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픈 예감은 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걸까.
너무나도 정확하게 예상이 들어맞아서 이제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조별과제를 위해 만들어놓은 단톡방에서 숫자 2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존대하는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02
w. 갈색머리 아가씨
"여자분은 무슨 일이래요?"
"할아버지 제사..."
"남자분은?"
"할머니 기일이래요."
하아...
하필 오늘 딱 돌아가신 분들이 참 많으시네.
그래. 그럴 수 있었다. 정말 우연의 일치로 오늘 날짜가 딱 들어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 전날 그렇다고 미리 말을 하던지 했어야지. 그래야 회의 날짜를 바꾸던지 말던지 하니까.
너는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처음에는 차가웠던 아메리카노가 이제는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사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알바하는 곳에 조원들을 부를 수는 없었다. 우선 4명이 들어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 아니었다.
"4명이 모이긴 할런지 모르겠지만..."
"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 자료 온 거 있어요?
여자와 남자가 맡은 일은 결국 자료를 찾아서 너에게 보내는 일 뿐이었다.
그걸 토대로 정리를 해서 ppt를 만들고 발표를 하는 건 너와 나의 몫이었고.
너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메일 함을 열었다.
"오기는 왔는데 네이버 링크에요."
"..."
"아무래도 1학년이다보니까 자료찾는 게 아직은 어렵나봐요."
"..."
"학교 생활 적응하는 것도 어렵기도 하고..."
여자가 보낸 링크는 네이버 블로그 주소였다.
보지 않아도 뻔했다. 대충 네이버에 검색한 다음 제일 위에 있는 블로그 중 하나 복붙해서 보낸 것이겠지.
너무나도 뻔하게 흘러가는 이 상황이 지겨울 지경이었다.
너는 그저 푸스스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너 역시도 1학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요 며칠새 너를 보면서 느낀 것은 하나였다. 너는 굉장히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랑은 너무나도 다르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너는 사람을 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만큼 잘 대하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자료를 모으는 것보다는 정리하는 데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요."
"..."
"선배?"
"네? 아. 미안해요."
"근데요. 선배."
"네?"
네가 노트북에서 시선을 옮겨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너를 힐끗 보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프린트를 집어들었다.
나름 집에서 이런저런 조사를 많이 해온 모양이었다.
굳이 네가 이런 것 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언제까지 존댓말 할거에요?"
"네?"
"나 선배보다 두 살 어린데."
"..."
"선배가 저보다 더 어려보이고 그러긴 하는데 선배 불편하실까봐..."
"저 안불편해요."
"제가 불편해요."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었다. 뭐. 말 하나 놓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나는 별로 상관없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선배."
"응?"
"말 놓은 기념으로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어?
당황스럽다는 내 반응에도 너는 그저 배시시 웃어보일 뿐이었다.
웃는 낯에는 침을 못뱉는다지.
사실 못뱉을 것도 없기는 한데 지금 상황은 조금 달랐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호구같이 착한 사람이 저런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인지 불공평한 일이라고.
-
"그냥 컵라면 먹어도 되는데."
"오늘 할 일이 많잖아요. 컵라면으로는 안돼요."
"..."
네가 데리고 온 곳은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백반집이었다.
학교를 2년이 넘도록 다녔던 나도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대... 크기는 작았지만 나름 깔끔하게 정돈 되어있는 가게 안이 나쁘지 않았다.
자취를 하고 있는지라 이렇게 제대로 된 밥을 챙겨먹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기 제육 맛있어요."
"그래?"
"저도 얼마 전에 찾았거든요."
"그러게. 나도 여기 처음 와봤어."
"밥 먹고 맥도날드 가서 자료 정리해요."
"급하게 해야하나?"
"선배 알바하느라 바쁘잖아요. 못해도 오늘 자료 정리랑 ppt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 대충은 정해야 좋을 거 같아서."
"하긴. 그건 또 그렇다."
밑반찬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네가 주문했던 제육볶음도 나왔다.
따듯한 된장국 냄새가 올라왔다. 나 진짜 밥 제대로 먹은지 오래됐구나. 새삼 기분이 이상해졌다.
너는 숟가락을 들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빤히.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왜 안먹어?"
"선배가 안먹어서요."
"...그냥 먹어."
"같이 먹으려고요."
가끔 이렇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을 때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같이 누구랑 밥을 먹는 건 또 얼마만이지.
그냥 먹으면 되지... 괜히 작게 중얼거리며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그제야 너도 젓가락을 집어들었는지 작게 달칵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계란말이도 맛있어요."
"내가 먹을게."
"여기요."
너는 계란말이를 곱게 집어 내 숟가락 위에 올려주었다.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배실배실 웃으며 턱을 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꽃받침.
아무리 봐도 신기한 얼굴이었다. 글을 쓰는 과 특성상 사람을 볼 때 관찰을 하듯 묘사를 하듯 바라보는 버릇이 있는 나였다.
아무런 표정이 없을 때는 은근히 느껴지는 냉기 때문에 말을 꺼낼 수 없다면 지금은 반대였다.
"맛있죠?"
"...응."
저렇게 눈이 휘어져라 웃을 때 역시도 뭐라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는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네가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지.
그것을 모르면서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뭐... 타고났다는 거지.
"생각보다..."
"네?"
"계란말이 맛있다고."
"그쵸?"
네가 마냥 호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너는 끊임없이 내게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면서 먹을 것을 내밀었다.
아무리 내가 배부르다 말을 하고 단호하게 거절을 해도 네가 내민 음식들은 어느새 내 입 안으로 들어와있었다.
["나 진짜 못먹어."
"선배 얼마 먹지도 않았어요."
"진짜 배부른데..."
"한 입만. 응? 밥그릇에 있는 거는 다 먹어야죠."
"..."
"진짜. 진짜 마지막."]
어째 너에게 말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뭘까.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단톡방의 2는 아직까지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시간 오후 11시 반.
생각했던 것보다 정리할 자료의 양이 많지 않아 막차는 놓치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생각인가. 지금 이대로 가면 과제를 하는 사람은 너와 나 둘이고 이 두 사람은 무임승차를 할 것이 뻔했다.
심지어 발표하는 사람도 너였다. 정말 말 그대로 꿀빠는 거지.
내가 이래서 조별과제가 싫다는 거야.
교수들이 원하는 그림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현실은 매우 다르다는 게 문제잖아.
핸드폰을 침대 위에 집어던지려는 그 때 톡이 왔다. 나는 얼른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이 믿기지 않아 다시 한 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단톡이 아니었다.
갠톡이었다.
/남자조원/
- 누나
- 뭐해요?
- 바빠요?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게 하루종일 잠수를 타던 사람이 조원에게 보낼 문자인가?
심지어 나는 조장도 아니었다.
- 할머니 기일이라
-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 같이 술마실래요?
단톡이나 보세요 -
핸드폰을 그대로 집어던졌다. 저런 식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은 정말인지 너무나도 질색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던 발걸음 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뒤에서 나를 따라오던 남자는 내 어깨를 세게 그러쥐었고 억지로 내 몸을 돌리려 했었다.
그저 자신은 할 말이 있다며. 네가 생긴 것이 귀여워서 그런 것이라며 내게 말을 걸어오려 했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다시 갠톡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오면 그게 양심이 없는 거지.
[♬]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다. 양심 따위는.
"단톡이나 보라니까..."
〈선배?>
"..."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아무것도... 무슨 일이야?"
〈선배 아까 이어폰 두고가서...>
"아..."
〈내일 카페에서 드릴까요?>
"응. 그래주면 고맙고. 미안."
〈선배.>
"응?"
〈아니에요.>
"뭐야. 싱겁게."
〈내일 봐요. 잘자고.>
"...그래."
침대 위에 쓰러지듯이 드러누웠다.
머리 위로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대로 가면 너와 나 두 사람이 모든 독박을 쓸게 뻔했다.
내일 무슨 조치를 취하던지 해야지.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바로 잠들기 틀린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슬픈 예감도 들어맞았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
〈암호닉>
짱요 / 응 / 뿜뿜이 / 책상이
참고로 여주 성격 되게 쎕니다...
민현이도 마냥 약하지는 않은데 여주가 진짜 쎌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