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댓 개의 컴퓨터가 돌고있는 정보실 맨 가쪽 책상에 앉아 열심히 모니터를 지켜보던 태일은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숨을 푹 내뱉었다. 벌써 몇 개월째 하락하고 있는 주식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모아 두었던 여유 자금 중 일부를 기나긴 고민끝에 투자한 기업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주가의 하락은 이 곳의 문제만은 아닌듯 대부분 기업들의 꺾은선 그래프들도 붉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직장 동료인 산치스의 사례처럼 하루아침에 주식이 휴지쪼가리로 탈바꿈할 일이 벌어질수도 있을거라 생각하자 태일은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오르면 손해가 날지언정 당장 팔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제발 여기서 더 떨어지지 말아라....이제 진짜 떨어질 곳도 없는데....
마우스를 부여잡은채 두눈을 꼭 감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태일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옆에 앉아 태일의 모니터를 구경하던 파블로는 어느샌가 정자세로 앉아 열심히 서류를 작성하는 척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태일은 요지부동이었다.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내뿜으며 태일의 검은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던 그림자의 주인공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고 곧이어 퍽- 하는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태일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 아악-!!!!! "
"근무중에 딴짓하지 말라고 경고했어, 안 했어!"
화끈거리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뒤돌아 누구냐고 소리치려던 태일은 그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자 나오려던 말을 도로 목구멍으로 넘겨야 했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정보팀장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었지만 속으론 불만이 가득했다. 솔직히 비상도 아니고, 정보부라고 해봤자 위에서 일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자리인데. 잠깐 딴짓했다고 남의 귀한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매운 손길이 야속했다. 자꾸 이렇게 때리면 진짜 바보된단 말이에요.
"이태일. 네가 주식 본다고 떨어진게 다시 올라가나?"
"...아니요."
"내가 저녁시간까지 제출하라던 건 다 하고 딴짓인가?"
"...........아니요."
할 말이 없었다. 요 근래 갑자기 꼬인 일때문에 팀장은 평소보다 예민했고 다들 쉬쉬하고 피하는 중에 하필이면 평소 눈치보고 근무 중 딴짓 하는 것이 일상인 태일이 걸렸기에 곧이어 떨어질 불호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듯 했다. 그것과 더불어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전부 풀 생각인듯 팀장은 그 특유의 진중하고 어려운 분위기에 더해 은근한 살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시말서."
"...네?"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전번에 쓴거랑 문장 겹치지 않게 해서. 양식에 맞게. 써오세요."
"그치만, 오늘은-!!"
"...못 쓰겠다는 겁니까?"
저녁시간이 되기 전까지 제출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 서류는 아마 지금부터 시작해도 빠듯할 것이 분명한데 거기에 시말서라니. 잘못하면 무지하게 깨지고 최악의 경우 밤샘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태일은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나 아까보다 더 딱딱히 굳어버린 팀장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기에 이어지는 말은 서둘러 삼키고 태일은 고개를 푹 숙이며 힘 없이 대답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오늘도 일찍 들어가기는 글렀구나.
ㅡ이태일. 25세.
이탈리아 DIA기관 정보팀 소속.
* *
이탈리아 서남단에 위치한 시칠리아섬 북부. 숲으로 통하는 입구에 놓인 관문을 지나 외부에서는 볼수 없는 도로를 따라 10분 가량 여유로이 달리던 BMW의 차창 밖으로 고풍스러운 저택의 지붕이 나타났다. 울창한 나무 사이에 가려져 있는, 17세기 초 유럽을 지배했던 바로크양식이 아닌 우아하고 섬세미가 돋보이는 로코코양식의 저택은 겉으로 보기에도 으리으리 했다. 저택 앞 커다란 검은 철제문을 지키고 서있던 경비는 잠시 BMW를 세우고 운전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문을 열고 차가 지나갈 때 까지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철제문을 지나고도 5분가량을 더 달리자 드디어 목적지인 저택 입구에 도달했다.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려 현관을 지키고 선 보초의 인사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는 지호의 표정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어 간부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뒤 맨 꼭대기층의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도착했다는 벨이 울리고 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에서 발을 떼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맨 꼭데기 층은 복도만 덩그라니 놓여진 채 방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말 없이 오른쪽 복도의 맨 끝으로 걸어가던 지호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있는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붉은 계열의 물감과 어두운 계열의 물감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그림을 평소와 같이 위아래로 한번 훑은 지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그림이다.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고 희고 긴 손가락을 뻗어 오른쪽 아래에 검은색 물감과 흰색 물감이 마블링 되어 있는 부분을 그어내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드르륵-거리는 톱니바퀴소리와 함께 그림이 왼쪽으로 움직이며 어두운 통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림이 아예 왼쪽 복도 속으로 사라지고 완전히 개방된 그곳으로 지호가 발을 내딛는 순간, 어두운 복도의 벽면에 달려있던 촛대에 주황색 불이 붙어 통로를 비추었지만 이젠 놀랍지도 않은 듯 따각 따각 구두소리를 내며 통로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였다. 구불구불한 통로가 마치 터널처럼 꽤 길게 이어졌고 한참을 걷자 그 통로의 맨 끝에 위치한, 우아미가 돋보이는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별 다른 노크도 없이 버릇처럼 얕은 한숨을 내 뱉고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부드럽게 열리는 느낌이 여느 집무실과는 확실히 달랐다.
"늦었군."
불빛 한점 존재하지 않는 매우 어두운 집무실에 묘한 목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쪽 벽등을 켜졌고, 어두운 집무실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어울리지 않게 타닥타닥 장작이 타고있는 벽난로 앞 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은 이의 얼굴은 등받이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지호는 불빛 쪽으로 걸음을 옮겨 그 의자와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날씨가 좋아서."
"드라이브라도 했나?"
악의를 담지 않은 질문에 지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드라이브를 하던 말던. 온 걸로 된거 아닌가?
ㅡZICO. 우지호. 26세.
이탈리아 대마피아 'capolavoro(카포라보로)'조직 소속 간부.
**
피비린내가 풍기는 오래된 창고 한가운데 서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이의 곁에 천전히 다가섰다. 살려달라 엎드려 빌던 이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무시무시한 모습에 도리어 겁을 먹어 도망쳐야 한다는 것조차 잊은 듯 어버버 거리며 눈에 띄게 몸을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인상을 찌푸린 남자는 마이 안쪽에 넣어 두었던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으으아악!!사,사사사살려..."
자신의 동료들을 모두 한방에 보내버린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뒷걸음질 치려고 뒤로 뻗었던 두손을 앞으로 모아쥐고 싹싹비는 남자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더 이상 한 조직 보스의 위엄 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 이었다. 아까 발치에 묻은 피가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는지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끈적 거림에 또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신경쓰이는 곳은 구두 뿐만이 아니었다. 근거리에서 나이프를 들고 설치던 놈에게 탄환을 쏘기에는 상황이 안되어 맞대응 한답시고 팔을 꺾어 되받아찌르는 바람에 이리저리 피가 튀고 흘러 마이와 셔츠를 버렸다. 검은 수트는 다행히 별로 티가 안났지만 흰색 와이셔츠는 붉은 혈흔이 고스란히 남아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대로 바깥을 돌아다닐 수는 없어서 조직원을 호출했지만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야."
"ㅇ..예...-!!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돈이라면 얼마든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씨발... 나이프."
"..ㄴ..네??"
"...마음에 안 들어."
타앙ㅡ!!!!!
자신이 애용하는 피스톨에 두발정도의 탄환이 남아있었음에도, 굳이 옆에 나동그라진 놈의 안주머니를 뒤져 나온 무거운 리볼버로 눈앞에 거슬리던 이의 머리를 향해 쐈다. 사일렌서가 부착되어있지 않아 화약소리가 크게 났지만 눈하나 깜짝 않고. 머리가 날아가버린 시체를 옆으로 흘낏 보고는 뒤돌아 핸드폰을 꺼냈다.
"...연락한 게 언젠데 아직도 안와."
[다 왔어. 지금 건물 앞이야. 근데 방금 총소리는 뭐냐?]
"내가 냈으니까 닥치고 빨리 와."
신경질 적으로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은 지훈은 머리를 쓸어올리려다가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짜증담긴 한숨을 내뱉고 그나마 피가 묻지 않은 허벅지에 거칠게 문질러 닦았다. 아예 피로 칠갑을 했구만.
"하아....!!"
아까 통화를 마치고나서 액정에 뜬 디지털 시계를 확인한 지훈은 또다시 한숨을 깊게 뱉었다.
PM 11 : 21.
집에 일찍 가기는 글렀군 그래.
ㅡP.O. 표지훈. 26세.
이탈리아 대마피아 'capolavoro(카포라보로)'조직 상임 고문 겸 전속 킬러.
+)
처음 글 올려보는데... 뭔가 굉장히 민망하네여, 허허
일단 처음이라서 포인트는 없습니다. 길이는중장편정도 될거에요.
많이 사랑해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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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가 계류유산됐대...내가 말실수한건지 봐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