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것
w.리틀걸
- 쉬어가는 단편, 김재환 ver -
# 유승우 - 선 (feat. 우효) (45.7cm)
" 이럴 줄 알았다─ 내가. "
김재환은 예전 다니던 고등학교 벤치에 앉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청승맞게.. 왜그르냐. 진짜. 혀를 끌끌 차는 말투에 평소라면 말하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발끈했을테지만 괜히 더 서러워서 녀석을 한 번 노려본 후 다시 눈물을 질질 짰다. 서럽다. 진짜. 그런 내 모습에 저도 당황한 건지 녀석이 조금 누그러뜨려진 얼굴로 털썩, 내가 앉은 벤치 앞에 쭈그려 앉는다. 눈물도 많다. 여주야.
" 만나도 꼭 그런 놈만 골라 사귀냐. "
" .. 허으우.. 끄윽."
풀썩. 녀석은 쭈그려 있던 다리를 아빠다리로 고쳐 앉았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내 모습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 야, 뚝해. 뚝. "
" 엉엉.., 존나 서러워.. 영민아아.. "
" 그렇게 당해놓고 영민이 소리가 나오지. 지금? "
" 허엉.. 왜, 끅. 이름.. 부르는 걸로 끅. 서럽게.. "
" 하여간.. 김여주 남자 보는 눈 하나 끝내줘. 박수감이야. "
존나게 서럽다. 진짜 안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왜 너까지 지랄이야. 망할 김재환아.. 눈물, 콧물 흘리는 거 안보이냐. 지금, 어? 결국 팔에 얼굴을 묻었다. 찔찔. 자꾸만 눈물이 새어나는 탓이다.
김재환을 부르기 불과 몇 시간 전, 난 임영민과의 1년 연애를 끝냈다. 아니, 일방적으로 까인 꼴이었다. 임영민은 바람났다. 요즘 들어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네 옆에 다른 여자가 생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난 그런 임영민에게 욕 한 마디 해주지 못했다. 사람이라는 게 막상 그런 일을 직접 겪으니까 머리가 새하얘지더라. 그렇게 멍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나니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거다. 등신같게도.
" .. 업어줘. "
" 미쳤냐? "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팍 들어올렸다. 여전히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훌쩍, 코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쉰 후 이어진 내 말에 김재환은 단호했다. 잔뜩 인상 쓴 얼굴로 날 올려다 보는 녀석이지만, 그치만 나는 안다. 너는 곧 나를 업게 될 것을..
" 엉엉.. 끅, 김여주 인생이 그렇지. 뭐.. "
" ... 야야. 너 진짜. "
쭈그려 앉아 다리에 얼굴을 묻은 채 우는 소리로 뱉는 내 말에 김재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치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여주 인생이 그렇지 뭐. 남친은 바람났지, 하나뿐인 친구란 놈은 거기다대고 잔소리나 해대지. 이렇게 서러운 인생이 어디있느냔 말이야. 아, 서럽다. 서러워.
" 불행한 김여주... 허엉.. "
" 어떻게 된 게 레파토리가 변하질 않냐.. "
녀석이 모래가 붙은 제 다리를 툭툭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콧물 닦고. 이번엔 제 엉덩이 쪽에 묻은 모래알들을 털어내더니 내 쪽을 흘겨본다. 슬쩍, 김재환의 행동을 살피던 나는 갑작스럽게 꽂힌 시선에 움찔했다. 그리고 다시 서러운 연기를 시전했다. 이번엔 김재환이 혀를 찼다.
웃기는 놈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등을 내줄 거면서. 옷에 콧물 묻히면 죽는다. 이거 새로 산 거야. 새로 산 거. 내 앞에 쪼그려 앉은 놈이 툴툴대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 힘차게 녀석의 등에 업히자 윽, 하는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 아─ 좋다. "
" 좋겠지. 그렇게 차여놓고. "
" 그 얘기가 여기서 또 왜 나와.. (쿨쩍) "
다시 훌쩍거리는 내 말에 김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놈은 예전부터 그랬다.
똑똑하고 영리한 놈과 달리 난 바보같고 멍청했다. 그렇기에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였던 부모님들 덕에 붙어 다니던 우리 사이가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였던 것은 당연했다.
녀석은 내가 바보같은 짓을 당할 때마다 저렇게 툴툴거리는 어투로 나를 나무랐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달래주던 건 막무가내인 내 요구를 다 들어주는 놈의 모습이었다. 그게 참 어릴적부터 큰 위로가 됐다. 성격이 드센 탓에 친구들이랑 다투고 혼자 놀이터에 남아 있으면, 그걸 찾으러 와주던 것도 늘 김재환이었다. 멍청한 주제에 자존심은 세서 집에 안가려는 나를 늘 오늘처럼 달래 업고 가던 것이 바로 놈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어릴 적에 놈을 짝사랑했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 난 진짜 남자 보는 눈이 없나봐.. 그치? "
" ....... "
한탄하듯 중얼거린 내 말에 김재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시 찾아온 울적한 기분에 난 녀석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내 쪽으로 더 끌었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갑작스런 제 행동에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김재환의 옷에서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게 참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향기에 홀리기라도 하는 듯이.
" 첫 연애는 나 질린다고 헤어지고, 두번째 연애는 뭐.. 사귄 거 같지도 않았었고. "
" ....... "
" 이번엔 오래 갈 줄 알았는데.. 또 이래. 짜증나게.. "
" 그러니까 내가 사람 좀 가려가면서 만나라ㄱ.. "
" 그러게. 이번엔 보는 눈 있는 니가 나 좀 말려주지.. "
이어진 내 말에 김재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난 여전히 놈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로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내가 임영민은 진짜 많이 좋아했는데.. 속상해서 내뱉는 말에 김재환은 말이 없다. 쿨쩍. 무어라 위로의 말이라도 건넬만 한데, 참으로 정 없는 놈이었다. 쟈갑다. 쟈가워.. 괜히 멋쩍어서 머리로 툭 녀석의 어깨를 건들였다. 녀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재미없어. 다시 풀이 죽어 김재환 어깨에 턱을 올렸다.
" 김여주. "
오랜 정적에 나도 덩달아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고 있을 때 즈음, 내 이름을 불러오는 김재환의 목소리에 이번엔 내가 놀라 몸을 움찔했다. 녀석은 답지않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 왜- 왜불러어.. "
그 목소리에 괜히 위축되서 말 끝을 늘였다. 난 니가 진지할 때면 왠지 무섭단 말야..
" 너 옛날에 부모님 여행 가셔서 무섭다고 밤새 옆에 있어줬던 거, 누구였지? "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뜬금 없이 내뱉어진 녀석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아 가만히 눈을 꿈벅였다. 누구긴 누구야. ..너지.
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것
w.리틀걸
- 쉬어가는 단편, 김재환 ver -
# 유승우 - 선 (feat. 우효) (45.7cm)
" 이럴 줄 알았다─ 내가. "
김재환은 예전 다니던 고등학교 벤치에 앉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청승맞게.. 왜그르냐. 진짜. 혀를 끌끌 차는 말투에 평소라면 말하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발끈했을테지만 괜히 더 서러워서 녀석을 한 번 노려본 후 다시 눈물을 질질 짰다. 서럽다. 진짜. 그런 내 모습에 저도 당황한 건지 녀석이 조금 누그러뜨려진 얼굴로 털썩, 내가 앉은 벤치 앞에 쭈그려 앉는다. 눈물도 많다. 여주야.
" 만나도 꼭 그런 놈만 골라 사귀냐. "
" .. 허으우.. 끄윽."
풀썩. 녀석은 쭈그려 있던 다리를 아빠다리로 고쳐 앉았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내 모습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 야, 뚝해. 뚝. "
" 엉엉.., 존나 서러워.. 영민아아.. "
" 그렇게 당해놓고 영민이 소리가 나오지. 지금? "
" 허엉.. 왜, 끅. 이름.. 부르는 걸로 끅. 서럽게.. "
" 하여간.. 김여주 남자 보는 눈 하나 끝내줘. 박수감이야. "
존나게 서럽다. 진짜 안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왜 너까지 지랄이야. 망할 김재환아.. 눈물, 콧물 흘리는 거 안보이냐. 지금, 어? 결국 팔에 얼굴을 묻었다. 찔찔. 자꾸만 눈물이 새어나는 탓이다.
김재환을 부르기 불과 몇 시간 전, 난 임영민과의 1년 연애를 끝냈다. 아니, 일방적으로 까인 꼴이었다. 임영민은 바람났다. 요즘 들어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네 옆에 다른 여자가 생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난 그런 임영민에게 욕 한 마디 해주지 못했다. 사람이라는 게 막상 그런 일을 직접 겪으니까 머리가 새하얘지더라. 그렇게 멍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나니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거다. 등신같게도.
" .. 업어줘. "
" 미쳤냐? "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팍 들어올렸다. 여전히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훌쩍, 코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쉰 후 이어진 내 말에 김재환은 단호했다. 잔뜩 인상 쓴 얼굴로 날 올려다 보는 녀석이지만, 그치만 나는 안다. 너는 곧 나를 업게 될 것을..
" 엉엉.. 끅, 김여주 인생이 그렇지. 뭐.. "
" ... 야야. 너 진짜. "
쭈그려 앉아 다리에 얼굴을 묻은 채 우는 소리로 뱉는 내 말에 김재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치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여주 인생이 그렇지 뭐. 남친은 바람났지, 하나뿐인 친구란 놈은 거기다대고 잔소리나 해대지. 이렇게 서러운 인생이 어디있느냔 말이야. 아, 서럽다. 서러워.
" 불행한 김여주... 허엉.. "
" 어떻게 된 게 레파토리가 변하질 않냐.. "
녀석이 모래가 붙은 제 다리를 툭툭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콧물 닦고. 이번엔 제 엉덩이 쪽에 묻은 모래알들을 털어내더니 내 쪽을 흘겨본다. 슬쩍, 김재환의 행동을 살피던 나는 갑작스럽게 꽂힌 시선에 움찔했다. 그리고 다시 서러운 연기를 시전했다. 이번엔 김재환이 혀를 찼다.
웃기는 놈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등을 내줄 거면서. 옷에 콧물 묻히면 죽는다. 이거 새로 산 거야. 새로 산 거. 내 앞에 쪼그려 앉은 놈이 툴툴대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 힘차게 녀석의 등에 업히자 윽, 하는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 아─ 좋다. "
" 좋겠지. 그렇게 차여놓고. "
" 그 얘기가 여기서 또 왜 나와.. (쿨쩍) "
다시 훌쩍거리는 내 말에 김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놈은 예전부터 그랬다.
똑똑하고 영리한 놈과 달리 난 바보같고 멍청했다. 그렇기에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였던 부모님들 덕에 붙어 다니던 우리 사이가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였던 것은 당연했다.
녀석은 내가 바보같은 짓을 당할 때마다 저렇게 툴툴거리는 어투로 나를 나무랐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달래주던 건 막무가내인 내 요구를 다 들어주는 놈의 모습이었다. 그게 참 어릴적부터 큰 위로가 됐다. 성격이 드센 탓에 친구들이랑 다투고 혼자 놀이터에 남아 있으면, 그걸 찾으러 와주던 것도 늘 김재환이었다. 멍청한 주제에 자존심은 세서 집에 안가려는 나를 늘 오늘처럼 달래 업고 가던 것이 바로 놈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어릴 적에 놈을 짝사랑했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 난 진짜 남자 보는 눈이 없나봐.. 그치? "
" ....... "
한탄하듯 중얼거린 내 말에 김재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시 찾아온 울적한 기분에 난 녀석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내 쪽으로 더 끌었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갑작스런 제 행동에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김재환의 옷에서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게 참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향기에 홀리기라도 하는 듯이.
" 첫 연애는 나 질린다고 헤어지고, 두번째 연애는 뭐.. 사귄 거 같지도 않았었고. "
" ....... "
" 이번엔 오래 갈 줄 알았는데.. 또 이래. 짜증나게.. "
" 그러니까 내가 사람 좀 가려가면서 만나라ㄱ.. "
" 그러게. 이번엔 보는 눈 있는 니가 나 좀 말려주지.. "
이어진 내 말에 김재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난 여전히 놈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로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내가 임영민은 진짜 많이 좋아했는데.. 속상해서 내뱉는 말에 김재환은 말이 없다. 쿨쩍. 무어라 위로의 말이라도 건넬만 한데, 참으로 정 없는 놈이었다. 쟈갑다. 쟈가워.. 괜히 멋쩍어서 머리로 툭 녀석의 어깨를 건들였다. 녀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재미없어. 다시 풀이 죽어 김재환 어깨에 턱을 올렸다.
" 김여주. "
오랜 정적에 나도 덩달아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고 있을 때 즈음, 내 이름을 불러오는 김재환의 목소리에 이번엔 내가 놀라 몸을 움찔했다. 녀석은 답지않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 왜- 왜불러어.. "
그 목소리에 괜히 위축되서 말 끝을 늘였다. 난 니가 진지할 때면 왠지 무섭단 말야..
" 너 옛날에 부모님 여행 가셔서 무섭다고 밤새 옆에 있어줬던 거, 누구였지? "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뜬금 없이 내뱉어진 녀석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아 가만히 눈을 꿈벅였다. 누구긴 누구야. ..너지.
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것
w.리틀걸
- 쉬어가는 단편, 김재환 ver -
# 유승우 - 선 (feat. 우효) (45.7cm)
" 이럴 줄 알았다─ 내가. "
김재환은 예전 다니던 고등학교 벤치에 앉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청승맞게.. 왜그르냐. 진짜. 혀를 끌끌 차는 말투에 평소라면 말하는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고 발끈했을테지만 괜히 더 서러워서 녀석을 한 번 노려본 후 다시 눈물을 질질 짰다. 서럽다. 진짜. 그런 내 모습에 저도 당황한 건지 녀석이 조금 누그러뜨려진 얼굴로 털썩, 내가 앉은 벤치 앞에 쭈그려 앉는다. 눈물도 많다. 여주야.
" 만나도 꼭 그런 놈만 골라 사귀냐. "
" .. 허으우.. 끄윽."
풀썩. 녀석은 쭈그려 있던 다리를 아빠다리로 고쳐 앉았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내 모습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 야, 뚝해. 뚝. "
" 엉엉.., 존나 서러워.. 영민아아.. "
" 그렇게 당해놓고 영민이 소리가 나오지. 지금? "
" 허엉.. 왜, 끅. 이름.. 부르는 걸로 끅. 서럽게.. "
" 하여간.. 김여주 남자 보는 눈 하나 끝내줘. 박수감이야. "
존나게 서럽다. 진짜 안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왜 너까지 지랄이야. 망할 김재환아.. 눈물, 콧물 흘리는 거 안보이냐. 지금, 어? 결국 팔에 얼굴을 묻었다. 찔찔. 자꾸만 눈물이 새어나는 탓이다.
김재환을 부르기 불과 몇 시간 전, 난 임영민과의 1년 연애를 끝냈다. 아니, 일방적으로 까인 꼴이었다. 임영민은 바람났다. 요즘 들어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네 옆에 다른 여자가 생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난 그런 임영민에게 욕 한 마디 해주지 못했다. 사람이라는 게 막상 그런 일을 직접 겪으니까 머리가 새하얘지더라. 그렇게 멍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나니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거다. 등신같게도.
" .. 업어줘. "
" 미쳤냐? "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팍 들어올렸다. 여전히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훌쩍, 코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쉰 후 이어진 내 말에 김재환은 단호했다. 잔뜩 인상 쓴 얼굴로 날 올려다 보는 녀석이지만, 그치만 나는 안다. 너는 곧 나를 업게 될 것을..
" 엉엉.. 끅, 김여주 인생이 그렇지. 뭐.. "
" ... 야야. 너 진짜. "
쭈그려 앉아 다리에 얼굴을 묻은 채 우는 소리로 뱉는 내 말에 김재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치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여주 인생이 그렇지 뭐. 남친은 바람났지, 하나뿐인 친구란 놈은 거기다대고 잔소리나 해대지. 이렇게 서러운 인생이 어디있느냔 말이야. 아, 서럽다. 서러워.
" 불행한 김여주... 허엉.. "
" 어떻게 된 게 레파토리가 변하질 않냐.. "
녀석이 모래가 붙은 제 다리를 툭툭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콧물 닦고. 이번엔 제 엉덩이 쪽에 묻은 모래알들을 털어내더니 내 쪽을 흘겨본다. 슬쩍, 김재환의 행동을 살피던 나는 갑작스럽게 꽂힌 시선에 움찔했다. 그리고 다시 서러운 연기를 시전했다. 이번엔 김재환이 혀를 찼다.
웃기는 놈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등을 내줄 거면서. 옷에 콧물 묻히면 죽는다. 이거 새로 산 거야. 새로 산 거. 내 앞에 쪼그려 앉은 놈이 툴툴대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 힘차게 녀석의 등에 업히자 윽, 하는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 아─ 좋다. "
" 좋겠지. 그렇게 차여놓고. "
" 그 얘기가 여기서 또 왜 나와.. (쿨쩍) "
다시 훌쩍거리는 내 말에 김재환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놈은 예전부터 그랬다.
똑똑하고 영리한 놈과 달리 난 바보같고 멍청했다. 그렇기에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였던 부모님들 덕에 붙어 다니던 우리 사이가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였던 것은 당연했다.
녀석은 내가 바보같은 짓을 당할 때마다 저렇게 툴툴거리는 어투로 나를 나무랐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달래주던 건 막무가내인 내 요구를 다 들어주는 놈의 모습이었다. 그게 참 어릴적부터 큰 위로가 됐다. 성격이 드센 탓에 친구들이랑 다투고 혼자 놀이터에 남아 있으면, 그걸 찾으러 와주던 것도 늘 김재환이었다. 멍청한 주제에 자존심은 세서 집에 안가려는 나를 늘 오늘처럼 달래 업고 가던 것이 바로 놈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어릴 적에 놈을 짝사랑했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 난 진짜 남자 보는 눈이 없나봐.. 그치? "
" ....... "
한탄하듯 중얼거린 내 말에 김재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시 찾아온 울적한 기분에 난 녀석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내 쪽으로 더 끌었다. 그리고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갑작스런 제 행동에 녀석의 몸이 움찔했다.
김재환의 옷에서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게 참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향기에 홀리기라도 하는 듯이.
" 첫 연애는 나 질린다고 헤어지고, 두번째 연애는 뭐.. 사귄 거 같지도 않았었고. "
" ....... "
" 이번엔 오래 갈 줄 알았는데.. 또 이래. 짜증나게.. "
" 그러니까 내가 사람 좀 가려가면서 만나라ㄱ.. "
" 그러게. 이번엔 보는 눈 있는 니가 나 좀 말려주지.. "
이어진 내 말에 김재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난 여전히 놈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로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내가 임영민은 진짜 많이 좋아했는데.. 속상해서 내뱉는 말에 김재환은 말이 없다. 쿨쩍. 무어라 위로의 말이라도 건넬만 한데, 참으로 정 없는 놈이었다. 쟈갑다. 쟈가워.. 괜히 멋쩍어서 머리로 툭 녀석의 어깨를 건들였다. 녀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재미없어. 다시 풀이 죽어 김재환 어깨에 턱을 올렸다.
" 김여주. "
오랜 정적에 나도 덩달아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고 있을 때 즈음, 내 이름을 불러오는 김재환의 목소리에 이번엔 내가 놀라 몸을 움찔했다. 녀석은 답지않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 왜- 왜불러어.. "
그 목소리에 괜히 위축되서 말 끝을 늘였다. 난 니가 진지할 때면 왠지 무섭단 말야..
" 너 옛날에 부모님 여행 가셔서 무섭다고 밤새 옆에 있어줬던 거, 누구였지? "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뜬금 없이 내뱉어진 녀석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아 가만히 눈을 꿈벅였다. 누구긴 누구야. ..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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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나지. "
" ....... "
" 그럼 바쁜 너네 부모님 대신해서 졸업식 갔던 건. "
... 그것도 너. 입술을 잘게 씹었다.
" 너 민현인가 뭔가하는 형한테 차이고, 걔네 집 앞에 가서 울고 불고 난리 치는 거 데리러 갔던 거는. "
" ....... "
" 대학에서 술 처음 마시고 꽐라됐을 때. 전화 받고 달려갔던 건. "
전부 너. 김재환 너. 근데 자꾸 왜 이런 질문을 던져.. 기분 이상해지게. 김재환이 내게 던지는 말들과 함께 과거 기억들이 오버랩 됐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묘한 감정이,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닐 거라고. 난 머릿 속으로 애써 그 생각을 부정했다.
" .. 내려줘. 나 걸어갈래. "
자꾸만 스치는 생각들에 웅얼거리듯 말을 내뱉었지만 내려달라는 내 말에도 김재환은 미동도 없었다. 묵묵히 발걸음만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리 사이를 감싸버린 어색한 공기는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 야, 김재환.. "
" 김여주. "
" ....... "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김재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불러왔다.
" 너는 내가 지금 무슨 말 할 지 감이 안 와? "
김재환의 말에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고개를 절레 저었다. 감이 안오긴. 개뿔.. 감이 아주 잘 와서, ..문제지.
" 이제 나 좀 봐 줄 때 되지 않았냐고. 너. "
그제서야 김재환의 발걸음이 멈췄다.
놈은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온 우정을,
그리고 우리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그어놓았던 선을..
" 그만 모른 척 할 때도 됐잖아. 여주야. "
제 발로 넘었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리틀걸입니다 ㅇ_< 재환이 글 원하시는 분들도 많았던 거 같아서 그냥 짧은 단편 준비해왔어요! 왠지 지난 재환이 단편의 외전같은 느낌이네요.. 쓰기 전에는 그런 생각 안했었는데.. 혹시 이전 단편 안보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어쩐지 재환이 글은 친구 사이인 설정이 자꾸 떠올라서 ㅎㅎ 영민이, 세운이 글은 이번주말에 들고 오겠습니다 작가가 집에 내려갈 예정이라 일찍은 못 들고 올 거 같네요 ㅠ_ㅠ 그럼 내일도 좋은하루 되세운♡ 독자님덜... 싸랑합니다..(하튜) |
♡ 독자님들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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