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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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국(18)
"야, 나 지우개 좀"
(영어 시간만 빼고) 내 앞자리 앉는 애. 평소에는 말 한 마디 없더니
지우개 빌릴 때만 말을 건다. 목소리도 낮아서 무섭다고.
근데 왜 맨날 내 지우개만 빌려 쓰는 건데?
박 지민(18)
"너 나랑 친하게 지내는 거다? 나랑 친하게 지내야돼!"
첫인상이 강렬했던 애. 우리 반 친화력 갑.
이성친구도 꽤 많다.
김 태형(18)
"탄소야, 넌 언제 봐도 진짜 예쁘다"
그냥 능글맞은 애.
하루에 한 번씩 귀엽다 예쁘다 아주 그냥 지랄을 해대요.
그리고
김 탄소(18)
그냥 평범한 여고생.
열심히 살기위해 노력중.
가끔 자퇴를 꿈 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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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들과 꽤 친한 편이다.
아니지,
"야, 지우개"
얘는 제외.
아 물론 태형이와 지민이는 전정국이랑 친하다.
'나만' 안 친하다. '나만'.
전정국과는 친해지려고 해도 친해질 수가 없다.
왜냐, 쟤가 나 싫어하는 게 빤히 보이거든.
'뭐 해?' 라고 물으면
'몰라' 라는 답이 돌아왔고
'매점 같이 갈래?' 라고 물으면
살짝 고개를 젓기만 했으며
'같이 하교하자' 라는 내 말에
말 없이 가방을 메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또 짝꿍인 영어시간에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어댔다.
그 모습들을 본 지민이가 전정국에게 쪼르르 달려가
'너 탄소 싫어해?'
라고 질문하는 소리만 몇 십번을 들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전정국은 항상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면 항상
'아니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던가!'
라고 전정국에게 소리 치고 싶었다.
물론 그런 용기는 생길리가 없었다.
왜냐, 전정국이 무서웠기 때문에.
겁 많은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뒤에서
전정국을 째려보는 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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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두고보자. 내가 너랑 친해진다 진짜"
6교시 쉬는 시간 화장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보며 다짐 했다.
전정국과 꼭 친해지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오니 바로 수업 종이 울렸다.
"김탄소, 나이스 타이밍"
태형이 날 보며 씨익 웃곤 쫙 편 손을 나에게 뻗었다.
하이파이브를 해달라는 뜻이였다.
새끼, 잘 생기긴 더럽게 잘 생겼네.
난 김태형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살짝 부딪힌 후 자리에 앉았다.
7교시 영어시간.
역시 전정국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 숨만 푹푹 쉬어댔다.
덕분에 졸지 않고 수업을 잘 들었다.
안 존게 아니라 못 존거지.
무서워서 졸지도 못 하겠네.
영어 선생님께서 나가시자마자
아이들은 하나 둘 급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뭐 저리들 급한지.
그들와 달리 전정국은 역시 느긋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쟤는 뭐 저리 느긋한지.
멍하니 전정국 짐 싸는 모습을 바라보다 그만
전정국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쟤도 잘 생기긴 더럽게 잘 생겼다.
잘생겼다는 생각도 잠시 놀란 나는 고개를 바로 돌려버렸다.
고개를 돌린 순간 '아 왜 피했지. 피하지 말 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피하기만 하면 못 친해진다고 김탄소.
나는 고개를 두 번 끄덕거리고선 아직도 짐을 싸고 있는 전정국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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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하교하자!"
나의 말에 전정국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절대 안 피할 거야, 이번에는.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전정국의 입에서는
뜻 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래"
"..에?"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다.
전정국은 내 모습을 보더니 살짝 미소지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방 끈을 쥐고 있는 오른쪽 손이 살짝 떨려왔다.
나 어쩌면, '전정국'이랑 친해질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