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아니 선배 저 이런 거 못해요. 아니 안 해!”
“이시민, 네가 여기서 제일 동안이잖냐. 오빠가 부탁할게, 어?”
“이럴 때만 오빠냐? 어? 뇌주름 하나는 오빠가 더 동안인 거 같은데. 네가 잠입해.”
“미친년, 말하는 것 봐.”
“그러는 오빠야 말로 어디 한 대 맞고 왔어? 갑자기 웬 잠입 수사야!”
“자자, 다들 이제 그만 싸우지?”
“…캡틴!”
팀장인 태용의 등장에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눈꼬리를 내린 채 그를 바라보는 시민이었다. 태용의 등장으로 동영과 시민이의 희비가 교차하는 듯 싶었다. 사이에 낀 민형은 그런 호석과 시민을 보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하던가. 태용의 말에 동영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그래도 고등학교 잠입 수사엔 이시민이 딱이라니까?”
“그래도 꼭 시민 선배여야 해요? 상대는 여대생 성폭행 살인 사건 범인 K 그룹 아들이에요.”
가만히 동영의 말을 듣고 있던 민형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동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 민형의 말에 동영 역시 완고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이번 건 나도 양보 못해.’ 라고 대답했다. 아씨…! 그냥 내가 가면 될 거 아냐! 사이에 있던 시민이 결국 답답하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영은 굳어 있던 표정을 펴며 그녀의 팔에 매달려 환호를 질렀다. 정말이지? 말 바꾸기 없기다. 이번 사건만 잘 마무리 되면 오빠가 한우 쏜다, 콜? 어때 괜찮ㅈ…! 아 왜 때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동영의 입이 얄미워 보였는지 시민이는 그의 입술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가만히 그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태용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민이에게 물었다.
“이시민, 정말 괜찮겠어?”
“하기 싫어도 어쩌겠어요. 김동영 저 놈이 저 아니면 안 된다는데.”
“…….”
“오랜만에 고삐리들 사이에서 젊은 척 좀 하고 그러죠, 뭐.”
전 그럼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제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동영과 민형, 그리고 태용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 시민이는 제법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강력계를 벗어났다.
***
“그러니까 캡틴 말은 여대생 성폭행 살인 사건 범인인 K 그룹 아들을 알아오라는 거죠?”
“눈치가 빠르네.”
“근데 애초에 범인을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럼 잠입 수사도 안 했겠지. 아마 이번 수사는 장기전이 될 것 같다. K 그룹에서 손쓰기 전에 우리가 먼ㅈ…!”
“시민이, 민형이 보호자 분이시라고….”
“아 안녕하세요. 김남준 입니다.”
제길. 교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시민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벌써 10년이 되어가는데, 이게 무슨…. 시민이의 옆엔 제법 단정한 차림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민형이 있었다. 태용은 그런 민형과 시민이의 옆에 서서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두 아이들 부모님이 많이 바쁘셔서 삼촌인 제가 대리인으로 왔습니다. 보기 좋은 웃음으로 여교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태용의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진 않았다. 처리해야 할 서류를 모두 끝낸 건지 태용은 여교사를 향해 간단한 목례를 하고는 시민과 민형을 바라봤다.
하나님, 김동영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
"시민이는 동혁이 옆에 앉고, 민형이는 음…. 인준이 옆에 앉을까?”
“네.”
방금 전 교무실에서 태용과 인사를 나누던 여교사가 민형과 시민이의 담임이었는지 둘은 어색한 시선을 주고 받으며 반으로 들어가 지정 된 자리에 앉았다. 시민이 동혁의 옆에 앉아 짐을 정리하면 그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시민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야. 너.”
“……?”
“너 고등학생 맞냐?”
“…….”
“생긴 것만 보면 서른이라 해도 믿겠다?”
시민과 동혁의 앞자리에 있던 민형이 그의 말을 들었는지 제법 날이 선 눈으로 동혁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처음부터 저와 민형을 쫓던 인준의 시선이 탐탁지 않음을 느낀 시민이 민형의 등을 쿡 - 하고 찌른 덕분에 민형은 고개를 돌리며 짐을 마저 풀었다.
“초면에 인사 한번 화려하네.”
“난 이걸 인사로 받아들이는 네가 참 신기한데.”
“…악담 고맙다.”
“뭘 이 정도 가지고.”
고개를 으쓱하는 동혁의 반응에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던 시민이었지만 이번 사건만 마무리하고 나면 긴 휴가를 준다고 했던 캡틴, 태용의 말을 곱씹으며 화를 꾹 삼켜냈다. 앞자리인 민형 역시 썩 기분이 좋아 보이던 것은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이 조례를 마치고 교실을 나가면 아이들은 쉴 틈 없이 입을 움직이기 바빴다. 그런 아이들을 틈타 시민과 민형이 교실을 나가려 자리에서 일어나면 민형의 짝이던 인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민형과 시민을 멈춰섰다.
“너희 둘, 뭐야?”
아, 좆됐다. 민형과 시민이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동시에 생각했다. 잠입 수사 첫날부터 고생하게 생겼다고.
CAST
이시민 (29)
인천 경찰서 형사과 강력 2팀 막내 이시민. 경찰인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저도 형사가 되겠다고 한 시민이었지만 동영과 같은 팀으로 배정을 받고 난 후로는 형사가 된 걸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 흔히 말하는 기분 파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 주로 정보를 담당하는 동영과는 다르게 현장에서 움직이고 여자라고 무시 받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해, 욱하는 경우가 많은 게 흠이다.
이민형 (27)
인천 경찰서 형사과 강력 2팀의 에이스이자 막둥이 이민형. 민형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덕분에 스펙타클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며 형사가 되길 원했다. 인천 경찰서 형사과 강력계 멤버 중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진 넘버원 총잡이. 총잡이 뿐만 아니라 여러 무술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시민이의 오빠인 동영의 애정의 주인공. 일에 있어서 매사에 침착하고 냉철한 성격 덕에 강력 2팀의 성적을 높여주는 1등 공신. 아무리 냉철한 민형이라고 해도 유일하게 그를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시민이다. 동혁의 앞에서만 지는 모습을 보이는 여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민형은 답지 않게 괜히 속으로 동혁을 욕하기 바쁘다.
김동영 (30)
인천 경찰서 형사과 강력 2팀 정보 담당 김동영. 시민이의 하나 밖에 없는 친오빠로 알고 보면 시민 바보. 시민보다 나이는 한 살 많지만 철은 없어 보이는 게 함정. 정보 담당이라 해서 약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강요로 배워온 태권도 덕분에 누구에게 당하고 있을 상대는 아니었다. 너무 촐싹대고 시끄러운 덕분에 잠복 수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달리기 하나는 누구보다 빨라서 범인이 달아났을 때 만큼은 제법 쓸모 있는 동영이다. 하지만 단 5분을 가지 못하는 그의 진지함이 동영의 문제 아닌 문제.
이태용 (35)
인천 경찰서 형사과 강력 2팀의 유능한 팀장.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된 만큼 태용의 실력 또한 출중했다. 그야말로 경찰 계의 엘리트. 많은 사람들이 그 머리면 더 좋은 직급을 얻을 수 있는데 왜 형사 팀장이 됐냐고 물어보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뭔가 간지나잖아요.’ 알 수 없는 정신 세계. 가끔은 돌팔이에 사기꾼 같은 면모를 보이지만 일 처리 하나 만큼은 세계 최고인 태용이기에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