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봄
황제를 위하여
모를 일이다.
어째서 네가 옥상 난관 위에서 날 내려 보고 있는지.
황제를 위하여
2017年 12月 25日
겨울밤은 이르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남빛으로 스며가는 하늘엔 하이얀 입김이 흘렀다.
거리는 온통 들떠있었고 불안이 쌓인 내 명치는 코끼리가 들어찬 듯 갑갑하고 무거웠다. 거리에 어여쁘게 아롱이는 불빛들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늦으면 또 개지랄 떨겠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 홈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한 나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예수께서 넓은 아량으로 무교인 나에게까지 베푼 휴일이건만, 황제는 나를 학교로 불러냈다.
녀석의 호출에 대해선 궁금한 마음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녀석은 보통 또라이가 아니니까.
평범한 나는 녀석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해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녀석을 이해하는 순간 나도 온전한 정신은 아니게 될 터였다.
‘하필 불러도 학교 옥상이냐.’
나는 끌끌 혀를 차며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휴일인지라 학교는 고요했다.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건 운동장 잔디를 자박자박 밟고 있는 내 발 뿐이었다.
그나저나 휴일인데 학교 문이 열려있으려나. 아니, 그보다도 애당초 학교 옥상 문을 열어두기는 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황민현은 닫은 학교 문도 열게 할 놈이니까.
녀석의 별명이 황제인 것은 비단 녀석의 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침 성도 ‘황씨’였을 뿐.
조심스레 열어본 중앙현관은 역시나 열려있었다. 센서 등이 어설픈 내 몸짓을 고새 알아채고 발광하며 나를 반겼다.
4층 옥상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발을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늦으면 시발, 온갖 수모를 겪어야 할 테니까.
1년이 채 안 되는 지난 시간동안 부단히도 녀석에게 적응했구나. 스스로가 안쓰러워 코끝이 시큰거렸다.
어느새 찬기 흐르는 회색빛 문 앞. 추워서 콧물을 훌쩍이는 와중에 손바닥에 땀이 들어찼다.
나는 심장이 부풀어 갈비뼈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애써 무시하며 얼음마냥 차가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역시나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다.
“시간 맞춰 왔네.”
문 틈새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건지, 옥상 위로는 작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내가 중앙현관을 지나 4층 옥상으로 향하는 그 찰나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왜 거기에 올라가있는데.”
미친놈. 놀라서 나오는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켜내야 했다. 이와중에도 욕을 내뱉었을 때 뒤가 두렵다는 이성이 앞선 것이다.
황제는 옥상 난관 위에 서있었다.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빛이 모자란 하늘 탓에 녀석이 무슨 표정을 짓고있는지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목도리에 하관을 파묻고 있던 녀석은 고개를 들어 겨울 공기에 입술을 맞댔다.
"너 나 좋아해."
그제야 입을 연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범상치 않았다. 명백히 명령조의 말이었다.
저를 좋아하냐는 물음이 아니었다. 녀석은 내게 저를 좋아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어명이었다.
"뭐?"
"너 나 좋아해. 오래 전부터. 나고 자랐을 그 모든 시간 내내."
"미친새끼."
결국 난 그동안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황제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바람이 스산하게 오가며 녀석의 머리를 헝클였다. 녀석은 롱코트 주머니에서 제 손을 빼고 난관 시멘트 위로 세워둔 짧은 철제 울타리에 한쪽 발을 올렸다.
"뛰어내릴 거야."
진짜 단단히 돌았구나. 평범하지 않다는 건 전부터 알았지만 이 수준으로 전두엽이 맛간 상태인지는 몰랐는데.
너무 기가차서 본능적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 탓에 하얀 입김이 자잘하게 내리는 눈발과 뒤섞였다.
“빨리.”
황제가 날 재촉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정작 난간 위에 올라선 녀석은 천하태평이고, 불안함과 초조함은 오롯 내 소유라는 게. 끝까지 이기적인 새끼.
사실 그보다도 이 상황 자체가 이상했다. 돌이켜보면 난간 위에 서있을 사람은 황민현이 아닌 나여야 했다.
단단히 잘못된 이 구도가 못내 어색해서 나는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녀석이 걱정된다기 보단 하필 저딴 녀석에게 잘못 걸려 이 고생을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네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한순간도 빠짐없이 내내 날 좋아하겠다고. 빨리.”
이미 지난 시간들을 약속하라고 황제는 미친 소리를 해댔다. 약속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약속의 개념을 모르는 걸까. 와중에도 시답잖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녀석의 범상치 않은 짓거리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던 모양이었다.
“시발, 빨리.”
여유롭게 흐르던 녀석의 목소리가 조금 난폭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다.
내가 뜸 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황민현의 숨소리는 빨라졌다. 녀석은 제 키 만큼이나 쭉 뻗은 검지로 바람에 나부끼던 앞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난간 바깥쪽으로 한쪽 발을 좀 더 옮겼다. 조금 더 가면 난 원치 않게 황제의 죽음의 첫 목격자가 될 것이다.
“야, 일단 내려오자. 내려와서 이야기 하자. 제발.”
나는 급한 대로 황민현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잡았다.
그래 안다. 저 새끼는 죽을 마음 따위 없다는 걸. 죽기에는 제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놈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녀석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제 자존심에 제 목숨을 버릴지도 몰랐다.
별 꼴을 다 보며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황민현이 세상 그 누구도 납득하지 못 할 이유로 눈앞에서 죽는 꼴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남들은 그동안 녀석의 괴롭힘에 못 견딘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녀석을 밀어버린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차라리 그 편이 이것보다는 더 납득이 가는 그의 사유일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나 조차도 그 상황이 더 납득이 가는데 하물며 남이야 오죽하랴.
“야아, 안 꺼져?”
황민현은 제가 먼저 건들지 않는 한 누가 제 몸을 건드는 걸 싫어했다. 그건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내겐 더 엄격히 그 룰을 적용했다.
갑작스레 제 다리를 붙잡는 내 손이 영 불쾌한지 녀석이 소리를 높였다.
그와중에 제 몸 걱정은 되는지 나를 떼어내려 발로 차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뒤로 넘어가서 중환자실 행을 면치 못할 테니까.
평소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손을 뗐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저런 놈이지만 살리고 봐야할 거 아냐.
“이 미친놈아. 그래, 좋아할게. 지난 시간 통틀어서 좋아할게. 널 알기 전부터, 좋아할게.”
난 결국 오늘도 황제가 원하는 걸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 결국은 제 손으로 황제의 발을 감싸 쥐고 그의 발등에 키스를 하는 지긋지긋한 결말.
그제야 황민현은 아이같이 눈을 접어 웃으며 난간에서 내려왔다. 머릿속에는 온갖 미친 생각뿐인데도 저렇게 맑게 웃다니 손등에 오도도 소름이 끼쳐 올라왔다.
황제는 날 좋아하는가.
아니, 녀석은 나를 싫어했다.
“넌 나를 좋아해야 돼, 사랑해 마지않아야 돼.”
그럼에도 녀석은 내가 저를 좋아하길 바랐다.
나한테 미쳐 죽어야 돼. 녀석이 찬 손으로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내려 보는 눈빛이 무섭게 다정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언제부터 내 목줄이 황민현 손에 들려있던 거지.
숨이 가쁘다.
어쩌면 녀석을 처음 만난 3月의 그날부터 문제였을지 모른다.
녀석의 동공에 내가 들어차는 일이 없었어야 했는데.
"메리 크리스마스."
와중에 내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는 너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아, 어찌하여도 믿기지 않는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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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1편 올렸는데 양도 적고 내용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수정, 보충하여 다시 재업합니다.
(대신 포인트는 0P라늉)
서브는 고민 끝에 다녤로 정했구요.
딱 봐도 알 수 있듯이 조금은 집착물입니다.
미년... 또라이로 나오지만 밉지 않게 그리려고 노력하겠읍니다.
아참, 저번에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도 있는데... 나란 할미...
암호닉 뭐 어떻게 조치하는 건지 모르는 구석기 시대의 살암(살아있는 암덩어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