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궤도
이항대립 作
00.
모처럼 학교가 일찍 파하는 시간이다.
평소 해가 지고 별이 떠오르는, 달이 어둠을 밝혀주는 빛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왔다면 오늘은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집에 가는 날이다. 이제는 어두운 밤거리에 더 익숙해진 뇌가 오랜만에 받는 태양열에 잔뜩 들떠 있었다. 수능생에게 염치없는 행동일지는 몰라도, 교문을 빨리 나선 다는 것 자체가 묘한 흥분감을 주게 만들었다. 다만,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가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 한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수수께끼를 풀다 만 기분이 있었지만.
"이제 가려고?"
"어, 너도?"
"가야지. 오랜만에 잠도 푹 자놓고."
"웃기네, 학교에서 매일 자는 인간이 또 안 그런 척한다."
기현과 교문을 나서며 걸음을 옮겼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의 기현은 차분한 경수와 자주 어울려 다녔다. 주로 기현이 말을 주도하는 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경수도 친구의 말에 딴죽을 걸며 장난을 쳐댔다. 그만큼 야자의 부재가 좋은 것일까. 더운 열기가 간간이 부는 바람마저 뜨겁게 달궈 놓았는지 몸에 부대끼는 바람이 난방기를 틀어 놓은 양, 수분기를 잔뜩 앗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경수는 그저 이 더운 여름에서 구해 줄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기다림. 친구와는 반대 반향에 거주하는 터라 마주 보는 꼴인데 마주해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여러 대 지나갈 동안, 경수 쪽은 가뭄에 콩나물 나듯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기현도 가버리고 나자 알파로 더 휑해 보이는 정류장.
경수가 손을 들어 작은 바람을 만들어 낼 때 즈음, 멀리서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가 경수 앞에 멈춰 서고 통체의 위용을 자랑하더니 이내 뜨거운 가스를 내뿜었다. 경수가 그 열기를 피하려 버스 안으로 한달음에 올라탔다. 한산한 내부. 경수가 뒷문 가장자리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광을 바라봤다. 빈틈 없이 빼곡히 나열돼 있는 자동차들과 그들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울렁이는 공기층.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 울렁임이다. 경수는 그것을 바라보다 말고 시선을 돌려, 이제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의 모습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양산을 쓴 사람들과 개중에 간간이 보이는 남자들.
요새는 남자들도 양산을 쓰는구나.라는 의미 없는 말머리를 달며 지나가는 모습에 무의미하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다 그것도 지루해졌는지 이내 바지 속에 서로 엉켜있는 이어폰을 꺼내며 버스의 시끄러운 엔진 소음을 차단 시켰다. 평소 즐겨 듣는 노래.
JUSTIN BIEBER - PRAY.mp3
액정에 익숙한 제목이 보이고 이제는 습관처럼 자연스레 터치하며 경수가 눈을 감고 노래에 귀를 귀울였다.
귓바퀴에 윙윙대며 울리는 감미로운 선율과, 거기에 어우러지는 목소리. 언제 들어도 질리는 법이 없다. 경수는 반복 재생을 누르며 홀더 키를 이용해 화면을 꺼버렸다.
-
곧 익숙한 거리가 나오고 노변 위로 화사하게 모습을 들어 낸 꽃들이 보였다.
버스 안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의 목적지를 마지막으로 경수가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황급히 주머니 속에 이어폰을 쑤셔 넣고는 문 앞에 선 경수가 멈춰 선 버스의 통체를 시작으로 계단을 밟고 다시 여름 속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하는 편의점. 출출한데 뭐라도 사갈까.라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뱃속에서도 배고픔을 느꼈는지 꼬르륵 소리를 내며 공복감을 알려왔다.
신호등이 바뀌기 직전 횡단보도까지 걸어갈 여유는 없고, 무엇보다도 횡단보도를 가려면 꽤나 걸어야 했기에 경수는 신호등이 바뀌며 여차해서 건너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녹색의 화살표 표시에 불이 들어오고 점철이 바뀌길 기다릴 때였다. 경수가 무심코 바라보고 있던 편의점 유리창 안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나타났다. 정갈하게 잘린 머리카락과, 단정하게 차려입은 자유복.
그러기엔 너무나도 익숙한 뒤통수였다. 어디서 봤지,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가자 경수는 초록불이 켜진 줄도 모르고 멍하니 의문의 뒷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유리창 너머의 경수를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아니, 경수가 그 촌각의 개념을 너무나도 유하게 느낀 것일지도. 어느덧 차들도 신호에 걸려 전방이 고요했고 그 귀결의 끝으로 경수는 끝내 의문의 남자를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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