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교실 잘 갈 수 있제?”
점심 먹고 어디를 가야 한다며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축 처진 목소리로 연신 같은 물음만 던졌다.
“그래도 교실은 찾아갈 수 있거든. 내가 오늘 전학 온 것도 아니고.”
“내 금방 갈거니까 먼저 가있어라.”
말과 동시에 무엇인가가 내 머리위로 올라왔다. 다니엘의 손이었다. 가만히 있다 갑자기 장난기가 한껏 묻어난 웃음과 함께 머리를 헝클어버리고 그대로 가버렸다. 큰 손이 머리에서 떨어지니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괜히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다. 다니엘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OH MELLOW PEACH!
02
혼자 교실로 향하는 길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차분하게 걷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직도 머릿속엔 다니엘의 손이 둥둥 떠다녔다. 그 생각을 하니 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서 빠른 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종일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혼자가 되니 어색했다. 할 것도 없고, 교실 안에만 있다보니 답답해서 학교 지리나 살펴보자하고는 밖으로 향했다.
“어, 야. 김여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재환이가 서있었다. 다니엘과는 정반대인 반듯한 교복차림으로.
“어, 재환아. 안녕.”
“여기서 뭐하노?”
“학교 구경?”
학교 구경을 한다고 답하니, 자기가 학교 지리를 알려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다녔다. 별로 말을 많이 해본 사이는 아니지만 어색하지 않게 계속 말을 걸어줬다.
“다니엘은 아마 춤연습하러 갔을거다. 걔가 학교 오는 이유가 그거거든.”
“춤?”
다니엘과 춤. 어울리면서도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비록 본 지 몇 시간도 안됐지만, 이때까지 본 다니엘의 모습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재환이의 말로는 다니엘은 성우와 둘이서 춤 추러 자주 다닌다고 했다. 가끔 시내 나가면 버스킹도 하고, 댄스 대회같은 것도 자주 나간다고 했다. 또, 여러가지 얘기들을 해줬다. 선생님들 별명이라던지, 자기들 별명이라던지. 그렇게 얘기하면서 돌아다니다보니 종이 쳤고, 교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드가라. 내는 체육수업.”
“오늘 고마웠어.”
“내가 아니라 니엘이한테 고맙다고 해라. 간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두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얘네는 사라져버리는 게 취미인가 싶을 정도로 다니엘네 무리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 저기까지 가있고 그랬다. 교실로 들어가니 다니엘이 언제 온 건지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 멜로 피치!
02
“어데 갔다오노. 니랑 놀라고 일찍 왔는데.”
“나 재환이가 학교 구경 시켜줘서 돌아다니다가.”
“안보여서 걱정했다아이가.”
"..."
“그래도 재화이랑 있었으니까 다행이네.”
앉아라. 하며 내 자리의 의자를 뒤로 뺐다. 다니엘의 얼굴을 보니 다시금 아까의 손이 떠올라 얼굴에 또 열이 오르려 했다. 볼이 빨개진 나를 보더니 다니엘은 덥냐며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었다. 손으로. 또 그 손을 보니 이번에는 진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게 뭔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계속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니 더 죽을 것 같았다.
“다니엘, 나 잠깐만 화장실 좀.”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빛이 느껴졌다. 화장실을 향해 뛰어가자마자 차가운 물로 세수부터했다. 대충 휴지로 얼굴을 닦아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릿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어, 다니엘! 왜 일어서 있니? 앉아, 앉아.”
내가 걱정됐던 것인지 다니엘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함이 +100 되었습니다.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듯 했다. 괜히 말 해가지고 바보같은 김여주. 살면서 제일 바보같은 날이 오늘이 아닐까 싶다.
다니엘과는 남은 시간동안 어색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다니엘은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를테니까. 수업시간동안은 집중한다는 명목 아래, 옆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으며 쉬는시간마다 괜히 스트레칭도 했다가 혼자 일어섰다 앉았다 쌩난리를 부렸다. 다행인 건 우리 학교는 야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교시 수업이 끝난 뒤에 도망치듯 인사를 건네고는 집으로 향하려는 나를 다니엘이 불러세웠다.
"여주야."
내 눈 앞에는 다니엘의 핸드폰이 있었고, 핸드폰 화면엔 전화번호 창이 떠있었다. 핸드폰을 건네 받아 내 번호를 찍고는 다니엘에게 돌려줬다. 만족스런 얼굴로 저장까지 마친 다니엘은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 번호, 저장해."
*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정말 이해가 안됐다. 괜히 혼자 의미부여하고 어색한 사이 만든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는데 계속 머리 위의 그 손이, 웃고 있는 얼굴이, 핸드폰을 건네주던 손이 또 자꾸만 생각이 나 그렇게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다니엘 얼굴을 어떻게 볼 지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띵-.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하니 다니엘의 톡이 와있었다.
- 오늘 하루종일 내랑 놀아준다고 고생 많았다
- 힘들면 얘기해라 안 괴롭힐게
- 아냐 오늘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
- 잘 쉬어~
톡까지도 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았다. 혹시나 피곤할까봐 눈치보면서 얘기하는 그 말투. 다니엘의 톡에 답을 하고, 괜히 좋아 보낸 내용을 읽다 문득 다니엘의 프사를 보니 자기 셀카였다.
프사까지 완벽했다. 이런 셀카까지 보고 나니 정말 내일 얼굴 똑바로 보고 얘기할 자신이 점점 사라져간다.
그래서 다니엘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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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
2화만에 드디어 다니엘과의 첫 날이 끝이 났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었던 임팩트 강했던 날입니다. 다니엘의 머리 쓰다듬기로 얼굴마저 못 보게 된 여주. 저라면 처음 보자마자 헉 하고 쳐다보지도 못할것 같은데 지금까지 많이 봤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번 화는 분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6월 달에 바쁜 일들이 몰려 있어서 이런 새벽에나 올리고.. 재밌게 읽어주셨음 좋겠습니다. 일단 1일 차를 끝내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게 좋을 듯 하여 분량이 짧습니다. 사진 혹은 브금추천은 언제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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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세븐틴 - 예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