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호닉 : 복숭아 *
두 눈알을 통해 도경수가 시야에 담겼다. 여전히 빙글빙글 도는 의자를 제치고 도경수의 앞으로 달려갔다. 우어어어어엉ㅇ엉엉엉!!!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나와 눈을 마주한 도경수가 움찔 놀라 팔을 뻗었다. 난 그대로 무릎을 꿇어 슬라이딩을 시전했고 도경수의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도경수는 말이 없었다. 어느샌가 터져나온 눈물 콧물이 도경수의 바지를 적셨다. 말 없이 찔찔거리며 도경수의 다리에 매달려있었다. 주위가 고요하다. 따듯하고. 물컹하다. 가만히 눈알을 치들었다. 내 코야. 어째서 도경수의 음부에 쳐박혀있는거니? 도경수의 중요한 그곳이 내 눈물 콧물로 물들었다. 고개를 들었다. 도경수가 날 내려다본다. 순식간에 시야로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뺨이 이글거렸다. 난 자빠져있었고. 도경수는 서있었다. 거시기를 적신채로.
"…씨발?"
정신이 들었다.
"너, 너. 씨발?"
얜 날 모른다.
"너 누구야."
골반왕자다 시팔.
"왜 그래?"
비글머신 김종대가 뒤늦게 나타났다. 씩씩대는 도경수의 존나게 좁은 어깨를 붙잡은 채였다. 짙은 회색으로 잔뜩 젖은 도경수의 교복을 발견한 김종대가 주둥이를 나불댔다. 지렸냐..? 그것도 존나게 진지하게. 도경수는 제 어깨를 쥐어잡은 허연 손을 내치며 악을 썼다. 야 씨발 너 뭐냐고! 뭔데 내 죤슨을 더럽혀! 아니, 내 바지를 더럽혀! 인어공주 마냥 엎어진 채로 아련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골반왕자라고 씨팛놈아. 이 골반이 안 보이냐? 속으로만 뇌까리며 개길뿐이었다. 와 나 씨발. 얼음주먹은 YAMA가 도셨는지 제 앞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곤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눈을 마주했다. 가만히 내려다본다.
"너 누구,"
"누구세요!!!!"
"뭐?"
"누구십니까!!!!!?"
"아니, 씨발. 니가 시끄럽게 해서 조용히 하라고 왔더니 내 바지 적셨잖아."
"사람을 잘못보았습니다!!!!!"
"이 병신아 내가 장난치는 것 같냐?"
"미안합니다!!!정말로 잘못봤습니다!!!!"
"너 진짜 뒤진다."
라며 내 멱살을 쥐어잡았다. 이 자식은 '뒤진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분명했다. 내게 누구냐고 묻기 전 나는 이미 골반왕자임을 밝혔었다. 인어공주의 자태로 골반을 뽐냈다. 이 골반을 보고도 눈치를 못챈게냐? 이런 아둔한! 난 분명히 골반왕자임을 밝혔고. 멍청한 도경수는 모른다. 조용히 도경수의 손을 풀었다. 멍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학원이 늦어서 이만. 깍듯이 목례하고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걸린 가방을 맸다. 좋았어. 굉장히 자연스럽다. 어차피 도경수는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만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앞으로 마주 칠 일은 없을것이다.
난 기적 같게도 자연스럽게 그 현장에서 빠져나왔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도경수와 피시방에서 만난 뒤로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급식판에 코를 쳐박고 우악스럽게 주둥이로 밥을 밀어넣었다. 왁자지껄하던 급식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제 길을 걸어가던 학우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갈라졌다. 모세의 기적처럼. 학우들이 내 준 길을 통해 걸어나온 사람은 도경수였다. 난 급식실 구석에 있었고 도경수는 입구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내려 식판에 얼굴을 묻었다. 호로로록, 호로로록, 신경쓰지 않은 채 국을 떠먹었다. 그때였다. 입소리가 다시금 터져나왔다. 고개를 들었다. 도경수가 밥을 먹고있는 학생을 내치고 식탁 위로 올라가 섰다.
"골반왕자 찾아요."
"푸훕!!!!!!!"
"골반왕자 찾습니다. 골반이 큰 남자. 찾아요."
입으로 들어간 국이 코로 뿜어져 나왔다.
"크헉, 켈록, 콜록! 쿨럭, 켈룩!"
"지금 나오면 한 대."
"………."
"나중에 내가 찾아내면 알지? 찍자옳."
"………………."
내 몸은 어느새 식탁 아래에 구겨져 있었다. 식탁의 쇠다리를 붙잡은 채 몸을 벌벌 떨었다. 야! 다리 떨지마 미친놈아! 저 멀리 앉은 학생이 친구를 나무랐다. 지랄하네! 니가 떠는 거잖아! 지진난 줄! 히익, 하악, 들숨을 들이마시고 날숨을 내뱉었다. 날 까맣게 잊어버릴 줄 알았던 요망한 도경수는 보복을 위해 날 찾았다. 난 식탁 아래를 기었다. 악! 씨발놈아! 발을 밟고 지랄이야! 티격태격 지껄이는 애새끼들 아래를 빠르게 지나갔다. 식탁 아래를 기어 끝에 다다랐다. 버젓이 서있는 다리가 줄지어 서있었다. 빼곡히 들어선 나뭇가지 사이를 매끈하게 지나가는 스네이크에 빙의해 다리 사이를 기었다. 하악, 하악. 무슨 시발. 이게 무슨 경우야 씨발. 개도 씨발. 하악, 밥 먹을 땐 안 건드리는 하악, 데. 왜 그동안 등교도 씨팔 하악, 안 하더니. 하필 밥을, 하악, 하악, 쳐 먹을 때. 후우, 와가지고 개 지랄인지. 하악. 하악. 얼마나 기었을까. 급식실 후문이 보였다. 미개한 학우들은 내가 본인들의 다리 사이를 기어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씨, 씨발. 다, 다 왔다. 다 왔어!!!!
"거기 기어가는 애."
"…………."
"거기 기어가는 애."
"……………."
이 급식실에 나 말고 누가 또 기어다니나? 가볍게 무시한 채 기었다. 열심히. 근데 또 부른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싶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껌뻑껌뻑, 수 백개의 눈알들이 나를 향한 채였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우직하게 서있는 얼음주먹 개씨발놈. 유난히 큰 안구를 깜빡이며 날 쳐다본다. 엎어진 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 쪽에 나 말고도 기어가는 애가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는 지랄이었다. 나 밖에 없네?ㅋ
"……………."
가만히 모가지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
차가운 지면에 이마를 맞대었다.
"골.반.왕.자.찾.아.요."
"…………………."
섬뜩한 음성이 바로 뒤에서 울렸다.
"………………."
"야, 고개 들어봐. 너지? 골반왕자."
"………………."
"맞지? 맞네."
"아닙니다!!!!!!!!!!! 저 골반 좁습니다!!!!! 아임 슬림!!!!!"
"지랄하네 너 맞잖아. 고개 들어."
그렇게 난 너무나도 쉽게 도경수에게 발각되어 잡혔고 왠일인지 주먹부터 날릴 것 같던 도경수는 내 폰을 꺼내라더니 제 번호를 찍고서는 사라졌다. 나 같은 찐따가 도경수랑 말을 섞어서 그런 것일까. 저 찐따새끼랑 도경수가 폰 번호를 교환했다고 전교에 순식간에 소문이 났고 학우들은 소곤댔다. 당일 날,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에 어깨를 펴고 당차게 복도를 누볐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찐따 새끼에서 셔틀로 전락해버렸다. 급식 시간이 끝나 갈 때 쯤 당당하게 등교 한 도경수가 우리 반으로 왔다. 도경수는 바로 옆 반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주목되었고 내 앞에 선 도경수는 내 앞 자리 학우를 쫒아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뒤돌아 나를 마주봤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교과서 귀퉁이를 찍, 찢어낸 도경수가 병신같이 베시시 웃더니 내 필통에 손을 넣었다. 아니 씨발, 그건 안 돼. 내 미키마우스 볼펜! 만지지마! 는 내 속마음이었다. 도경수는 찢은 종이 위에 볼펜을 휘갈겼다. 그가 종이에 쓴 내용은 다름아닌 아디: OOOO, 비번: OOOO 이었다. 딱 봐도 게임 아이디였다. 그래. 예상 했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빵을 나르느니, 집 구석에 쳐박혀 게임셔틀이나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근데,
"타이니팜."
"어, 어?"
"깔아."
"…어? 타이니팜?"
"그래. 타이니팜 깔으라고."
도경수가 내게 시킨 셔틀 일은 게임이 맞았다. 근데 씨팔. 세상에 뭐? 뒁물궤임~~? 뒁물궤임~~~?! 도경수의 지시는 이러했다. 1. 친구 농장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에게 밥을 줄 것. 2. 밥을 주기 전, 이웃들에게 안부 메세지를 남길 것. 3. 1시간 간격으로 동물들에게 애정을 먹여 교배를 시킬 것. 4. 작물은 30분 간격으로 심고 재배 할 것. 5. 이웃들의 농장을 돌아다닐 때, 스크린 샷으로 이웃의 동물을 기록 할 것. (※ 필시 전설의 동물을 모은 이웃이 있으면 전화 할 것.) 6. 1일에 1번씩 알을 구입해 깔 것. 7. 도경수의 콧구멍에 미키마우스 볼펜을 쳐박을 것^^^^^^! 씨발 하도 많아서 기억이 안 난다. 리스트 목록을 써내려간 도경수가 고개를 들더니 날 마주봤다. 그러더니 얼굴을 슥 내민다. 깜짝 놀라 뒤로 빼니 손가락을 까딱인다. 움찔움찔 슬그머니 다가갔다.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유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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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랑 장례식 갔는데 이게 맞나 좀 봐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