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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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인기가수 루한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요, 아직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은 채..
짜증 나. 꾹 물어 이미 새하얗게 색이 바래진 입술은 나 슬퍼요. 슬퍼 죽어버릴 것만 같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민석의 눈동자엔 아무것도 써져 있지 않았다. 루한의 저택은 싸했다. 꺼진 텔레비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민석의 등은 슬펐다. 약간 싸늘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싸늘한 저택을 한 층 더 싸늘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니, 그것은 소름 이었다. 하지만 민석의 주변은 따뜻한 온기가 민석을 감싸 돌았다. 루한이다. 루한이야. 루한이 날 찾아온 거야. 민석은 시선을 홱 틀어 루한을 확인했다. 루한은 없다. 그저 허무함 만이 갈 곳 잃은 민석을 위로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루한의 손님이 찾아왔다.
"김민석!! 안에 있어?!! 문 좀 열어봐!!"
"....열려..있어"
"김민석, 민석아!!! 안에 있으면 대답 좀.."
문을 쾅쾅 두드리는가 싶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거실에 멍하니 서있는 민석의 모습을 본 찬열이 숨을 고르며 민석에게 다가갔다.열려 있다고... 찬열의 좁혀진 미간을 보더니 민석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루한이 없는 루한의 집도, 이젠 제 주인을 잃은 루한의 신발 두 켤레도, 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김민석. 담담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찬열의 낮고 굵은 목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무거웠다. 울음이 터졌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땅을 바라보는 민석의 모습은 초라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는 얇고 작으며 동그란 민석의 손바닥은 멈출 수 없었다. 루한, 이 사건은 나랑 종대랑 백현이가 맡기로 했다. 민석은 말없이 들었다. 죽어도 루한 사건 맡고 죽겠다고 생난리 부렸으니까 사고만 친다고 못 미더워하지 마. 이래 봬도 우리 강력계 형사들이니까. 민석은 그제야 처박은 고개를 들어 찬열에게로 시선이 꽂혔다. 종대도...? 어, 종대도 맡겠다고 했다. 그때 찬열의 벨소리가 울렸다. 싸늘한 텅 빈 집안에서 찬열의 벨소리는 더욱더 크게 들렸다. 루한의 Only one이었다.
"민석아, 어쩌지. 경찰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어, 그래 오늘 좀 힘들겠지만 당분간은 우리랑 계속 있자"
"그래, 알겠어 가자."
경찰서는 참 생소할 정도로 분주하거나 시끄럽지 않았다. 찬열이랑 백현이랑 종대가 있는 곳 이니 개장 만 못하겠구나. 하고 말하곤 했는데 강력 1반을 맡은 셋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했다. 십 년도 더 된 친구의 죽음이라서 그럴까 민석처럼 심각한 얼굴을 잃지는 않았다. 이내 백현은 민석을 취조 하기 시작했다. 김민석, 지금부터 우리는 친구 대 친구 관계가 아니라 널 검사하는 형사 대 최초 목격자이자 루한과 아주 특별한 사이였던 사람. 그 관계인 거야 알겠지? 응. 곧이어 백현은 책상에 올려져 있는 루한의 정보가 담겨 있는 검정색의 파일을 하나를 집고 민석에게로 다가와 앉았다. 백현과 민석, 그리고 찬열과 종대의 표정은 검정의 파일 못지않게 어두웠다.
"김민석 씨. 루한 씨 와는 어떤 관계였죠?"
"중학교 다닐 때부터 친한 친구였고, 루한과 같이 살았어요. 그리고.."
"연인 관계였던 건 굳이 안 쓰도록 할게."
"응."
"최초 발견자가 김민석이야. 그럼 당연히 용의자로 주목받는 건 단순히도 김민석이겠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백현이 인상을 확 구겼다. 그 들은 어느 때 보다 더 예민해졌다. 특히 종대는 더. 김종대, 넌 이 사건에 장형사 대신 후임으로 들어오겠다고 한건 너야. 잊었어? 알아. 굳이 연인 사이라고 세상 사람 모두에게 밝혀야 김민석이랑 김루한 이 안전할까? 삐딱하게 보는 것도 이제 그만하지? 예전의 중학생 때 김종대는 이제 필요 없는 거 잖아. ... . 종대는 끝내 말이 없었다.
그들이 발을 맞춰 함께 등교하던 순수한 중학교 때의 시절. 사이좋게 세 사람의 벽을 알게 모르게 갈라 왔던 것은 바로 동성연애. 루한과 민석이 중학교 3학년 때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조심스레 밝혔을 때 단 한 사람. 종대만이 그들의 등을 돌렸다. 왜? 종대는 루한을, 민석을 짝 사랑 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서로는 멀어져 갔던 것 같다. 그래서 민석은 더욱 놀랐을 것이다. 종대가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여는가 했을 그 찰나 또 예민해져 으르렁댈 뿐이었다.
본인은 무엇을 하다가 루한을 발견하였죠? 루한의 매니저 레이와 함께 회사에 좀 다녀왔어요. 루한은 방에 있었고. 아니 루한은 방에서 죽어가고 있었어요. 조금씩 민석의 어깨가 다시 흔들렸다. 미칠 것만 같다. 다시 심문은 계속되었다. 루한은 어떻게 죽어가고 있었죠?
'루한, 자?' 하고 루한의 방문을 열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침대 기둥에 기대며 루한은 죽어가고 있었다. 몇 번의 난도질을 당한 건지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루한은 피를 뿜으며 민석에게 살며시 속삭였다. 민석아, 미안해. 한 글자 하다 글자를 힘겹게 뱉어내며 루한은 눈물을 흘렸다. 민석은 놀라 숨을 거칠게 내쉬며 루한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뭐가 미안한데, 뭐가! 울지 마. 그게 루한의 마지막이었다.
의식을 잃은 루한은 고개를 떨구었다. 몸은 벽돌보다 더 무겁고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민석은 당장 레이에게로 소리를 질렀다. 레이!! 119!! 차게 식어 버린 루한을 품에 안고 꺽꺽 울었다. 루한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루한, 네가 뭐가 미안한데.. 정신 좀 차려봐, 응? 제발, 루한!!! 구급차가 올 때까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 하였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똑딱똑딱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크게 들리던 시계태엽 소리도. 깊게 패인 루한의 상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핏방울 들도. 허무했다.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루한이 없다.
루한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일까 아니면 끔찍한 타살일까, 하고 매스컴은 떠들썩했다. 루한의 죽기 전 행동들 때문인지 더욱더 루한의 죽음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1년 전이었던가, 루한의 행동은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민석에게 하는 행동, 심지어 방송에서까지 루한의 모습은 아주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도대체 루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민석의 질문에도 루한은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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