그렇게나 멀쩡했다는 거지. 좋아하는 쪽은 분명 니 쪽인데. 빌어먹을, 항상 이런 식이야. 망할 김재환..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겨우 닦아내고 마음을 추스렸다. 그치만 이 기분에 집에 들어갔다간 더 기분이 우울해질 것 같아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짤랑, 불행하게도 가난한 지갑 사정 탓에 편의점에서 겨우 맥주 한 캔과 오징어를 사들고 편의점 앞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대충 의자에 걸터앉은 채 질겅 질겅 오징어를 씹으며 속으로 김재환을 욕했다(실은 밖으로도 했지만). 근데 대체 이 놈의 눈물은 왜 자꾸 나려하는지. 예전의 다정했던 김재환 모습이 떠올라 또 혼자 테이블에 고개를 쳐박고 눈물을 찔찔 흘리는데,
툭-
테이블 위에 느껴지는 무언가 묵직한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한참 속으로 씹고 있던 인물의 등장에 이게 꿈인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뭐야, 김재환..
" 꼴랑 한 캔이 뭐냐. "
" 뭐야 너.. "
" ....... "
" 왜 왔어, 그렇게 꼴보기 싫어하면서.. "
" 너 입술, "
" ....... "
" 피 나더라. "
' 또 상처 났어? 전국 후시딘 다 쓰겠다. 아주 '
' 김여주, 넌 나쵸가 그렇게 맛있냐- '
' 그래서 어딘데, 나 없이 어떻게 살려고 하여간 '
짜증나, 진짜 너 ...
이런 건 또 왜 사와.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어할 때는 언제고 또 왜 사람을, 바보를 만드냐고. 너는.. 연고 이런 거 사온다고 내가 감동이라도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 테이블 위에 놓여진 후시딘과 면봉, 그리고 내가 매일 달고 다니던 나쵸 과자봉지가 든 비닐봉지를 본 순간 떠오르는 과거 회상들과 함께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였다. 꼭 이렇게, 마냥 미워할 수도 없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해. 네가 뭔데 진짜..
" 아까는 미안해. "
" ....... "
" 내가 좀 오바했어. "
" 그렇게라도 안하면, 나 진짜 평생 너 못 볼 거 같애서. "
근데 왜 니가 울고 그러냐. 난 진짜 예전부터 너 울면 머릿 속이 새하얘진다니까. 아까도 얼마나 당황했는 줄.. 야 너 또 울어?
이상하게 눈 앞에 서서 내게 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김재환의 모습에 긴장이 탁 풀리고 더 눈물이 났다.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한 김재환이 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허둥대던 손길이 내 어깨에 닿는 순간 마치 그게 내 눈물샘이라도 자극한 것처럼 더 눈물을 쏟아내버렸다. 그리고 어쩌면 나, 김재환에게 말려버린 것 같다고. 매번 그렇게 내 옆에서 다정하게 대해준 건 제 빈자리를 이렇게 크게 느끼게끔 만들고자 했던 김재환의 계략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 끅.. . 나쁜 놈아.. "
" 미안해 내가, 아.. 진짜 미치겠네. "
" ...임져- "
" ... 뭐? "
" 엉엉.. 책임지라고 망할 놈아. "
" 뭘 책임.. "
" 이제 너 없이 못 살겠으니까 책임 지라고.. (엉엉) "
헉- 내가 지금 무슨 말을, 그러니까 나 진짜 김재환한테 말려든 거지 이거..? 내 입에서 튀어나와 버린 말을 채 주워담기도 전에 토끼 눈을 한 김재환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꼼짝 없이 말려든 꼴이었다. 그리고 놈은 " 여주야, 너 그 말.. "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그러니까, 아니야. 니가 생각하는 그런, 나도 널 좋아하게 됐다거나 하는 말도 안되는 그런 게 절대 아니..
와락,
"야, 너.. 이거 안놔? "
" 응. 못놔- "
" ....... "
" 너 이제 못 돌아가. "
" 야, 그게 아니... "
" 친구는 끝인거지. "
귓가에 들려오는 의미심장한 말과 작게 웃는 김재환의 목소리를 끝으로, 친구와 연인 사이 그 애매한 경계선에 걸쳐 있던 우린 결국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다. 우리의 싸움은 결국 김재환의 승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억울하긴 하지만 그게 마냥 또 나쁘지 않은, 그런 낯 간지러운 사이로 말이지.
**
에필로그 (ver.재환) |
* 김재환의 숨은 조력자는 누구인가.
" 그래서 김여주 다신 안 볼꺼가? " " ....... " " 야 솔직히 말해봐라, 니 지금 보고싶지? " " ... (끄덕) "
" 하- 답없는 새끼. " " 야, 너는 여자 많이 만나봤잖아. 좀 도와줘. " " 이런 케이스는 또 처음이라.. " " ....... " " 진짜 답없다. 니네. "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 머리칼을 넘기는 강다니엘을 보며 재환은 금세 울상을 지었다. 그러게, 답 없네. 제가 생각해도 답답한 상황인 탓에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참 껄끄러운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주변에 믿음직스러운 건 강다니엘뿐인 걸 어쩌겠냔 말이지. 여전히 골똘히 생각에 잠긴 강다니엘을 바라보던 재환은 다니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한 번만 좀 도와줘- "
"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 " (꿀꺽) " " 김여주도 니 빈자리를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한데. "
" 오..! " " 그렇게 바로 좋아할 일은 아니고- " " (시무룩) " " 강력한, " " ...? " " 한 방이 필요하다. "
의미 심장한 다니엘의 말에 덩달아 진지해진 표정의 재환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재환의 귓가에 그 강력한 한방과 관련된 계획에 대하여 속삭이자 가만히 경청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재환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근데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이번엔 제 코를 긁적인 재환이 다니엘에게 걱정스러운 어투로 묻자 그런 재환이 답답하다는 듯 다니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이고, 답답아.
" 그래서 지금 이거보다 더 나은게 뭐 있는데- " " .. 딱히 없지. " " 그럼. " " ....... " " 실행에 바로 옮겨야지.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을 모으며 여주의 행방을 찾는 다니엘이었다. 둘의 발전에는 걷는 김여주 위에 뛰는 김재환, 그리고 나는 강다니엘(a.k.a 갓다니엘)이 있었다. (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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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아녕하세요 독자님들 ! ! 리틀걸입니다 :>
정말 너무나 뜬금없이 단편을 들고 왔네요.. 쉬는 날인 김에 세운이 꺼 조금 연재해두다가 갑자기 삘을 받는 바람에 탄생한 재환이 단편이었습니다 (짝짝)
단편은 항상 끝맺음이 어려워서 (장편도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도 어영부영 어찌 끝을 낸 거 같은데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ㅎㅎ
그럼 다음 번엔 세운이 글로 오도록 하겠습니다 - ! 아마 이번주 일요일쯤 될 거 같아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단편 멤버 및 소재 신청은 항상 받습니다. ( 연재 진행은 작가 마음이지만 흑.. 능력치가 부족한 탓에.. )
그럼 내일부턴 다시 혐생의 나라로... 독자님들 잘 지내시길 바래요 (오열)
그럼 전 이만.. 세운이 재환이 직캠보세운*_*
+ 간혹 작가가 글을 올려놓고 수정하는 때가 있으니 추가되거나 바뀌는 부분이 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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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님들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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