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에는 네 번호가 저장되어있었다.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내가 너에게 연락처를 준 날 받은 번호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교수님 연구실 앞에서.
반존대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04
w. 갈색머리 아가씨
"진심이세요?"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여?"
"그건 아닌데..."
"말했잖아. 나는 그렇게 착한 애 아니라고."
"..."
"나 혼자 독단적으로 말하기 좀 그래서 너 부른 거야."
"..."
"... 기분 나빴어?"
"나쁘긴 한데 좀 다른 쪽으로 나빠요."
나는 또... 보고싶어서 전화한 줄 알았죠.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대놓고 말을 한 날 이후로 너는 대담해졌다.
예전에도 뜬금없이 말을 불쑥 꺼내곤 했었지만 뭐랄까... 그 빈도수가 점점 더 많아진달까.
'각오해요.'라는 말은 괜히 한 말이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는 정말 내가 각오를 하고 있지 않으면 깜짝깜짝 놀랄만큼 훅 들어오곤 했다.
너를 연구실 앞으로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나는 교수님과 대면을 하기 위해 연구실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면의 이유 역시도 간단했다. 무임승차하는 조원들은 이름을 빼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물론 네가 말을 했던 것처럼 중간고사에서만 그들이 점수를 받고 기말고사에서는 폭망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밥상을 차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
"선배 점수 깎이는 거 아니에요?"
"이런 걸로 깎였으면 진작에 나 학고 받았어. (*학고 : 학사경고)"
"그래도..."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니잖아."
"네?"
"너는 그냥 이대로 묻어가도 상관없다며. 나 지금 들어가서 교수님께 말씀 드려도 괜찮아?"
"안괜찮을 게 뭐가 있어요."
"..."
"선배는 이미 말하고 싶다고 정하고 나서 나를 불렀는데."
그래.
얘 호구 아니라니까. 처음에 너를 보고 호구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면 또 그렇네. 마냥 호구였으면 패디과 절대 못가지. 아무래도 예체능 계열이다보니 빡센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나는 이미 교수에게 이런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정해놓고 너를 부른 거였다.
단지 네가 같은 조원이라는 이유로.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여전히 얼굴 가득 미소를 띈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나는 이상했다.
"..."
"왜요?"
"진짜 기분 안나빠?"
"네."
"나빠야 정상 아니야? 나 지금 네 의견 무시하고 내 의견만 밀어붙이고 있는 거잖아."
"음... 그래도."
"..."
"선배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요."
"..."
어쩌면 너는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사람일지도 몰랐다.
-
"이미 팀워크도 채점 요소 중 하나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무슨 의미에서 조별과제를 내주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조원 두 명이 현재 아무런 자료도 보내지 않고 연락부터 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조장이 조원들을 잘못 이끄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에요."
"..."
아나.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에게 이런 말을 쓰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전형적인 꼰대.
수강신청을 망친 내가 병신이지.
객관적으로 봐도 너는 너의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조장이라는 직함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싸그리 무시하고 이지경까지 끌고 온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이었다.
지금 이런 상황을 하나도 보지 않고 그냥 '조장의 무능력'으로 치부하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입술 안쪽을 잘근 깨물며 애써 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을 꾹꾹 눌러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말들을 그대로 뱉어내면 난 그대로 F를 받으며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성이름. 조금만 참아내자. 지금 너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들어온 게 아니야.
"교수님도 알다시피 문예창작과는 다른 과제들도 많습니다. 때문에 제가 조장을 맡을 수는 없었어요."
"..."
"2학년 패디과 민영훈 학생은 절대 자기가 조장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때문에 1학년인 황민현 학생이 조장을 맡게 되었어요."
"지금 그게 이 상황이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죠?"
"상대적으로 1학년이 조장을 맡고 있으면 그 윗학년들에게 역할을 나눠주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민영훈 학생은 황민현 학생의 직속선배에요.
교수님도 아시잖아요. 저희 학교 패디과 군기 잡기로 유명한 거."
"..."
"수차례 카톡을 보내고 메일도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습니다. 회의를 할 때면 계속해서 빠지기 일수였습니다.
무단으로 빠지는 조원들에게 어떻게 조치를 취해달라 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조원 명단에서 두 사람 이름 빼는 것만 허락해주세요."
"...성이름 학생?"
"네."
너는 지금 연구실 맨 구석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나와 교수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름 어떤 분위기일 것이다 라는 것은 예상을 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뭔가 바뀔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아주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정확히 말하면 그다지 큰 기대를 걸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말을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컸다. 이 사람에게 내 의견이 어떤 것인지 알리는 것 그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목적을 이뤘고 그것에 대한 결과를 받을 때였다.
"이름 제명은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
"제명시킨 학생들이 정말 불성실하게 과제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있어야 합니다."
"무슨 증거..."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좋습니다. 성이름 학생이 성실하게 참여한 학생들을 제명시킬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 감사합니다."
"들어가서 쉬도록해요. 수고 많았고."
허리를 꾸벅 숙여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이었다. 꼰대는 꼰대였지만 귀가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연구실 밖으로 나오자 긴장이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힘이 꼿꼿하게 들어가있던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이 정도로 긴장을 했었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손으로 벽을 짚었다. 누군가 내 팔을 잡아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너였다.
"아..."
"선배 완전 대박."
"..."
"진짜 멋있었어요."
"...고마워."
너의 말을 듣자 그제야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너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고마웠기에. 그러자 너는 멀뚱히 두 눈을 깜박였다.
내가 뭐 잘못했나..?
"왜그래?"
"어떡하면 좋아요?"
"뭐가?"
"선배 아까 웃는 거."
"응?"
"진짜 예뻤어요."
아무래도 지금 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아주아주 두꺼운 걸로.
-
"이제 남은 건 증거 찾는 거네요."
"너 집 안가?"
"괜찮아요! 저 부산출신이라 하숙하거든요."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넘겼다. 지금 너는 연구실에서부터 카페까지 졸졸 따라온 상황이었다.
오늘은 조용히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모두 무산이 될 듯 싶었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고.
책을 덮었다.
책 두께가 꽤나 두꺼웠기에 탁 하는 소리도 꽤나 크게 울렸다.
너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책을 덮은 것이 마음에 든 거겠지.
이렇게 보면 너는 참 속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다 보이는데 그게 과연 진심일까? 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그나저나 겨우 한 번 웃은 걸로 그렇게 말할 일인가.
그렇게 따지면 나는 하루에 몇 번을 놀래야 하는 거지. 너는 나를 볼 때마다 저렇게 개죽이마냥 웃는데 말이야.
"무슨 생각해요?"
"증거 어떻게 잡을까 라는 생각."
"카톡 캡처면 되지 않을까요?"
"그 인간들이 악의적인 캡처라고 우기면 끝이야."
"음..."
"일부러 안읽는 거는 맞아. 지난번에 나한테 갠톡 왔거든."
"갠톡이요?"
"응. 둘이 술먹자고."
"..."
"왜?"
"진짜 그렇게 왔어요?"
"응. 그게 왜?"
영훈선배랑 선미 둘이 CC잖아요.
네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턱을 괴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해결이 될 것 같았다. 어디 사는 아무개씨의 멍청한 행동 덕분에.
-
(이 짤 너무 좋아서 한 번 더...ㅎㅎ)
〈암호닉>
짱요 / 응 / 뿜뿜이 / 책상이 / 너우리 / 0713 / 모기 / 아몬드
여주 성격 = 전형적인 외강내유 입니다.
그리고 여주가 매일 본다는 민현이 개죽이 웃음
((((심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